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호

러시아전 박주영 알제리전 손흥민 벨기에전 구자철 일낸다

홍명보號 ‘브라질 월드컵 16강’ 필승전략

  • 장원재 │축구칼럼니스트 drjang12@gmail.com

    입력2014-05-22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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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전 박주영 알제리전 손흥민 벨기에전 구자철 일낸다

    2006년 월드컵 당시 서울 세종로를 가득 메운 응원 인파.

    대한민국 vs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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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팀은 6월 18일 오전 7시 러시아와 월드컵 H조 첫 경기를 벌인다.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러시아를 꺾거나 최소한 무승부라도 해야 한다. 홍명보 감독은 취임 이후 4-2-3-1 포메이션을 집중적으로 실험하고 다듬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포진은 러시아전에 대비한 맞춤형 전술이다. 그렇다면, 이 포진의 특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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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비진을 포백으로 할 것이냐 스리백으로 할 것이냐는 대표팀이 구성될 때마다 논란의 핵심이었다. 기본적으로 스리백은 맨투맨으로 방어하고, 포백은 지역방어를 한다. 실수했을 때 스리백은 단독돌파를 허용한다. 포백은 수비수 숫자는 많지만 한쪽으로 쏠리면 골을 쉽게 먹는다. 스리백은 상대적으로 수비수의 개인기량에 의지하고 포백은 선수 사이의 조직력에 기댄다.

    박주호 낙마로 스리백 날아가

    문제는 스리백 전술은 선수 체력소모가 막대하다는 사실이다. 수비수에 준하는 능력을 갖춘 미드필더를 대거 보유하지 않고서는, 스리백으로 16강 이상을 항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 선수 중 이 기준에 부합하는 유일한 선수인 박주호는 부상으로 낙마했다. 그 탓에 홍명보 감독의 수비전술 사용 폭은 그만큼 좁아졌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월드컵에서 스리백으로 4강을 달성했는데, 그가 3-4-3 포메이션을 쓸 수 있었던 비결은 ‘압도적인 체력의 확보’였다. 히딩크는 ‘대표팀 18개월간 합숙훈련’이라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시간과 전권을 부여받았다. 체력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런데도 한국은 미국 전 이후 수비진의 체력이 사실상 바닥나며 위태로운 항해를 해야 했다. 홍명보 감독이 김진수-홍정호-김영권-이용으로 이어지는 포백 전술을 쓴다는 것은 수비진의 체력소모를 줄여 16강 이상을 바라보겠다는 의미다.

    러시아전 박주영 알제리전 손흥민 벨기에전 구자철 일낸다

    박주영 선수.

    수비수 바로 앞엔 기성용과 하대성 혹은 박종우가 선다. 러시아의 공격을 봉쇄하는 1차 저지선이다. 러시아는 킥 앤드 러시(공을 차고 달리는) 스타일의 체력과 체격을 중시하는 선 굵은 축구를 구사한다. 땅 따먹기 하듯 잔 패스를 통해 야금야금 점유지역을 넓히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전에선 공의 소유권이 불분명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성용과 하대성은 이런 50 대 50의 상황에서 공의 소유권을 우리에게 가져오는 공 위너(ball winner)의 역할을 해야 한다.

    매번 월드컵엔 ‘그 선수가 부상당할 경우 작전 자체가 흐트러지는’ 대체 불가 선수가 있다. 2006년엔 최진철이었고 2010년엔 박지성이었다. 월드컵은 아니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공수 전환의 핵심인 와일드카드 선발멤버 홍명보가 대회 직전 부상으로 낙마했다. 허정무의 올림픽 사단은 준비했던 전술의 50% 이상을 단 한 번도 써먹지 못하고 사장(死藏)시켜야 했다.

    이번 월드컵의 홍명보호는 백업 멤버의 기량이 고른 편이다. 그래도 대체불가 선수를 꼽자면 필자는 기성용을 들고 싶다.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우리의 볼 유효 점유율은 40% 초반일 터다. 전방으로 연결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90분 내내 몸싸움을 하고, 패스의 낭비가 없는 가운데 달려가는 선수의 스피드에 맞춰 빠른 패스를 찔러주며 코너킥과 프리킥의 전담 키커로서 찬스를 만들어낼 세계적 수준의 선수는 지금 우리 대표팀에선 기성용밖에 없다.

    기성용은 대체불가 선수

    그렇다면 러시아의 약점은 무엇일까? 러시아 스포츠전문매체 ‘스포르트복스’가 5월 초 ‘파비오 카펠로(68·이탈리아) 감독의 두통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자국 대표팀의 단점을 분석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러시아 미드필더의 핵심인 로만 시로코프(33·FC 크라스노다르)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러시아 기자는 “뒤꿈치·무릎·아킬레스건 부상 경력이 있는 데다 이번 시즌 적잖은 결장으로 충분한 훈련을 하지 못했다. 실전 경험이 당연히 부족하다”면서 “좋은 징조가 아니다”고 했다. 월드컵 예선 10경기에 시로코프는 거의 전 경기 전 시간을 출전했다. 단 9분만 쉬면서 3골 4도움을 올렸다. 예선 통과 후 열린 평가전 3경기에서도 모두 주장 완장을 차고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하며 팀을 이끌었다. 2013년 11월 19일 UAE에서 열린 한국과의 평가전(2-1 러시아 승)에서 4-3-3 대형의 중앙 미드필더로 풀타임을 뛰며 동점 골을 도운 선수가 바로 시로코프다. 이렇듯 그는 러시아 전술의 핵심이지만, 자국 프로리그 경기에서 16경기를 결장했다. 사타구니와 고관절에 이상이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국으로 치자면, 박지성과 기성용이 모두 정상이 아닌 것과 맞먹는 상황이다.

    러 공격·측면 수비에 허점

    러시아의 약점은 공격력이다. 예선 10경기 성적이 20득점 5실점이다. 수비는 단단하지만 골잡이가 없다. 무엇보다도 측면 공격이 위협적이지 않다. A매치 최다득점(78경기 24골)을 올린 중앙 공격수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32·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최근 부진의 늪에 빠졌다. 4월 러시아 1부 리그에서 90분 남짓 뛴 것이 출전의 전부다.

    안드레이 아르샤빈(33·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은 2008년 유럽선수권 당시 부상으로 첫 두 경기 출장이 불가능한데도 히딩크 감독이 기어이 선발했다. 아르샤빈은 네덜란드와의 준준결승에서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하며 대감독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많은 V팬은 그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소속으로 144경기에 출전해 31골 46도움을 올린 추억을 회상한다. 하지만 ‘스포르트복스’의 평가는 냉정하다.

    “아르샤빈의 이름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으나 후반기에도 소속팀에서 이렇다 할 활약이 없어 희망을 품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아르샤빈은 2014년 단 한 골의 득점도 도움도 기록하지 못했다. 2012년 8월 15일 코트디부아르와의 친선경기(1-1무) 이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사실이 없다.

    중원과 중앙 공격에 이어 ‘스포르트복스’가 심각하게 다룬 부분은 측면 수비다. 주전 왼쪽 수비수 드미트리 콤바로프(27·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예선 10경기에서 3도움을 기록했고 평가전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소속팀이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의 소속팀인 명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최근 성적은 리그 9경기 1승2무6패. 콤바로프는 팀의 주장이기도 하다. 오른쪽 수비수로 예선 5경기(경기당 84분)를 소화한 알렉세이 코졸로프(28·디나모 모스크바)는 다혈질인 성격이 문제다. 코졸로프는 리그 26라운드에서 경기 시작 49분 만에 퇴장당해 3경기 출장정지 명령을 받았다. 팀 간 전력차가 크지 않은 월드컵에서, 레드카드는 팀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반면 특히 경계해야 할 공격수도 있다. ‘러시아의 손흥민’인 알렉산드르 코코린(23·디나모 모스크바)이 여기에 해당한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황태자인 코코린은 지난해 9월 룩셈부르크와의 월드컵 예선에선 19초 만에 골을 터뜨렸다. 체력, 스피드, 활동량,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 슈팅 능력이 발군이다. 월드컵 예선 8경기에 나서 총 4골 1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4월 로이터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조별리그 통과는 기본이며, 월드컵에서 3위 안에 드는 것이 목표다. 한국은 강한 팀인 것은 분명하지만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다”고 말했다.

    홍명보에겐 선택지 없었다

    러시아전 박주영 알제리전 손흥민 벨기에전 구자철 일낸다

    홍명보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고 있다.

    과연 한국-러시아전이 코코린의 말대로 흘러갈까. 한국이 러시아에 전반적으로 밀리는 경기를 할 공산이 높다. 하지만 골 결정력에 관한 한 한국은 탁월한 선수를 가졌다. 박주영이다. 소속팀 경기에도 뛰지 못하는 선수를 선발했다는 ‘특혜 논란’부터 코치진을 동원한 ‘1인용 황제 회복훈련’까지, 박주영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의 지적처럼,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을 특별 대우하는 건가? 필자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렇다면, 박주영이 이런 특별하고 극진한 대우를 받을 만큼 우리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인가. 내가 보기에는 역시 그렇다.

    전통적인 의미의 스트라이커, 상대 문전 언저리에 머물며 패스를 받아 골로 연결하는 유형의 선수는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월드컵을 기준으로 하면 1998년의 수케르(크로아티아), 2002년의 호나우두(브라질)가 마지막이다. 우수한 스트라이커 자원이 배출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계 축구의 스타일이 바뀌었다. 월드컵에선 어느 팀이나 찬스 자체를 많이 만들지 못한다. 세계적 선수들이 수비를 하기 때문이다. 수케르나 호나우두는 골 결정력이 매우 뛰어났기에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따라서 어느 나라 감독이든, 공격 기능만 특화된 선수보다는 수비 가담 능력도 뛰어나고 2선 선수들과도 잘 연계하고 뒷공간을 파고드는 능력도 있고 정확한 패스를 구사하는 선수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현재 대표팀에서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선수는 박주영이 유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홍명보 감독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3월 6일 아테네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친선 경기. 소속팀에선 벤치만 달구다 오랜만에 실전에 나선 박주영은 손흥민의 로빙공 패스에 스텝의 스피드를 조절하고 논스톱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공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어갔다는 점에서 박주영의 골은 도교적인 골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사각(死角)이라 슛하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소임을 다한 손흥민의 왼발 강타는 그렇다면 유교적인 골이라 할 수 있을까.

    ‘문전처리 미숙’ 해결

    한국 축구의 고질병은 문전처리 미숙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침착성이 부족했다. 찰나에 모든 상황이 종결되는 데다 공은 잠시라도 가만있지 않고 살아서 꿈틀거리는데 상대 수비수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와중. 이런 상황에서 냉정을 잃지 않고 중심을 흩트리지 않으면서 공을 처리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박주영은 어떤 경우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을 처리하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다. 그의 슛은 거의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유효슈팅(on-target attempt)이다. 박주영은 슛을 날리면서 발의 스윙이 나가는 중에도 발목의 각도를 미세하게 비틀어서 공을 골문 안으로 넣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강도는 떨어지더라도 일단 정확하게 간다는 것. 약하게 차더라도 정확하게 차면 득점 확률이 있지만 강하게 차더라도 골대를 벗어나면 득점이 안 된다는 이치를 간파한 것이다. 강하게 슛을 날리는 능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고 항상 파워의 65~70%로 관리하면서 정확하게 밀어내는 플레이. 야구로 치면 이치로와 비교할 수 있다. 타율을 높이기 위해 정확히 때리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장타가 안 나는 것이지, 파워가 없기 때문에 홈런이 적은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당시 대(對)일본전 박주영의 선제골도 사실은 살짝 빗맞은 슛이었다. 박주영의 슛은 빗맞아도 골대 안으로 들어간다.

    드리블에 관해서도 박주영은 일가견이 있다. 그의 드리블의 핵심은 ‘엇박자’와 ‘자유자재의 기어변속’이다. 드리블이 됐든, 돌파가 됐든 핵심은 상대 수비를 속이든지 헷갈리게 하든지 따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고 정확한 슛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박주영은 직선 드리블을 할 때뿐 아니라 휘어들어가는 드리블을 할 때도, 스피드를 죽이지 않는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주 빠르게도 갔다가 느리게도 갔다가, 말하자면 급발진도 했다가 순간적으로 멈추기도 한다. 구사하는 리듬이 다양하기에 수비진이 그를 따라가는 데 애를 먹는다.

    도교적 플레이

    그는 종래의 한국 선수가 도전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하나 개척한다. 도교적인 플레이를 펼친다는 점이다. 최전방의 박주영에게 공이 연결되는 경우를 가정하고 설해보자. 일반적인 패턴은 일단 공을 자기 앞에 멈춰 세우거나 흐름을 죽여놓고 드리블을 하던 공을 슛을 하든 패스를 하든 결정한다.

    박주영은 공이 흘러가는 결에 신체의 리듬을 맞춰 공을 건드리지 않고도 전진하거나 후진한다. 이건 탁월한 재능이다. 석수(石手)들도 돌의 결을 알면 작업하기 훨씬 편하다는데, 박주영은 공이 굴러가는 결을 한눈에 알아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어지간한 자신감 없이는 펼치기 어려운 기술이다. 다른 한편으론 한 사람밖에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 상대 3명이 압박해오는 상황에서도 자체회전, 즉 360도 회전 사양이 장착돼 있기 때문에 발꿈치, 발등, 발바닥을 이용해 난관을 돌파한다. 박주영은 이제까지 한국 축구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시간과 공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가졌다. 러시아전에서 박주영의 다연발포(多連發砲)가 터지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vs 알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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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팀은 알제리를 반드시 이겨야 16강에 갈 수 있다. 그건 알제리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래서 중요한 일전이다. 알제리의 주축 선수는 대부분 유럽 리거다. 전력이 만만치 않다. FIFA의 규정은 선수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부모, 혹은 조부모의 국적을 택할 수 있다. 최근 알제리 대표팀을 택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나빌 벤탈렙(20)은 이번 월드컵 실전에 나설 수 있을까.

    아프리카 예선에서 5골을 몰아친 주포 이슬람 슬리마니(26·스포르팅 리스본)와 소피앙 페굴리(25·발렌시아)도 경계 대상 1호다. 페굴리는 알제리의 이청용이다. 체력에 다소 문제가 있지만 스페인리그 최고의 테크니션 가운데 하나로 통한다. ‘알제리의 김두현’ 야친 브라히미(24·그라나다)도 요주의 인물이다. 지난겨울 이탈리아 세리에A 명문 인테르 밀라노에서 리보르노로 임대된 공격수 이샤크 벨포딜은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원사령탑’ 부게라 넘어야

    2002년의 홍명보, 2010년의 박지성과 이영표가 했던 역할을 혼자서 구현하는 ‘알제리의 정신적인 지주’가 있다. 마지드 부게라(32·레크위야)다. 센터백으로서 수비진을 이끄는 그는 허리에 공백이 생기면 미드필드까지 치고 올라간다. 마치 홍명보가 1994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 독일전에서 중거리 슛으로 2득점을 올린 것처럼 말이다.

    2002년 월드컵 첫 경기 폴란드전도 전반 11분 홍명보가 최전방까지 올라가 중거리포를 날리면서 경기의 흐름을 우리 쪽으로 돌려놓았다. 부게라는 30대 노장이지만 브라질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 6경기를 교체 없이 풀타임으로 뛰었다.

    러시아전 박주영 알제리전 손흥민 벨기에전 구자철 일낸다

    손흥민 선수.

    알제리가 경기당 1실점 미만의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데는 부게라의 존재가 핵심적이다. 부게라는 지단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출생이다. 둘 다 알제리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지단은 프랑스를, 부게라는 알제리를 택했다. 190cm, 93kg의 당당한 체격으로 코너킥이나 프리킥 같은 세트 피스 상황에선 공격에 적극 가담해 헤딩 골을 노리기도 한다. 거친 플레이에 능하면서도 온화한 성격이라 선수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다.

    승부 열쇠 쥔 손흥민과 이청용

    그렇다면 알제리를 무너뜨릴 우리의 비책은? 손흥민과 이청용이다. 먼저 아시아의 전설 차범근과 손흥민을 비교해 보자. 차범근이 두꺼운 허벅지 근육으로 무장한 스프린터형 공격수라면 손흥민은 상대적으로 마른 체형의 마라토너형 공격수다. 차범근은 몸싸움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고 손흥민은 빈 공간으로 수비진의 배후를 바람처럼 파고든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차범근 시대의 축구는 모든 선수가 자기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세계적 유행이었다. 수비수는 수비만 했다. 미드필더의 최고 덕목은 공수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것이라고 모두가 믿었다. 정해진 포지션 없이 ‘알아서 마음대로’ 움직이는 ‘리베로’ 역할은 오직 베켄바우어 같은 예외적 천재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다.

    러시아전 박주영 알제리전 손흥민 벨기에전 구자철 일낸다

    한국-벨기에 전이 열리는 상파울루 아레나 조감도.

    이런 분업형 축구에서 공격수의 역할은 하나다. 상대의 골문 앞 중앙부근에서 움직이며 문전으로 연결된 공을 득점으로 마무리하는 것. 1998년 월드컵 득점왕 수케르나 2002년 득점왕 호나우두가 이러한 유형의 마지막 스트라이커다. 어쩌면 이동국도 이러한 유형에 해당한다. 차범근은 그러나 당대의 관습을 뛰어넘는 선수였다. 마무리 능력은 초일류급이 아니었지만,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공간침투 능력이 돋보였고, 윙 플레이와 스트라이커를 오가는 플레이가 가능한, 당시 세계 유일의 멀티 플레이어였다. 마치 사륜구동과 스포츠카가 한 차체에 장착된 것과 비슷하다.

    필수과목, 선택과목 다 잘해

    손흥민 시대의 세계축구계는 전원 공격-전원 수비가 대세다. 요즘은 아무리 공격 능력이 뛰어나도 수비 가담 능력이 떨어지는 공격수는 경기에 나서기 어렵다. 전문형 인재가 아니라 융합형 인재가 더 대우를 받는다. 여러 선수가 경기 내내 번갈아가며 전문 스트라이커 역할을 나누어 맡는 전술에 이어 최근에는 아예 최전방 스트라이커 없이 경기를 하는 ‘제로 톱 전술’까지 등장했다. 과거 같으면 체형상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을 손흥민이 최전방 언저리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이유다.

    손흥민의 장점은 여럿이다. 어떤 공이든 슛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발군이다. 구시대 스트라이커의 덕목이었으되 이제는 ‘보기 어려운 재능’이 되어버린, 드리블에 이어 마무리 슈팅까지 혼자서 해결하는 힘도 갖췄다.

    이렇게 설명해보자. 어떤 과목이 과거에는 필수과목이었다가 선택과목으로 바뀌었다고 치자. 효율적인 수험전략은 새 필수과목에 치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 필수과목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고 이제는 선택과목인 옛 필수과목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는다면? 손흥민이 이런 학생이다. 이점에서 그는 새 길을 열어간 개척자다. 기본기술을 익히는 외에, 옛 기술에 다소 무모해 보이는 시간투자를 해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장점으로 엮어냈다.

    이청용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섬세함이다. 이청용의 패스는 수비수의 예측을 벗어난다. 일단 논스톱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많다. 상대 수비 사이로 공을 굴려주는 빈도도 높다. 패스의 각도와 방향도 상식을 벗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패스 성공률이 월등히 높다. 그 비결은? 패스의 구질이다. 그의 패스는 느리고 부드럽다. 축구 역사상 공보다 빨리 달리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격수가 수비수의 등 뒤로, 양옆으로, 혹은 수비진의 사이를 뚫고 골키퍼와 맞서는 지점까지 나아가더라도, 패스가 빠르면 공은 골키퍼의 차지가 되기 마련이다. 아니면 공을 잡더라도 대개는 오프사이드에 걸린다.

    이청용은 공격수가 급발진을 하기 직전 패스를 연결해 오프사이드의 굴레를 벗긴다. 그의 패스는 느리게 굴러가거나 날아가므로, 공격수는 공이 도달하기 전 위험지역에 당도해 원활히 받을 수 있다. 이것은 흔치 않은 재능이다. 사상 최연소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을 지낸 윌프레드 베니테즈는 “상대 가슴 근육의 특정 부위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고 펀치를 피 한다”고 말했다. 주먹이 움직이기 전부터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청용은 축구경기의 시공간을 파악하고 지배하는 그만의 독특한 능력을 가졌는지 모른다.

    알제리전 경기 후반, 홍명보 감독은 김신욱을 투입할지 모른다. 김신욱은 뒤지는 상황에서 공격에 올인해야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이다. 그렇다면 알제리전에서 대표팀이 패배 직전까지 몰린다? 알제리전에서 김신욱의 실전감각을 한번 점검해야, 보다 센 상대와 만나는 16강 이상의 경기에서 그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꼭 오기를 희망한다.

    대한민국 vs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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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가 H조 최강 전력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중앙 수비수 뱅상 콤파니(28·맨체스터시티), 공격형 미드필더 에당 아자르(23·첼시), 골키퍼 티보 쿠르투와(22·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중앙 미드필더 악셀 비첼(25·제니트), 측면 미드필더 케빈 데 브루잉(23·볼프스부르크)은 소속 팀에서도 주축 멤버다. 1986년 엔조 시포가 이끌며 4강 신화를 썼던 벨기에는 이번 대회에서 8강 이상을 꿈꾼다.

    그렇지만 약점도 있다. 주공격수 크리스티안 벤테케(24·아스톤빌라)는 4월 훈련 도중 아킬레스건 파열로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다. 국적 문제로 벨기에와 잉글랜드 사이에서 고민하던 ‘맨유의 젊은 피’ 아드난 야누자이(19)는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마크 빌모츠(45) 감독은 벤테케의 대체요원으로 야누자이 선발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을 10경기 18골 4실점으로 통과한 벨기에는 32개 출전국 가운데 공수 밸런스가 가장 잘 짜인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빈센트 콤파니(193cm) 등 장신 3명은 세트피스에서 가공할 무기가 된다. 셋 다 점프력이 좋아 어느 누구만을 집중 마크할 수도 없다. 다만 알제리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20대 초·중반 선수가 많아 큰 무대 경험이 적다는 것이 약점이다. 지난해 11월 일본(2-3 패)과의 친선 경기, 그것도 홈경기에서 측면 수비에 약점을 드러내며 역전패를 당했다는 것도 대표팀에겐 희망을 품게 하는 데이터다.

    러시아전 박주영 알제리전 손흥민 벨기에전 구자철 일낸다

    구자철 선수.

    ‘1승 2무’ 예감

    야누자이를 뽑지 않는다면, 벨기에의 원 톱은 무조건 로멜로 루카쿠(21·에버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턴의 간판 공격수이기도 한 그는 신장 190㎝에 100㎏에 육박하는 거한이다. 그럼에도 위치 선정 능력이 좋고 파워가 대단해 ‘제2의 드록바’ ‘제2의 비에리’로 불린다.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거친 스타일이라 우리 수비진의 위험인물 1호다. 순발력과 스피드가 처진다는 것이 현지의 평가지만 발목과 허벅지 근육이 유연하고 슈팅 타이밍을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해 이 단점을 보완한다. 슬쩍 찬 것 같은데도 힘이 실려 날아오는 공에 상대 골키퍼가 당황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공을 몸 근처에 붙들어 매는 능력도 좋아 때로는 수비진을 반 박자 따돌리고 슛을 날린다.

    벨기에와 일본전을 바탕으로 분석해보면,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무기는 공격형 미드필더다. 구자철이 가운데 서고, 양옆으로 손흥민과 이청용이 출진한다. 김보경도 언제든지 출격 대비다. 구자철은 별명이 ‘구줌마’다. 아줌마처럼 세세한 것을 일일이 챙긴다고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사실은, 경기 스타일도 ‘구줌마’다. TV 화면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구자철의 플레이가 빛을 발한다.

    러시아전 박주영 알제리전 손흥민 벨기에전 구자철 일낸다
    장원재

    1967년 서울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 박사(비교연극사)

    전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위원

    인터넷문화협회 대표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공동 진행자


    히딩크 감독이 필자에게 알려준 ‘축구 보는 법’이 있다. ‘공이 없는 곳’을 보라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공격할 때 수비수의 대비태세를 보고, 우리가 수비할 땐 공격진의 움직임을 살피라는 것이다. 구자철은 이런 의미에서 넘버원이다.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고 양옆으로, 그리고 좌우로 침투 패스를 찔러주는 능력이 있다. 때로는 본인이 득점을 올리며 직접 해결하기도 한다. 기성용-하대성이 뒤에 서고 구자철이 앞에 선 ‘중원의 삼각편대’가 있기에 손흥민과 이청용의 스피드가 빛을 발할 수 있다.

    1승 2무 정도의 성적으로 16강 진출. 16강전에서도 왠지 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참고로 필자가 언론에 공개적으로 발표한 예감은 역대 월드컵에서 두 번 맞고 한 번 틀렸다. 자, 이제 드디어 월드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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