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나빠, 틀렸어, 안 해’ 벗어나 반대 주장 들어주는 자세 필요

새누리당 상임고문 5인의 진단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4-01-20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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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빠, 틀렸어, 안 해’ 벗어나 반대 주장 들어주는 자세 필요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우리 사회의 큰 화두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국민의 20%, 1000만여 사람이 박 대통령의 소통 방식에 ‘넌더리’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박 대통령의 소통 문제는 시사 이슈이면서 사회과학적 탐구 대상이기도 하다. 일단 ‘소통(communication)’이라는 어휘 자체의 ‘내공’이 간단치 않다. ‘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이룰 정도로 다양한 담론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은 박 대통령과 대척점에 있는 어느 일방의 논리에 편승해 박 대통령의 소통 문제를 피상적으로 보도해온 면이 있다. 이에 ‘신동아’는 깊이 있고 통찰력 있게, ‘대통령의 태도 변화’라는 유용성을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박 대통령과 같은 정당 소속으로서 국정 철학을 공유하고 정치적 연륜도 갖춘 새누리당 상임고문 5명에게 ‘박근혜 식 소통’을 진단하게 했다. 답변에 응한 고문은, 가나다 순으로 김동욱 전 의원(기업인 출신·4선),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관료 출신·4선), 박관용 전 국회의장(정치인 출신·6선), 신경식 전 의원(언론인 출신·4선), 유흥수 전 의원(경찰 출신·4선)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소통 현장을 비교적 생생하게 관찰한 것으로 보였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화두’ 던져

    박 대통령 측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이기도 한 김용환 상임고문은 “대통령이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에 나름대로 (소통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 ‘소통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나’ 하는 시각도 있는데요. 예컨대 야당과의 소통이라든지.

    “야당 이야기를 꼭 들어주어야 소통인 것은 아니지 않나요?”

    ▼ 그러면 어떤 것을 소통이라고 보나요?

    “(1월 6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국민의 기대치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이것이 국민을 상대로 한 소통 아니겠어요.”

    ‘국민의 기대치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라는 건, 박 대통령이 이날 제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474(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 ‘통일은 대박’ 같은 새로운 국정 의제를 제시한 것을 의미한다.

    소통학자인 로이드 비처에 따르면 대통령은 어떤 불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세상에 없던 새로운 화두’를 던짐으로써 이 국면을 돌파하고 국민의 지지를 결집할 수 있다. 이 역시 소통의 한 영역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의제 설정’과 관련된 소통에서만큼은 능수능란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1월 6일 기자회견 직후 박 대통령 지지율은 48%에서 53%로 5%포인트 상승했다. 박 대통령의 ‘경제혁신’ ‘통일’ 의제에 대중이 공감했다는 방증이다. 여론도 “두 개의 굵은 점을 찍었다” “집중력이 살아 있다”(중앙일보)며 박 대통령의 의제설정 능력에 호의적 평가를 내린다.

    잘하는 소통 vs 못하는 소통

    대통령의 소통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솔깃해하고 믿을 만한 의제(비전·주장)를 제시하는가’다. 주장 자체가 황당하거나 하나 마나 하면 소통이 될 리 없다. 둘째는 ‘반대의견을 잘 수렴 하는가’다. 적어도 박 대통령은 첫 번째인 ‘의제설정 소통’을 잘하며 그의 비교적 높은 지지율도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법과 원칙’ ‘비정상의 정상화’ 같은 ‘박근혜 캐치프레이즈’도 여기에 속한다. 박 대통령에게 소통의 문제가 자꾸 제기되는 건 두 번째인 ‘의견수렴 소통’과 관련해서일 것이다.

    김용환 상임고문을 뺀 김동욱, 박관용, 신경식, 유흥수 상임고문은 박 대통령의 의견수렴 소통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동욱 상임고문은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애를 많이 썼고 잘하고 있지만 소통과 포용에 더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김 상임고문과의 대화 내용이다.

    ‘나빠, 틀렸어, 안 해’ 벗어나 반대 주장 들어주는 자세 필요


    ▼ 누구를 포용해야 하나요?

    “야당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2012년 대선 후보 때 ‘100% 대한민국’과 ‘어머니 마음’으로 모두를 안고 가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 이 말은 박 대통령이 지금 ‘100% 대한민국’과 ‘어머니 마음’의 초심을 잃었다는 의미로 들렸다.) 내가 ‘21세기 경영인 클럽’이라는 경제인 모임을 운영하는데 이 모임 회원들 생각도 제 생각과 거의 같아요.”

    ▼ 여권에선 ‘야당이 대선 불복이나 특검 수용 같은 과한 요구를 한다’는 주장도 있던데요.

    “야당의 행태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의 기대는 대통령이 더 소통해달라는 것이죠. 새누리당 상임고문들과 대통령의 만찬 때에도, 내가 선친 때부터 야당을 해서 쓴소리를 하는 편이지만, 박 대통령에게 ‘모두를 안고 가겠다고 한 말대로 정치를 펼치기 바란다’고 주문했어요.”

    ▼ 그럼 야당의 특검 요구까지 대통령이 받아주어야 하나요?

    “재판에 계류 중인 사안에 특검을 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요. 야당도 인기 없다고 떼써선 안 되죠. 그러나 야당의 주장 중 명분이 있는 건 대통령이 받아들여가면서 풀어가는 게 좋아요. 정치가 기브 앤드 테이크(give&take·주고받기) 아닙니까?”

    박관용 상임고문은 “박 대통령과 야당 모두 상대를 대화에 초청할 자격이 되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박 대통령과 야당을 함께 비판했다. 다음은 박관용 상임고문의 거침없는 진단을 담은 대화 내용이다.

    ▼ 박 대통령에게 자꾸 ‘소통하라’고 주문하는데요.

    “소통이 무엇이냐에 대한 생각이 중요하다고 봐요. 정치에서 소통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인정해주는 행위입니다. 복수정당, 국회 교섭단체가 존재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죠.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봐야죠.”

    ▼ 일단 만나고 들어보는 게 중요하네요.

    “내 주장은 이런 것인데 당신 주장은 어떤 것이냐, 들어봐야죠. 만난다는 게 꼭 상대방과 합의한다는 게 아닙니다. 들어보고 이해하는 거죠.”

    ▼ 박 대통령은 반대편 사람을 잘 안 만나고 반대 의견을 잘 안 듣는다?

    “박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 모두의 문제예요. 여야를 막론하고, ‘내 주장은 옳고 남의 주장은 틀렸다’고만 생각하고 상대를 인정하지도 않아요.”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즉 박 대통령과 내각, 박 대통령과 대통령수석비서관들 사이의 소통에 대해서도 박 상임고문은 “여야든, 정부 내든 토론이 부족하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대통령도 야당도 반성해야”

    ▼ 박 대통령이 미흡했다고 보나요?

    “박 대통령의 주된 상대가 누굽니까? 야당(민주당) 아닙니까? 야당과 대통령이 똑같죠. 서로 자기주장만 하니까 박 대통령만 소통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야당만 못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똑같은 사람들끼리니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그동안 양측이 주장해온 것을 한번 보세요. 대화하려는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어요. 거기에다 대고 자꾸 대화하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 민주당 집권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떠했나요? 노 전 대통령은 야당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나요? (※ 박 상임고문이 국회의장일 때 여소야대 국회에서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당시 내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탄핵문제를 갖고 대화하자. 청와대로 오라고 하면 각 당 대표 데리고 가겠다. 노 대통령이 온다고 하면 국회에서 맞이하겠다. 대화하자. 그러면 이거 탄핵 해결된다’고 제안했어요. 그러나 노 대통령이 ‘그 문제라면 안 만나겠다’고 해서 대화가 안 된 거예요.”

    민주당 집권 시절에도 대통령이 반대편과 소통을 못했다는 뜻인 듯했다.

    ▼ 지금의 대통령, 여당, 야당을 보면….

    “박 대통령이 됐든 누구든, 상대를 만날 땐 상대 의사도 좀 존중해주면서 대화하고 뭔가 좀 진지하게 들어보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실제론 ‘당신 주장은 나빠, 틀렸어, 안 해, 나 응할 수 없어’ 이런 식이에요. 이래선 백번을 (영수회담) 해도…. 대통령과 야당 양쪽에 다 물어봐야 해요. ‘대화할 자세가, 소통할 자세가 되어 있느냐’고요. 이 말은 않고 어느 일방에만 책임을 물으니 국민이 못 알아듣죠. 언론은 어느 한쪽에만 자꾸 책임을 물으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언론인들과 이야기를 잘 안 해요. 방송에도 안 나가고.”

    ▼ 그러나 대통령이 주장하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여러 사람이 공감하지 않나요? ‘소통이 비정상과의 소통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말도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바른 사회, 정의 사회, 비정상의 정상화…. 똑같은 이야기죠. 표현만 좀 다를 뿐이지. 노조의 일방적 불법시위에까지 소통하라고 하는 건 무리죠. 그러나 야당과의 대화는 다른 차원 아닌가요? 과연 야당이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대통령과 여당이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상대를 초청할 자격이 있는가? ‘이것부터 반성해보라’고 기사를 써야만 옳은 기사가 된다고 봐요.”

    ‘나빠, 틀렸어, 안 해’ 벗어나 반대 주장 들어주는 자세 필요

    2013년 서울시청 앞에 설치됐던 민주당 천막당사.

    ▼ 이런 반성 없이 소통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각자 각성을 좀 해야죠.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북한인권법을 하겠다고 발표하면 대통령이 당장 만나야죠. 그래서 합의를 만들어내야죠. 내 고집만 피울 게 아니라 상대 주장 중 일리가 있는 건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지금 야당은 대선 무효라고 하는 거고 일방적으로 정권 물먹이고 있어요. 그러자 대통령은 저런 당과는 이야기 못 하겠다고 하는 거고. 이러니 백 번 만나도 안 돼요. 아무리 해보세요 소통이 되는가. 안 되지요.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 양쪽이 말로는 소통하자고 해요. ‘왜 박근혜는 소통 안 하느냐’ ‘왜 김한길은 고집만 피우냐’면서요.”

    ▼ 이렇게 꽉 막힌 걸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지도자가 솔직해져야 한다고 봐요. 상대에게 ‘내가 당신 말 충분히 알아듣고, 당신이 내 말 충분히 알아듣고. 양심에 따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양식에 따라 각자 한번 판단해봅시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이렇게 안 하면 감정의 골만 더 깊어져요. 소통하려 하면 할수록 불통으로 갑니다. 대통령이 ‘야당! 당신 말이 정당하면 내가 받아주겠다. 당신도 내 말이 옳으면 받아줄래?’와 같은 본질적인 이야기부터 해야 해요.”

    박근혜와 세종 비교하면…

    ‘다른 견해를 듣는다는 게 꼭 합의한다는 건 아니다’라는 박 상임고문의 말과 관련해 유흥수 상임고문도 유사한 진단을 내렸다. 유 상임고문은 “잘못된 주장과 타협하는 게 옳은 소통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박 대통령이 반대되는 주장을 들을 자세를 보여주는 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타협하진 않더라도 들어는 줘야 한다’는 박·유 상임고문의 이런 관점은 박 대통령의 ‘의견수렴 소통’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박 대통령의 소통 수준이 다른 견해를 들어주는 단계에조차 와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박 대통령의 소통 수준이 적어도 이 단계에까지 와야 한다’는 점을 제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선 세종의 소통 방식은 여러모로 박 대통령과 대조를 이룬다. 허경호 경희대 교수 팀의 연구에 따르면 세종은 ‘반대 의견을 다 들어준다.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의 비판적 관점과 적극적 태도를 칭찬한다. 반대 의견들의 일부만을 자기 정책에 수용한다’라는 소통 스타일을 보였다.

    예를 들어 세종은 파저강 토벌을 추진하면서 토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문제점을 청취한 뒤 이를 토벌 전략에 반영해 토벌의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세종이 비록 반론에 열린 태도를 보였지만 무한정 논쟁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결론이 났다고 판단하면 추가 토론을 차단하고 자기 견해를 관철했다. 최종적으론 제왕 뜻대로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제왕이 직접 반론을 충분히 청취하는 절차는 필요하다는 게 포인트다. 반론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소통의 효과가 상당히 크다는 이야기다. 박·유 상임고문은 바로 이 점을 박 대통령에게 강조한 것이다.

    박 상임고문의 말 중에 ‘각자의 양심과 양식에 따라 상대의 말 중 정당한 부분을 받아들일 것을 서로 약속하라’는 주문이 있다. 대통령-야당 간 불통의 근원적 원인을 꿰뚫어본 것으로,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행위-전략적 행위’ 이론과 결이 같다.

    하버마스가 본 ‘박근혜 불통 원인’

    ‘의사소통적 행위’는 ‘반대 의견에서 정당성을 발견해 진정한 상호이해를 추구하는 행위’다. 반면 ‘전략적 행위’는 ‘반대 의견에서 정당성을 발견했음에도 자신의 양식보단 이익을 좇아 반대 의견을 계속 무시하는 행위’다.

    정치인들은 마음속으론 상대 정파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오직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상대 주장과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전략적 행위를 자주 저지른다. 박 상임고문의 주문도 ‘박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런 전략적 행위에서 벗어나야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 측의 ‘내재적 관점’에서 보면, 민주당은 ‘전략적 행위가 체질화된 정당’일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 출범도 못하게 하고, 국정원 댓글 가지고 장외투쟁하고, 툭하면 대선 불복한다고 하고, 귀태·암살·박근혜 ×년 같은 막말을 일삼고 있는데, 과연 의사소통이 가능할까”라고 되묻는다.

    박은미 건국대 교양학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쪽이 의사소통적 행위를 하자고 하는데도 다른 한쪽이 전략적 행위를 계속하면 전자도 의사소통적 행위를 포기하기 쉽다. 불통은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불통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상대가 전략적 행위를 하든 말든 누군가가 먼저 의사소통적 행위를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결단이 양자의 발전을 독려한다고 박 교수는 본다.

    박 대통령은 반대편 주장을 들어주는 1단계, 반대편과 함께 의사소통적 행위에 나서는 2단계, 반대편과 무관하게 의사소통적 행위에 먼저 나서는 3단계 중 어느 하나도 시도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쉬운 것부터 해나가는 게 긴요하다고 할 것이다.

    불리한 질문 많아야 유리

    박 대통령이 소통하지 않는 대상으로 야당과 진보진영 외에 언론과 당·정·청도 자주 거론된다. 언론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취임 1년이 다 되어가는 1월 6일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마저 기자들에게 사전에 예상 질문을 받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수시로 각본 없는 질의·응답이 오가는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한참 못 미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첫 임기 4년간 78차례나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들이 즉석에서 자유롭게 질문하도록 하면 언론 생리상 날 선 질문이 쏟아지기 쉽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런 불리한 질문을 많이 받는 게 유리하다. ‘반대의견을 충분히 들어준다’는 인상을 TV로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국민에게 ‘소통을 잘하는 대통령’으로 비치는 것이다.

    ‘나빠, 틀렸어, 안 해’ 벗어나 반대 주장 들어주는 자세 필요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기자회견에서 집권 2년차 구상을 밝히고 있다.

    기자의 질문은 대선 TV토론 상대 후보의 질문에 비하면 무디고 녹슨 칼에 불과하다. 기자와 대통령 간에 테니스 랠리처럼 공방이 오가는 것도 아니고 한 기자는 기껏해야 한 번 정도 추가질문을 할 뿐이다. 반면 대통령은 무한대로 해명할 수 있고 질문 속 반론을 쉽게 무력화할 수 있다. 소통학자 마이크 앨런에 따르면 화자가 자기주장만 말할 때보다 반론도 함께 소개하면서 반론을 논파할 때 설득효과가 훨씬 커진다.

    신경식 상임고문은 박 대통령의 언론 소통에 대해 “기자회견도 자주 하고 기자실에 종종 들러 대화도 자주 하고 꼭 중요한 내용이 아니어도 정부가 하는 일의 뒷이야기도 좀 해주면 기자들과 서로 이해도 잘될 건데 그러질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청와대 홍보수석이 언론에 자주 나오는데 그보다는 정부에 높은 직급으로 전문 공보 기능을 두는 게 낫다”고 했다.

    기자회견 횟수와 관련해 그는 “대통령도 바쁘니 자주는 못 하겠지만 분기별로 한 번씩 한다든지 1년에 서너 번이라도 한다든지… 자꾸 그런 거 하면 좋지”라고 말했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가 나를 심판한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며 기자회견을 싫어했다. 그러나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어울리는 건 꽤 좋아했다. 육영수 여사와 더불어 한 달에 한 번 기자들과 점심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유흥수 상임고문도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조금 더 자주 하는 것은 좋다”고 했다. 이어지는 유 상임고문과의 대화 내용이다.

    ▼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인데요.

    “문화체육관광부도 있고 청와대 홍보수석도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언론과 접촉함으로써 생생한 목소리를 국민에게 전할 수 있어요. 언론과 접촉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도 괜찮지 않나 생각해요.”

    ▼ 기자들이 거북한 질문 하는 걸 대통령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은데요.

    “기자는 부담스러운 질문 얼마든지 할 수 있죠. 대통령이 그런 질문 못 들을 분은 아닐 거예요. 얼마든지 답변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받아들이고 자기 의견 개진하면 되는 거죠. 질의 내용 중에 옳은 내용이 있으면 국정에 반영하면 되는 거고요.”

    김용환 상임고문은 “이번에 기자회견 물꼬를 텄으니까 앞으로 또 하실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무한 리플레이(반복) 지시’

    당·정·청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장관·수석이 열심히 받아 적기만 하는 모습이 자주 비쳤다. ‘질타’와 ‘엄숙’이 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키워드가 됐다. ‘무한 리플레이(반복) 지시’도 유명하다.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비판이 야당에서 자주 나왔다. ‘4대 국정기조와 140개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이것저것 할 게 많다보니 그랬을 것’이라는 이해가 없진 않다. 그러나 박관용 상임고문의 말대로, 상대편인 야당과 소통이 아예 안 되는 것처럼 자기편인 당·정·청과도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전제군주인 세종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한 조정회의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무회의·수석비서관회의보다 오히려 토론이 더 활발했다는 사실이다. 허경호 경희대 교수팀이 분석한 조선왕조실록 기사에 따르면, 세종 즉위 초반 신하들은 회의에서 간단한 업무보고 외에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논쟁과 토론도 없었다. 그러자 세종은 의도적으로 자신이 토론 촉진자가 돼 신하들이 말을 많이 하게끔 했다. “덕이 없어서”라며 임금인 자신을 낮췄다. 신하들이 임금인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말을 해도 너그럽게 대했다. 이를 통해 신하들과 원활히 의사소통을 했다고 한다.

    유흥수 상임고문은 “나도 옛날 대통령 수석비서관으로 일했는데 대통령이 말하는 내용은 당연히 받아 적어야 한다. 그러나 적기만 해선 안 된다. 참모도 어떤 특정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주로 지시사항만 하달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만약 그렇다면 안되겠죠.”

    ▼ 당·청 관계가 청와대 위주로 간다고도 하네요.

    “우리 땐 당·정·청의 일정한 급이 되는 사람들이 2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 당의 이야기도 듣고 그랬는데…지금 그런 게 없다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당 대표도 월례 만남을 하든지, 하여튼 만나는 기회가 자주 있어야죠.”

    더 단단해지는 ‘비토층’

    다섯 명의 상임고문은 “박 대통령이 1년 동안 이 정도 했으면 정말 잘한 거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50%대 지지율, 전직 대통령 비자금 추징, 대북·외교 성과, 법치, 사상 최대 무역수지 흑자 등을 잘한 일로 꼽는다. 그러나 네 명의 상임고문은 불통이 ‘박근혜 비토층’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도 본다.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39%인데 이 중 소통 미흡이 20%다.(한국갤럽) ‘박근혜 불통’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소통’ 하면 경제가 나빠져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불통’ 하면 경제가 좋아져도 ‘실패한 대통령’이 된다. 중요한 건 통계나 수치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주제로 한 상임고문들과의 대화를 통해, ‘반대의견 들어는 주자’ ‘분기별 각본 없는 기자회견 하자’ ‘장관·수석도 말하게 하자’ 같은 실용적 제언과 ‘양식에 따라 의사소통하자’ 같은 본질적 규범이 설득력 있게 제시됐다. 박 대통령이 주변 돌아볼 여유도 생겼으니 자신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이제 ‘소통’을 실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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