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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세월호를 보내며

누가, 언제, 어떻게 해야 믿어줄까

선택의 심리학 - 사과하기 어려운 사회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누가, 언제, 어떻게 해야 믿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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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에서는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하기도 힘들지만, 받기도 힘들다. 관계주의적이고 심정주의적인 한국인의 특성 때문이다. 행위 자체를 중요시하는 서구에 비해 한국은 행위보다 마음을, 그 행위의 진의를 더욱 중요시한다.
누가, 언제, 어떻게 해야 믿어줄까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9일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애도의 묵념을 한다.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비극적인 사고가 또 일어났다.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해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이 침몰해 수많은 승객이 사망하고 실종됐다.

이 사건은 아마 사망자의 규모나 사건의 내용을 떠나 가장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으로 국민에게 기억될 것 같다. 고등학생인 두 아들을 둔 필자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 아들 딸 같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비통함에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마음 한쪽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난다.

경주에서 건물이 붕괴되면서 꽃다운 나이의 대학생들이 생명을 잃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수많은 청소년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단 말인가. 게다가 사건에 대해서 새로운 정보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속된다. 침몰사고가 일어나게 된 과정이나 그 후 구조과정에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연속으로 벌어졌고 황당한 실수와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건 단지 어떤 개인이나 집단, 어떤 회사의 탐욕이나 실수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인 침몰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과 질책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논란이 있다. 야당이 국정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진 대통령의 즉각적이고 진솔한 사과를 날마다 요구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대통령의 사과가 미흡하다는 주장이 있다. 동시에 대통령은 사고수습이 종결되면 추후 대책을 가지고 사과하겠다고 밝혔고, 일부는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니 이 정도의 사과면 충분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사과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약 어쩔 수 없이 사과할 일이 벌어진다면 도대체 누가, 언제, 얼마나, 어떻게 사과하는 것이 적절할까? 

누구의 사과가 필요한가

누가, 언제, 어떻게 해야 믿어줄까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침몰 당시 촬영한 동영상 한 장면.

쉽게 생각하면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 사과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쉬워 보이는 기본 원칙도 사람이 타인의 책임을 인식하는 시스템이 그리 합리적이거나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복잡해진다.

일반적으로 세월호 침몰과 같은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사고의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모두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도대체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나나, 어떻게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나?’와 같은 질문은 바로 원인을 찾으려는 자동적인 귀인과정이다. 인간의 귀인과정에서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유사성(correspondence)’이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 닮았다는 원리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건은 긍정적인 원인, 부정적인 사건은 부정적인 원인, 작은 사건은 작은 원인, 큰 사건은 큰 원인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이런 원리는 합당하고 그래서 우리는 자동적으로 결과를 닮은 원인을 찾게 된다.

수백 명이, 그것도 억울하고 불쌍하게도 수백 명의 고등학생이 사망한 이런 어마어마한 사고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뭔가 어마어마한 필연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원인을 찾는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이 그냥 우연이나 아주 자그마한 기계적 오류나 개인적인 실수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설명한다면 대다수는 믿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뭔가 큰 구조적인 결함, 총체적인 문제, 거대한 음모가 있어야만 할 것 같다. 물론 많은 경우에 이런 결론은 타당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기에 더 큰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비행기 사고나 선박 사고, 전장에서의 사고는 그 규모에 상관없이 한두 사람의 실수, 물론 치명적인 실수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 비행기, 선박, 전쟁 등과 같이 보통 최종결정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특수 상황에서는 그 결정권자의 실수가 결과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에서도 선장이 승객들에게, 잘못된 선내방송을 너무나 잘 따르고 있었던 단원고 학생들에게 퇴선명령만 일찍 내렸어도 승객 대부분이 살고 이 사건은 이렇게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구조과정에 많은 오류와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대다수 학생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기만 했다면 이렇게 큰 규모의 사상자를 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선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은 행동이다. 그런데 선장의 행동이 그냥 단순한 판단착오였고, 그 작은 판단착오로 3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는 결론은 더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절대 동의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지금 그 선장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갖가지 의혹과 음모론이 판치고 있다. 나아가 선장의 행동 이외의 다양한 원인을 찾아서 한국인의 심리는 열심히 돌아간다. 그래서 선박회사, 선박회사의 주인, 세월호의 선체 변경, 과적, 재난구조 시스템, 해경, 언딘, 정부, 대통령까지 죄다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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