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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고통 감내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아

인고의 착각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고통 감내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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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성취는 드문 일

고통 감내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아

2015 대입 합격전략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와 학생들이 강사의 설명을 집중해 듣는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힘들고 고생스럽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 후일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고 그만큼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룬, 흔히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 대부분 젊었을 때 지지리 고생한 과거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고 그 고난의 시간이 있었기에 현재의 성공이 가능했다고 얘기한다. 이런 종류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마치 고난의 시간이 성공에 필수적이고, 나아가 그런 고생이 마치 성공을 가져다 줄 것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첫째, 그런 고생을 한 사람, 더 심한 고생을 한 사람이 무지하게 많은데도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는 사실이다. 둘째, 성공한 사람도 그들의 고생이 후일의 성공에 도움이 됐을 경우에만 해당한다. 세상의 거의 모든 부모가 자녀의 성공을 바라고, 특히 한국의 부모 대부분은 자녀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일부분이다.

더구나 그 극히 드문 경우에도 부모가 열심히 빌었기 때문에 자녀가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열심히 비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이 밤을 꼴딱 새면서 졸고 있는 자녀를 깨워준다든지, 더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해준다든지, 심지어 자녀가 모르는 문제를 미리 공부해서 가르쳐주는 고생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냥 마음속으로 열심히 빌면서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녀를 짜증나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헛짓은 결국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인고의 착각으로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인고의 착각을 하게 되는 걸까. 바로 불안을 다스리는 착각적 통제감과 바람을 반영하는 비현실적 낙관주의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중요한 본능 중 하나가 바로 통제 욕구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환경을 조정하려는 욕구가 있다. 원하는 일을 일어나게끔, 원하지 않는 일을 일어나지 않게 막는 영향력을 발휘해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 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생존을 위한 기본이 된다.



이러한 욕구는 너무 강해서 때로는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통제감을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놀이동산에 가면 정해진 철로를 따라 도는 모형 자동차가 있다. 이런 모형 자동차에는 한결같이 돌아가는 핸들이 달려 있고, 아이들은 이 모형 자동차를 타는 동안 열심히 이 핸들을 돌린다. 사실 그 핸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바퀴에 연결돼 있지도 않고, 어차피 그 자동차는 철로와 같은 궤도를 따라 돌게 돼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때로는 그 핸들을 차지하려 싸우고, 그 핸들이 없다면 그 모형 자동차를 타는 재미도 반감될 것이다.

이런 통제의 착각은 일상에서 재미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불안을 다스리는 구실을 한다. 인생의 수많은 일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운이라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것을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내버려두면 우리는 불안해서 못 산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게 된다. 일상에서 우리가 겪는 수많은 미신적 행동이나 징크스에 대한 믿음도 이런 착각적 통제감을 위한 것들이다.

이런 착각이 우리의 심리를 편하게 해주는 원리는 간단하다. 한국에서는 수능날 아침에 하면 안 되는 수많은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역국이다. 수능날 아침에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준다면 계모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수능날 아침에 미역국을 먹으면, 실제로 그 미역국 때문에 대학에 떨어진다고 믿으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무도 믿지는 않는데 먹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미역국 때문에 자녀가 대학에 떨어진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역국을 먹이지 않으면서 자녀가 대학에 떨어져야 할 이유 하나가 마치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세상에 미역국을 먹은 수험생이 있다면, 최소한 그 학생보다는 자신의 자녀가 떨어질 이유가 하나 줄어든 것 같은 착각을 즐기는 것이다. 이런 착각은 나의 불안감을 조금씩 덜어준다.

이런 착각적 통제감은 미래에 대해 근거 없이 낙관적으로 믿는 우리의 착각과 깊이 연결돼 있다. 사람들은 미래를 실제보다는 긍정적으로 예측하는 자기고양적 성향을 갖는다. 긍정적인 일은 더 많이 일어날 것이고 부정적인 사건은 자신을 피해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암에 걸릴 확률, 교통사고나 벼락과 같은 사고로 사망할 확률, 이혼할 확률에서는 자신이 경험할 확률을 실제 일어날 확률이나 타인이 경험할 확률보다 더 낮게 추정한다.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갈 확률, 자신이 임원이 될 확률, 심지어 복권이 당첨될 확률에서는 실제보다, 타인보다 자신의 경우를 더 높게 예상한다. 이런 자기 멋대로의 비현실적 낙관주의는 인간이 가진 본능적 성향 중에 가장 강력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현실적 낙관주의 또한 착각적 통제감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해주고, 긍정적인 기대를 갖고 미래를 위해 정진하도록 만드는 심리적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 두 기능이 협동해서 바로 인고의 착각을 일으킨다. 즉 지금 고생한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그것이 미래의 성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와 상관없이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는 것처럼 믿는 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마치 지금 더 고생해야지 더 성공할 거라는 믿음에 현재를 더 고생스럽고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몰아넣으려 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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