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독 아닌 약 되려면 권력 견제하고, 사생활 보호해야

국정원 휴대전화 감청

  • 엄상익 │변호사 eomsangik@hanmail.net

    입력2014-01-22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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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초였다. 필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초안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불법도청을 수면으로 드러내 통제할 건 통제하고 필요한 경우 감청이란 이름으로 허용하려는 것이 입법취지였다. 법은 정말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독소가 있는 걸 모르고 만들었다간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청을 감청으로 바꾸어 법적 허가증을 주려면 도청 실태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때도 도청에 대한 공포가 사회에 만연했다. 한 검사는 전화로 친구와 한 얘기를 정보기관 담당관이 다 알고 있더라고 하면서 꺼림칙해했다. 국가보안법 사범을 무죄석방하고 지방으로 좌천된 판사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와 전화를 했는데 지역 정보관이 그 사실을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공직자의 통화 내용을 엿듣는가 하면 해외 주재 공관에서 외무부 본부로 오는 전문을 중간에서 가로채 외무부를 장악하는 것 같았다. 기자들이 데스크로 송고하는 내용도 사전에 확인하는 것 같았다.

    정보기관의 도청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떤 사람의 여자관계나 돈 관련 내용을 도청해 그 내용을 수사기관과 언론에 흘리면 그 사람의 정치·사회적 생명은 끝이 났다. 대통령선거전에서 국가권력이 한쪽 후보를 위해 도청하면 선거의 공정성은 파괴됐다. 대통령의 통화라고 안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통령의 통화를 엿듣고 그 의중을 제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실질적인 권력을 틀어쥐는 셈이다.

    유선전화를 쓰던 그 시절 시내 각 전화국이 서로 연결돼 있고 그들과 연결된 하나의 유령 전화국이 정보기관 내부에 있는 듯했다. 그뿐 아니었다. 각 전화국에서 전화 배선에 접근할 수 있는 직원들에게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면서 불법 감청에 동원하는 것 같았다. 아령같이 무겁고 둔탁한 휴대전화가 시중에 나올 무렵이었다. 필자는 남산의 높은 탑과 63빌딩의 옥상을 올려다보면서 앞으로 그곳에 서울 전체의 휴대전화를 도청하는 장비가 설치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공공연했던 정보기관 도청



    필자는 세계 정보기관의 도청을 통한 첩보 수집 실태를 살폈다. 미국의 중앙정보부(CIA)와 일본의 내각조사실도 방문했다. 각국 정보기관의 도청 경쟁은 치열했다. CIA의 9국은 ‘퍼즐 팰리스’라는 별칭으로 첨단 과학설비를 동원해 세계적인 도청을 감행했다. 미국의 정보위성이 전 세계의 곳곳을 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국의 정보망 안에 있는 나라가 과연 완전한 주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느냐’고 책에서 반문하기도 했다. 국가들 사이에 도청은 합법과 불법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난 현재 국민 대부분이 휴대전화를 쓰는 시대가 됐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IT 강국이다. 이미 민간의 상업용 도청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남의 휴대전화에 스파이 앱 하나만 위장해서 몰래 깔아두면 상대방의 사생활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통화, 문자, 영상, e메일은 물론 스파이 앱이 깔린 휴대전화 소지자의 움직임과 만난 사람과의 대화, 심지어 그 주변의 소리나 대화 내용까지 모두 녹음돼 도청자의 손아귀로 들어간다. 은행예금도 모두 알아보고 인출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꺼도 GPS를 꺼도 소용없다. 도청자가 원격으로 켤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게임이나 생활정보를 받다보면 그 뒤에 스파이 앱이 숨어 들어오는 시대다. 서버가 어디 있는지 찾기도 힘들다.

    새누리당이 휴대전화 감청 설비를 통신회사가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고 정부가 비용을 대겠다는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휴대전화 사용이 일상화한 시대에 간첩이나 테러 첩보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맞는 소리다. 북한군의 동향이나 핵탄두의 움직임, 우리가 제공한 물자가 북한 주민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쓰이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북한 상공을 날아다니는 통화 내용을 들을 필요가 있다.

    독 아닌 약 되려면 권력 견제하고, 사생활 보호해야

    국가정보원 청사.



    공포 사회로 가는 길?

    20여 년 전만 해도 남조선에서 생산한 질 좋은 스타킹에 대한 평가를 하는 북한 당 간부 부인들의 얘기를 감청했다. 그런 감청을 통해 지원물자들이 중간에서 어떻게 횡령되는지 파악했다. 국내적으로 군사반란이나 불법 혁명을 막기 위해서도 이제 휴대전화 감청은 필수적이다. 간첩이나 테러, 유괴 사건 등 범죄 수사를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자는 새누리당이 제안한 법은 잘 쓰면 국가와 사회의 건강을 완벽하게 지켜주는 약이 될 수도 있고 남용되면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처럼 공포 사회로 만드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허가받은 도청인 감청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그 주체인 정부, 그중에서도 정보기관과 권력자인 대통령을 믿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정보기관에서 도청을 장난같이 하는 건 아니다. 정권을 잡은 측은 항상 야당이나 재야, 노동계, 종교계, 학원, 언론 등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들을 통제하는 게 정권 연장의 한 방법인 까닭이다. 그 촉수가 도청이다. 대외적 명분은 간첩이나 테러 첩보 수집이지만 정부 비판자들에 대한 도청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정보기관은 군사정권 시절 정권에 저항하는 인물에 대해 도청을 하고 데려다가 고문까지 하면서 그들을 주저앉혔던 원죄가 있다. 권력이 느끼는 본능적인 유혹은 군사독재 정권뿐이 아닌 것 같다. 이명박 정권도 총리실에 비선 조직을 숨겨놓고 민간인까지 불법 사찰을 하다가 허술한 조직 운영으로 언론에 노출돼 사회적 폭풍이 일었다. 수사가 청와대 비서관의 행위 정도에서 마무리됐지만 근본 흐름의 뿌리는 권력자에 닿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광화문광장의 붉은 촛불의 물결에 겁먹은 대통령은 500만 표라는 압도적 지지보다 반대세력의 동향을 알고 대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보기관 책임자를 독대하지 않는 대통령의 행동은 엄청난 상징성을 갖는다고 본다. 그건 은밀한 정보를 거절하면서 깨끗한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신념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대통령도 있었고 아닌 경우도 있었다. 정권의 관점에서 도청은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다. 그리고 정보기관은 권력의 특별주문을 거절하기 힘든 생리가 있다. 거기서 항상 파생하는 건 거짓과 불신이다.

    1999년 국가정보원, 정보통신부, 법무부는 합동으로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 휴대전화는 절대 감청이 안 됩니다’라는 문구의 광고를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정원이 휴대전화를 감청해온 게 발각됐다. 권력을 계속 잡고 싶은 욕망이 있는 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거짓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권력과 도청, 그리고 그걸 드러내고 제한하려는 법은 순리와 역조의 관계다. 본질을 감지하고 먼 시선으로 제대로 된 자물쇠 노릇을 할 법을 만들어야 한다. 범죄 수사를 위한 감청 통제는 차라리 간단하다. 외국을 벤치마킹해서 판사의 영장으로 통제하면 된다. 또 수사기관 자체에 강한 규제 시스템을 갖추면 남용을 방지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의 치밀한 고뇌 필요

    문제는 정보기관이다. 국가기밀이나 안보에 관한 사항을 판사나 국회의원에게 맡길 수만은 없다. 전문성 없는 판사들은 법리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태적 한계가 있다. 정치인도 믿기 힘들다. 표만 된다면 부인도 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안보 담당자나 정보기관의 장에게도 맡겨선 안 된다. 권력의 신경 노릇을 하는 정보기관이 권력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궁여지책으로 만든 조문이 ‘국가 안전보장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 한해 엄격한 절차에 따라 감청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마저 추상적이고 애매했다. 정보기관의 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까라면 까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보기관 내부에서도 폭풍이 일었다. 동네북이 되어버린 국정원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 직원 대부분은 힘든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다. 자부심을 가진 직업공무원이고 싶어 한다. 그들도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도청을 진상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 역시 권력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법 매뉴얼이 필요하다. 감청 담당자가 유혹이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법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내부자 고발을 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 정보기관의 장이 임기 후라도 그 잘못이 드러나면 남은 인생이 햇빛을 보지 못하게 중형을 받도록 해야 한다.

    아날로그 시대의 통신비밀보호법은 그래도 그 나름의 몫을 했다. 함부로 도청을 하면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하고 불법 감청설비들도 통제했다. 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따라 이제 법도 디지털 시대에 맞게 달라져야 할 것이다. 법이란 사회를 인도하는 깃발이기도 하다. 화장실법 하나를 꼼꼼하게 만드니까 한국의 화장실이 세계적 수준이 됐다. 자전거법이 만들어지니까 전국의 강가를 자전거로 쾌적하게 달릴 수 있다. 쉽게 볼 게 아니다. 휴대전화 감청법도 전문가들의 치밀한 고뇌가 필요하다. 독이 아닌 약이 되게 하기 위해서.



    논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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