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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세월호를 보내며

누가, 언제, 어떻게 해야 믿어줄까

선택의 심리학 - 사과하기 어려운 사회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누가, 언제, 어떻게 해야 믿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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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집착

언제까지?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만족할 때까지. 만약 똑같이 유병언 소유의 청해진해운 배가 선체 변경을 하고 과적으로 침몰하고, 엉망인 재난구조 시스템과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대응이 모두 똑같이 일어났는데도, 진짜 운이 좋아서 승객 대부분이 살았다면 (실제 그럴 수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싹 뒤집어서 너무나도 열심히 원인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 그냥 작은 실수, 작은 원인에 만족했을 것이다. 

원인 규명 과정에서 유사성의 원리가 큰 사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대처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우리 문화의 ‘관계주의’적 특성이 더해진다는 데 있다. 관계주의적 특성은 인간의 행동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인간 간의 관계나 사회적 맥락 요인을 중요시하는 성향을 얘기한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나 물건, 행동의 잘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본질보다는 맥락과 관계에 따른 본질의 변화에 더 관심을 가진다.

한국 사회와 한국어에 발달해 있는 존대어 체계는 이런 관계주의를 잘 보여준다. 외국에서는 부모나 연장자, 상사의 이름을 불러도 이상하지 않고, 회사나 공적 조직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직책과 역할에 따른 호칭과 대우를 전혀 이상하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무리 직책이 높아도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이름보다는 직책에 맞는 호칭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는 최우선으로 빠른 시간 내에 호구조사를 실시한다. 먼 친인척, 학교 선후배, 친구의 친구, 동생이나 형의 친구와 같은 사적인 관계를 빨리 알아내고 그에 맞게 적절히 행동할 때 우리는 싸가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관계주의 문화의 특징은 바로 사람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환경이나 공적인 역할보다는 나와의 관계가 중요하니 사람에 대한 파악이나 이해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한국 문화는 대부분의 비극적 사건의 원인을 사람에게서, 특히 나쁜 사람에게서 찾는다.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언론은 거의 자동적으로 ‘예고된 인재’였다고 얘기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건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부분적으로 인간이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우연일 수도, 기계적이거나 시스템적인 원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런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한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사고의 원인을 사람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고, 설사 기계나 시스템의 잘못이라고 밝혀져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찾는 데 더 집중한다. 사고가 더 비극적일수록 그냥 사람의 간단한 실수보다는, 굉장히 나쁜 사람이나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거대집단 수준의 잘못이 반드시 개입됐다고 믿는다. 그러니 원인을 밝히려는 체계적인 조사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성급하게 갖가지 사람과 관련된 원인을 상상한다. 그리고 특히 누구의 잘못인지, 나쁜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다.

현재 선장, 선원, 유병언, 그들의 자녀들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날마다 그들과 관련된 새로운 비리성 제보가 기사화된다. 또한 구조과정에서 해경의 책임이 연일 보도되고, 얼마 전에는 한때 구원파 신도였다는 해경의 간부가 인사조치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해경 간부가 어떤 잘못을 구체적으로 저질러서 처벌받았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세월호의 구조변경이나 과적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승인과 점검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얘기보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정부에 대한 비난도 정부의 행정과정이 어떻게 문제가 있는지, 장비나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보다는 누가 더 나쁜 놈이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고민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과가 꼭 필요하다. 운이나 시스템, 기상, 조류, 부족한 재원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요인이나 환경적 요인에 귀인하면 사과할 사람이 없어진다. 하지만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제보다 그 사람의 잘못을 과대 지각하면 받아야 할 사과의 양은 커지고 질은 심화되며, 그들이 하는 어떤 사과에도 만족하기 힘들어진다.

얼마 전 재난에 대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사과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비교하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사과를 할 때 이들의 속마음이 어떤지에 대해 알 길은 없지만 이들이 책임을 통감한다고 할 때의 그 책임의 의미는 문화적으로 다르다. 또한 국민이 그들에게 사과를 요구할 때나 받을 때 그 사과의 의미도 다르다. 오바마가 하는 사과는 자신의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국민도 그 사과를 오바마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사람은 상대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진짜 잘못에 대한 사과를 받는 것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 이게 바로 문화의 차이다.

진심 어린 사과의 조건

단지 누가 사과를 하는지를 넘어, 그 사과를 할 때 진심이 얼마나 담겼느냐에 대한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관찰된다. 미국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다른 아이에게 해를 입힌 아이는 반드시 사과하도록 만든다. 그 행위가 고의든 우연이든 상관없고, 더구나 그 사과가 그리 진심으로 반성하는 듯한 모양을 띠지 않아도 된다. 그냥 행위의 결과가 다른 이에게 해를 입히고, 그 행위와 결과에 대해 형식적으로라도 사과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이면 그걸로 넘어간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다르다. 다른 아이에게 해를 입힌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하면 많은 경우에 “일부러 한 거 아니에요”라고 항변하며 사과하기를 거부한다. 사과를 받을 사람이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럴 바에는 받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때로는 사과를 안 한 사람보다 형식적으로 한 사람이 더 나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사과를 하기도 힘들고 받기도 힘들게 하는 이유가 바로 관계주의와 함께 존재하는 한국인의 심정주의적 특성이다. 

심정주의적 특성은 인간관계나 사회적 사건에서 사람을, 특히 사람의 마음을 중요시하는 심리적 특성을 얘기한다. 보통 행위 자체를 중요시하는 서구에 비해서 한국은 행위보다 마음을, 그 행위의 진의를 더욱 중요시한다.

사과에 대한 비교문화적 심리학 연구는 이런 문화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서구 사회와 동양 사회의 사과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구 사회에서는 사과문에 일반적으로 원인 규명과 설명이 들어간다고 한다. 즉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내용이 사과의 주를 이루고, 일반적으로 피해자의 이해를 구하는 측면이 강조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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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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