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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

환구단과 천단의 천자(天子) 풍수 대결

  • 안영배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획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환구단과 천단의 천자(天子) 풍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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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일 동북아 3국 중 진정한 하늘자손(天孫)의 나라는 어디인가.
  • 하늘에 제사 지내는 천제(天祭)의 권리는 천손국의 천자(天子)만이 누리는 정치권력이었다. 그 권력 뒤엔 풍수 논리가 개입됐다.
  • 하늘의 기운과 소통할 수 있는 신성한 장소여야만 천제는 그 영험성과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환구단과 천단의 천자(天子) 풍수 대결

중국 베이징의 천단. 아래부터 일직선상으로 원구대, 황궁우, 기년전 순으로 배치돼 있다.

4월 초 청명절을 맞은 중국 베이징의 천단(天壇)공원.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으로 내내 찌푸린 얼굴을 하던 베이징의 하늘이 요 며칠 화창하다고 한다. 베이징을 찾으면서 걱정했던 공기가 상큼해진 게 다행스럽긴 하지만 ‘그러면 서울은?’하는 생각에 이르자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다. 이제 우리는 천단공원의 공중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에 서울 하늘이 무섭게 오염될까 염려해야 할 판이다.

어디 기후만일까. 우리와 중국은 역사적으로도 깊은 숙연(宿緣)을 갖고 있다. 천단공원의 천단도 그중 하나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려는 목적으로 명나라 때 건립된 이 역사적 유적은 동시대 조선 사람들에게 정신적 굴욕을 안겨주었다. 중국의 황제가 천단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는 한 조선의 국왕은 자국 영역에서조차 함부로 하늘제사를 지낼 수 없었다.

왜 그런가. 하늘 혹은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천제의 자격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하늘자손의 나라인 천손국(天孫國)의 대표, 곧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만이 지낼 수 있는 고유 권한이다. 그러니까 천제를 지내는 행위 자체는 자신이 진정한 천자, 즉 하늘에서 유일하게 인정받은 왕임을 만방에 알리는 정치적, 외교적 효과를 지닌 것이다. 이 권리에 대해 이웃 국가에서 도발할 경우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넘본 것으로 간주된다. 나라 간 전쟁을 일으킬 만한 도발적 행위다. 이는 적어도 동북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에선 불문율처럼 통했다. 천손민족이라고 자부하는 한국, 천자의 나라라는 자긍심이 대단한 중국, 태양을 상징하는 일장기를 국기(國旗)로 내걸 정도로 하늘자손임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일본에선 천제가 정치·외교문제로 비화되기 일쑤였다.

이 점에서 중국 명나라(1368~1644)의 건국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조선(1392~1910)은 중국에 ‘꿀릴’ 수밖에 없었다. 유교 사대주의를 표방한 조선은 스스로 중국의 제후국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전 왕조인 고려 때까지도 천손국의 자손으로서 떳떳이 지내오던 천제 의식인 환구(?丘·원구라고도 발음)제를 조선은 포기하고 말았다.

천단은 중국의 자긍심 상징

필자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간단하다. 고려 때까지도 면면히 내려오던 우리의 천제 의식을 중단케 한 명나라의 천단을 풍수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은 하늘의 기운과 교감할 수 있는 자리일 것이다. 마땅히 천기(天氣)가 내려오는 입지여야만 할 것이다. 중국이 그런 자리를 골라내 제단을 건립해야 명실상부하게 ‘천자의 나라’라고 자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청명절 연휴를 맞은 탓인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천단공원의 곳곳은 중국인 관람객으로 북적거렸다. 명청(明淸)시대의 궁궐인 자금성(紫禁城) 남쪽에 자리 잡은 이곳은 총 면적이 273만㎡로 북쪽은 원형(圓形)으로, 남쪽은 방형(方形)으로 벽을 두른 형태다. 북쪽을 상징하는 하늘은 원만하게 둥글고, 남쪽을 상징하는 땅은 반듯하게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의 표출이다. 또 동서의 길이는 1700m, 남북의 길이는 1600m에 달하는데 황제가 머무는 궁궐인 자금성보다 무려 4배나 넓은 규모다. 과연 중국인들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 최대의 제전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천단은 가운데 중심축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기년전(祈年殿), 황궁우(皇穹宇), 원구대(?丘臺)라는 핵심적인 건물들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돼 있는 구조다. 이곳에서 명나라 이후 청나라 때까지 22명의 황제가 새해나 국가 중대사를 맞아 654차례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914년 원세개(遠世凱·위안스카이)가 서구 열강의 침입에 맞서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천황을 칭할 때도 이곳에서 천제를 거행했다.

오늘의 중국인도 천단에 대해선 남달리 생각하는 듯했다. 공산화 이후 중국 정부는 1998년 천단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한 데 이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바로 이곳에서 성화 봉송식을 거행했다. 중국인이 천단을 그들 정신문화의 중심 포인트로 삼고 있음을 말해준다.

인공으로 천기(天氣) 꾸며

필자는 공원 한 켠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마작을 즐기는 중국인들을 뒤로 하고 북쪽의 기년전부터 찾았다. 기년전은 직경 36m의 원형 3층 건축물로 높이는 38m에 달한다. 매해 봄철이면 역대 황제들이 풍작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올리던 곳이다. 우리나라 사직단과 비슷한 기능이다. 기년전은 천단 조성 과정에서 최초로 건축된 건물로 평가되며, 원 이름은 대기전(大祈殿) 혹은 대향전(大享殿)이었다고 한다.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재위 1402~1424)가 15년간 심혈을 기울인 끝에 1420년에 완공한 역작이다.

원래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재위 1368~1398)은 난징(南京)에서 나라를 세우면서 대사전(大祀殿)을 짓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지만, 영락제가 어린 조카인 건문제(建文帝)를 몰아내고 제3대 황제에 올라 수도를 베이징으로 이전하면서 궁궐인 자금성과 함께 천지단(天地壇·후의 천단) 건축물을 조성했던 것. 조카를 폐위하고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감행한 영락제는 이곳에서 제사를 통해 흩어진 민심을 규합하고 자신의 권위를 굳히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하자면, 천단의 기년전은 순수하게 천제를 올리는 건물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말 그대로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祈穀) 예식을 행하는 건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기년전이 입지한 터도 풍수적으로 천기(天氣)와 별 관련이 없는 데다 지기(地氣)도 신통치 않아 보였다. ‘왜 이런 곳에 터를 잡았을까?’ 의아함과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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