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이념정치에서 현실정치로 단단하고 통 큰 리더십이 관건

시험대 오른 안철수 새정치

  •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입력2014-03-20 0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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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당 당수’ 안철수가 땅으로 내려왔다.
    • 민주당과의 전격 통합은 이념정치에서 현실정치로의 전환이다.
    • 새 정치는 그것을 표방한 당사자가 실천해야 비로소 존재한다.
    • 몇 차례의 기회를 놓치며 ‘정치적 아이돌’에 머물던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단단하고 통 큰 리더십이다.
    이념정치에서 현실정치로 단단하고 통 큰 리더십이 관건

    3월 2일 신당 창당을 선언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

    2011년 하반기부터 2014년 현재까지 한국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안철수이지 않을까. 알다시피 그 시기의 승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부동의 강자, 가장 확실한 상수였다면 안철수는 갑자기 등장한 혜성 같은 변수였다. 게다가 풍운을 몰고 다니고,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는 점에서 그는 승자보다 더 대중적 관심을 받는 대상이었다. 비유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리더였다면 안철수는 스타였다.

    안철수 또는 ‘안철수 정치’를 지켜보면서 드는 느낌 중 하나는 전례가 없다는 점이다. 정치권 밖에서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적 존재로 등장한 인물 중에서 그처럼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사람은 지금껏 없었다. 우리 정치사에서 심심찮게 스타가 등장했지만 인기도의 높낮이에서 누구도 안철수에는 문자 그대로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또 하나, 그의 인기가 계속 유지되는 지속성이다. 통상의 정치문법으로 볼 때 그의 행보는 좋게 보면 추상적이고, 나쁘게 보면 애매모호하다. 특별히 안철수가 일궈낸 성과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그래서 어느 때부턴가 여론조사 전문가나 정치평론가들은 안철수가 누리는 인기는 조만간 거품이 빠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곤 했다. 그러나 그런 전망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그는 지금도 지지율 면에서 불가사의한 안정성을 누린다.

    아무도 모르는 세 가지

    지난 대선에서 지지한 후보를 기준으로 유권자를 분류한다면,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48%의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이 누리는 60% 안팎의 지지율에 의구심을 표한다.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는 지지율 수치이니 대놓고 부정은 못해도 내심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취한다. 이들의 눈에는 반복되는 인사 실패, 국정원의 선거개입 등이 두드러지게 보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인기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51.6%의 국민은 반대로 안철수의 높은 인기에 반신반의한다. 그냥 곱상한 외모에 강한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 일종의 정치적 ‘엄친아’에게 왜 대중이 그토록 마음을 주는지 그들로선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새정치를 외치지만 아직 그 실체를 알기 어렵고, 새정치답지 않은 짓도 많이 하는 데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안철수의 인기는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높은 인기도, 안철수의 높은 지지도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차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것이 불편할 따름이다. 흔히 아무도 모르는 세 가지(‘아모세’)로,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와 안철수의 새정치, 그리고 김정은의 속마음을 꼽는다. 필자가 모 방송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이 ‘아모세’에 대해 지금도 많은 분이 공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안철수 의원에게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희망을 걸거나 기대를 품고 있다는 얘기다. 안철수의 새정치를 평가·전망할 때에도 이 점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안철수의 트레이드마크는 새정치다. 일부에서 새로움의 ‘새(新)’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새(鳥)’를 뜻하는 것으로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인식된 새정치는 낡은 정치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흔히 저잣거리에서 듣는 말 그대로 허구한 날 쌈박질만 하면서 나랏돈 축내는 정치인을 한편으로 하고, 스스로 자수성가한 데다 IT라는 새로운 업종에서 성공했고 전혀 싸울 것 같지 않은 곰살궂은 캐릭터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대립 구도에서 전자는 현실·환멸이고, 후자는 기대·열망이다.

    이 구도에서 보면, 안철수란 인물이 살아온 이력도 신선했기에 그가 내건 새정치의 기치도 그의 이미지에 잘 부합했다. 하나의 기획으로 친다면 괜찮은 수작이라 하겠다. 한국 정치에서 유권자가 끊임없이 갈구해온 것이 새로움이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이 더 심했는데, 마침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스펙을 갖춘 인물 안철수가 딱 등장했다. 그뿐인가. 서울시장선거와 관련해 50%의 지지율을 가진 사람이 5%의 인물에게 간단하게 양보했으니 그 새로움의 정도는 매우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안철수의 실수

    안철수는 지금까지 몇 번의 기회를 놓치거나 실수를 했다. 우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양보하지 않았어야 한다. 민주화 이후 6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는데, 그들은 모두 예외 없이 정치적 리더십을 대중적으로 검증받는 과정을 거쳤다. 즉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스타가 되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후보가 되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는 ‘압축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장으로서 자신의 능력과 정책을 펼쳐 보이면서 시민의 평가를 받는 과정을 거쳤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그에게 향했던 대중적 열망이 식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2012년 총선 전이다. 당시 새롭게 출범한 민주통합당은 여러 세력이 합치는 통합효과, 2012년 1월 15일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전 총리를 대표로 선출하는 이벤트 효과 등을 통해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을 추월하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당시 통합은 혁신 없는 통합이었다. 또 새누리당을 재편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 맞서 싸울 민주당의 얼굴이 없었다. 나중에 야권의 후보가 되는 문재인도 아직 힘이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부산 선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 와중에 야권의 일부 전략가들이 안철수의 민주당 입당을 실종된 혁신을 보완하는 카드로 논의하기도 했다. 혁신이 없다는 비판, 박근혜에 맞설 대항마가 없다는 사정 등을 감안할 때 당시 안철수가 민주당에 들어가 일대 혁신을 요구할 수도 있었고, 새 인물을 영입하는 공천권 행사도 가능했을 것이다. 여론 지형도 나쁘지 않았다. 야권이 지기도 어려운 선거라는 게 당시의 세평이었다. 이때 만약 안철수가 과감하게 민주당에 들어가 낡은 민주당의 혁파를 요구하면서 젊고 참신한 인물을 대거 공천하는 새로움으로 박근혜와 맞대결해 승리했다면 아마 12월 대선의 승자는 안철수가 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당시 그를 둘러싼 주변에서 나돌던 얘기를 종합하면 그들의 구상은 시민후보론이었다. 정당이 아니라 시민후보로서 나서는 것,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지녔던 포지셔닝(positioning)을 좀 더 강화하자는 전략이 시민후보론이다.

    역사적 실례도 있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아이젠하워는 시민후보의 콘셉트로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아이젠하워는 사실 시민후보로서 정당후보를 꺾은 게 아니다. 공화당의 당내 경선이 막 시작할 즈음 여기에 참여했고, 결국 공화당 후보로서 대통령에 출마해 이겼다. 아이젠하워가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라 워낙 인기도 좋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만으로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공화당 내에서 대립하던 개혁파와 보수파 중 개혁파가 보수파에게 후보직을 허락하기 싫어 적극적으로 아이젠하워 영입에 나선 게 결정적이었다.

    여기에 비춰보면, 당시 민주당 내에서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미는 친노(親盧)에 비해 마땅한 후보가 없었던 비노(非盧)가 안철수와 결속할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그야말로 안철수로선 한국의 아이젠하워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서울시장 선거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신속하게 대권으로 갈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정치와 대통령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가 경선방식을 놓고 문재인과 다투다가 후보직을 던져버린 건 실수다. 과감하게 양보한 다음 설사 불리한 룰에 의한 단일화 경선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치렀어야 했다. 또 사퇴 후에는 자신이 후보인 것처럼, 자신의 선거인 것처럼 치열하게 뛰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 속에서 안철수의 메시지를 던지고, 자신의 새정치를 대중과 소통하며 다듬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담대함과 큰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선거 당일 개표 결과를 보지도 않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성패를 떠나 함께 울고 부대끼는 모습이 필요한 때였다. 야권의 지지자들이 허탈감을 느끼게 하는 아마추어적 처신이었다. 결국 이때까지 안철수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스타 또는 아이돌에 머물러 있었다고 하겠다.

    지난해 4월 27일 안철수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많은 이의 예상을 깨고 서울에서 출마했다. 지역구 선정에 따른 논란을 50%를 넘기는 승리로 이겨냈다. 그로부터 새정치를 위한 세력화, 즉 창당에 나서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한때 멘토라고 불리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재결합하면서 비로소 창당에 나섰다.

    하지만 인물난에다 재정 문제까지 간단치 않아 힘들어하던 차에 지난 3월 2일 전격적으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간의 통합을 선언했다. 사실 그동안 안철수가 표방한 새정치와 안철수가 되고자 하는 대통령 간에는 적지 않은 긴장이 있었다. 새정치를 추구하다보면 기성 정치와의 연대나 제휴보다는 독자 정당으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런데 아주 험난한 길이다. 지역구-단순다수제인 선거제도 때문에 제3당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 숱하게 시도된 제3당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거나 군소정당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새정치를 위해 독자 신당을 만들고 다당제로 가겠다는 구상은 안철수 정치가 결국엔 기성 정치권에 충격을 주는 문제 제기자로 끝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결선투표제도 없는 데다 새누리당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야권의 단일후보가 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당이 없을 때는 기득권의 반발이 거의 없으나, 정당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를 놓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저항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대통령이 안 되더라도 새정치를 추구할 수 있을까? 또 대통령이 안 되고서도 한국 정치를 새롭게 바꿀 수 있을까? 확고한 이념을 표방한 세력이라면 당장의 고난은 감수하더라고 대의를 지키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안철수의 새정치는 이념이 아닌 현실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국 정치를 바꾸려면 현재의 정치 현실상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대통령으로서 새정치를 위한 제도개혁과 관행 혁신을 관철할 때 새정치도 가능하다. 따라서 안철수가 독자 신당의 길을 포기하고 통합으로 나선 건 새정치와 대통령이라는 두 목표 간의 충돌을 방지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길을 가겠다는 해법으로 보인다.

    이념정치에서 현실정치로 단단하고 통 큰 리더십이 관건

    2012년 12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의 주말 마지막 유세 현장에 깜짝 등장한 안철수 전 후보.

    물론 그간 자신이 해왔던 말을 뒤집는 것이 과연 새정치냐 하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건 전적으로 그가 져야 할 부담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새정치를 내걸 때부터 이런 논란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도 모르는 또는 각자가 정의하는 개념이 다 다른 게 새정치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나 행위를 할 때마다 과연 새정치에 부합하는지가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논리적 정합성이나 정책적 순수성을 견지하겠다면 몰라도 정치문법이라는 것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정치인도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차이가 있다면 이런 논란을 누군가는 잘 극복하고, 누군가는 그 때문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철수가 통합과정이나 통합 이후 자신의 새정치를 지지하던 시민을 어떻게 설득하고, 계속 지지를 끌어낼지는 그의 리더십에 달린 문제다.

    과거 3당 합당이란 극약처방으로 대권을 거머쥔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이후 대중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 3당 합당 이후 절대 의석을 가진 여당이 뒤이은 총선에서 사실상 패배했음에도 YS가 그런 고비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그의 리더십에 있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쓸쓸히 영국으로 떠난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야권 분열을 낳는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했을 때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이겨내고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 역시 자신의 리더십으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예도 있다. 예컨대 김영삼 정부 시절 인기 좋던 박찬종 전 의원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신한국당에 들어간 뒤 결국 몰락한 것이 대표적 예다. 박 전 의원이 실패한 것은 인기를 뒷받침하는 리더십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참모와 리더십

    선진국일수록 불신의 대상이 되는 정치를 통해 지도자를 길러내고,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최고지도자를 뽑는다.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인기만이 아니라 리더십을 통해 판별하고 선택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선택에서 최악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이고, 정치 지도자 중에서 최악은 욕먹는 결정을 두려워하는 선인(善人)이다. 이런 점에서 안철수의 통합 선택은 이제 스스로 권력의지를 가진 정치인으로서 정치문법에 따라 새정치를 구현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정치는 혼자 할 수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타협하는 게 정치의 숙명이다. 그러려면 더더욱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안철수에게 그런 팀이 있을까? 소설 ‘삼국지’의 시작은 도원결의(桃園結義)다. 그런데 유비, 관우, 장비의 당시 처지를 생각해 보면 동네 건달 3명이 모여서 술 한잔 하면서 짐짓 허풍을 떤 것이나 다름없다. 술자리 농담을 멋있는 드라마로 각색해낸 스토리텔링(story telling)도 훌륭하지만 이들 3인이 끝까지 의리를 지키면서 천하를 주유한 것도 아름다운 텔링스토리(telling story)다. 역량으로 보면 조조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유비가 촉이란 나라를 건국하는 것도 그 시작은 도원결의를 맺은 관우, 장비의 의리 덕분이다.

    정치인의 성공, 특히 대통령에 오르는 아주 예외적인 성공의 이면에는 뛰어난 참모가 있다. 좋은 참모를 곁에 두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리더십의 결과다. 운이 아니라 리더의 그릇이나 포용력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리더가 똑똑하거나 이력이 화려하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몰리는 게 아니다. 새도 나무를 가려 앉듯이 참모도 리더를 ‘선택’한다. 이 선택의 동인은 작은 이해타산이 아니라 공감이다. 리더가 먼저 마음을 주어야 한다. 과연 정치인 안철수에게 관우·장비가 누구이며, 제갈공명은 또 누구일까? 조조도 순욱이란 인물을 만나면서 승승장구했고, ‘초한지’의 날건달 유방도 장량을 만나서 꽃을 피웠다.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한 오바마가 처음 출마 선언을 하고 거의 1년 동안 힐러리 클린턴에게 30%P 내외로 계속 밀리는데도 그의 캠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바마와 전략가 데이비드 엑설로드, 캠페인 매니저 데이비드 플러프가 단단하게 결속했기 때문이다. 서로 마음으로 신뢰하는 최강의 팀 구축, 더 큰 싸움을 앞둔 안철수가 시급하게 풀어야 할 숙제다.

    새정치는 일면 허상이고, 일면 실체다. 새롭게 등장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새정치를 말한다. 과거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세력도 새정치를 말했다. 그런데 아직 이 땅에 새정치가 실현됐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어쩌면 새정치는 용의 존재처럼 마치 있는 것처럼 생각하나 사실은 상상의 그 무엇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때론 실체를 갖기도 한다. 과거 40대 기수론을 내건 김영삼·김대중이 그랬고, ‘탈(脫)권위’를 외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다. 과거와 다른 새정치를 선보였다. 시민은 끊임없이 기성 정치를 불신하면서 새 인물에게 환호를 보냈다. 허상인 듯한데 실체가 있고, 실체를 잡으려고 하면 어느새 멀어지는 게 새정치다. 분명한 것은 새정치는 그것을 표방한 당사자가 실천해야 비로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기성 정치의 모든 관행을 무시하는 것이 새정치가 아니다. 아침 이슬을 먹은 뱀은 독을 만들지만, 젖소는 우유를 만든다. 막스 베버가 말했듯이 정치가는 신념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를 추구해야 한다. 더러움을 마다하지 않아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의미다. 악마와 손을 잡더라도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선함이 있어야 한다.

    ‘구름당 당수’라고 불리던 안철수가 이제 땅으로 내려왔다. 정도전이 세상 속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역성혁명을 꿈꾸고, 친구와 사생결단하면서 이상을 추구했듯이 안철수도 매일매일 실천과 싸움 속에서 리더십을 벼리면서 자신 의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가 현실이라는 괴물에게 먹힐지, 아니면 그 괴물을 제압하는 영웅이 될지는 전적으로 그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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