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호

관료사회에 대한 답답함 성과에 대한 갈증

대통령 발언이 과격해진 이유

  •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입력2014-05-21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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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과격해진다. 세월호 참사가 결정적인 이유지만 지난해 말부터 발언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취임 1년을 보내고 2년차로 넘어가면서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더해지고 청와대와 내각에 대한 답답함이 커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대선 전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애드리브도 전혀 없었다. 기자들의 다양한 질문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답변만 짧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유라고 해도 “참 나쁜 대통령”과 같은 간결하고 짧은 비유가 전부였다. 참모들이 국민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에피소드나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영화를 인용해 메시지를 써서 올리면 박 대통령은 감정이 느껴지는 부분들을 모두 삭제하고 건조한 어투로 고쳤다. 대통령은 오로지 자신의 메시지가 정확히 전달되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대선 전에는 회의도 별로 안 했다. 대선 기간 내내 당에서 회의를 주재한 횟수가 10번이 채 되지 않을 정도다. 회의를 열어 여러 명이 있는 자리에서 의견을 나누는 것보다 의견을 개별적으로 듣고 본인이 생각을 정리하는 게 대통령의 스타일이었다.

    1만 字 깨알 지시

    그러나 당선인 시절 인수위원회의 분과별 보고를 받으면서부터 대통령의 발언은 1만 자(字)를 넘기기 시작했다. 주요 공약에 대한 취지를 일일이 다 설명했다.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다듬어온 구상을 모두 쏟아냈다.

    취임 후에도 상반기 내내 대통령의 1만 자 깨알 지시는 계속됐다. 각 부처 업무보고뿐 아니라 청년위원회, 문화융성위원회 혹은 인문학자들과의 만남에 대해서까지 대통령의 발언은 길었다. 대선 때까지는 짧은 공개 발언 외에는 모두 비공개로 철저하게 보안에 부쳤지만 취임 후에는 2시간가량 진행되는 회의 내용 전체를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만기친람(萬機親覽) 리더십’ ‘교사 리더십’ 이라는 말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던 박 대통령이 지난해 하반기 들어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회의 횟수를 절반 이하로 줄였다. 매주 열리던 수석비서관회의도 격주 혹은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회의를 통해서 각 수석, 장관에게 전파하는 것보다 필요할 때마다 전화를 통해 체크했다. 대선 전 스타일로 돌아간 것이다. 상반기 동안 북한의 핵 위협과 개성공단 폐쇄 때 보인 리더십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 것도 안정적으로 기존 스타일을 찾게 된 배경이었다.

    한 참모는 그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수위 시기와 정권 초에는 본인의 국정철학을 국민과 공무원에게 세세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140개 국정과제만 집중해서 실천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각 국정과제에 대해 정확하게 취지를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특히 대선 때 대통령 본인과 호흡을 맞췄던 정책 참모들이 청와대와 내각에 거의 합류하지 않았다. 본인이 정책에 대해서 제일 잘 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아는 것을 내각과 청와대, 그리고 국민에게 자세하게 전파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상반기 동안 어느 정도 전파됐으니 하반기 들어서는 말을 늘리기보다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박 대통령이 다시 말이 많아지고 발언 내용이 점점 과격해진 건 지난해 12월 철도노조 파업 때부터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회 시정연설 때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히며 구체적인 안건으로 원전, 방위사업, 문화재 분야와 함께 철도시설 분야를 언급했다. 철도노조 파업이 본격화하기 전이었다. 이미 7월경부터 박 대통령은 철도 민영화 대신 KTX 수서발 자회사를 설립하는 형태로 경쟁체제를 도입해 경영 합리화를 꾀하겠다는 구상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시정연설 이후 KTX 경영합리화는 철도노조의 ‘철도 민영화 반대’ 논리에 밀려 어려움을 겪었다. 여론전에서 밀리는 동안 여론전의 선두에 서야 할 국무총리와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보이지 않았다. 철도민영화 이후에 의료·교육 민영화가 이어질 거라는 유언비어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언론이 철도노조의 과도한 복지 혜택을 비롯한 기득권, 방만한 경영 실태에 대해 집중 보도하면서부터 여론이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박 대통령은 답답해했다. 철도노조 파업이 국회의 중재로 마무리된 지난해 12월 30일 수석비서관회의 때 그 답답함은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부터라도’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요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정책에 대해 여러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 각 수석은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나가기 바란다. 철도, 의료, 가스 등 최근의 개혁정책 등에 대해 명확한 데이터와 쉬운 논리로 정책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해줘서 국민의 협조를 얻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지금부터라도’라는 말 속에 담겼듯이 명분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사안조차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 작업을 벌이겠느냐는 답답함의 표현이었다.

    실제 철도노조 파업 과정에서 노조와 심적으로 동조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간부들이 자료를 보고하지 않아 청와대에서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일을 겪으면서 정부가 모두 청와대, 즉 정권과 같은 편이라는 인식도 많이 깨졌다.

    새해 들어 대통령의 깨알·과격 발언은 본격화됐다. 2월 5일부터 시작된 각 부처 업무보고 때부터 지난해 부처 업무보고 때의 발언 형태로 돌아갔다.

    업무보고 첫날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박 대통령은 “국무조정실은 불독 같은, 불독보다는 진돗개가 한 번 더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고 해요. 우리는 진돗개 정신으로 한다, 우리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담인데 회의 다 끝나면 여러분이 규제에 관한 얘기는 생각 안 나고 진돗개만 생각날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일부러 하는 얘기예요. 잊어버리시지 말라고”라고 말했다. 웃으면서 한 얘기지만 ‘뼈’가 있는 비유법은 이후 업무보고 때마다 이어지며 ‘박근혜 어록’을 탄생시켰다.

    박근혜 어록의 대부분은 칭찬보다는 질타에 초점이 맞춰졌다. “왜 이렇게 내 말 뜻을 잘 못 알아듣고 일이 더디냐”는 답답함이 한껏 묻어난다. 그런 비유법이나 과격한 표현은 대통령이 관련 수석비서관실과 사전 의견 교환 없이 공개적으로 던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비유 역시 모두 본인이 직접 넣은 것이다.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1차적으로 연설기록비서관실을 거쳐 제1부속비서관실이 최종 작성한다. 이 비유는 제1부속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최종안에도 없는 것들이었다. 박 대통령이 회의에 들어오기 전 친필로 메모한 경우도 많았다. 절박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관료사회에 대한 답답함 성과에 대한 갈증

    박근혜 대통령이 3월 20일 청와대에서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은 2월 13일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당시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안현수 선수를 언급하며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 세우기,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안 선수가 이틀 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대한빙상경기연맹을 향한 여론의 강한 질타로 이어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문체부와 감사원도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체육계 비리는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비정상의 정상화’의 대표 사례로 예시할 정도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였다. 지난해 7월 국무회의에서 처음으로 제기한 뒤 수차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사격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박종길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물러난 뒤 인사위원회는 후임 인사로 언론계 출신을 추천했으나 박 대통령이 체육계 인사(김종 차관)를 선택한 것도 체육계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의 반영이었다. 박 대통령은 1월 15일 문체부가 체육단체 특별감사 결과 및 대책을 발표했지만 더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회계 중심의 체육단체 감사가 파벌, 심판 등 전방위적인 감사로 이어졌다.

    국정 홍보에 대한 답답함

    박 대통령은 2월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해서도 기획재정부와 경제수석실에서 올린 초안을 보고 실망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짓수는 많지만 기존의 사업을 짜깁기한 재탕 비중이 컸다.

    박 대통령은 이 때문에 비공개 수석비서관회의 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경제수석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수석실이 다 검토를 해서 올려라”고 수석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다 챙겼다. 본래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발표할 예정이었던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취임 1주년 2월 25일 직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의 발언이 점점 비유가 많아진 또 하나의 이유는 국정 홍보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연말 이후 매번 회의 때마다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 정책과 다름없다”는 말을 반복해왔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말한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현이 호평을 받으면서 이런 쉬운 비유로 국민에게 정확히 본인의 뜻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자나 호랑이가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잡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 “쉽게 생각하고 툭툭 규제를 던져놓는데 개구리는 거기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 “규제 완화는 간절한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장가를 못 간 아들, 시집을 못 간 딸은 부모가 모든 정성을 다해 꼭 결혼시키려고 하지 않느냐”는 등 비유가 쏟아졌다. 자신이 솔선수범해 쉬운 비유로 설명할 테니 각 부처도 정책을 홍보할 때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만기친람 리더십이 관료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런 관료의 태도는 또다시 대통령이 만기친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 사고로 관료에 대한 대통령의 불만이 폭발했다. 박 대통령은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공직사회가 바뀌어야 하고 공직자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하며 다 뜯어고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한 참모의 말이다.

    “박 대통령은 주변의 만류를 다 뿌리치고 청와대와 내각에 모두 관료를 썼다. 그들에 대한 배신감이 클 거다. 1970년 아버지 박 대통령 시절 애국심으로 가득 찬 능력이 뛰어난 관료를 기대했던 박 대통령은 국가가 아닌 소속 부처만을 위해 일하고 일에 대한 열정보다는 책임 회피로 일관하며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에 대한 배신감이 크다. 만기친람 리더십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대통령이 반복해서 말한 건 ‘협업해라’ ‘국민만 봐라’ ‘현장이 중요하다’ 는 등 원칙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알아서 좀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취임 1년이 지났는데도 진행은 더뎠다. 그러다 세월호 사고가 터지면서 더 이상 관료에게 희망을 가지기 힘들어졌다.”

    박 대통령이 이번 세월호 참사 사고로 불거진 관(官)피아에 대해 무방비로 있었던 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첫 번째 외청장 인사를 발표하면서 민형종 조달청장, 김영민 특허청장 등 18명 중 9명을 내부 승진시켰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1998년 금감원 설립 이후 내부 승진으로 금감원장에 오른 첫 사례였다.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주무부에서 청장이 내려왔던 것을 최소화하고 내부 차장을 적극 승진 발령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주무부에서 청장으로 간 경우는 3명뿐이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무부처가 외청장까지 장악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공공기관 인사를 중단한 적도 있다. 대통령이 정치권 인사를 적극적으로 챙기지 않자 관료 출신이 모든 공공기관 인사를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추천 수를 3배수에서 6배수로 늘리고, 장관과 청와대가 절반씩 추천하도록 했다. 이후 관료 출신이 다소 줄었고 대신 정치권 낙하산 인사가 다소 늘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더라도 전문성 위주로 뽑는 공모제 자체가 워낙 관료 출신에게 유리하고 전관예우 행태가 곳곳에 남아 있어 관피아는 더 공고해졌다.

    이번 세월호 사고 초반 해경과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가 실종자 통계를 각각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그 숫자가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정확한 숫자를 원했지만 누구도 책임지고 이를 파악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거듭 수정된 숫자를 보고하면서도 잘못된 숫자를 보고한 데 대한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선박의 안전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에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전직 간부들이 임원으로 가면서 선박 안전관리 감독이 소홀해지는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 문제도 터졌다.

    거기에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이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동아일보의 지적에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반박하면서 청와대조차 책임회피를 한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해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줬다.

    박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이 이어질지 예전의 간결한 ‘문체’를 되찾을지는 관료로부터 시작된 성과에 대한 갈증을 어떻게 푸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개각과 청와대 개편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이 추진력 있는 정치인이나 외부 전문가를 적극 기용하고 이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청와대와 내각을 관료 중심으로 꾸린 것은 자신이 일일이 다 챙기기 위해 실무형을 포진시킨 것이고 결국 그 착오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대통령국정기획수석을 지낸 곽승준 고려대 교수의 “관료는 소속 부처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 때문에 관료 개혁이 불가피한 정권 초창기에는 관료보다는 전문가와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래서 새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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