2014년 1월호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감성팔이, 희망고문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3-12-20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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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삶의 서사가 붕괴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추억과 낭만을 되새김질한다.
    • 조로한 1990년대 세대마저 “응답하라”고 외치면서 애틋한 옛 기억만 뒤적거린다.
    • 아무래도 ‘힐링’은 이런 차가운 계절과는 무관한 일인 듯싶다.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의 일상이지만, 어쩌다가 갑자기 시간이 텅 비어버리는, 그런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잠시 당황하지만, 곧 수습하면서 아, 이건 시간의 신이 특별히 내려주신 선물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

    11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이 그랬다. 작업실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의 약속을 위해 나갔으나 그만 어떤 이의 사정으로 한 주 미뤄지게 됐다. 조금만 일찍 연락이 닿았더라면 굳이 작업실을 벗어날 까닭은 없었는데, 이미 나는 인사동에 나와버렸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저녁 약속은 8시 시청 앞. 그 사이의 7시간이 갑자기 주어졌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하는 약속이 아닌 바에야 그저 혼자 배회하는 습관을 유지할 뿐 한 줌의 시간이 생겼다 해서 누군가를 불러 허튼 소리나 주고받는 일을 극도로 경계해왔으므로 나는 곧 휴대전화를 진동 모드로 바꿔놓고는 광화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는 식민지였던가. 우선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인사동 사거리에서 광화문 쪽으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언덕길, 오른편으로 높고 길고 둔중한 담장이 꽤 지속되었다.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였는데, 어느 기업이 우여곡절 끝에 매입했고 바로 이 자리에 호텔을 짓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전통의 명문 학교들이 터를 잡고 있어서 관광객 유치가 목적인 호텔이 이 자리에 들어설 수 있겠는가 하는 비판 여론 또한 들어서 알고 있다.

    길고 높고 둔중한 담장이 가리고 있던 터를 상상하니, 외국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제3세계 어딘가에서 긴급 사태가 발생하는데, 그래도 그곳의 현지 미국대사관이나 관련 시설은 안전지대가 되는, 그런 영화를 생각하니, 이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야말로 꼭 그런 지점에 꼭 그런 형상의 담장으로 둘러쳐진 외지의 영토 같았다.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지만 길고 높고 아득한 담장 때문에 한참이나 걷는 느낌이다.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시대정신이 사라진 시대



    이윽고 광화문이 보이고, 동십자각 근처에 다다랐는데, 내 발걸음은 갑자기 우회전해 한참을 더 올라갔다. 수십 년 동안 한국 미술계와 문화계의 숙원이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했으니, 갑자기 텅 빈 이 시간이야말로 그곳을 둘러보기에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쌀쌀하고 흐린 평일 오후임에도 꽤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어 있었다. 주말이면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다. 도심에 새로 뭔가가 생기면 사람들이 몰려온다. 누군가는 그런 풍경을 못마땅해하는데, 무엇인가가 새로 생겨서 사람들이 아이들 손잡고 몰려가는 일이야말로 간절하고 애틋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야박하게 살아오는 동안 무엇인가를 구경하고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귀갓길에 밥이라도 함께 먹는, 그런 풍경에조차 우리는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전시회는, 일단 ‘서울관’이 아니라 ‘서울대관’ 같았다. 개관 기념 전시인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의 참여 작가 38명 중 27명이 서울대 미대 출신이었다. 하아, 역시 이 나라는 예술에서도 얼어 죽을 서울대의 나라구나, 이런 푸념이 절로 드는 구성이었다. 그런데 더 문제는 ‘서울대 동문전’ 같은 인적 구성이 아니라 ‘시대정신’이라는 주제 아래 전시된 작품들로부터 팽팽한 ‘시대정신’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까짓 서울대면 어떠랴, 기획 의도에 맞게 작품이라도 시대의 정신을 제대로 반영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듣자 하니 조금 세게 ‘시대정신’을 추구한 몇몇 작품은 제외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서 설치미술작가 장영혜의 작품을 한참 본 후 미술관 바깥으로 나와서 배회했다. 승용차 없이는 엄두도 못 낼, 평일에는 도저히 갈 수가 없는 저 청계산 깊은 곳의 미술관에 비한다면, 어찌 됐든 한국의 미술계와 시민들은 큰 선물을 받은 셈이기는 하다. 큼직하게 구획 정리를 하고 동선을 안쪽 깊이 자연스럽게 유도하기도 해서, 보행로가 서너 배 넓어진 효과까지 있다. 나는 드넓은 창가에 앉아 쌀쌀한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중정을 보면서 앉아 있었다.

    마담 보바리의 ‘자기愛’

    갑자기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생각났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시골 오지에서 벗어나려는 소녀 엠마, 읍내 최고 신랑감인 의사 샤를 보바리와 혼인하지만, 기존의 관습과 도덕의 억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몸부림친다. 몸부림 끝에 결국 비소를 먹고 자살한다. 마음의 통증이 심했다.

    1856년 4월 탈고된 이 소설은 1815년 빈 체제가 성립된 이후의 유럽 시민의 일상 문화를 잘 묘사하고 있다. 엠마 보바리는 여성지를 탐독한다. ‘라 코르베유’와 ‘살롱의 요정’. 각종 공연물의 개봉일자와 경마, 야회, 여가수의 데뷔, 매장 오픈 등을 샅샅이 읽는다. 으젠 쉬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안에 묘사된 실내 가구를 메모했고, 오노레 드 발자크나 조르주 상드의 소설을 읽으면서 작품 속 여주인공과 자신의 일상을 겹쳐 상상한다. 그런 ‘잡다한 독서’를 통해 영혼의 깊은 곳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법학도 레옹이 나타난다. ‘통증’이 심한 엠마는 말한다.

    “바닷가에 지는 저녁놀처럼 멋진 것은 없어요.”

    그러자 레옹이 작업을 건다.

    “호수의 시적인 아름다움과 폭포의 매력과 거대한 빙하의 맛은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나무들이 급류를 가로질러 무성하고, 천애절벽에 걸려 있는 듯한 오두막집들에다, 구름이 반쯤 열려지기라도 하면 발아래 천 길 밑으로 골짜기가 완전히 보이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풍경은 틀림없이 우리를 열광시킬 것이고, 기도의 세계나 법열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줄 겁니다. 그러니 나는 유명한 음악가가 상상력을 더 잘 북돋우기 위해서 늘 장엄한 경치를 앞에 하고, 피아노를 치러 그런 곳에 가는 것을 조금도 놀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나는, 주변의 사람들이 다들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평일의 카페에서 잡지를 읽으며 대화를 나누는 시민들, 최신 유행을 서둘러 받아들이는 시민들, 정치적 억압을 피해 내면의 자유를 찾으려는 시민들, ‘영혼의 사건’을 위해 방황하는 시민들. 2013년 한국의 도시 일상에서 흔히 보게 되는, 칙릿 소설에서, 혹은 홍대 앞 힙스터 문화에서, 혹은 민음사 창고 세일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매표소 앞에 길게 줄지어 서는 마음의 풍경들 말이다.

    ‘아늑한 평화’를 소망하다

    미술관을 나와서 시내로 걸어 나가는데, 자연스레 광화문 앞으로 걷게 됐다. 원래는 광화문 앞을 스쳐 지나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가서 다리 쉼을 할 생각이었다. 광화문을 등지고 볼 때, 비록 정부종합청사와 세종문화회관이 압도적인 스케일을 갖고는 있지만, 그래도 반대편의 둔중한 건물들에 비해서는 마음이 놓인다. 그 뒤편의 골목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광화문 앞에서 진행되는 수문장 이벤트 때문에 걸음이 멈췄고 어느새 나는 경복궁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정확한 역사적 고증에 따른 재현이라기보다는 서유럽의 근대 국가주의적 근위 열병식을 옮겨놓은 듯한 이벤트였지만, 많은 사람이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 열기는 무엇일까. 왜 역사적 고증이 아니라 문화적 이벤트에 이토록 집중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경복궁으로 들어섰는데, 아! 자연스레 마음속에서 탄성이 나왔다.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야말로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꽤 많은 사람이, 게다가 중국이며 베트남이며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 깃발을 따라 몰려다니는 상황이었음에도, 흡사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한 장면처럼 몰려다니는 관광객들은 그저 바람처럼 스칠 뿐이고 내 앞에는 장엄한 근정전이 갑자기 쑥 솟아오른 듯 서 있었다.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경복궁 근정전.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경복궁에서 바라본 광화문 빌딩 숲.

    이미 시간은 네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꽤 넓은 경복궁이기에 남은 시간 동안 뭐라도 본다고 하면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녀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경복궁 전체는 포기했다. 서울 한복판이니 언제든 다시 오기 쉬운 곳이다. 대신 근정전 하나만 목표로 했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오른편에서, 다시 앞에서 그렇게 각도를 달리해 근정전만 한 시간이 넘도록 보고 또 보았다.

    초겨울이지만 다행히 따스한 기운을 담은 햇살이 전의 내부로 스며들어 있었다. 노르스름한 겨울 햇살이 견고하게 시간을 머금고 있는 전의 내부를 쓰다듬으면서 조금씩 사위어갔다. 꽤 많은 사람이 저물어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나는, 다시, 근정전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1815년 수립된 빈 체제는 프랑스혁명 이전의 왕정을 복위시키고 프랑스의 정복지들을 강대국들이 분할해 차지함으로써 유럽 사회의 모든 질서를 혁명 이전으로 돌려놓았다.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1815년 이후의 이 경찰국가 시기를 문화사에서는 ‘비더마이어’라고 한다.

    혁명의 시대 이후, 나폴레옹 시대 이후, 왕정복고 이후, 유럽 시민들은 거리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거실과 카페의 교양 있는 중산층이 되려고 했다. 가정 음악회, 편지 쓰기, 취미용품 수집, 시낭송 등이 유행했다. 카를 슈피츠베크, 에드윈 랜드시어 등은 그 시대의 ‘아늑한 평화’를 보여준다. 화면 속의 인물들은 정원을 가꾸고 거실 인테리어를 바꾸고, 강아지를 기른다. 세상은 바꾸지 못했지만 거실은 바꾼다?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강아지는 내 마음을 알아준다?

    혁명은 간 데 없고…

    김수영은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꿔버렸다고 썼다. 그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그렇게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을 질책했다.

    사실 너무 오랫동안 피의 시대를 살았다. 왕의 목을 자르며 시작한 시민혁명, 기요틴의 칼날 밑에서 벌어지는 공포정치의 음모와 배신, ‘칼을 든 프랑스 혁명아’ 나폴레옹의 등장과 기나긴 전쟁, 그리고 1815년 왕정복고. 이 30년 가까운 세월은, 그 첫 문턱에 성장해 청년기를 보낸 40대 이후의 시민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경찰국가라니? 혹은 왕의 귀환? 그래서 그들은 음악, 연극, 가정음악회 등 조촐한 가족 중심 생활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담한 거실이나 카페에 모여 술 한잔과 음악을 즐기는 일상에 몰입했다.

    권선형의 ‘우수에 근거한 명랑성’에 따르면, 비더마이어는, 진부한 시민문화를 비판하기 위해 부정적 의미에서 착안됐으나 곧 “가정적인 작은 영역을 중시하면서 자기만족에 조용히 살아가는 인간 유형”으로 이해됐다. 19세기 중엽, 특히 독일의 ‘청년독일파’가 현실에 대한 강렬한 응전을 도모한 것과 달리 비더마이어 작가들은 “개인적인 작은 공간”에 머물고자 했다. “내면적인 힘, 소박함, 운명에 대한 말없는 순종, 작은 행복” 등이 주제가 됐고 ‘작고 귀여운’‘상냥한’‘부드러운’‘온화한’ 같은 단어들이 유행했다.

    그들은 위로받고 싶었다. 이 강렬한 ‘자기에 대한 배려’! 낭만주의의 수세적 에토스가 내장된 감성이다. 고독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자율성과 예술적 자율성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했던 정념들! 이를테면 결벽에 가까운 슈베르트와 그 친구들의 내면 집착과 유미주의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하나의 영역, 즉 그 어떤 강제나 억압도 없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영역을 지키고자 했다.

    여기 또 하나의 유류품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 언니 엘리너가 동생 매리앤에게 말한다. “그이가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는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다른 이들이 그리는 걸 보길 아주 좋아해. 그리고 키울 기회가 없었다 뿐이지 소질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그래도 매리앤이 걱정하자 덧붙인다. “그이와 나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된 적이 가끔 있었어. 그이를 볼 만큼 봤고, 감정을 면밀히 살폈지.”

    “실은 네 잘못이야”

    감정을 살핀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의 솔직한 ‘감정’을 말한다.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내 감정이 더 강하다고 믿으렴. 요컨대, 내 감정이란, 그이의 장점이라든지 그이도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짐작, 아니 희망에 비추어보아서 내가 그렇게 느껴도 괜찮겠다, 주제넘지도 어리석지도 않겠다 할 그런 감정이야.” 그리고 어떤 일로 인해 서식스의 노어랜드 파크를 떠나게 된다.

    서구의 근대가 막스 베버가 말한 ‘청교도 윤리’뿐만 아니라 ‘자기 환상적 쾌락주의’에 의해 견인됐다고 주장하는, 이를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을 통해 증명하는 콜린 캠벨은 노어랜드 파크를 떠나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아래 대목을 특정해 “감상주의의 현저한 특징인 자의식적 반응 및 과도한 감정주의의 특성이 명백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자, 매리앤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토로한다.

    “정든 나무들아! 너희들은 늘 그대로일 거야. 우리가 가버린다고 잎이 시들지도 않을 거고, 우리가 너희들을 더 이상 안 본다고 해서 가지가 살랑대지 않을 리도 없겠지! 그래, 너희들은 꼭 같을 거야, 너희들로 인해 생긴 기쁨도 슬픔도 모른 채, 너희들의 그늘 아래 걷는 사람들에게 생긴 변화도 모른 채! 그러나 누가 남아 너희들을 즐길까?”(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윤지관 역, 민음사, 41쪽)

    경복궁을 나와 세종로를 따라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 우리는 열정이 노동이 되어버린 참담한 전황 보고서를 자주 접하고 있다. 세계적 차원의 모순, 그것의 한국적 치명상, 그에 따른 청년 실업과 각종 사회문제의 폭발은 우리 모두가 들어서 알고 겪어서 알고 있다. 노정태, 박권일, 한윤형, 최태섭 등의 전황 분석 보고서와 최규석, 김수박, 이말년, 마영신 등의 그림 작업과 김홍중, 서동진, 심보선, 김수환 등의 심미적 성찰과 박민규, 김애란, 편혜영 등의 작품들은 오늘의 삶이 ‘쉼없는 수색 정찰’(지그문트 바우만)의 상황이며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윤도현, ‘나비’) 날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조건에서도 자기계발서들은 또 얼마나 많이 팔렸단 말인가. 지난 1980년대의 비릿한 약속어음들, 김형석, 안병욱, 유안진, 신달자, 황필호 같은 저자들의 무책임한 말들의 뒤집힌 거울상이 홍정욱, 김난도, 김미경이다. 부분적으로 안철수와 박경철도 있다. “네 잘못이 아니란다”는 달콤하지만 부질없는 말들. 그러나 읽고 나면 “실은 네 잘못이야. 넌 열정이 부족했어, 미안하지만, 넌 살 수가 없구나. 나가는 문은 저쪽이란다.” 이런 식이다.

    불안이 쉼 없이 유동하는 세계를 뛰어넘기 위해 바우만은 시시포스의 삶이 아닌 프로메테우스의 삶을 살자고 주장한다. 자기 자신의 그 비참한 고통에 압도당해 날마다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가 아니라 “타인들을 위한 삶을, 곧 그 타인들의 비참한 고통에 맞서 반항하는 삶을 선택”하는 프로메테우스가 되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속물과 잉여

    김수환과 서명선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은 게 아니라 또 하나의 ‘계몽’이다. ‘계몽’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지루한 설교일 뿐이다. 게다가 타깃을 특정하지 않고 구조만 언급하는 비판은, 가장 쉬운 비판일 뿐이다.

    김수환은 ‘웹툰에 나타난 감성구조’(백욱인 편, ‘속물과 잉여’ 재수록, 154~155쪽)에서 “현대의 삶이란 한마디로 서사적 삶(narrative life) 자체가 파괴되어버린 시대다. 미래를 계획하고 삶을 준비할 수 없는 시대, 그것은 삶의 서사가 붕괴돼버린 시대”라고 말한다. 이는 ‘단지 서사의 불가능성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서사에 대한 관심 자체를 상실해버린 새로운 세대’의 징후다.

    같은 맥락에서 서명선은 ”노예 사이클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20대는 지금의 사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이클에서 벗어날 방법은 일단 자신이 노예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지겨운 곳에서 탈출하는 것인데, 20대가 살아온 맥락상 그건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말한다(서명선, ‘그들은 관찰한 것인가. 관찰된 것일까’, 레디앙, 2009년, 234쪽). 일단, 이런 인식은 출발점이 된다.

    2009년 ‘마음의 사회학’(김홍중, 문학동네)과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서동진, 돌베개)를 시작으로 2010년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푸른숲),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구미정 외, 이파르), 2013년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한윤형 외 지음, 어크로스), ‘잉여사회’(최태섭,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속물과 잉여’(백욱인 편, 지식공작소) 등이 출간됐다.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추억, 낭만을 간질이는 덕수궁길의 현수막.

    이들은 각기 다르지만 ‘속물과 잉여’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듯이, ‘진정성의 시대가 가고 속물의 시대가 왔다’‘속물의 시대가 가고 잉여의 시대가 왔다’‘애비는 속물이 되었고 그 자식은 잉여가 되었다’는 식의 세대론적 비판을 경계한다.

    심보선과 김홍중의 ‘87년 이후 스노비즘의 계보학’(문학동네, 2008년 봄)에 따르면 “자기애적으로 확장되고 부유해진 자아의 존재론적 빈곤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바로 문화적 스노비즘과 이를 물질적으로 지원했던 소비문화사업”이었다. 이 문화적 스놉은 이를테면 “인문학적 교양과 속류지식, 예술과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자기다운’ 라이프스타일의 자양분을 흡수”하는 세련된 키치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추억과 낭만을 되새김질한다. 아, 벨 에포크! 진짜 좋았던 옛 시절이 과연 있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1980년대의 집합적 열정이나 그 시절의 언더그라운드 음악 문화에 대한 수사적 기록이 쏟아진다. 그리고 이제는 ‘회고’의 세대로 조로해버린 1990년대 세대마저 ‘응답하라’고 외치면서 추억이 방울방울 맺힌 옛 책갈피를 뒤적거린다. 과거의 기억을 말갛게 정제해 그중 애틋하고 깔끔한 기억만을 더듬어 추억상자 속에 넣어뒀다가 예민해지고 쓸쓸할 때면 꺼내서 살펴보는, 수많은 엠마 보바리의 ‘자기애’가 지금 재현되고 있다.

    걷다보니, 대한문 앞이다. 2013년 현재, 대한문 앞은 한국 사회의 모든 긴장과 욕망이 충돌하는 장소가 됐다. 쌍용차 사태의 해결을 바라는 집회, 그것에 반대하는 집회, 충돌을 막으려는 경찰, 기이하게 조성된 화단, 사람 대신 화단을 지키는 경찰, 바쁘게 오가는 직장인들, 고궁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 그리고 갑자기 북소리가 울리며 수문장 교대식까지 펼쳐지면 대한문 앞은 가히 근현대사가 평면으로 압축된 ‘포스트모던’의 공간처럼 바뀐다.

    “모두 다 속물을 만들어라”

    나는 정동길로 접어든다. 김수영이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고 토로한, 그래서 결국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고 자책한 곳이 어쩌면 이 길 어디쯤일지도 모른다. 겨울이라서 그런가, 아무래도 ‘힐링’은 이런 차가운 계절과는 무관한 일인 듯싶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말하고도 싶다. 가령 말이다. 그래 좋다, 속물성의 극한을 보여주마. 만랩의 잉여력을 보여주마. 오프사이드를 두려워하지 않는 골게터의 숙명을 보여주마.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계몽적이라서 제대로 ‘속물’이 되어보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자기계발’이라는 집단 사기극과 낭만이나 추억을 소비하는 감성팔이와 가당치도 않은 희망고문이야말로 진정한 속물성의 적들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시 김수영을 빌리건대, 그는 1967년에 “자폭을 할 줄 아는 속물”의 기미마저 없다고 질책했다. 그는 자책하는 마음으로 썼다. “모두 다 속물을 만들어라. 모두 다 유명하게 만들어라. 간판이 너무 많은 종로나 충무로 거리에서 간판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 더 간판을 늘려라.” 지금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예술은, 삶은, 거칠고 조야한 곳에서 시작된다”(발터 벤야민)는 그런 극한까지 치달려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저물어가는 정동길에서 문득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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