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사방이 적 1인자의 고독과 두려움 즐겨라

갑(甲)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4-01-23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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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갑인가? 그렇다면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갑 중의 갑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대기업 오너, 이보다는 못하지만 기관장과 전문경영인, 기타 자잘한 갑까지 갑의 숫자는 한정적이다. 갑의 최대 고민은 ‘갑의 지위를 유지하기 힘겹다’는 점에 있다.
    사방이  적 1인자의 고독과 두려움 즐겨라

    대통령 집무실로 올라가는 청와대 내 계단.

    희소성이 높은 만큼, ‘갑질’을 잘해야 한다. 하지만 의외로 잘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많은 리더십 프로그램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앞으로는 갑이 될 만한 사람에게는 갑의 도량을 함양케 하는 지옥훈련이라도 시켜야 할 듯싶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지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 같은 고상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본인에게도 이롭고 따르는 자들에게도 이로운 갑의 정치학을 말하고자 한다.

    갑은 위대하다

    갑은 이미 위대하다. 선택받은 사람답게, 허술한 ‘보통 갑’이라도 ‘슈퍼 을’보다 낫다. 보통 갑과 슈퍼 을의 차이는 슈퍼 을과 보통 을의 차이를 훌쩍 넘어선다. 프로페셔널 야구와 아마추어 야구의 격차를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정치력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갑이 되는 과정은 단언컨대 정치력 없이는 돌파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정치력이 뛰어난 갑에게 더 필요한 정치적 역량이 있을까? 있다. 갑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치력이 그것이다. 정치력을 편의상 타인에 대한 영향력과 자신에 대한 영향력으로 나눌 때, 갑의 자리에서는 후자가 한층 더 중요해진다. 갑은 지위에 비춰 외부로부터 견제받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렇다보니 독주할 개연성이 높은데, 이 과정에서 판단을 잘못 내리면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한방에 훅 가버릴 수 있는 것이 갑의 지위다.

    내(耐)고독력과 광기정치



    그렇다면 자신과의 싸움에 잘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갑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내부의 적은 무엇일까?

    갑은 외롭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내릴 결정에 대해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잠시 남에게 미룰 수 있지만 결국은 미룰 수 없는 그 책임 말이다. 거의 매일 무한 책임이 따르는 결정을 수없이 내려야 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다. 어찌 외롭지 않겠는가? 그래서 갑에게는 고독에 대한 내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것을 ‘내고독력(耐孤獨力·loneliness endurance power)’이라 부르기로 한다.

    내고독력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경쇠약을 지나 신경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상태가 심각해지면 미치게 된다. 갑이 미치면 ‘광기정치’를 한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북한 김정은의 통치방식이 광기정치다. 이 또한 김정은의 내고독력 부족 때문으로 봐야 할 것이다.

    몰락의 지름길

    갑은 외로움을 이기려고 측근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기도 한다. 측근 중에는 가족도 있고 부하도 있다. 독재자가 가족이나 측근을 중용하면 친족정치와 측근정치가 된다. 회사의 사주가 가족이나 측근을 중용하면 친족경영과 측근경영이 된다. 이로써 고독을 조금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리하곤 하는데, 오히려 이것이 재앙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가족이나 측근이 갑의 몰락을 부르는 역설은 익히 보아온 바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측근 때문에 유명을 달리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소통령이라 불린 아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가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게 모두 대통령이 외롭다보니 생긴 일이다.

    혼자 노는 버릇 들여라

    어떻게 하면 내고독력을 키울 수 있을까? 혼자 노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을 시절부터 혼자 밥 먹고 혼자 책 읽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산책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게 좋다. 갑으로 올라갈수록 외로워지다보니 많은 사람을 주변으로 불러 모아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경향이 없지 않다.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다. 일부러라도 혼자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내고독력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로메테우스에게 영혼을 팔고 고독을 사와야 얻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갑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내고독력을 키울 생각이 없다면, 그냥 슈퍼 을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 고독을 즐기면 부가로 얻는 것이 있다. Think big! 생각이 더 깊어지고 광활해진다. 그런데 당장 홀로 점심을 먹으려니 두려워진다? 내고독력 지수가 바닥이라는 반증이다.

    외롭기 때문에 두렵다.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무한 공포로 다가온다. 이러다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욕만 듣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밀려나는 것은 아닐까? 갑의 공포에는 시도 때도 없고 경계도 없다. 갑의 집무실은 왜 그리도 넓은지. 공간이 헛헛하다보니 공포도 도도하다.

    수많은 적의 출몰

    적도 자꾸 늘어나기만 한다. 갑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다른 실적을 내려고 경쟁을 물리치면서 만든 적은 물론이고, 단지 갑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적해야 할 적이 수없이 출몰한다. 안 그래도 많은데 계속 늘기만 한다. 거의 기하급수적이다. 당연히 주변에는 서운해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심지어 과거에 잘 지내던 사람들까지 적으로 돌변하고, 생면부지의 불특정 대중과 네티즌도 적이 된다. 이들은 갑이 된 순간부터 갑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집요하게 위협한다. 이 거대한 쓰나미를 오롯이 혼자 상대해야 하는 공포감은 스펙터클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내공포력(耐恐怖力·fear endurance power)이다.

    갑에게 내공포력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포정치를 펼친다. 자신이 두렵다보니 그 공포감을 이기려고 오히려 적을 공포로 몰아넣는 역설적인 일을 벌이는 것이다. 연산군, 김일성, 네로황제, 히틀러도 스스로 공포를 이기지 못해 공포정치를 했다. 기업에서도 공포경영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역시 사주나 CEO의 내공포력 부족 때문인 경우가 많다.

    반면, 내공포력이 충만하면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오히려 더 냉정해지면서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간다. 최근에 영화 ‘엔더스게임(Ender′s game)’을 봤다. 우주전쟁을 빙자한 아동학대라는 혹평도 없지 않지만 이 영화는 리더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엔더를 동료들로부터 일부러 고립시키는 부분이다. 거의 왕따에 가까운 상태에서 담대함과 지략으로 돌파해가는 엔더. 그렇게 엔더는 공포를 이길 힘을 키워간다.

    대통령의 가치는 언제 나오나

    대통령의 존재가치는 언제 나오는가? 대통령의 진정한 존재가치는 국가의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이를 추호의 흔들림 없이 돌파할 때 나온다. 지구를 지켜낼 마지막 사람 엔더처럼 나라를 지켜낼 마지막 단 한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이 일만 잘해내면 사실 나머지 시간에 놀고먹어도 관계없다고 본다. 미국인이 링컨 대통령, 루스벨트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이 위기 국면에서 보여준 지도력에 있다. 바로 이 위기 국면에서 이들이 느꼈을 공포감이 어땠을 것 같은가? 이들은 공포감을 잘 감당해낸 갑이다.

    내공포력을 키우는 것은 내고독력을 키우는 것보다 힘들다. 실제로 공포에 직면하지 않고는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 공포를 대면해본 적이 없다면 공포감을 주는 일에 도전해볼 필요가 있다. 압도적 공포에 대면해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수준까지 가본다면 내공포력이 생긴다. 물가까지 갔는데 뛰어들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식으로는 내공포력이 생기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을의 희생은 불가피

    갑은 자신의 희생도 희생이지만 자신을 돕는 많은 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때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물적 자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사람이다. 아끼던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는 순간에는 누구나 마음이 약해진다. 물론 나 살려고 남을 희생시키는 야비한 사람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그렇다는 말이다. 전쟁터에서 이런 일은 아주 흔하다. 희생이 없으면 전투를 치러낼 수 없다. 특히 질 수밖에 없는 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휘관은 갈등한다. 그러나 갑인 지휘관은 을인 부하들에게 총탄이 빗발치는 곳으로 돌격하라고 명해야 한다. 부하들의 희생 앞에 초연해야 한다. 이런 정신이 없으면 나라와 국민을 구하지 못 한다.

    이래서 필요한 것이 내희생력(耐犧牲力·sacrifice endurance power)이다. 기꺼이 희생을 각오하고, 그 희생에 연연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능력이다. 희생 앞에서 좌고우면하고, 그 희생에 아쉬워하며, 궁극적으로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는 옹졸함과 대비되는 역량 말이다. 내희생력이 부족하면 본전 생각의 지배를 받곤 한다. 작은 희생에 연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대형 참사를 자초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다 개망신 당한 기업인이 어디 한둘인가?

    가장 아끼는 것도 버릴 수 있어야

    내희생력도 실제로 버려보지 않으면 잘 생기지 않는 역량이다. 뭔가를 버려본 적이 있고 그것으로 비난에 직면했으며 결국 그런 비난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내희생력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버린 그것이 가장 소중한 바로 그것이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 갑은 가장 아끼는 것을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람은 당연히 위로 올라갈수록 무게가 더해진다. 무거운 칼을 수여받은 기사에게는 칼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그런데 도끼로 횟감을 썰겠다는 식으로 칼을 투박하게 쓰는 갑이 의외로 많다. 권력은 회칼처럼 날렵하고 세련되게 행사돼야 한다. 더욱이 최고 고수는 허리에 찬 칼을 숨긴다. 그 다음 고수는 칼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하수는 칼을 도끼처럼 투박하게 휘두르는 사람이다.

    칼을 그렇게 휘두르는 이유는 권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흔히 ‘함량 미달’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드시 사고가 발생한다. 도끼를 막무가내로 휘두르는데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대표적인 것이 권력형 비리다. 권력을 활용해 장사를 하고 패악을 일삼는 무리는 지금도 도처에 널려 있을 것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도 권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다. 대통령이 아끼는 청와대 대변인이기에 무소불위, 거칠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칼의 무게 못 이기면 함량 미달

    지구에서 살아가려면 중력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갑질을 잘하려면 권력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래서 필요한 것이 내중력력(耐重力力·gravity endurance power)이다. 내중력력도 권력을 조금이라도 행사해본 경험에서 나온다. 조직에서 하위직부터 상위직으로 차근차근 올라온 사람 대부분은 권력을 행사하는 데에 매우 신중하다. 권력의 무게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함부로 휘두르면 결국 자기 발등 찧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갑이 남보다 더 자주 이기는 것은 맞지만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주 이기다보니 패배에 익숙하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한다. 패배에 그만큼 취약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내패배력(耐敗北力·failure endurance power)이다. 패배가 습관이 되면 곤란하지만 패배 가능성 자체를 없애려는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더 곤란하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실패를 피하려고 한다. 또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다보니 안전한 길만 택하는 습관이 생긴다. 그러나 안전한 길만 택하다간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다. 실패하고도 수긍하기 어렵다보니 동일한 방식을 고집한다. 그리고 또 실패한다. 이렇게 몇 차례 실패하다보면 아무리 잘난 갑도 무너지게 마련이다.

    실패했다고 과도하게 자책하는 일도 피할 일이다. 실패했을 때는 깔끔하게 인정하고 툴툴 털고 일어나 패인을 냉정하게 분석한 다음 교정해야 한다. 이래야 갑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내패배력은 사실 지도력의 원천이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지도자는 없다. 성공한 지도자가 다른 갑과 다른 점은 그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결국 성공을 일궈낸다는 점이다. 내패배력이 강하지 못하면 갑이 되기도 어렵지만 갑이 되어서도 오래 버틸 수 없다.

    내패배력을 기르는 위해선 실제로 실패해봐야 한다.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한 일에 도전하자. 그리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또 도전하자. 단, 거듭된 실패의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반드시 한 번은 성공하도록 하자. 작은 성공이라도 좋으니 말이다. 작은 성공을 체험하고 나면 내패배력의 씨앗이 마음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좀 더 큰일에 도전해 성공하고 나면 더 큰일에 도전하는 일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실패를 실패로 절대 남겨놓지 말아야 한다.

    사실 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선택받은 사람만이 갑이 된다’는 선갑사상(選甲思想)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내포한다. 갑 중의 갑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당연히 갑은 잘났다. 그렇기에 잘난 척하는 것,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권장 사항이다. 자신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잘난 척만 하다간 큰코다친다. 특히 남의 힘을 빌려 갑의 자리에 오른 경우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간 얼마 안 가 추락한다.

    기업에서 오너는 자신의 힘으로 갑의 지위에 오른 자력 갑(自力甲)이다. 전문경영인(CEO)은 오너가 발탁한 타력 갑(他力甲)이다. 타력 갑은 잘해봐야 결국 호가호위에 불과하다. 호랑이 오너 앞에서 주인 행세하는 여우라는 말이다. 여우는 호랑이의 한마디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그런데 가끔 자신이 호랑이라는 착각에 빠지다 결국 호랑이로부터 버림받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타력 갑이라면 늘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미스터 쓴소리와 예스맨

    자력 갑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친 자아도취는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내도취력(耐陶醉力·narcissism endurance power)이 필요하다. 자아도취는 마약중독보다 더 심각한 질병이 될 수도 있다는 점, 갑이라면 잘 기억해둘 일이다. 아울러 낮출 때는 과감하게 낮추는 자세 하나만은 선택사양으로 반드시 탑재하길 권하고 싶다.

    내도취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자아도취 상태를 무참하게 깨줄 수 있는 ‘미스터 쓴소리’를 곁에 두는 방법이 좋을 듯하다. 반대로 계속 자아도취 상태에 빠져 있으려면 ‘예스맨’만 가까이 두면 된다. 일단 갑의 자리에 오르고 나면 쓴소리를 듣기가 싫어진다. 쓴소리를 들을수록 더 고독해지고 더 공포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드러낼 정도로 내고독력과 내공포력을 키워야 건강한 갑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쓴소리를 들을 때 거부감이 심하게 들기 시작한다면 자신을 의심해봐야 한다. 자신의 내고독력과 내공포력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적이 동침하자고 제안할 때 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한다면 갑의 자격이 없다. 그런 제안이 들어올 때 갈등 없이 냉큼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갑이다. 거꾸로 적에게 동침을 쉽게 제안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갑에겐 적대감을 누그러뜨리는 내적대력((耐敵對力·hostility endurance power)도 요구된다.

    계(計)자 세 번 쓰자

    영화 ‘엔더스 게임’에는 “적을 물리칠 정도로 이해하는 순간 적을 사랑하게 된다(When I understand my enemy well enough to defeat him, then in that moment, I also love him)”라는 말이 등장한다. 누구에게나 적은 심란한 대상이다. 적에게 적대감을 갖긴 쉬워도 적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적대감에 휩싸인 나머지 대사를 그르친 사례는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2012년 대선 당시의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조금 내려놓고 상대를 철저하게 이해하면서 실리적으로 대처했다면 오히려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냈을 것이다. 결국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경쟁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선거에서 지는 것은 정치판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내적대력을 갖지 못한 못난 갑들의 자충수라 하겠다.

    내적대력을 키우려면 실리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철저히 계산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인간이기에 감정이 앞선다. 그래서 권한다. 이럴 땐 참을 인(忍)자 말고 계산을 뜻하는 계(計)자를 세 번 마음속으로 쓰라고 말이다. 참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돌아올 이득을 계산하는 건 즐거운 일 아닌가?

    사방이  적 1인자의 고독과 두려움 즐겨라
    이종훈

    성균관대 박사(정치학)

    국회도서관 연구관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자

    現 아이지엠컨설팅(주) 대표, 시사평론가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정치의 기술’


    갑의 자리 지탱해주는 ‘내력벽’

    내고독력, 내공포력, 내희생력, 내중력력, 내패배력, 내도취력, 내적대력. 이 7가지 역량이 갑에게는 꼭 필요하다. 내력벽이 튼튼하면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 7가지 역량은 갑의 자리를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내력벽이라고 할 수 있다. 각고의 노력과 천운의 조화로 얻은 갑질, 제대로 오래 해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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