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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의 영화사회학

3류 한국 정치에 냉소

‘역린’

  • 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3류 한국 정치에 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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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류 한국 정치에 냉소

영화 ‘역린’의 한 장면.

블록버스터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뒤 전 세계에 배급하는 대작 영화를 의미한다. 할리우드는 블록버스터로 만들 수 있는 소재를 풍부하게 갖고 있다. ‘해리 포터’ 같은 판타지, ‘캡틴 아메리카’ 같은 영웅담, ‘터미네이터’ 같은 공상과학,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담, 그리고 ‘노아’나 ‘헤라클레스’ 같은 신화나 고전이 그것이다.

미국의 역사가 250년이 채 안 되지만 미국은 전 세계에서 온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답게 블록버스터의 소재를 자국 사회와 역사로부터만 발굴하진 않는다. 종종 다른 대륙의 문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우선 주류 백인 미국인의 고향인 유럽이 영화의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태평양 등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렇게 할리우드는 미국의 문화를 대표할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풍속을 현시하는 국제적인 성격을 띤다. 차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어벤져스2’가 서울에서 촬영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영화계는 할리우드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공간적으로 한국에 거의 한정되는 경향이다. ‘도둑들’ 같은 액션 어드벤처, ‘웰컴 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전쟁이야기, ‘베를린’ ‘의형제’ ‘용의자’ 같은 분단 상황을 바탕으로 한 스파이 이야기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대종을 이뤘다. 이들 영화는 사실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사회와 역사로부터 소재를 취하는 경향이 짙다. 할리우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 영화가 국제적 성격을 드러내는 경우가 없진 않다. 그러나 이런 영화의 대다수는 다른 나라의 작품을 번안, 각색해 만든 영화다. ‘화차’ ‘용의자X’는 일본 소설을 각색한 것이고 ‘내 아내의 모든 것’ ‘표적’은 유럽이나 남미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이들 영화는 그 원작 국가를 엔딩 크레딧에 밝힌다.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에 비해 소재의 폭이 좁은 상황에서 최근엔 사극이 그 한 자락을 차지한다. 사극 영화는 1950년대부터 국내에서 꾸준히 만들어져왔다. 고전적인 풍취, 화려한 볼거리, 진중한 주제의식을 보여주기에 추석·설 명절에 자주 개봉되곤 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요즘 사극이 훨씬 각광받는다. 2000년대 초반에는 6·25전쟁과 분단을 다룬 블록버스터가 많이 만들어졌다. 2010년대엔 탈북자 영화와 스파이 액션영화로 변모했다. 이러는 동안 사극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서 블록버스터의 주요 하부 장르로 재부상한 것이다.

최근 사극은 ‘평양성’(2010),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처럼 왕조시대 허구적 이야기를 코믹하게 전개하는 내용이나 ‘방자전’(2010), ‘후궁: 제왕의 첩’(2012)처럼 기존 사극을 재해석하면서 주로 성(性)적 코드를 활용하는 내용이 이목을 끌었다. 이들 퓨전사극이나 성애사극은 사극 장르의 고리타분한 인상을 불식시켰고 사극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정조 vs 수구대신

그런데 관객 동원 면이나 화제성 면에선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관상’(2013) ‘역린’(2014)처럼 왕을 다룬 사극이 주목을 받았다. 조선 광해군, 세조, 정조를 각각 다룬 이들 작품은 대체로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영화 속 당시 정치 상황은 오늘날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이들 작품은 대체로 의로운 왕과 그의 신하들이 탐욕스러운 기득권 세력과 맞서는 갈등구조를 그린다. 특히 ‘광해’와 ‘역린’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다루되 선악의 이분구도를 뚜렷하게 만들어낸다.

또한 이들 영화는 왕의 시각에서보다는 왕 주변에 신분이 낮은 인물을 배치해 이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점에선 광해와 관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광해는 임금과 얼굴이 거의 똑같은 광대가 임금이 사라진 동안 왕 노릇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다. 관상은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으로부터 왕권을 찬탈한 계유정난을 관상가(점쟁이)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역린’은 정조 즉위 1년, 왕에 대한 시해 시도가 있던 하루를 다룬다. 이 영화에선 광해나 관상처럼 왕을 바라보는 화자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다. 영화는 어두운 실내에서 자기를 감시할지 모르는 정적(政敵)의 눈을 피해 팔굽혀펴기를 하며 신체를 단련하는 정조(현빈)의 모습을 보여준다. 왕의 이러한 사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은 왕을 수행하는 내시 상책(정재영)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이어 아침이 되어 왕의 일과가 시작되자 왕은 노론의 수장인 대왕대비 정순왕후(한지민)에게 문안인사를 올린다. 이 자리에서 왕과 대왕대비의 갈등이 암시된다. 대왕대비로부터 아들 정조를 지키려고 먼저 어설프게 독살을 시도한 혜경궁 홍씨(김성령)는 오히려 대왕대비에게 발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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