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호

“민들레는 건강 지킴이자 이웃 지킴이”

은행 부행장에서 ‘민들레 전도사’로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4-05-21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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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졸·노조위원장 출신 최초의 국책은행 부행장
    • 퇴직 후 고향 완주에서 친환경 민들레 제품 개발
    • 민들레포럼 통해 장학사업과 사회봉사
    • 53세에 영아원에서 쌍둥이 자매 입양
    “민들레는 건강 지킴이자 이웃 지킴이”
    ‘어버이날’을 꼭 하루 앞둔 5월 7일 낮 12시,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로에 자리한 ‘민들레동산.’ 여름을 향해 치닫느라 다소 웃자란 민들레들이 저마다 뒤질세라 바람결에 씨를 틔운다. 제철을 맞아 노랗거나 흰 작은 꽃이 지천으로 피어난 그 넓은 민들레 영토의 주인 또한 어버이같이 온화한 미소를 민들레에 날려 보낸다.

    ‘봄날의 미소’ 주인공은 유희태(61) 민들레포럼 대표. 유 대표는 5년 전부터 ‘민들레 전도사’를 자처하며 인생 2막을 열어간다. 그는 하필이면 우리의 대표적 야생초인 민들레 알리기에 앞장서게 됐을까.

    “민들레를 그저 생명력 강한 잡초쯤으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엄연히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그 효능을 인정받는 약초예요. 심산유곡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너무 흔히 접해 귀하게 생각되지 않을지 몰라도 항암 및 소염 작용에 강력한 약성을 지닌 훌륭한 약재입니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민들레는 예부터 한방에선 ‘포공영(蒲公英)’이라 불리며 각종 염증과 간·위·기관지 질환을 치료하고 산모의 젖이 잘 돌게 하는 약재로 쓰였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열독을 풀고 악창(惡瘡·고치기 힘든 부스럼)을 삭히며, 멍울을 헤치고 식독(食毒)을 풀며, 체기(滯氣)를 내리는 데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기록했다.

    지방간 없앤 민들레



    유 대표가 민들레와 첫 연(緣)을 맺은 건 동갑내기 부인 박길주(서울 왕성교회 권사) 씨와의 만남부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만난 첫사랑인 박씨는 아내인 자신밖에 모르는 유 대표를 ‘민들레’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일편단심 민들레’란 뜻에서다.

    민들레와 두 번째 연을 맺게 된 건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유 대표는 전직 은행원. 2001년 기업은행 구로동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그는 자신이 총무로 몸담은 서울반도로타리클럽이 마련한 특강에 참석하게 됐다. 강연자는 당시 방송사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해 널리 알려진 윤석모 씨.

    윤 씨는 회원 대다수에게 지방간이 있음을 알고는 “지방간이 심해지면 간경화가 될 수 있으니 민들레를 먹어 지방간을 없애라”고 조언했다. 종교적 이유로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유 대표지만, 육류를 좋아해 과체중으로 인한 지방간 상태이긴 했다. 이후 함께 특강을 들은 한 회원이 민들레를 구해 몇몇 회원에게 나눠줬는데, 유 대표도 긴가민가하면서 페트병 2개 분량의 차로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수시로 마셨다. 몇 개월 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지방간이 없어졌다는 뜻밖의 결과를 접했다. 이는 민들레차를 장복한 다른 회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를 계기로 유 대표는 민들레 예찬론자가 됐다. 한때 일부러 서울 경동시장을 찾아 민들레를 구해 차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기까지 할 정도의 마니아였다. 유 대표와 그의 가족은 요즘도 민들레차를 물 대신 꾸준히 마신다.

    ‘1등 제조기’ 지점장

    사실 유 대표가 거쳐온 삶도 민들레처럼 강인하다. 11년 동안 농협조합장을 지낸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 가세가 급격히 기우는 바람에 유 대표는 대학은커녕 인문계 고교 진학조차 포기하고 상업계인 전주상고(현 전주제일고)에 들어갔다. 그러곤 졸업 직후인 1972년 3월 곧장 기업은행에 입행했다. 하루빨리 취직해서 집안의 빚을 갚고 싶었기 때문.

    이듬해엔 스물한 살 나이에 서둘러 결혼까지 했다. 당시 결혼반지 살 돈이 없어 엿장수에게 500원을 주고 가짜 반지를 사서 아내에게 끼워줬다. 10년 뒤 진짜 반지로 바꿔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렇게 아껴가며 재테크에 매진해 지금의 민들레동산을 일궜다.

    29세 때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겸임)에 선출된 유 대표는 1995년엔 공모 지점장 1호로 뽑혔다. 9년간 서울과 경기도 내 지점장으로 돌면서 부임하는 지점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영업실적 평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1등 제조기’란 별명도 붙었다. 신설 지점이나 실적이 꼴찌인 지점을 맡아도 1등으로 키워내니 해당 지역의 타행 지점장들에겐 적잖은 ‘민폐’를 끼친 셈이랄까.

    이후 본부장을 거쳐 2007년 1월엔 기업은행 카드사업본부(개인고객본부 겸) 부행장 자리에 올랐다. 고졸 학력에다 노조위원장 출신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부행장으로 승진한 건 전례가 없던 일.

    은행원 시절, 유 대표는 배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79년엔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를, 1989년엔 우석대 행정학과(야간)를 졸업했다. 또 고려대, 전남대, 원광대, 한양대 등에서 최고정책관리자·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2008년엔 방송통신대에서 ‘자랑스러운 방송대인상’도 받았다. 지난해 전북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데 이어 올해는 전주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졸업 후에도 모교 일에 열성적이어서 현재 전주제일고와 우석대의 총동문회장, 방송통신대 전국총동문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은행권 최고의 중소기업 전문 영업통’으로 불렸던 유 대표는 2009년 1월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인 기업은행에서 퇴직했다. 이후 평소 지론대로 고향인 완주로 내려와 같은 해 9월 비영리 봉사단체를 창립하고 ‘민들레포럼’(minfo.or.kr)이라 명명했다. 민들레처럼 지역사회에 희망의 씨앗을 전파하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민들레포럼은 직장인과 서민층, 장애인 등이 주를 이룬 전국 4000여 명의 회원이 매월 내는 회비와 기부금을 바탕으로 인재육성 장학사업, 사회복지 봉사, 서민정책 개발 등의 활동을 한다. 그중 장학사업은 해마다 30명의 대학생과 고교생에게 30만~50만 원씩 ‘민들레 홀씨 장학금’을 전달하는 것. 지난해엔 35명으로 수혜 인원을 늘렸다. 올해 목표는 50명.

    “제가 고교 시절 400원의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당시로선 아주 큰돈이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어요. 취업한 뒤 여건이 되면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반드시 돕겠다고.”

    노지에서 친환경 재배

    “민들레는 건강 지킴이자 이웃 지킴이”

    유희태 대표의 증조부 유영석 선생 사진과 건국훈장 애족장.

    유 대표는 같은 해 10월엔 비봉면 천호로 1만여 평의 부지에 민들레를 심고 영농조합법인 ‘민들레동산’(mdrgarden.co.kr)도 조성했다. 37년간 은행원의 외길을 걸은 그는 왜 포럼 활동에 그치지 않고 민들레 재배에까지 뛰어들었을까.

    “문득 예전 지인들에게 민들레차를 선물하려고 구했던 민들레의 원산지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시중에서 팔리는 민들레 제품 포장에 인쇄된 주소로 해당 업체를 찾아가봤습니다. 그런데 정작 민들레 재배지는 없더군요. 수집상 주소였어요. 재배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마구 채취한 걸 끌어 모아 제품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민들레를 직접 재배하기로 작심했습니다.”

    잎과 뿌리, 줄기, 꽃 모두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는 민들레인데, 어디서 어떻게 난 건지조차 모르고 먹을 순 없었다. 재배한 것이라 해도 농약이나 제초제를 친 것이면 안 된다. 차량 통행이 잦은 도로변에서 채취한 것도 안 된다. 우리 몸에 축적됐을 때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납 등 중금속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민들레를 깨끗하게 재배하겠다는 소박한 바람은 이내 사업 영역으로 확장됐다. 민들레동산 대표는 유 대표와 아내가 공동으로 맡았지만, 영농조합 일은 아내가 거의 도맡다시피 한다.

    민들레동산에선 민들레를 비닐하우스가 아닌 자연노지에서 재배한다. 통상 노지는 비닐하우스보다 민들레의 성장속도가 느리고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커서 재배하는 처지에선 선호하지 않는 곳. 그래도 유 대표는 노지만 고집한다. 또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쓰지 않고 천연 퇴비만 사용해 키운다. 덕분에 향긋한 데다 약성이 뛰어나다.

    민들레동산에서 연간 생산되는 민들레 생초는 한국 토종 민들레 8개종으로 10t가량. 이를 수확해 말리면 그 10분의 1인 1t가량의 건초가 된다. 이는 유 대표가 지역 대학과 연계해 개발한 최초의 티백 형태 침출차인 민들레차를 비롯해 민들레발효음료, 민들레국수, 민들레엑기스, 민들레비누, 100% 민들레 뿌리를 원료로 한 커피 대용 무카페인 침출차인 ‘민들레카페엔’, 물 없이 사용하는 민들레헤어샴푸와 보디클렌저 등 다양한 친환경 가공제품 및 미용용품으로 만들어진다.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입소문이 퍼져 이미 전국 60개 백화점에도 납품되는 등 민들레 효능을 톡톡히 알리고 있다. 민들레동산의 올해 매출 목표는 5억 원에 이른다.

    민들레동산을 30분쯤 거닐어보니 사방이 민들레 천지다. 한쪽에선 수확한 민들레에 햇볕을 쬐어 물기를 말리고, 다른 쪽에선 덖고 쪄서 건조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풋풋한 건초 냄새가 코끝을 살짝살짝 간질인다. 올해는 기온이 높아 예년보다 열흘쯤 빠른 5월 1일부터 수확을 시작했단다.

    “민들레동산을 이곳에 조성한 까닭이 있어요. 그 첫째는 민들레 재배에 안성맞춤인 물 맑고 공기 좋은 청정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선조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섭니다.”

    유 대표는 조선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을 보좌해 대마도를 정벌한 고흥 유씨 중시조 유습 장군의 20대 손. 특히 한 집안에서 9인의 항일의사를 배출한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 가문의 후손이다. 민들레동산 자리도 세종대왕이 유습 장군에게 하사한 땅의 일부다.

    민들레동산 서쪽 한 켠에 빨간 지붕을 얹은 유 대표 생가 내엔 증조부 유영석(1873~1952) 선생의 사진과 건국훈장 애족장이 나란히 걸려 있다. 유영석 선생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의암 유인석 장군에게 군자금을 전달하고, 280여 명의 의군단을 조직해 호남과 충남 일대에서 무장 항쟁을 벌인 인물. 그럼에도 광복 후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다 유 대표의 아버지가 향교 유림과 지역 원로를 찾아다니며 증언 등 각종 자료를 수집해 공적서를 제출하고 적극적인 현창사업을 벌여 1983년 국가로부터 그 공훈을 인정받았다.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 가문

    “민들레는 건강 지킴이자 이웃 지킴이”

    민들레동산과 유희태 대표의 생가(오른쪽 위).

    이래저래 유 대표와 민들레의 인연은 질기다. 유 대표가 2011년 11월 펴낸 저서 ‘사월에는 민들레가 핀다’(양문)는 민들레 재배와 연구, 지역개발 과정을 담은 그의 체험기다. 단순한 재배를 넘어 ‘본초강목’ 등 전통 의서에 나오는 민들레의 약성에서부터 재배 체험까지 일목요연하게 수록했다.

    이에 앞서 2008년 2월 발간한 ‘마음에 꿈을 그려라’(나침반)는 2014년 5월 현재까지 무려 22쇄나 찍은 베스트셀러다. 인세 수입도 민들레포럼의 장학사업과 봉사활동을 위해 기부했다. 이 책의 증보판인 ‘마음에 꿈을 크게 그려라’도 6~7월 중 출간할 예정.

    “은행 영업 현장에서 3000곳 이상의 중소기업을 방문하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목격했어요. 지점장으로 나가는 후배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려고 중소기업 금융 노하우를 전하는 내부용 책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출판업을 하는 지인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출판을 제의해 책으로 냈습니다.”

    후배 직장인과 청년들에게 도전적인 삶의 체험을 전하고 싶어 자신의 성공 스토리와 함께 ‘나와 타인을 아우르는 바람직한 포용이 무엇인가’를 소개한 책 ‘포용력-사람과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드는 힘’(살림, 2008년)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민들레의 꽃말은 ‘일편단심’ ‘감사하는 마음’ ‘사랑과 겸손’이다. 씨앗을 날려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가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민들레 같은 삶을 동경해서일까. 유 대표는 2006년 서울 마포구의 홀트아동복지회 소속 영아원에서 4년 7개월 된 쌍둥이 자매를 입양했다. 한 방송사의 입양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명을 받은 부인의 권유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고 싶어서였다. 당시 유 대표 나이는 53세. 장성한 1남1녀와 손녀들까지 뒀음에도 때 아닌 늦둥이를 둘씩이나 키우느라 한때 아내가 앓아눕기도 했단다.

    하지만 지극정성과 신앙으로 키웠다. 매일 새벽 예배를 함께 나가고 성경을 2절씩 외우고 쓰게 하는 동안 버림받았다는 고통 속에서 어둡게만 지냈던 아이들이 조금씩 웃음을 되찾더니 이젠 한껏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현재 중학교 1학년인 언니 지수의 꿈은 목사, 동생 지현의 꿈은 의학박사가 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형제자매와 친지, 주위 사람들 모두가 말렸죠. 저도 잠시 흔들렸지만, 결국 사회복지와 신학을 공부한 아내의 뜻을 존중하고 따랐어요. 돌이켜보면, 쌍둥이를 입양한 만큼 보람도 ‘더블’이었어요.”

    그럼에도 쌍둥이를 호적에 올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양부모의 호적에 올리려면 친부모의 친권자 포기각서를 첨부해 법원 판결을 받아야 하는데, 아이들을 낳자마자 영아원에 맡긴 친부모를 영아원에서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입양제도는 너무 복잡해요. 아직도 해마다 1000명 이상의 아이가 해외로 입양되는데, 번거롭고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대폭 개선해 국내 입양이 늘도록 해야 합니다.”

    쌍둥이 입양으로 유 대표는 ㈔한국입양홍보회 홍보대사로 위촉됐고, 그의 입양은 지인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서울반도로타리 박상준 전 회장이 그 바통을 이은 것. 미국에 유학 보낸 큰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픔을 겪은 박 전 회장은 새 딸을 입양했다.

    “민들레는 ‘꿈 바이러스’”

    유 대표는 정치에도 뜻이 있다. 과감히 사표를 내고 부행장직을 내던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2009년 4월 재·보선과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전주 완산갑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예비후보(민주당)로 도전장을 던졌으나 공천과정에서 탈락했다.

    “정치를 위한 정치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퇴직 후 여러 대학에 특강도 많이 다니면서 민들레 씨앗처럼 살아보니 ‘현장에 답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은행에서 일하며 서민과 중소기업의 아픔에 이미 충분히 공감했고, 노조위원장과 사용자 양쪽에서 다 일해본 만큼 저는 생활정치를 표방합니다. 두 번 혹독한 연습을 해봤으니 이젠 그릇된 정치문화와 풍토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세월호 참사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사건 아닙니까?”

    유 대표는 지난해 12월 7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제11회 대한민국 청소년대상 시상식에서 사회복지 부문 대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청소년대상조직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서 그동안 사회복지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온 공을 인정받은 것.

    그는 바둑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 1월엔 제3대 전북바둑협회장에 취임해 90평 규모의 협회 회관을 7월에 개관했고, 케이블방송 바둑프로그램 및 전북교육감배 바둑대회 재개, 바둑리그 등 각종 대회 출전 같은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북이 이창호 9단과 고(故) 조남철 등 바둑 최고수들을 배출한 ‘바둑 강도(强道)’인데도 최근 경제 여건이 어려워 예전 명성을 되찾지 못하는 게 그로선 안타까웠던 것.

    산과 들로 자유롭게 날아가 노랗고 하얀 꽃을 피워내는 민들레 씨처럼 사랑과 나눔의 가치를 확산하고 싶어 하는 유 대표는 또 어떤 꿈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까.

    “‘민들레힐링센터’를 만들고 있어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현대인에겐 무엇보다 힐링이 최대 화두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고향인 완주군 화산면의 땅 5만 평에 캠핑장과 명상시설, 미로공원, 연수시설 등을 갖춘 힐링센터를 조성하려고 공사 중인데, 2~3개월 후 문을 열 계획이에요.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업체 KFC의 창업자로서 ‘KFC 할아버지’로도 유명한 커넬 샌더스도 65세에 창업해 성공했는데, 저라고 못하겠어요? 제게 민들레는 ‘사랑’의 대명사이자 사람들에게 꿈을 전파하는 ‘꿈 바이러스’입니다.”

    유 대표는 저서 ‘사월에는 민들레가 핀다’의 서문에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혼자서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더욱 멀리 갈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었다.

    참살이(웰빙) 식재료와 약재로 오래전부터 각광받아온 민들레는 인간에게 이로운 건강 지킴이다. 그래서일까.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 어쩌면 그게 유 대표의 저력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여, 아직은 이른 봄 풋풋한 민들레잎 같은 그의 어린 쌍둥이 딸도 언젠간 희망의 씨앗을 세상에 퍼뜨리지 않을까. 마땅히 그래야만 하고, 또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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