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호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가득하다

권두언

  • 소동기 변호사·한국골프장경영협회 고문변호사

    입력2014-05-23 1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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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는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나이와 직업, 출신을 가리지 않는다. 80대 어르신에서부터 나이 어린 사람까지 함께 할 수 있고, 심지어 눈이 보이지 않거나 휠체어를 타야 하는 사람도 골프를 즐길 수 있다. 숭고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스스로 엄격한 룰을 적용하는 골프 라운딩을 통해 정신적인 만족을 얻을 수도 있다. 실력을 뽐내고픈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경기에 임했다가 어처구니없는 패배를 맛볼 수도 있고, 혈기방장한 사람이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상대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운동이 바로 골프다. 그래서 골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인생 이야기가 된다.

    스스로를 탓하라

    필자는 골프를 대할 때면 대학 시절 접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생론을 떠올리곤 한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를 필요 없다. 부자유를 친구로 삼으면 부족할 것이 없다. 욕심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원이요 분노는 적이다. 남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를 탓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피해는 너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넘치는 것보다는 약간 모자라는 것이 좋다.’

    골프를 직접 해보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재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골퍼는 라운딩을 마친 뒤 즐겁고 재밌었다고 말하는 경우보다 스트레스를 받았노라고 말하곤 한다. 왜 그럴까.



    골프에서의 재미는 엄격한 룰을 지키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골프에서 최후의 도달점은 그 광대한 홀에서 지름이 겨우 10cm밖에 안 되는 홀컵이다. 골프는 퍼팅그린에 오기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포츠다. 그러나 퍼팅에서 무너지면 골프의 흥미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골프에는 퍼팅이나 홀컵보다 훨씬 역설적인 것이 있다. 참된 골프애호가라면 누구라도 힘써 지키는 골프 규칙에 대한 절대복종과 정확한 스코어의 기록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골퍼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욱 더 골프 규칙을 존중한다. 골프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골프 규칙이 침해되는 것을 싫어한다. 과학자가 발견에 이르는 절차를 존중하고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지어내는 솜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골프의 재미는 수도승의 득도와 닮았다.

    시시포스의 운명

    골프에서 완벽이란 없다. 아침에 잘되던 스윙이 오후가 되면 안 되고, 어제 64타를 친 선수가 오늘은 76타를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골퍼를 시시포스에 비유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요즘 고민에 빠져 있어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100파를 한 이후 골프에 무척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저를 가르치는 프로가 ‘거리를 조금 더 내기 위해서’라면서 스윙자세를 고치라고 말한 뒤부터 골프가 안 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제는 필드에 나갔는데 도대체 아무것도 되질 않는 거예요. 제가 지금까지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문득 시시포스의 신화를 떠올렸어요. 골프 스윙을 익히는 저의 모습이 마치 산꼭대기에 돌을 밀어 올려놓자마자 다시 굴러 내려와 또다시 힘들게 밀어 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의 처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조개무지에서 진주 찾는 것

    불완전함이 일상사라는 진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인생의 참맛을 느끼며 살 수 있듯, 골프에서의 진정한 재미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미스샷이 일상사요, 홀인원만이 아니라 굿샷이라고 불리는 샷도 우연한 행운이라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골프가 재밌게 느껴지는 법이다. 골프 경기에 너무 집착하면 계절에 따라 부는 샛바람이나 하늬바람을 계절의 전령으로 여기지 못한다. 오히려 순풍이다 역풍이다, 슬라이스 바람이다 훅 바람이다 하며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

    감성이 없는 골퍼에게는 맑아졌다 흐려졌다를 홀마다 반복하는 하늘의 모습조차 두렵게 된다. 골퍼가 스코어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새의 지저귐도, 곤충이 날아다니는 소리, 심지어 아이가 뛰노는 소리도 귀찮은 존재가 되고 만다. 한발 더 나가 골퍼가 골프에 미치면 페어웨이에 곱게 핀 민들레도 꽃잔디밭도 곱게 물든 단풍나무도 스윙의 방해꾼으로 여긴다. 날아가던 볼이 불운하게 새를 맞히고 떨어져 벙커로 들어가면 울분을 터뜨리는 골퍼도 있다. 가엾게도 볼에 맞은 새가 죽어가는데도 말이다. 골프의 진정한 재미는 한발 물러서서 라운딩 자체를 즐기는 여유를 가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골프만큼 위로와 희망으로 넘치는 경기는 없다. 비록 드라이버 비거리가 짧은 나를 압도하는 장타자를 만나더라도 퍼팅에서만큼은 내가 뛰어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드라이버 비거리에서 30야드 정도 차이가 나더라도 퍼팅에서 앞설 수 있다는 자부심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가득하다
    건강한 남녀노소라면 누구나 찬연한 미래를 가질 수 있듯 골프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시작하더라도 멋진 골퍼로 성장한 사례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오랜 세월에 걸쳐 더퍼(Duffer)였던 골퍼라도 갑자기 있던 검은 구름을 헤치고 나오는 한 줄기의 광명을 보게 되는 예가 적지 않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골프도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가득하다는 인식이 관건이다. 쉽게 포기하는 사람에게 행운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

    필자의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는 68타다. 골프를 시작한 지 30년이 됐지만 68타는 겨우 4번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생의 여정이란 옥돌 밭에서 잡석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조개무지에서 진주를 찾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70대를 치다가 80대의 스코어가 나오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68타를 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운동이 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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