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호

기억하라! 인간적 삶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물의 도시, 춘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4-05-21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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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통 물이었다. 물빛이 번들거렸다. 끝도 없는 물의 연속이었다.
    • 우리의 마음속에 무겁게 내려앉은 물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라! 인간적 삶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이렇게 말해도 될까. 우리의 일상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고 말았다고. 슬프고 슬픈 일이 생중계의 화면 속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그날 이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시커먼 구멍 하나씩 생기고 말았다.

    세월호 이전에 우리의 일상은 그럭저럭 행복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더러 심각한 일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대로 참을 만했고, 되는대로 해결할 만한 일들을 되는대로 해결하면서 살아왔다. 경쟁 일변도의 이 살벌한 사회를 살아내는 게 너무 힘들고, 그런 만큼 견디고 버티는 일은 거룩하기까지 했다.

    이 담화는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나 나름대로 옮겨본 것이다. 오래전, 김훈은 다음과 같이 썼다.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휴대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자체가 이제는 기적이 되고 있을 정도다.

    무슨 얘기인가. 밥벌이의 지겨움은 달리 표현해 ‘일상의 엄숙함’이다. 그렇다면 삶은? 그것은 모르겠다. 기나긴 인생의 참다운 가치? 한 번뿐인 삶의 초월적 의미? 그러한 것이 과연 있는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일상은 엄숙하다.

    일상 앞에서 누구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나든 당신이든 또 누구든, 삶을 살기 보다는 일상을 살아간다. 일상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건사하고 그것을 평탄하게 지속하고 더러 그 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만나거나 만드는 일의 소중함 또는 엄숙함은, 무거운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말하고 싶다. 삶보다 일상이 무겁다고. 김훈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밥벌이라든지 돈이라든지 건강이라든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세속적인 가치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인정할 수가 없어요. 이것은 인간에게 소중한 거예요. 돈은 엄청나게 소중한 겁니다. 돈을 열심히 벌고, 아껴 쓰고, 잘 쓸 줄 알아야죠. 돈을 하찮게 알고, 돈벌이를 우습게 알면서, 자기는 마치 고매한 정신세계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도 안 하고 경멸해요. 그러니까 나는 밥을 열심히 성실하게 벌고, 그 안에서 도덕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 한반도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김훈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다. 수많은 사람이 20세기의 한반도를 그렇게 살아왔으며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젊은 세대라고 다를 것도 없다. 누구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지만, 글쎄 새벽 3시쯤 편의점에 가서, 그 시간에도 서서 일하는 ‘아픈 청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 없다. 염치없고 미안하다. 브레히트 식으로 말해 이 한반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기억하라! 인간적 삶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강원 춘천시 KT&G 상상마당.



    살얼음 위의 평화

    기억하라! 인간적 삶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경춘가도는 많은 이에게 사랑의 장소였다.

    그랬는데, 한순간에 우리의 삶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아,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도 사치스러운 수사일 따름이다. 어찌되었든, 참사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안전하고 평탄한 가운데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나의 뒷덜미를 꽉 움켜쥔다. 저 남도의 앞바다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지 겨우 20여 일 지났을 뿐인데, 겉보기에는 우리의 삶이 ‘불안한 안정’ 위로 다시 조절되는 듯하다. 프로야구도 계속되고 드라마도 속속 재연되고 있고 어린이날에 석가탄신일에 어버이날까지 이어지는 5월 초의 연휴는, 그 며칠 동안은, 비록 살얼음판 위에서나마 평온해 보였다.

    내 최종의 목적지는 춘천에 새로 개관한 KT&G 상상마당이었다. 이 익숙한 문화적 실험 공간은 홍대 앞 비대칭 건물 속의 다양한 공연, 전시, 영상, 강의 등으로 문화예술계에 널리 알려졌다. 비주류 및 신진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일반 대중에게는 폭넓은 문화 경험을 제공하려고 KT&G가 2007년 서울 홍대 앞에 첫 번째 상상마당을 개관했고, 2011년에는 충남 논산에 두 번째 상상마당을 열었는데, 올봄에 그 세 번째 공간으로 춘천 어린이회관 일대를 리뉴얼해 개관한 것이다.

    공식 이름이 ‘KT&G상상마당 춘천’이 되는 그곳에 공연장, 스튜디오, 갤러리, 강의실, 카페 등의 ‘아트센터’와 객실, 연습실, 세미나실을 구비한 ‘스테이’ 두 공간을 마련했다 하여 찾아가게 된 것이다. 더불어 그곳의 개관 기념 강의까지 맡게 되어 내친김에 하룻밤을 공지천을 내다보며 보내기 위해 나는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토요일 낮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차량이 산더미처럼 막힌다는 소식에 일부러 시간을 넉넉히 잡고 양수리 쪽으로 행로를 잡았다가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다가 차라리 꽉 막힌 고속도로에 있을 거라면 국도변으로 융통성 있게 움직였다가 쉬었다가 다시 움직일 요량으로 청평, 가평 쪽의 경춘가도를 다시 선택해 대낮에 출발해 저녁 어스름에 공지천에 이르는 여정이 되고 말았다.

    만화가는 ‘만화와 상상력’을, 동화작가는 ‘동화와 상상력’을, 건축 전문기자는 ‘건축과 상상력’을 맡았고, 나는 ‘인문학과 상상력’이라는 주제를 맡았는데, 춘천까지 가는 동안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인문학과 상상력이라고 하면, 손쉽게, 그러니까 말하기 좋고 듣기 좋은 근사한 말을 이리저리 엮어 한두 시간쯤 푸짐한 어휘의 성찬으로 채울 수 있으련만, 세월호 이후의 시간을 견디는 과정에서 그러한 말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걱정이었다. 그 어떤 말도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아마도 내 강의를 들을 사람들 또한 예전처럼 평화롭고 한가롭게 ‘사유’니 ‘성찰’이니 ‘상상’이니 하는 말을 듣고 있을 상황은 아닐 듯싶었다. 모든 일상이 판단 중지된 상황, 세월호 이전이었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사소한 농담이나 환한 웃음도 모조리 정지 상태에 놓였으므로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 내게 주어진 강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꽉 막힌 도로 위에서도 오로지 그 걱정뿐이었다.

    경춘가도의 쓸쓸함

    온통 물이었다.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다가 팔당대교를 건너고 양수리까지 내려갔다가 잠시 고속도로를 탔다가 다시 북한강을 끼고 달리는 경춘가도를 이용해 공지천에 이르러 최종의 브레이크를 밟았으니, 끝도 없는 물의 연속이었고 물빛이 번들거리는 여정이었다. 오래전에, 그러니까 1992년 시인 윤중호는 ‘양수리에서’라는 시를 썼는데, 요절한 이 참된 시인은, 짧지만 정확한 언어로 양수리를 다음과 같이 그린 적 있다.

    북한강 남한강이, 서로

    살을 섞어도, 티눈처럼, 서로 서글프게, 등 돌리고 누워

    풀섶이나 더듬는 모진 바람으로

    끼룩끼룩, 철새 몇 마리 띄워보내는,

    양수리에

    늦장마 들어, 길이란 길은

    다 쓸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길을 내며

    흘러드는 강

    기억하라! 인간적 삶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춘천시 공지천에 어스름이 깔렸다.

    그 강물을 한참이나 보다가 남한강 쪽 길을 물리고 북한강 쪽 길을 택했다.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서울과 춘천 사이, 북한강을 끼고 도는 유연하고 그윽한 행로가 직선의 대로와 복선의 쾌속으로 인해 많이 변했지만 물은 그대로였다. 2009년 7월 서울과 춘천 사이 민자고속도로가 개통돼 경기 동북부와 강원 지역 일부가 서울과 ‘30분 생활권’으로 좁혀졌고 쾌속의 청춘열차 ITX도 달리고 있지만 대성리에서 시작해 청평, 남이섬을 지나 가평 자라섬을 거쳐 경강, 강촌, 그리고 남춘천으로 이어져 의암호와 공지천과 소양호까지 이어지는 물의 서정은 여전했다.

    경춘선은 1939년 7월 22일 개통됐다. 사설 철도회사인 경춘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성동역(城東驛)에서 춘천 사이 87.3㎞가 완공되어 그 정식 운행을 앞두고 그해 7월 22일 개통식을 한 것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성동역에서 기차가 출발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춘선 기차가 성북역에서 출발했다. 성북역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쯤 걸려서 대성리역이나 청평역에 이르고 거기서 더 가면 강경역 지나 춘천으로 들어간다. 90㎞도 채 안되는 거리지만, 그 사이의 강과 산으로 인해 경춘선은 저 경부선이나 호남선에 밑지지 않는 문화의 퇴적층을 이룬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는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하는 장려한 소멸의식을 남겼다.

    그뿐인가. 수많은 시인이 이 강을 노래했고 수많은 젊은이가 이 강변에서 성년식을 치렀으며 수많은 연인이 애틋하든 불륜이든 낮이든 밤이든 이 강변의 컴컴한 방에 몇 시간쯤 머물렀다. 아, 무엇보다 경춘가도는 한 줌의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릴, 그런 사랑의 장소였다.

    춘천, 안개 도시

    기억하라! 인간적 삶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상상마당은 문화예술 인큐베이터를 지향한다.

    마침내 춘천에 이르렀다.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많이 버렸고 양수리와 가평의 물을 보기 위해 또 시간을 허비해 사위가 어두워진 다음에야 공지천에 이르렀다. 나는 은은한 조명과 교교한 달빛에 의지해 우선 춘천 상상마당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연휴가 이제 막 시작됐으므로 늦은 밤에도 찾아온 사람들 발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 유명한 이디오피아 카페를 시작으로 공지천을 따라 걷는 춘천 시민의 밤 산책 소리 또한 끊이지 않아서 춘천 상상마당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장소에 정박했구나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숙소는 상상마당의 숙박시설 ‘스테이’, 그곳의 4층이었고 창밖으로 공지천이 보였으며 그 위로 춘천을 굽어보는 산들과 또 그 위로 눈썹달이 떠올라 있었다. 몇 가지 생각이 두서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안개 도시 춘천, 상상마당, 소양호, 이 지역을 배경으로 애틋한 시를 쓴 시인 최승호, 단편 ‘안개 시정거리’로 춘천의 여린 속살을 그린 한수산, 그리고 내일 해야 할 강의 주제, 곧 인문학과 상상력 같은 말들이 어수선하게 머릿속에 들어앉았다가 다른 말들에 밀려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물. 여지없이 물이 떠올랐다.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무겁게 내려앉은 물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춘천, 물의 도시, 그리하여 곧 안개의 도시이기도 하다. 소양호와 의암호에서 안개가 늘 피어오르고 공지천 일대를 안개가 완전히 장악하는 날도 많다. 1967년 북한강 줄기의 신연강을 막아 의암댐이 생겨났는데, 이때부터 안개가 짙어졌고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되면서 사시사철 안개가 압도하는 도시가 됐다.

    춘천 사람들에게는 이 안개는 답답하고 짜증나는 기후 현상일 수도 있는데, 타지 사람들에게 안개는 몽환적인 서정과 낭만적인 우울의 표상이었다. 꽤 많은 사람이 안개를 보러 춘천을 찾기도 했고 그런 문화적 여정이 안개사진 전시회 같은 것으로 집약되기도 했다. 춘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소설가 한수산과 시인 최승호가 안개를 소재로 하여 숨 막힐 듯한 청춘의 한 시기를 작품으로 남긴 것도 각별히 기억할 만한 일이다. 춘천을 대표하는 소설가 전상국의 작품 중 ‘썩지 아니할 씨’가 있는데, 그 작품에서 전상국은 춘천에서 화천으로 이어지는 높은 고개 배후령을 묘사하면서, 춘천의 안개를 더불어 그린 바 있다.

    “짙은 안개가 우욱우욱 덮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안개였다. 이런 농밀한 안개가 두렵게 인식되면서 나는 수십만 길 깊디깊은 물 밑에 가라앉은 것 같은 단절감에 휩싸였다.

    버스가 배후령의 8부 능선쯤에 이른 지점에서 사람들은 모두 아~하고 탄성을 쏟아냈다. 그 짙은 안개에다 천길 낭떠러지의 가파른 고갯길 곡예에 질려있던 얼굴들이 한꺼번에 활짝 펴지고 있었다. 버스가 느닷없이 그 깊은 안개의 늪에서 햇빛 속으로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겨울산이 이처럼 선명한 색채를 띠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춘천의 소설가 오정희가 있다. 한국형 중산층의 일그러진 초상, 비틀린 윤리의식, 가면을 쓴 세속의 삶, 그 속에서도 한 줌의 인간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품 세계가 오정희의 소설이다. 단편소설 ‘야회’는 춘천을 배경으로 한다. 교수를 남편으로 둔 주인공 명혜가 춘천의 저녁 파티, 곧 야회에 간다. 한때는 신춘문예에 가작에 당선된 적 있어서 사람들은 명혜에게 늘 “요즘은 뭐 쓰세요”하는 사교적인 인사말을 건넨다. 그 인사말이 명혜를 살아가게 하는 자존의 힘이다. 명혜가 참석한 ‘야회’는 이 도시에서 어느 정도 명함을 내밀고 사는 사람들이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말을 주고받으면서 실은 저마다의 잇속을 계산하는, 그런 환멸의 시간이다. 그래서 명혜는 ‘야회’를 빠져나온다. 하지만 안개에 사로잡힌 소도시의 ‘야회’가 던지는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명혜는 방금 떠나온 곳이면서도 이미 자신에게는 발 들여놓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즐거움과 환락에 가득 찬 그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머지않아 불이 꺼지고 얇은 옷으로 아름답게 성장한 여자들은 느닷없는 한기에 어깨를 떨며, 또한 그들은 그들이 먹은 달콤하고 흰 게의 살과 수북이 뱉어 놓은, 아직도 선명한 주홍빛의 껍질에 분명치 않은 배반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부산히 작별의 악수를 나누리라는 것을, 피곤한 안주인은 성마른 소리로 일보는 여자들을 채근하고 종내는 단숨에 잘라 버린 장미의 그루터기만 흉하게 남을 즈음 정원은 곧 갇힌 개의 낮은 그르렁거림, 빈 위장을 훑어 내는, 미친 청년의 부질없는 구역질 소리로 가득 차게 될 것을 알면서도 명혜는 돌아가고 싶었다.”

    춘천 상상마당

    그런 생각들 사이를 헤매다가 깊은 잠에 들었다. 일요일 아침에 깨어난 후, 나는 춘천 상상마당 일대를 둘러보았다.

    춘천 상상마당이 특별히 주목하는 사업은 음악 분야다.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조성된 공연장과 라이브 스튜디오는 제대로 된 음악 환경에서 작품도 만들고 곧장 관객과도 만나고자 하는 음악인이라면 기꺼이 환영할 만한 장소다. 갤러리, 강의실, 카페 등의 부속 시설이 최고의 음악 작업을 지원한다. 58개의 객실에 200여 명이 머물며 문화예술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는 ‘스테이’ 시설에도 음악 연습실, 공연예술 연습실, 세미나실 등이 있어 일단 하드웨어의 측면에서 ‘올인원’의 조건을 갖췄다. 여기에 350석 규모의 실내 공연장과 2000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까지 마련되어 든든한 배후가 되고 있다. 뮤지션 지원사업 ‘써라운드’ 등을 통해 야심 찬 뮤지션들이 이곳에서 창작, 음반 녹음, 공연 등을 일직선으로 전개할 수 있다.

    이미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온 독립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다채롭게 펼쳐질 수 있도록 준비한 것도 이채롭다.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그들의 실제 작품이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소개되는 프로젝트다. 이러한 과정이 예비 예술가를 위한 프로젝트, 즉 크리에이티브 워크숍, 미디어아트 워크숍, 디자이너 워크숍, 마스터링 워크숍 등을 바탕으로 해 그 뿌리를 키워 열매를 맺는 쪽으로 설계돼 머지않아 주목할 만한 성과가 안개 도시 춘천에서 피어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일들과 관련된 주요 시설을 살펴보는 동안, 나의 눈은, 여전히 놀라운 조형 감각과 공간 설계를 보여주는 김수근 건축가의 솜씨에 거듭 경탄을 했다. 1980년의 작품으로 전성기의 김수근 건축 미학이 이 공간, 즉 옛 춘천시 어린이회관 곳곳에 적용돼 있었다. 이를 오늘의 감각과 새로운 기능에 맞게 전면적으로 리뉴얼해 개관한 것이 상상마당이다. 리뉴얼했다고 했지만, 건축가 김수근의 숨결만큼은 지우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돋보였다.

    언뜻 불규칙해 보이는 창들은 저마다의 기능과 조형성을 유지하며 바깥의 빛을 끌어들여 실내에 다양한 빛의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2층 구성의 건물이지만 어떤 지점에서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위치는 순식간에 다른 위상을 갖곤 했다. 실내의 곳곳이 미로처럼 구성돼 있으나 그것은 혼잡하고 어수선한 미로가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과 같았다. 게다가 개관을 기념해 준비한 전시가 ‘기억하다’였다. 6월 15일까지 열리는 전시회 ‘춘천사진 기록 프로젝트·기억하다’는 춘천 시민의 추억을 바탕으로 하되, 단순히 옛 기억을 낭만화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오늘의 삶을 어떻게 떠받치는지를 증명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렇게 미로 같은 공간과 오래된 춘천의 기억을 훑어보다가, 나는 그제야 내 몫의 강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인문학과 상상력’, 내게 주어진 주제는 그렇게 큰 말들이었다. 그 말들을 큰 부피로 큼직하게 얘기한다는 것은, 세월호 이후, 너무 한가로워 보였다. 나는 몇 가지 강의 주제를, 몇 개의 파워포인트로 구성해 일단 춘천으로 내려왔는데, 그중 어느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두리번거리고 헤매다가 미로 같은 공간 안에서 결정을 내렸다.

    ‘기억하라!’

    그것이 내가 선택한 주제 속의 주제였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망각의 삶을 거침없이 살아왔다. 기억을 훼손하고 삭제해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인간적 삶을 위해 기울여온 노력마저 멸실하고 말았다. 그리고 끔찍한 일이 있었으니, 이제라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어떤 삶, 아니 어떤 일상을 가꾸고자 했던가. 거대해진 도시와 왜소해진 삶, 이것이 우리의 랜드마크였던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적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 그것을 기억하는 것, 그로부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힘겨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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