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종북좌빨-수구꼴통 분열이 한국외교 걸림돌”

송민순 前 외교통상부 장관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3-12-20 11: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날로 커지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2인자 장성택을 공개 처형하는 등 권력 내부의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후 서태평양을 둘러싼 갈등도 심화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 고조는 우리 안보의 큰 위협 요인이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나 불확실성이 높아진 한반도 주변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들어봤다.
    • 北 ‘핵·경제 병진’은 先軍에서 先經으로 정책기조 바꾼 것
    • 대통령 재임 중 대북 성과 내려 서두르면 ‘칼끝’ 잡을 수도
    • 6자회담은 동북아에 심은 ‘정원수’…꾸준히 가꿔야 열매 맺어
    • 전략적 이익 충돌 미·중…한국이 접착제 노릇 해야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국익에 해악…어느 정상이 깊은 얘기 하겠나
    “종북좌빨-수구꼴통 분열이 한국외교 걸림돌”
    “미국에만 편한 소파여서는 곤란하다. 한국과 미국이 함께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소파를 만들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00년 2차 SOFA(주한미군 지위협정) 개정 협상 당시 외교부 북미국장으로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그는 ‘SOFA’와 발음이 비슷한, 긴 의자를 뜻하는 소파(sofa)를 예로 들며 설득했고, 그의 명쾌한 논리는 개정 협상에서 톡톡히 효과를 발휘했다. 형사재판절차 개선과 환경조항 신설 등 7개 분야 불평등 조항 삭제가 당시 이뤄진 조치다. 2차 SOFA 개정 이후 미군 범죄는 눈에 띄게 줄었다. 또한 환경 조항을 신설한 덕에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수 있었다. 이후 그에게는 ‘미스터 소파’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크레믈러놀로지

    한미협상뿐 아니라 다자협상에서도 송 전 장관은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했다. 2005년 차관보 때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로 제4차 6자회담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국 측 수석대표와 김계관 북한 외교부상을 물밑 중재해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그에게는 ‘협상의 달인’이라는 또 다른 별명이 붙었다. 1999년 제네바에서 열린 남·북·미·중 4자회담에도 차석대표로 참석,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을 이끌었다.

    6자회담 수석대표 때의 활약을 눈여겨 본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1월 그를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으로 중용했고, 그해 12월에는 외교통상부 장관에 임명했다. 2008년 2월 장관에서 물러난 송 전 장관은 그해 4월 민주당 비례대표로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현재는 경남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키우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 북한의 2인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실각 후 바로 처형됐다. 최근 북한의 상황을 어떻게 보나.

    “크레믈러놀로지라는 용어가 있다. 과거 소련 시절 내부 사정을 알 수 없는 깜깜한 크렘린 궁을 빗댄 표현으로 소련 연구 학문을 뜻한다. 그때는 사진에 나타난 모습과 좌석 배치, 거명 순서, 그리고 관영 언론에 보도된 내용의 행간을 읽어가며 소련 내부 정세를 짐작했다. 지금의 북한도 과거 크렘린처럼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장성택의 숙청과 처형 과정에 나타난 북한의 모습은 과거 어느 독재 폐쇄국가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노골적이고 잔혹하다. 그만큼 북한 정권의 사정이 급박하고 위태롭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을 바라볼 때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큰 구도를 먼저 파악한 다음에 줌인으로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관찰해야 최대한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은 북한의 상황을 냉정하게 지켜보면서 궁리하고 있다. 우리도 대뜸 현미경부터 들이대고 조그마한 변화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추측과 기대 섞인 판단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집단적 포위심리

    ▼ 장성택 처형으로 김정은 1인 체제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김정은 권력이 안착되고 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장성택 제거는 김정은 아래에 있는 파벌 간의 대립이냐, 아니면 김정은 체제에 도전 개연성이 있는 세력의 등장이냐로 나눠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김정은호(號)가 출항한 뒤 계속 출렁거리던 중 이번에 큰 파도를 만난 것인데, 과연 배 자체가 뒤집힐 만한 상황인지, 아니면 선장은 그냥 있고 항해사와 기관사 사이에 싸움이 붙은 건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에선 이전에도 내부 권력투쟁이 계속 있어왔다. 우리 정치권에 동교동, 상도동 같은 계파가 있었듯, 북한에서는 오 동네, 장 동네 같은 파벌이 있다. 그러나 북한과 같은 1인 독재국가에서는 현재적이든 잠재적이든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장성택이 그걸 모를 리 없었을 텐데 ‘금기’를 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수 있다.”

    송 전 장관은 북한 권력 내부에 ‘집단적 포위심리’가 있다고 말했다. 죽기살기로 내부적으로 싸우지만 배 자체가 뒤집히면 다 죽는다는 심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 그는 “장성택의 실각으로 북한 권력집단이 체제가 뒤집힐 정도로까지 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중국이 김정은 정권은 몰라도 하나의 국가로서 북한 자체가 무너지는 것은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과 가까웠던 장성택의 실각으로 북중 관계가 잠시 어수선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북한과 중국 관계는 사람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국가 이익상 서로가 서로를 지대하게 필요로 하는 관계다. 강물이 흐르다가 잠시 잔물결이 일어난 수준이지, 물줄기 자체가 바뀔 정도는 아니다.”

    북한이 밝힌 장성택 실각 사유는 반당, 종파, 부패, 타락이었다. 이들은 시진핑 국가주석 등장 후 중국이 개혁을 위해 내세운 과제들과 유사하다. 즉 최소한 장성택의 실각과 처형 명분만 보면 북한과 중국이 크게 어긋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송 전 장관은 “중국으로선 북한이 장성택을 숙청한 모양새는 거북했겠지만 그의 숙청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북한은 그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북한의 내부 동요 가능성 못지않게 장성택 실각 이후 대남·대외관계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도 큰 관심사다.

    “북한은 대내외에 핵·경제 병진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군(先軍)에서 선경(先經)으로 정책기조가 바뀐 것이다. 선군을 표방할 때의 간판은 ‘핵’인데, 핵·경제 병진이라는 얘기는 경제의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 지금 북한이 처한 상황에선 경제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다. 핵 개발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한데, 북한이 핵을 개발할수록 외부 투자 유치가 어려워진다. 북한이 경제에 치중하려면 결국 개혁과 개방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는 북한 정권의 선택이지, 장성택의 선택은 아닐 것이다.”

    先軍에서 先經으로

    ▼ 우리의 대북정책은 어떠해야 하나.

    “우선 지금의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의 상황을 상정하면서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이 경제에 무게를 더 두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북한 군부 등 강경파를 도와주는 조치는 피하는 게 좋다. 공식 관계가 막혀 있고 북한 내부의 불확실성이 커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남북 간 물밑접촉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먼저 움직여 작은 명분을 교환하는 데서 시작해 큰 명분으로 발전시키면서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대북 제재인 5·24 조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서도 그런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게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하는 ‘신뢰 프로세스’ 아닌가. 지금이 바로 창조적 대북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대에게 먼저 고개 숙이고 들어오라고 해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가만두면 북한 스스로 무너질 것’이란 희망적 기대보다는 북한의 대내외 환경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정책의 기초가 돼야 한다. 만약 김정은 정권 자체가 바뀌는 시나리오를 생각한다면 북한은 집단군사정권(Junta)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무엇이 덜 위험하고, 덜 반대해야 하는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때다.”

    ▼ 우리의 대북 외교역량이 경제력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크게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하나는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각에 극명한 분열이 있고, 그것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종북좌빨’이라 하고, 북한 체제를 부정하는 자세를 취하면 ‘수구꼴통’이라고 매도한다. 국민 사이에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원칙과 일관성을 갖고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이 된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국 이후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대통령이 11번 바뀌었다. 같은 기간에 북한은 겨우 3번 바뀌었다. 단순 계산해도 우리보다 4배 정도는 긴 권력 기간을 갖고 있다. 5년 단임제는 대북정책을 시간에 쫓기게 만든다. 재임 중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이 나는 게 당연하다. 취임 초에는 큰소리치다가도 나중에 가선 ‘칼끝’을 잡는 모습을 보인 경우가 많다. 이는 대북관계에서뿐 아니라 대미, 대중, 대일정책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 일본에선 총리가 1년마다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이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과는 달리 국력에 걸맞은 외교를 하지 못한다. 국제사회에서 돈은 내면서도 제 목소리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들의 외교는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치중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남북분단과 대결이라는 비정상을 공존과 통일이라는 정상으로 바꿔야 하는 책무가 더해져 있다. 그런데 남북과 남남이 갈등하는 열십자(+)형 분열에서 외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 외교는 주로 끌려다니는 형국이고, 국력 자체는 작지 않지만 외교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최소한 국론 분열상은 그리 크지 않다.”

    열십자 분열

    송 전 장관은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내며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과 4강 외교를 주도한 경험을 예로 들며 “우리는 ‘큰 장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때는 반드시 주변 4강과의 함수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면 4강에 대한 우리 목소리가 커진다. 반대로 남북관계가 막히면 우리 입지가 위축된다.”

    ▼ 남북관계가 장기간 경색된 배경에는 북핵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북핵 문제가 바로 한반도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올바른 접근이 가능하다. 북핵 해결은 분단을 해소하는 거시적 방향과 맞닿아 있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은 긴 과제로 남겨두고 북핵을 외과적 수술로 도려내려 한다. 미국과 중국은 북핵을 우리처럼 절실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무게를 둔다. 외교 무대에서 관찰해보면 중국은 북핵을 대미관계 차원에서 바라보고, 미국은 대중관계 차원에서 접근한다. 그런 구도에서 북핵 문제가 풀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가장 절박한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핵 사고라도 나면 한반도 전체의 피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또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 구매에 매년 엄청난 돈을 투입해야 하고, 무엇보다 북핵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인이다. 북핵 해결의 진전 없이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동북아 평화협력구상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뭐 하나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물과 비료를 안 주니…”

    ▼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몇 차례 열렸다가 지금은 중단된 상태인데.

    “6자회담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라는 마을에 심어놓은 정원수와도 같다. 정원수를 심었다고 저절로 자라는 게 아니다. 물도 주고 비료도 주면서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북핵 문제의 가장 절박한 당사자인 한국이 정원수를 심을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 뒤에도 한동안 잘 자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다 국내 정치적 계산에서 손을 놓고 다른 나라도 물과 비료를 주지 않으니 정원수가 비실비실해진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일각에서 ‘쓸모없는 정원수다’ ‘가꿔봐야 열매도 안 열린다’며 비판만 하고 있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북한이 붕괴될 때까지 기다리자, 흡수통일하자, 이런 기대는 손 놓고 감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얘기다. 나도 가슴으로는 그러고 싶다. 그런데 현실적 가능성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서 답답하다. 북한의 핵 능력은 계속 확대, 발전되고 있는데….”

    ▼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기본적으로 6자회담 재개와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이행 자체에는 별 이견이 없다. 다만 미국은 북한을 향해 ‘비핵화한다는 믿을 수 있는 조치를 먼저 하라’는 입장이고, 북한은 미국에 ‘제재 완화 조치를 먼저 취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중재 노력과 함께 외견상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조하는 모양새는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북한 입장에 더 가깝다. 미국과 중국이 원론적으로는 입장이 같다며 외교적 수사(修辭)를 쓰지만,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전략적 이익이 충돌하기에 타협이 쉽지 않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접착제 노릇을 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과 중국의 ‘북한에 대한 효과적 압박’ 가능성을 함께 여는 구도를 미국, 중국과 협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제재 완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경우 중국이 강력하게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북한은 대외무역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중국이 실질적으로 대북제재에 동참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미국과 중국이 한 배에 타도록 한국이 유도해야 한다. 다른 어느 나라도 그 일을 할 수 없다.”

    ▼ 얼마 전 우다웨이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워싱턴, 평양, 한국을 다녀갔는데.

    “미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이 떨어졌다. 과거 제네바 합의에서부터 9·19 공동성명, 2·13 합의, 2·29 합의까지 네 번의 크고 작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려면 우리가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고 그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강제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한중일 외교회담

    ▼ 최근 서태평양의 세력 재편을 놓고 한반도 주변국 간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고 나선 배경에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서태평양에서의 세력 확대를 꾀하려 했다면 미국 정찰기를 강제 착륙시킨 2001년 하이난 사건 직후에 선포했을 것이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확립된 질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논의를 통해 확립해야 할 문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문제 해결을 위한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한다. 동중국해의 가장 큰 섬인 제주도에서 한중일 3국, 필요하면 미국도 옵저버로 참가해 해법을 모색하는 장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외교부 장관일 때 한중일 3국 외교장관이 처음으로 제주도에 모여 항공협력, 해상구조 등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도 이뤘다. 나중에는 서울에 한중일 협력 사무국을 설치했고 3국 정상회담으로까지 발전했다.

    북핵이든 중일 갈등이든 동북아에서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곧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길이다. 만약 북핵 갈등이 폭발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보게 된다. 중일 갈등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한미일 3각 공조에 편입돼 중국과의 대결 최전선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형국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행동해야 한다.”

    ▼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언하고 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것은 재정위기 등으로 동북아를 포함한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공백이 생기는 틈을 자신들이 메우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일본의 재무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기정 사실로 인식해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나 중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과거 일본에 침략과 점령을 당해보지 않은 나라들과는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이 가속화할 것이다. 우리도 덩달아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세계 2, 3위의 경제대국들과 군비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또 중국과 일본 간 갈등이 폭발하면 그 무대는 당연히 한반도가 된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동북아 다자안보대화 등의 장치를 만드는 데 있어 우리 외교 역량을 십분 발휘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외교를 잘못하면 후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유산을 남기는 것이 된다.”

    ‘모멘텀’을 만드는 외교

    ▼ 2013년 한 해 동안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이슈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은 국가 이익에 큰 해악을 끼쳤다. 앞으로 어느 나라 정상이 우리 정상과의 단독회담에서 깊은 이야기를 하려 하겠나. 안타까운 일이다. 외교 무대에서는 마이크 켜놓고 하는 공식 확대회담보다는 비공개 단독회담에서 중요한 일을 조율한다. 그런데 그런 대화록을 통째로 공개하는 나라가 됐으니….”

    ▼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 외교부 장관을 지냈으니 NLL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관련 회의를 열기도 했고, 따로 대통령께 말씀드리기도 했다. NLL의 배경과 속성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했다가는 엉뚱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부속합의서 내용을 확실히 하면서 NLL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속합의서 10항에 보면 ‘남북간 불가침의 해상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돼 있다. 이 해상경계선이 바로 NLL이다. 따라서 이 경계선을 유지하는 전제에서 공동어로수역이나 평화지대와 같은 접근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실제 정상회담에서도 NLL을 기점으로 한 등면적의 공동어로수역을 협의했다. 같은 면적을 정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바로 NLL 아닌가.”

    ▼ 박근혜 정부의 대북 및 외교정책 담당자 중에 군 출신이 많아 태도가 경직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대와 싸워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을 숙명으로 하는 군에는 승리 아니면 패배 둘 중 하나만 취하는 경향이 있다. 남북은 군사 대치 상태이면서도 타협하고 협상해야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 점에서 오랜 군 배경을 가진 인사들이 조정과 협상에 나서는 것은 좀 특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먼저 외교를 통해 해결하고, 그것이 실패하면 군인이 나서는 전쟁으로 가고, 또 그 전쟁을 끝내는 일은 외교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 박근혜 정부의 첫해 대북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전임 정권으로부터 어렵고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인수받았다. 보수의 기반에 진보의 의제를 접목해 북한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상황을 관리하는 데 그치고 있는 듯하다. 5·24 조치나 금강산 관광 중단은 현 정부에서 이뤄진 일이 아니다. 한반도 안과 밖의 환경이 구조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중일 갈등이 고조되고, 북한 내부에서도 6·25전쟁 이후 가장 주목할 변화가 일고 있다. 우리 자체의 큰 구도를 갖고 우리의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조건들을 스스로 만들어야 할 위중한 시기다. 미래를 위한 모멘텀을 만들어내는, 말 그대로 창조적인 외교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