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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PD의 지구촌 현장

우크라이나 내분 속 미·러 군사 충돌 가능성

크림반도 新냉전

  • 김영미 | 국제분쟁지역 전문 PD

우크라이나 내분 속 미·러 군사 충돌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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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림 반도를 차지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도 관심을 보이자, 미국과 서방세력은 반발한다. 양측이 군사적·경제적 행동에 들어가면서 갈등이 고조된다. 서방의 경제제재는 이미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턱밑까지 올라온 상태. 크림 반도에서 시작된 ‘신냉전’ 체제로 지구촌 전체에 위기가 감돈다.
우크라이나 내분 속 미·러 군사 충돌 가능성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친러시아 시위자 수백 명이 모여 러시아 국기를 흔들었다. 이들은 자치를 요구하며 우크라이나 지방정부 청사에 난입했다.

러시아 국경에서 불과 25㎞ 떨어진 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도시 루한스크. 4월 29일 이곳에서 1000명이 넘는 시민이 모여 러시아 편입 결정을 위한 주민투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시위 도중 검은 복면을 쓰고 야구 방망이를 든 괴한 150명가량이 시 청사로 진입했다. 청사에 근무하던 우크라이나 공무원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청사로 진입한 그들은 게양된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고 러시아 국기를 달았다. 러시아 국기가 올라가자 시위대는‘우리는 러시아인’ ‘러시아로 가자’는 구호를 외쳤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이슈는 ‘깃발’이다. 우크라이나 각 지역 관공서에는 모두 우크라이나 국기가 게양돼 있지만, 일부 도시에선 이미 러시아 국기가 나부낀다. 한 나라에 두 나라 깃발이 올라오는 나라,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현실이다. 루한스크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동부 10개 도시에서도 친러 무장세력이 경찰서와 청사를 장악했다. 그럼 우크라이나에선 왜 친러 바람이 부는 걸까.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는 교역량이 많은 유럽연합(EU)과 경제협력을 논의 중이었다. 경제협정이 맺어지면 EU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관세 95%가 없어지고 자유로운 여행도 가능한 상황, 장기적으로는 EU 편입도 예상됐다. 우크라이나처럼 옛 소련 연방 소속이던 에스토니아는 2011년 이미 유로존에 들어갔고 라트비아도 2014년 유로존 가입이 확정된 상태다.

러시아의 경제제재

문제는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이 자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에 안겨버리는 상황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유럽과 경제협약을 체결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 제품의 수입을 중단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로 보내던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원을 러시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제조 품목의 75%를 러시아에 수출하는 우크라이나로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러시아의 경제제재로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하반기에만 25억 달러(약 2조6500억 원)에 달하는 무역 손실을 입었다.

결국 지난해 11월 21일 우크라이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EU와의 협정 진행 중단을 선언했다. 러시아의 경제 압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정부의 결정에 시민은 분노했다. EU와의 협정 체결을 통해 유럽 경제권에 편입된 뒤 서구식 민주주의와 경제자유화로 나아가리라 기대했던 우크라이나 국민이 느낀 실망은 엄청났다.

국민의 분노와 실망은 시위로 표출됐다.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에서 독립한 날인 지난해 12월 2일 시위대는 수도 키예프의 시청과 노조 건물을 점거하고 정부 청사를 봉쇄하면서 순식간에 키예프 도심을 장악했다. 시위대의 분노는 러시아와 대통령 야누코비치에게 향했다. 결국 정부군과 시위대 사이에 유혈 충돌이 일어났다.

시민과 정부군의 유혈충돌

지리한 시위정국은 올해 2월 20일 결정적인 순간을 맞았다. 경찰 특공대가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한 것이다. 당시 시위대는 비무장이었지만 경찰 특공대의 저격수들은 도망가는 시위대의 가슴과 머리를 정조준해 사살했다. 이날 총격으로 무려 100여 명(시위대 집계)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부상했다. 마이단 광장 인근의 미디어 호텔 로비는 순식간에 총상 환자들로 가득 찼다.

시위대를 치료하던 의사 줄리아(32) 씨는 “대부분이 총상을 입었다. 시위대의 몸에서 총알을 빼내는 조치를 거듭했다”며 “긴급 수혈을 위해 시민들이 대기 중”이라는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또한 호텔 로비 한구석에서는 정교회 사제들이 죽어가는 시위대에게 병자 성사를 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사제는 “서너 명의 사제가 죽어가는 신도들을 위로하고 안식에 들게 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밝혔다. 총격이 끝난 오후에도 시위대의 시신이 거리에 흩어진 채 방치됐다. 하얀 천에 싸인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던 유족은 애통해했고 거리는 시민들이 가져온 꽃으로 뒤덮였다.

피를 본 시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비무장인 시민을 무차별 공격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무력 진압 후 정국은 야누코비치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사건이 난 지 하루 만인 2월 21일, 야누코비치는 성난 시위대를 피해 수도 키예프를 버리고 도망쳤다. 비어버린 정권은 우크라이나 최고 의회의 야권지도자인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가 차지했다.

신임 라다(의회) 의장이 된 투르치노프는 먼저 라다가 유일한 합법 권력기구임을 선언하고 표결로 야누코비치에 대한 탄핵·해임안을 통과시킨 후 5월 25일 조기 대선 실시를 선언했다. 세상이 뒤바뀌며 친(親)서방인 야권이 이제 우크라이나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야누코비치의 최대 정적으로 수감됐던 율리아 티모셴코가 석방됐다. 그는 2011년 권력남용 등의 혐의로 7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었다. 수감 생활 중 티모셴코는 교도관에게 구타당하는 등 몹시 험한 세월을 보냈다. 티모셴코는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마이단 광장으로 가서 시위대를 만나는 것으로 극적인 정계복귀를 연출했다. 그의 복귀는 곧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대통령 권한을 총리와 의회에 대폭 나누는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2004년 헌법’이 복원됐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야누코비치 독재 이전인 2004년 오렌지 혁명 당시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렌지 혁명은 2004년 11~12월, 우크라이나 시민이 독재정권의 장기집권 음모를 저지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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