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호

“보수 편향 의협은 ‘좌클릭’ 해야 한다”

사상 초유 탄핵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4-05-21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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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소불위 대의원회는 내부 개혁 대상 0순위”
    • 회장직 복귀 위해 법정에서 2라운드 개시
    • “의료제도 개선 투쟁에 침묵하는 기성세대 의사는 가라!”
    • “투쟁하는 의협 회장은 나로서 끝났으면…”
    “보수 편향 의협은 ‘좌클릭’ 해야 한다”
    4월 19일, 대한민국 의료계는 격변을 맞았다. 내년 4월 30일까지인 임기(3년)를 1년 남짓 남긴 노환규(52)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탄핵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 이날 의협 대의원회(의장 변영우)는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노 회장에 대한 불신임 안건을 단독 상정하고 속전속결로 가결했다. 전체 대의원 242명 중 178명이 출석해 실시한 찬반투표에서 76.4%인 136명이 불신임에 찬성표(반대 40명, 기권 2명)를 던짐으로써 노 회장은 회장직을 전격 박탈당했다.

    대의원회는 의협 의결기구. 회장 불신임 안건 상정의 사유로 든 건 명예훼손, 품위손상, 부적절한 언행으로 내부 분열 야기, 투쟁과 협상의 실패에 대한 책임, 정관 위반 등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세간의 이목을 끌진 못했지만, 현직 회장 탄핵은 의협 106년 역사상 최초의 사건. 임기 중 사퇴한 회장은 몇 명 있었지만, 불신임 결정으로 중도 낙마한 사례는 노 전 회장이 처음이다.

    그래선지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불신임에 불복한 노 전 회장이 탄핵 열흘 만인 4월 29일 의협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대의원총회 불신임 결의 효력정지 등 가처분신청’과 함께 불신임 무효 확인소송을 내며 반격에 나섰고, 대의원회도 이에 적극 맞서면서 법정 싸움으로 번졌다.

    노 전 회장의 수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5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노 전 회장과 방상혁 전 의협 기획이사를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하고, 의협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억 원을 부과했기 때문.



    의협은 원격의료 및 법인약국 제도 시행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반발해 3월 10일 하루 총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당시 의협 발표에 따르면, 전체 2만8428개 의원급 의료기관 중 1만3951개 의원이 집단 휴진해 참여율이 49.1%에 달했다. 이와 관련, 공정위는 개별 의사 스스로 판단해야 할 진료 결정에 의협 집행부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집단휴진 사태를 주도함으로써 환자의 의료서비스 이용을 제한했다고 보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 노 전 회장으로선 ‘설상가상’인 셈이다.

    의협 내홍의 정중앙에 자리한 그의 심경은 어떨까. 5월 12일 서울 용산구 이촌로 의협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그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의사표명을 해온 그로선 탄핵 이후 첫 언론 인터뷰다.

    내부 개혁하려다 역풍 맞아

    ▼ 탄핵 후 3주를 넘어섰다. 어떻게 지냈나.

    “첫 주엔 가처분신청 및 소송 준비를 했다. 둘째 주엔 휴식을 좀 취했다. 회장직 수행으로 한동안 쉬질 못했다. 최근 한 주는 지난 2년간 의협 회장으로서 겪었던 일을 책으로 펴내려 관련 기록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지난 수개월간 범국민적 이슈로 떠오른 의료제도 문제가 왜 터졌는지 국민도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여겨 책을 쓰려 한다.

    세월호 참사도 해운업계의 구조적 비리가 고스란히 누적돼 발생한 것 아닌가. 의료계 상황도 그에 못잖게 심각하다. 의료 현장에선 지금도 고질적 폐해가 이어진다. 일례로 병·의원급에선 ‘박리다매’가 다반사다. 소아과가 특히 심한데, 환자를 매일 오게도 한다. 불필요하고 불성실한 외래진료 횟수를 늘리는 건 대학병원도 마찬가지다. 한 명의 교수가 중증환자를 하루 100~200명 본다. 그게 올바르고 안전한 진료인가. 그건 편법이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의료제도 탓에 어쩔 수 없다며 편법을 합리화하고 되풀이한다. 의료서비스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수가를 책정하니 상당수 의사가 편법을 쓴다. 난 그런 편법을 동원하게끔 부채질하는 잘못된 건강보험 시스템을 비롯한 현행 의료제도를 바로 세우려 대(對)정부 투쟁에 나섰다. 의협 회장으로서 그런 ‘외부 개혁’과 함께 ‘내부 개혁’까지 적극 추진하다 탄핵당한 것이다.”

    ▼ 왜 불신임받았다고 생각하나.

    “대의원회 신임을 잃은 거지, 의협 전체 회원의 신임을 잃은 건 아니다. 대정부 투쟁 과정에서 외부로 비치는 것과 달리 의협 내부적으로 난관이 굉장히 많았다. 의협의 투쟁 목표는 궁극적으로 의료제도를 바꾸는 건데, 그러기 위해선 의협 내부부터 바뀌지 않으면 그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 싶었다. 의협의 후진적 구조, 즉 대표성 없는 이들이 대의원이 되는 그릇된 관행을 깨야 한다고 봤다. 본래 대의원은 선출직이지만 실제 투표로 선출된 이는 거의 없다. 상당수가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장이 ‘이번엔 네가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지명한 경우다. 대의원 임기가 3년인데, 지켜지지도 않는다. 연임 제한도 없다. 그러니 의협 집행부가 지시를 내려도 시·도의사회에선 제대로 안 먹힌다. 회장 지시를 받아 회무를 수행해야 할 시·도의사회장이 되레 회장을 견제하는 대의원이 돼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대의원 제도를 개혁하려 했다. 전체 대의원 242명 중 시·도의사회 몫이 160여 명인데, 시·도의사회 임원이 편의적으로 대의원을 선임하거나 심지어 본인들이 대의원으로 나서는 관행을 뿌리 뽑으려 했다. 이건 마치 광역시장과 도지사가 관할지역 국회의원을 직접 임명하거나 본인 스스로 의원직을 겸하는 꼴 아닌가. 그 때문에 난 대의원 직선제, 시·도의사회 임원의 대의원 겸직 금지 등의 도입을 추진하는 한편, 원격의료 도입 결정 전 3개월간 시범사업을 실시키로 합의한 정부가 약속을 깬 데 대해 제2차 총파업을 할 것인지와 의-정 협의 결과를 수용할 것인지를 놓고 회원투표를 동원했다. 그랬더니 대의원회 반발이 거셌다. 대의원회에서 결정해야지, 왜 직접 회원 의사를 묻느냐고 따졌다. 그래서는 대의원회의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예 정관에 최고 의결기구인 회원 총회 및 회원 투표의 근거를 마련하려다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집행부 흔들기? 독불장군 회장?

    사실 노 전 회장과 대의원회의 알력은 일정 부분 예견됐다. 대의원 상당수는 시·도의사회장 출신의 중견 및 원로. 그 때문에 노 전 회장도 당선 직후 1년가량은 대의원 포용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자 간 갈등의 골은 깊었다. 특히 3월 30일 열린 임시대의원총회는 그동안 대정부 투쟁 방식에 이견을 보여온 의협 집행부와 대의원회가 평행선을 긋는 순간이었다. 대의원회는 이날 총회에서 노 전 회장을 배제한 채 대의원회 중심의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의결했다. 지난해 11월 의협 내에 대정부 투쟁을 위한 비대위(2월 26일 해체)가 구성된 이후 올해 3월까지 이어진 투쟁과정에서 노 전 회장의 독선으로 인해 투쟁동력을 잃었다는 게 대의원회의 판단이다.

    이후 의협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비대위에서 빠진 노 전 회장 역시 회원 민의를 반영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대의원회 때문에 제대로 투쟁할 수 없다며 대의원 직선제 도입, 시·도의사회 임원의 대의원 겸직 금지 등을 안건으로 한 사원총회(회원총회)를 개최키로 선언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부 대의원이 회장 불신임 발의 동의서를 돌림으로써 결국 4월 19일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 안건이 상정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 비대위에서 왜 제외됐나.

    “대의원회가 비대위를 새로 구성하는 건 사실상 의협에 집행부를 하나 더 만드는 거나 다름없다며 내가 반대해서다. 그들이 새 비대위를 만든 까닭은 대정부 투쟁을 더욱 잘하기 위한 게 아니라 기존 집행부를 흔들기 위한 시도다. 대정부 투쟁 당시에도 원격의료 찬성론자가 비대위에 여러 명 합류했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새 비대위 구성 문제로 의협이 시끄러워지니 비대위 구성 전 의협 감사단이 법무법인 태평양과 광장에 관련 질의를 했다. 정관엔 대의원회가 비대위를 구성할 근거조항이 없으니 비대위 구성은 정관 위반이며, 구성 자체도 법적으로 무효가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대의원회의 비대위 구성은 의협 집행부의 업무집행권에 관한 정관조항에 위반되므로 효력이 없다는 법률검토 의견서가 왔다. 그런데도 대의원회는 비대위 구성을 강행했다. 정관 위반은 내가 아닌 그들이 한 거다.”

    ▼ 하지만 대의원회는 불신임 사유로 여러 가지를 들었다.

    “죄다 갖다 붙인 거다. 제일로 내세운 게 새 비대위 구성을 결의한 임시대의원총회 의결을 내가 존중하지 않았다는 건데, 대의원회는 실제론 해산당할까 우려했다. 변영우 대의원회 의장은 내가 대의원회를 해산하고 회장 1인만을 위한 대의원회를 새로 구성해 독불장군식으로 회무를 다 챙기려든다고 선동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내 주장은 절차적 정당성 없이 대의원이 된 이들을 다 아웃시키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다시 뽑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대의원회 제도 자체를 없애는 걸로 오해한 것 같다.”

    절차적 결함 지적한 긴급보고서

    “보수 편향 의협은 ‘좌클릭’ 해야 한다”

    서울 용산구 이촌로의 의협회관.

    ▼ 불신임 사유를 가처분신청에서 반박했다던데, 그 요지는.

    “정관엔 엄연히 불신임 기준이 있다. 금고 이상 형을 받거나, 정관을 위반해 회원에게 중대한 피해를 발생시켰거나, 의협 명예를 현저히 훼손했을 경우다. 그런데 세 가지 다 내겐 해당하지 않는다. 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적 없다. 정관 위반 사실도 없다. 대의원회는 내가 새 비대위 구성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정관 위반으로 몬다. 또한 난 의협 명예를 현저히 훼손한 사실도 없다. 대의원회가 명예훼손 건의 대표 격으로 삼은 게 내가 2012년 9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로봇수술 사망률이 80%라고 이야기했다는 건데, 그것도 웃긴다. 로봇수술 남용 실태를 밝히면서 로봇수술 중 굉장히 복잡하고 위험하며 안전성도 떨어지는 일부 수술방법을 유독 고집하는 의대 교수가 한 명 있는데, 그걸 계속한단 사실을 그의 동료가 내게 귀띔해줘 언론을 통해 지적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전체 로봇수술 사망률이 80%라고 말해 의사 명예를 훼손했다며 억지를 부린다.”

    ▼ 결국 탄핵의 발단은 내부 개혁에 나선 노 전 회장과 대의원회의 충돌 때문인가.

    “개혁에 대한 대의원회의 두려움 탓이다. 사실 난 불신임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탄핵 전 ‘딜(deal)’을 하자는 제의가 없지 않았다. ‘대의원들만 건드리지 마라, 사원총회 개최를 철회하라, 그러면 불신임하지 않겠다’라고. 하지만 난 탄핵당하더라도 그건 대의원회가 정관에 어긋나게 하는 것이므로 가처분신청 및 소송을 통해 회장직에 복귀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노 전 회장은 4월 16~19일 전국 회원을 대상으로 긴급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자신에 대한 불신임 반대 의견이 많을 경우,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되더라도 불복해 소송으로라도 권리를 되찾겠다고 SNS를 통해 선언했다. 조사 결과는 참여 회원 1만6376명 중 92.8%가 탄핵에 반대했다.

    이런 와중에 5월 8일 개최된 의협 상임이사회에선 김세헌 의협 감사가 김경수(의협 부회장, 부산시의사회장) 회장직무대행과 변영우 대의원회 의장에게 ‘대한의사협회 대의원 선출 과정과 총회의 문제점-2014년 4월 19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31쪽짜리 긴급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그 추이가 주목된다. 노 전 회장 불신임 과정에서 불신임 발의 동의서의 유효성과 임시대의원총회 참석 대의원 자격의 적정성 여부, 총회 절차 및 대의원 선출과정에 문제점이 발견됐다는 게 그 요지다.

    탄핵을 가결한 임시대의원총회는 대의원 95명의 불신임 발의 동의서로 소집됐다. 그런데 이후 대의원회는 실제 정관과 회칙에 따라 선출된 대의원인지 여부를 감사단의 거듭된 확인 요청에도 공개하지 않았고, 투표에 참가한 일부 대의원의 경우 최근 5년 동안 1회 이상 회비를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는 등 심각한 절차적 결함이 있다는 게 보고서의 주된 내용이다. 의협 선거관리규정에 의하면, 회비 납부 의무를 결여한 회원은 회장 선거권은 물론 피선거권도 제한된다. 노 전 회장에게 힘을 보태줄 것으로 보이는 이 보고서는 가처분신청 및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국민이 소상히 알기 힘든 의협 조직 특성상 ‘세대 갈등’이 심한 듯하다.

    “마인드 차이가 매우 크다. 난 계속 회원 얘기를 하는데, 대의원회는 자신들 얘기만 해왔다. 대의원회는 무소불위다. 그들의 뜻이 전체 회원 뜻과 어긋날 경우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조차 없어 그렇다. 그런 게 개혁 대상이다. 대정부 투쟁 때 그동안 잠잠했던 전공의들이 마구 현장으로 뛰쳐나오니 정부도 깜짝 놀랐다. 그렇듯, 현재 젊은 의사들은 엄청난 자괴감을 느낀다. 자살자도 적지 않고, 금융채무불이행자도 양산된다. 왜곡된 건강보험 시스템 때문이다.

    얼마 전 방송에 1회용 내시경 포셉(forceps·위내시경 검사에서 종양 의심 부위가 나올 경우 해당 병변 부위 조직을 떼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의료기기)을 재사용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1회용이니 한 번 사용하고 폐기하는 게 맞다. 재사용은 분명 1차적으론 의사 잘못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병·의원이 적잖다. 내시경 생검(biopsy) 수가가 8620원인데, 포셉 가격은 가장 싼 중국산이 2만3000원이기 때문이다. 생검을 하면 할수록 의사가 손해 보는 구조다. 그러니 재사용하는 편법을 저지른다. 안 그러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단적인 사례다.

    하지만 건강보험 수가는 원가의 70% 수준에 그친다. 중환자실과 응급실의 경우는 더 낮아 원가보전이 50%밖에 안 된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해 상당수 기성세대 의사는 침묵한다. 이미 그런 편법을 오래도록 써왔고, 솔직히 앞으로 의사로서 살아갈 날도 많지 않아서다. 길어야 10년쯤 아닐까. 그러니 젊은 의사들은 구조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반면, 나이 든 의사들에겐 의지가 없다. 더욱이 후자 중 일부는 병원을 통해 수익을 내기보다 부동산 임대 등으로 큰 수익을 얻거나, 대규모 병원을 운영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의료제도를 바꾸려는 대정부 투쟁에 나서겠나. 시·도의사회장 역시 해당 지역 유지와 어울리고 스스로도 유지로 인정받으니 좋은 게 좋은 거다. 최근 의사 수가 크게 늘면서 평균연령이 낮아져 젊은 의사가 훨씬 많다. 난 그들의 전폭적 지지로 회장에 당선됐다. 그만큼 개혁에 대한 바람이 큰데, 대의원들은 동조하지 않는다.”

    “독단적일 수밖에 없었다”

    “보수 편향 의협은 ‘좌클릭’ 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15일 열린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 자해 시도를 한 노 전 회장(위). 의협이 총파업에 돌입한 3월 10일 의협회관에 모인 전공의들.

    연세대 의대 출신으로 흉부외과 전공인 노 전 회장은 2009년부터 3년간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 대표를 지냈고, 전의총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후 2012년 5월 1일부터 제37대 의협 회장으로 재임했다. 의료계 내부에서 강경파로 통하는 전의총 대표를 맡을 당시 그는 의료사고, 의약품 리베이트 등 의료계가 쉬쉬하는 ‘불편한 진실’을 줄곧 들춰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지만, 의료계 일각에선 ‘의사를 공격하는 의사’로 비난받기도 했다.

    전의총도 의협 대의원회 개혁을 위해 자체 회원에게 청원서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최근 노 전 회장과 거리가 멀어졌다. 심지어 정인석 전의총 공동대표는 4월 27일 열린 의협 정기대의원총회 때 한 기자회견에서 “노 전 회장이 이전과 똑같은 마인드로 똑같은 노선을 간다면 지지할 수 없다”고까지 발언했다.

    ▼ 한때 탄탄한 지지 기반이던 전의총이 왜 등을 돌렸나.

    “부끄러운 얘긴데, 전의총도 둘로 나뉘었다. 개원의 이익단체로 대한의원협회가 있는데, 그건 전의총을 모태로 해 2011년 창립총회를 열었다. 사실 내가 만든 거다. 그전엔 의협 내부에서 개원의 목소리가 너무 커 마치 의협이 그들만의 이익단체처럼 흘러갔다. 그런데 이후 전의총과 대한의원협회 두 단체의 일부 운영위원과 나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친노(환규)파와 반노파로 갈렸고, 지금은 반노파가 친노파를 거의 몰아낸 상태다. 의료제도 개선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전의총은 그 어떤 의사단체보다도 투쟁성을 강조했는데, 지난 대정부 투쟁 땐 대한의원협회와 더불어 매우 소극적으로 임했다. 그런데도 3월 10일 하루만 총파업하고 의-정 협상에 나서니 왜 투쟁을 빨리 접었냐고 되레 나를 비판했다. 한마디로 시·도의사회장단, 대의원회와 같은 입장을 취한 거다. 그런 점에 난 많이 실망했다.”

    ▼ 총파업 결정이 현장 의사 의견을 반영한 게 아니라 의협 집행부 뜻이 관철된 것이며, 노 전 회장이 이 부분에서 독단적이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맞다. 근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와 관련해 대정부 투쟁을 벌여야 하는데 다수 대의원이 반대한다고 회장인 내가 그들 의사에 따른다면 의협은 과연 어디로 굴러가야 하나?”

    노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개최한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 개회사 도중 “정부가 우리 목에 칼을 들이댔다”며 흉기로 목덜미를 긋는 자해 시도를 했다. 이에 앞서 2011년 12월 열린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선 당시 경만호 의협 회장에게 계란을 투척하기도 했다.

    “차기 회장 욕심, 애초부터 없어”

    ▼ 노 전 회장의 언행에 과격한 면이 없지 않다. 전국 11만 의사를 대변하는 대한민국 대표 의사단체 수장으로서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나.

    “당연히 그렇게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내 역할이다. 매우 부적절한 역할이긴 한데,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테면, 악역을 맡은 거다. 의협을 대표하는 직책인 만큼, 회장은 마땅히 의사 이미지도 대표해야 한다. 그럼에도 목에 흉기를 갖다 댄 것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만큼 절박하다는 진정성을 퍼포먼스를 통해 보이고 싶었다. 둘째, 그건 대국민용 메시지보다 대의사용 메시지 성격이 더 짙었다. 언제까지 의료제도 문제를 방치할 것이냐, 질책하고 싶었다. 의협 회장이 자해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단 걸 알리고 싶었다. 만일 점잖고 고상한 이가 회장으로 있다면 과연 정부와 제대로 투쟁할 수 있겠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듯, 난 이젠 투쟁하는 의협 회장은 나로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 대의원회와 법정에서 2라운드를 예고했다.

    “굳이 대의원회와의 싸움이라기보다 가치관 간의 싸움이라 생각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성세대, 리더그룹으로서의 책임은 방기한 채 기득권 유지와 안위를 지키는 데만 몰두하는 이들과의 싸움이다.”

    노 전 회장 소송은 법무법인 케이씨엘의 유남영 변호사가 맡았다. 한때 같은 법무법인 소속으로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역임한 유지담 변호사가 맡는 걸로 와전되기도 했다. 이에 대의원회는 의협 측 법정대리인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인재 대표변호사를 선임할 뜻을 밝혔다. 착수금으로 3300만 원, 성공보수로 3300만 원을 의협 예산에서 지출하는 방안도 처리했다.

    현재 의협은 회장직무대행체제로 회무를 잇고 있다. 하지만 곧 새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 정관엔 60일 내에 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돼 있다. 보궐선거는 6월 2~18일 치러지고, 개표결과는 6월 18일 발표된다.

    이번 보궐선거는 노 전 회장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에 대한 법원의 수용 여부가 관건이다.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 노 전 회장은 그날부로 회장직에 복귀한다. 그때까지는 보궐선거도 치러질 수 없다. 노 전 회장이 보궐선거 절차를 중지시켜달라는 가처분신청도 함께 내놨기 때문이다.

    “5월 27일쯤 법원의 결정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가처분신청을 낸 이유는 회장으로 복귀하려는 것보다 대의원회가 정관 요건을 갖추지도 않고 마음대로 회장을 탄핵하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다.”

    노 전 회장 탄핵 후 의협은 4월 27일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의협 중앙윤리위원회에서 500만 원 이상 벌금 처분을 받은 사람은 벌금을 받은 날로부터 5년이 지날 때까지 회장 피선거권을 제한한다’는 선거관리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경만호 전 의협 회장에게 계란을 던져‘회무질서 문란행위’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던 노 전 회장은 2016년까지 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차기 회장 출마 기회가 원천차단된 것이다.

    ▼ 2015년으로 예정된 차기 회장 선거도 염두에 뒀었나.

    “원래 나갈 의향이 없었다. 내가 또 출마할까봐 대의원회가 지레짐작해 그런 제어장치를 만든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회장으로서 역할은 거의 다했다. 의료계 리더그룹인 대의원들의 생각을 바꾸진 못했지만,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투쟁에 대한 젊은 의사, 특히 전공의의 생각을 크게 바꾼 데 대해선 보람을 느낀다. 어쩌면 탄핵으로 인해 그동안 의협 회원조차 관심 밖이던 대의원회 실상이 수면으로 부상한 것도 한 성과라고 본다. 의사는 정치적으로 거의 보수다. 내가 의료제도 개선 투쟁을 위해 야당과 협력하고 전국보건의료노조와도 연대하니 좌파처럼 보기도 하는데, 아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 개인적으론 보수매체 편집위원도 했었다. 그동안 의협은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쳤다. 이젠 어느 정도 ‘좌클릭’ 해야 한다. 개혁해야 한다. 내가 ‘국민’을 운위하면 의사들이나 전의총은 아주 싫어한다. 그런 편협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환자 따로, 국민 따로인가. 난 2010년 이른바 ‘종현이(고 정종현) 사건’ 땐 의료사고를 낸 경북대병원 앞에서 ‘사실을 인정하라’며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적극 개입했다. 그 때문에 ‘의협 회장이 의사 아닌 환자를 편든다’는 비난도 받았다. ‘리베이트 단절 선언’을 한 걸로 인해 지금도 공격받는다. 그것도 탄핵 사유 중 하나다. 이미 2000년 의약분업 관련 투쟁 때 의료계는 국민을 많이 돌려세웠다. 이젠 의사 잘못부터 인정해야 의료제도의 새 판을 짤 수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 의협의 현재다. 미래는 어떨까. 변화를 갈구하다 공교롭게도 사상 초유 탄핵의 당사자가 된 노 전 회장은 ‘회장직 되찾기’에 성공할까. ‘권토중래’를 꾀하는 노 전 회장과 총력 저지에 나선 대의원회의 충돌이 어떻게 귀결될지 궁금한 건 의협이 단순한 특정 직역의 이익단체를 넘어 국민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사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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