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호

조기 치료와 가족 지지가 질환 호전의 관건

조현병

  • 김승현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2014-06-19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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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 치료와 가족 지지가 질환 호전의 관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조현병 환자의 3분의 1은 일상 수준으로 회복된다.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조현병(調鉉病)이란 병명은 예전 정신분열병(정신분열증)으로 불리던 진단명으로, 국내에선 2011년 개정돼 현재 공용 학술용어로 쓰인다.

    정신분열병이란 용어는 ‘schizophrenia’를 옮긴 것으로, 1908년 스위스 정신의학자 파울 오이겐 블로일러가 이전에 사용되던 ‘조발성 치매’라는 병명 대신 schizo(분열)와 phrenia(정신)라는 용어를 조합해 ‘schizophrenia’라고 개명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영어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질환명이다.

    그러나 정신분열병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 편견과 오해로 최근 동양문화권에선 병명 개정에 대한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일본은 정신분열병이란 용어 대신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 홍콩은 사각실조증(思覺失調症)으로 개명했고, 우리나라도 조현병으로 개명했다. 조현(調鉉)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의미로, 조현병 환자에게서 보이는 정신사회적 기능의 혼란 상태를 지칭하기 위해 채택됐다.

    조현병의 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약 1%에 해당할 만큼 드물지 않다. 하지만 환자는 물론 가족도 함께 고통받으며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다. 발병은 대부분 후기 청소년기부터 시작되며 남성 환자는 20세 전후, 여성 환자는 조금 늦게 30대에 발병하는 경우가 흔하다. 조현병이 10세 이전 혹은 60세 이후에 발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남성은 20세 전후, 여성은 30대에 주로 발병



    흔히 보이는 증상으로는 피해망상, 종교적 망상, 관계망상 같은 사고의 장애, 환청, 환시, 환촉 같은 지각장애, 감정의 둔마(鈍痲·정신적으로 거칠어지고 모든 일에 무관심해지는 증상), 즐거운 느낌을 표현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기 어려운 정동과 인지의 장애, 말수가 지나치게 줄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는 언어의 장애 등 정신기능 전 영역에 걸쳐 심각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지나칠 정도로 쉽게 흥분하거나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급성기가 지나가면 사회생활이 극도로 위축돼 밖으로 잘 나오려 하지 않고 타인과의 사회적 접촉을 어려워하며 집 안에서만 혼자 지내려는 경향을 보인다. 자폐적 생활태도와 일상에 대한 무관심으로 개인위생 관리도 잘하지 못해 지저분한 모습으로 내원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다수 환자는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생겼다는 병식(insight)이 부족해 주변의 도움을 구하거나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기가 어렵다. 가족에 의해 타의로 내원하는 경우가 흔하고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병식 부족, 자발성 결여, 가족이나 일반인의 정신질환에 대한 무지와 편견도 조현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드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조현병의 직접적 발병 원인은 아직 불확실하며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를 비롯한 여러 주요 신경전달계의 균형 이상이 증상 발현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전적 소인이나 태생기의 뇌신경계 발달 문제가 뇌신경회로망의 정상적 성장이나 발달을 저해해 조현병을 유발한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정신사회적 스트레스는 조현병의 직접적 발병 원인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증상의 일시적 악화 혹은 질환 재발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때문에 증상 호전 후에도 지나치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일반 질환과 마찬가지로 조현병도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는 게 매우 중요하며, 정신의학에 대한 전문지식과 수련과정을 거친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모호한 심리상담이나 민간요법은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일단 조현병이 의심되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치료 시작 시기가 늦을수록 호전 반응도 더디고 일상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1950년대 처음으로 항(抗)조현병 약물이 개발된 후 60여 년이 지나면서 많은 종류의 신약이 나왔고, 현재도 더 나은 치료효과를 거두기 위해 개발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조현병의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지 못한 상태이고 약물 역시 치료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그러나 환자 개개인의 증상과 경과 상태에 따라 어느 정도 맞춤치료가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기전의 약물이 개발돼 있으며, 약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숙련된 전문의도 적지 않다.

    첫 발병 후 최소 2년간 유지치료 권장

    조현병이 다른 정신질환과 차이 나는 점은 재발을 거듭할수록 질환의 심각도가 더욱 심해지고 일상 수준으로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치료기간도 다른 정신질환보다 길어 일반적으로 첫 발병 후 적어도 2년간 유지치료가 권장되며, 두 번 이상 재발한 경우엔 적어도 5년 이상 장기간 유지치료가 필요하다.

    치료에 대한 호전 정도는 환자마다 다르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대략 환자의 3분의 1은 거의 일상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3분의 1은 중등도의 증상이 지속되고 나머지 3분의 1은 치료를 해도 심각한 증상이 지속되는 난치성 조현병 환자군에 속한다. 조현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적절한 투약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급성기엔 약물치료 외에도 전기경련요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유지치료 기간엔 심리치료, 인지행동치료, 직업치료 등의 재활치료 프로그램도 약물치료 못잖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식 부족으로 투약을 거부해 재발을 거듭하는 환자에겐 장기지속형 주사제제(long acting depot antipsychotic drug)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한 달에 1회의 근육주사만으로 매일 경구로 투약하는 효과와 유사한 치료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요약하면, 조현병의 경과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인자는 조기진단과 조기치료, 충분한 기간의 적절한 약물유지치료, 치료진과의 긴밀한 의사소통, 가족의 적극적인 지지, 질병과 맞서 싸워 극복하려는 용기와 자존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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