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호

“동성 섹스는 밥, 이성 섹스는 피자 둘 다 먹으면 왜 안 되죠”

양성애자(bisexual) 여대생 신애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입력2014-05-21 14: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양성애자’는 남녀 모두에게 성적 매력과 관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 그 때문에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지탄을 받기도 한다.
    •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그렇게 비난받을 일일까.
    • 스물두 살 양성애자 여대생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랑과 고뇌.
    “동성 섹스는 밥, 이성 섹스는 피자 둘 다 먹으면 왜 안 되죠”
    대부분의 사람은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이성애자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성소수자’ 또는 (‘일반’적인 사람과 구분 짓는 의미로) ‘이반’이라 부른다.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가 그들이다. 트랜스젠더는 ‘성 정체성’과,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은 ‘성적 취향’과 관련 있다.

    최근 미국 톱스타 캐머런 디아즈가 양성애 경험을 고백해 화제를 모았다. 호주 출신 톱모델 미란다 커도 한 인터뷰에서 “성관계라면 남녀 모두 환영한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외국 유명 연예인 중에는 양성애자가 많다는 풍문도 들린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에서 게이나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는 어느 정도 그 존재가 각인되어 있지만 양성애자는 여전히 음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동성애자와는 또 다르게 ‘성문란’이란 지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을 즐기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신애(가명·22) 씨를 만났다. 그는 소신과 이론으로 무장한 ‘운동가’도 아니고, 양성애 경험이 풍부하지도 않다. 그래서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정? 사랑?

    그는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인 효연을 조금 닮았다. 기자가 보기에 더 예쁘고, 키도 더 컸다. 멋을 내지 않았어도 여성미가 물씬 풍겼다. 대학 캠퍼스에서 눈길이 갈 만한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이반’은 외모부터 뭔가 다를 거라는 선입관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전공에 흥미를 못 느껴 휴학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현재까지는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배시시 웃었다.



    ▼ 바이섹슈얼이라고 들었는데, 남자와 여자를 다 사귀었다는 건가요.

    “여자 두 명, 남자 두 명을 만났어요. 마지막 애인(여성)과는 일주일 전에 헤어졌고요. 그렇다고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사귄 적은 없어요. 바람피우는 성격은 아니거든요.(웃음)”

    ▼ 자신의 성 취향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나요.

    “확실하게 느낀 건 고1 때였어요. A라는 친구를 보는 순간, 확 마음을 빼앗겼죠.”

    이성애자들도 특별히 친하고 싶은 동성 친구가 있다. 특히 여성 중에는 친구에 대한 집착이 심한 경우가 많다. 그런 우정을 사랑이라 착각한 건 아닐까.

    “저도 마음이 잘 맞는 동성 친구가 있어요. 그런 친구는 사귀면서 우정이 깊어지는 거지 처음부터 확 끌리는 건 아니에요. 또 절친(아주 친한 친구)이라고 해서 보면 마음이 설레고, 같이 있고 싶고, 독점하고 싶고, 만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니고요. 그런 특별한 감정이 드는 게 남자일 때도 있고 여자일 때도 있는 거죠.”

    ▼ 외로움이나 어떤 개인적 상처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요.

    “오빠가 있는데 여느 자매만큼 친해요. 제 성 취향만 이야기를 안 했지, 별별 이야기를 다 할 정도로 가까워요. 외로움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 동성도 좋아하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처음엔 저도 그런 마음이 이해가 안 갔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받아들여졌어요. ‘내가 미쳤나?’ 하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나중에 ‘힘들게 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 A라는 친구에겐 고백했나요.

    “1년 넘게 혼자 좋아하다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도 나와 비슷한 취향이었어요. ‘고백해줘서 고마운데, 지금 사귀는 사람(동성 애인)이 있다’고 하더군요.”

    ▼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친구였으면 소문이 날 수도 있었을 텐데.

    “뭔가 믿는 게 있으니까 고백하는 거지, 그냥 하지는 않죠.”

    ▼ 동성애자끼리는 서로 알 수 있는 뭔가가 있나요.

    “느낌이 있어요. 누굴 좋아하면 티가 나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상대방은 느껴요. 그래서 서로 꽂히면 말을 안 해도 느껴져요. 주위 공기부터 달라져요. 그런 확신이 들면 용기를 내서 말을 하죠. 동성애 감정이 없는 사람에게는 벽에다 말하는 기분이 들어요. 예쁘고 귀여워서 마음에 든 피어싱 가게 언니가 있었는데, 아무리 자주 가고, 먹을 것도 안겨주고, 친해지려고 애를 썼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더라고요.”

    부치와 팸

    “동성 섹스는 밥, 이성 섹스는 피자 둘 다 먹으면 왜 안 되죠”

    양성애가 가능하다고 발언해 화제를 모은 미란다 커.

    레즈비언 사이에선 자기들끼리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이 나뉜다고 한다. 남성 역할을 주로 하는 사람을 ‘부치’, 여성 역할을 주로 하는 사람을 ‘팸’이라고 한다.

    “칼로 무 자르듯이 나눠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먼저 고백하고 리드하는 것을 보면 제가 부치 같기는 해요. 만났던 애들도 제가 리드하는 걸 좋아했고, ‘네가 남자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전 남자를 만날 때도 그랬어요. 제 성향인 것 같아요.”

    ▼ 남자는 섹시한 여성에게 끌리는데, 여성끼리도 그런가요.

    “남자든 여자든 섹시해야 마음이 동하죠.”

    ▼ 좋아하는 스타일은?

    “공주 같은 스타일은 싫어요. 모델 박신애 같은 스타일을 좋아해요. 그런데 레즈비언에 대한 어떤 선입관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등을 보면 꼭 레즈비언 커플 중 한 명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보이시(boyish)하게 나와요. 다른 한 명은 러블리(lovely)하게 나오고. 실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다 그렇진 않아요. 둘 다 여성스러운 경우도 많고, 이성애자도 보이시한 스타일 많아요.”

    남녀 모두 사랑의 ‘경계 대상’

    ▼ 첫 연애는 언제 했나요.

    “고3 때 새로 마음이 가는 애가 생겼어요. B라는 친구인데, 제가 먼저 다가갔죠. 그애랑 원래 친했던 애들이 질투할 정도로 붙어다녔어요. 야자(야간자습)가 끝난 후에 같이 산책하고, 주말이면 둘이 놀러 가고….”

    ▼ 그 친구도 동성애자였나요.

    “모태신앙을 가진 진짜 일반인이었어요. 그래도 제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어요. 갑자기 고백한 건 아니고, 겨울이어서 추우니까 손잡아달라고 하거나 팔짱 끼는 식으로 조금씩 신체 접촉을 늘려갔어요. 그렇게 B가 제 성적 취향을 어느 정도 느끼게 한 후 고백했죠.”

    ▼ 반응이 어땠나요.

    “자기는 그런 걸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친구로 좋은 건지 그 이상인 건지 모르겠대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며칠 후 ‘그래, 사귀자’고 하더군요. 처음엔 특별한 감정이 들어서라기보다는 친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것 같아요.”

    ▼ 그 친구는 이성애자였으니까 남자친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을까요. 신애 씨로서는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 게 되는 거지만.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했죠. 서로 휴대전화 확인하다 남자 사진이나 전화번호 있으면 ‘이거 뭐냐’고 화내기도 하고…. 양성애자는 다른 연인보다 더 힘든 게―이성애자는 상대방의 다른 이성을, 동성애자는 동성만 경계하면 되는데―우리 같은 양성애자는 남자도 여자도 다 경계해야 하거든요.(웃음)”

    ▼ 학교에서 둘이 사귄다는 소문은 안 났나요.

    “다른 애들과도 잘 지냈으니까 이상하게 생각 안 했어요. 엄청 단짝이구나 했을 거예요.”

    ▼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고 하던데.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뜨끔하곤 했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기분이 들고요. 안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장단 맞춰주려고 생각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하니까 마음도 안 좋았어요. 사실 그럴 일이 아닌데.”

    ▼ 왜 헤어졌나요.

    “보통의 연인처럼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길 반복했어요. 서로 편해지니까 권태기가 오고, 나중엔 만나면서도 점점 멀어지는 게 느껴졌어요. 서로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러다 대학 2학년이 되면서 헤어졌어요.”

    ▼ 커밍아웃(자신의 성적 취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한 적이 있나요.

    “친했던 중학교 동창들에게 한 적은 있어요. 커밍아웃을 안 하는 것은 제가 부끄럽다거나 창피해서가 아니에요. 상대가 동성애를 싫어할 수 있잖아요. 전 그 사람을 계속 만나고 싶은데 그 이야기를 했다가 영원히 못 보게 될까봐 그게 싫은 거예요. 제가 원하지 않는 곳까지 말이 퍼지는 것도 싫고요.”

    ‘아웃팅’ 스트레스

    “동성 섹스는 밥, 이성 섹스는 피자 둘 다 먹으면 왜 안 되죠”

    여성들의 동성애를 다룬 일본 영화 ‘러브 마이 라이프’.

    ▼ 아웃팅(타인에 의해 강제로 커밍아웃 당하는 것)을 겪은 적은.

    “의심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죠. B는 그런 경험이 있어요. 우리가 심하게 싸우고 안 만날 때 B가 힘들어서 폭음을 했어요. 함께 술을 마시던 대학 친구들이 집에 데려다줄 사람을 부르려고 B의 휴대전화에 ‘애인’이라고 입력된 번호를 눌렀는데 제가 받은 거예요. 그땐 그냥 넘어갔는데, 몇 달 후 B가 그 친구들이랑 여행을 갔어요. 거기서 저와 주고받은 문자를 친구들이 본 거예요. 할 수 없이 이야기를 했는데, 앞에서는 이해한다고 하고는 자기들끼리 메신저 방을 만들어서 뒷담화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것 때문에 B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어요.”

    ▼ ‘아웃팅’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을 텐데.

    “항상 그런 스트레스를 안고 살죠. 다른 연인은 휴대전화에 같이 찍은 사진을 저장하거나 생일 등 사적인 걸 표시해놓는데, 우린 그럴 수 없어요. 여자들은 종종 서로의 휴대전화를 구경하거든요. 옛날 휴대전화는 사진 숨김 기능이 있었는데 스마트폰은 그게 없어서 사진을 간직하고 싶어도 들킬까봐 저장을 못해요. 집에서도 사소한 것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선물이나 편지 주고받은 것도 가족 모르게 숨겨야 하고, 자주 붙어다니니까 부모님이 농담으로 ‘너네 사귀냐’고 해도 뜨끔해서 한동안 만난다는 이야기도 못 하고요.”

    ▼ 남자들은 어떻게 만난 건가요.

    “B랑 잘 다니던 단골 가게가 있었어요. B랑 헤어지기 얼마 전에 그 가게 직원이 자기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제게 준 일이 있어요. B랑 헤어지고는 ‘너 한번 힘들어봐라’ 하는 마음으로 사귀었죠. 6개월 정도 만나다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아 내가 찼어요. 그 후 다른 남자를 한 명 더 만났는데, 그땐 제가 차였고요.(웃음)”

    ▼ 남자에게도 특별한 감정이 느껴져서 만난 건가요.

    “네. 그런데 대하는 태도는 좀 다르죠. 여자를 만날 때는 제가 애교를 부릴 때보다는 상대방을 귀여워해주고 챙겨주고 할 때가 더 많아요. 그런데 남자를 만날 땐 받는 처지가 된다고 할까. 그런 태도는 다른데 마음의 감정은 똑같은 것 같아요.”

    ▼ C(두 번째 여자 애인)는 동성애자인가요, 양성애자인가요.

    “남자 친구가 없으면 보통 친구들이 소개를 해주잖아요. 그래서 만나긴 했는데, 당기지는 않는대요. 한 남자가 적극적으로 대시해서 그냥 사귀었는데, 동성 친구에게 정이 들 듯 정이 들긴 한대요. 그래서 헤어질 때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아픔이 아니라 더 이상 이 친구를 볼 수 없다는 씁쓸함이 느껴졌다고 하더군요.”

    ▼ 동성애자인 모양이네요. 레즈비언은 애인이 남자랑 사귀는 걸 무척 싫어한다던데.

    “제가 바이섹슈얼인 걸 아니까 ‘너는 왜 남자도 만나냐’ 하고 말한 적은 없어요. 대신에 제가 남자랑 있는 걸 더 불안해했어요. 제가 ‘신동아’와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가장 먼저 기자가 남자냐고 물었을 정도로.(웃음)”

    “몰라도 저절로 다 되더라”

    사랑을 하면 육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게 본능이다. 20대 초반의 숙녀에게 성경험을 묻는 게 민망스러웠는데, 그가 더 시원시원하게 털어놓았다.

    ▼ 첫 섹스는 여성과 먼저 한 건가요.

    “B하고 고3 때였어요. 그 친구 집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는데, 저는 성적 욕구가 큰 편이에요. 그래도 말을 못하고 참다가, 어느 날 하게 되었죠.”

    ▼ 여자끼리의 섹스는 어떻게 하는 건지 상상이 잘 안 가요.

    “이성 간에 할 때도 처음에 손잡고, 껴안고, 키스하고, 그러다 가슴에 손이 올라오잖아요. 우리도 똑같았어요. 신기한 게 몰라도 저절로 다 되더라고요.(웃음)”

    ▼ 성인물이나 영화에 나오는 여성끼리의 정사 장면과 같다고 보면 될까요.

    “그런 건 대부분 남자의 시각에서 만든 판타지 아닌가요. 제가 본 것은 해주는 여자와 받는 여자로 딱 역할 분담이 돼 있더라고요. 저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해주고 받는 편인데.”

    ▼ 남자랑 할 때와 여자랑 할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여자랑은 서로 뭐가 좋고 싫은지 이야기하기가 편해요. 하고 싶을 때 옆구리 찌르기도 편하고요. 남자에게는 아무래도 선뜻 먼저 하자고 하기가 쉽지 않아요. 눈치 보게 되고. 여자에겐 더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죠.”

    ▼ 할 때의 느낌은 어떤가요.

    “같은 여자여서 감정선이 비슷하다고 할까. 남자는 여자 마음을 모르잖아요. 평소에도 그렇고, 그걸 할 때도 여자끼리는 공감이 더 잘되는 것 같아요. 여자끼리는 신체구조가 같으니까 어디가 성감대인지 더 잘 알고요. 물론 사람마다 성감대가 다르긴 하지만 남자보다는 신체구조를 잘 아니까 찾기도 쉽고, 좋아하는 걸 맞춰가는 것도 쉬워요. 남자도 맞춰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여자만큼은 안 되죠.”

    여자와 할 때 더 만족

    ▼ 그런데, 남자랑 할 때만 가능한 부분이 있지 않나요.

    “그렇긴 하죠. 남자랑 할 때가 몸의 반응은 더 좋아요. 여자와는 어떻게 해도 남자랑 하는 것만큼 육체적으로 만족할 수는 없어요.”

    ▼ 바이브레이터나 딜도 같은 성 기구를 사용하면 어떤가요.

    “많이 달라요. 그래서 전 사용 안 해요.”

    ▼ 그런데도 여자와의 섹스가 좋다는 이유가 뭔가요.

    “여자들끼리는 내가 먼저 해주고 그다음에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는 식으로 해요. 내가 받을 때는 내 몸 위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남자랑 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만족을 얻을 수 있죠. 상대에게 해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좋아하는 걸 보면서 정신적인 만족을 느끼고요. 육체적 만족은 작을 수 있지만 분위기나 감정적인 데에서 더 큰 자극을 받아요.”

    ▼ 남자와 할 때 느끼는 불만이 있는 건가요.

    “남자랑 할 때는 받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보통 남자가 먼저 오르가슴에 도달하니까 상대방이 어느 정도 흥분을 했고, 어느 정도 절정에 올랐는지를 확인해 맞춰줘야 해요. 동시에 만족을 느껴야 하니까. 신경 쓰면서 해야 하는 게 있죠. 또한 여자는 섬세하게 구석구석 다 잘 해주고 분위기도 잘 맞춰주는데 남자는 아무리 잘 해준다고 해도 여자만큼 꼼꼼하지 않죠.”

    ▼ 성적 취향이 여자와의 섹스 쪽에 더 가까운 모양이군요.

    “전체적으로 더 끌리는 것은 여자 쪽이었어요. 더 떨리고 더 좋아요. 이렇게 비교하면 좀 그렇지만, 밥과 피자의 차이라고 할까. 밥이 더 좋고 익숙하지만 가끔은 피자도 먹고 싶잖아요.”

    ▼ 남자 쪽이 피자인가요.

    “마음은 그런데 현실은 여자 쪽이 피자가 되고 있죠. 왜냐면 여자보다는 남자와 끝까지 가는 경우가 더 많아요. 남자와는 진지하게 사귀지 않아도 성관계까지 갈 수 있는데, 여자와는 끌린다고 바로 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온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 후에야 가능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여자랑 하는 게 더 좋아도 실제로는 남자랑 하는 게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 섹스에 집착하는 스타일인가요.

    “기회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는 정도? ‘누구를 만나고 싶다’보다도 ‘누구랑 자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애인이 없으면 심적으로 쓸쓸해지고 그래야 하는데, 저는 몸이 먼저 반응이 와요.”

    ▼ 그래서 원래는 동성애자인데 남자를 만나는 건 아닌가요.

    “몸이 외로워서 남자를 만날 수는 있지만 모든 남자를 몸의 욕구 때문에 만나는 것은 아니에요. 단순히 육체적 욕구 때문이었다면 남자를 만날 때 감정적 동요가 없었겠죠. 한 남자와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할 이유도 없었고.”

    피하고 싶은 마음

    ▼ 섹스 이외에도 남자랑 사귈 때와 여자랑 사귈 때 차이가 있다면.

    “여자랑 만날 때 오히려 더 밀폐된 공간을 찾게 돼요. 남자랑은 길을 가면서 손도 잡고, 팔짱도 끼고,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는데, 여자랑은 친구처럼 행동해야 하니까요.”

    ▼ 여자끼리 손잡고 가거나 팔짱 끼는 게 이상한 게 아니잖아요.

    “그것보다 더 자유롭게 애정을 나누고 싶죠. 상대 허리를 안고 다니고 싶고, 헤어질 때 집 앞에서 키스도 하고 싶고…. 남녀는 가능해도 여자끼리는 못 하잖아요. 데이트를 할 때도 더 알콩달콩하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추억을 만들고 싶은데 그러기가 힘들어요. 남녀 사이엔 카페에 앉아 턱 괴고 서로 쳐다보고만 있어도 좋은데, 여자끼리 그렇게 하면 주위에서 바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요. 남을 더 의식하게 되죠.”

    ▼ 동성이면 사랑하는 사이임을 숨겨야 하는 게 힘들겠네요.

    “사귀는 여자가 있으면 어쨌든 누굴 만나고 있다는 티가 나잖아요. 주위에서 ‘너 사귀는 사람 있지’ 해도 아닌 척하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게 힘들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인데 남에게 이야기를 못하니까요. 그것도 내 일부고 내 취향인데 말이죠.”

    ▼ 그런데도 또 여자를 만나고 싶은가요.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한편으로 더는 여자를 안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만나면 좋긴 한데, 그 친구를 100% 행복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 의식적으로 남자를 사귀면 되지 않을까요.

    “좋아하게 된 사람이 남자면 다행이지만, 여자라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어디 사랑이 마음대로 조절이 되나요.”

    ▼ 동성과 평생을 함께하며 험난한 길을 헤쳐 갈 자신이 없는 거네요.

    “지금 동성과 연애하는 것도 힘든 부분이 많은데, 결혼까지 하면 힘든 게 더 많이 생기겠죠. 마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게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이야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죠. 차라리 제가 동성애자였다면 어쩔 수 없으니까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노력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양성애자라 밥을 못 먹으면 피자라도 먹고 살 수 있잖아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그런 힘든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호모포비아

    ▼ 양성애자인 게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면?

    “다양한 사람을 맞춰줄 수 있는 면이 생긴 것 같아요. 여성스러운 여자,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 남자 같은 남자, 모두 맞춰줄 수 있어요. 누구를 만나도 다 내편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 어떻게 대화하면 잘 풀어갈 수 있는지, 무슨 의도로 이야기하는지, 다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남자든 여자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도 저에겐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 또 장점이 있다면.

    “선택의 폭이 넓은 거?(웃음) 쾌락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요.”

    세계보건기구(WHO)는 1990년 동성애를 국제질병에서 삭제했다. 반면, 동성애를 혐오하는 성향인 ‘호모포비아’를 질병으로 추가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남아 있다.

    ▼ 이반에 대한 선입관, 편견을 가진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동성애가 싫을 수 있어요. 이반을 이해해달라고 안 해요. 그런데 이반이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싫다고 해서 맘대로 평가하고 욕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는 다른 양성애자나 이반과의 교류가 없었다. 성소수자인권운동 같은 것에 참여한 적도 없다. 그래서 좀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만으로도 독자들이 양성애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터뷰 며칠 후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고민이 많았어요. 동성을 사랑하는 게 점점 힘들어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아볼까도 싶었고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저와 같은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궁금해졌고요. 그들과 이야기해보고 싶고, 그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레즈비언은 양성애자를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그들과도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