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호

위기의 땅에 샘솟는 희망 제2 중동 붐 일어날까

종전 11년, 이라크를 가다

  • 글·사진 이진숙 │ MBC 보도본부장 leejs@mbc.co.kr

    입력2014-06-20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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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땅에 샘솟는 희망 제2 중동 붐 일어날까
    2004년 6월 21일 새벽, 새벽 근무를 하면서 외신을 검색하던 필자의 눈에 ‘한국인 피랍’이라는 제목이 번쩍 띄었다. 당시 33세의 김선일 씨가 ‘앗타우히드왈지하드’라는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돼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알자지라 방송에 공개됐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한국인의 피랍 소식에 전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외교부는 김씨의 석방을 위한 노력에 나섰으나 그는 다음 날 참수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한국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지 이틀 만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김선일 사건 이후 우리 정부는 이라크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했고, 방문을 엄격히 제한해왔다. 외교관이나 현지 진출 기업의 주재원 등 극히 제한된 인원이 여행허가증을 발급받아 이라크를 여행한다. 외교부는 여행 목적이 명확한 방문자에 한해 경호팀과 안전한 숙소를 확보했다는 서류를 확인한 다음 허가증을 발급해준다.

    필자와 카메라기자 두 명 등 취재팀 3 명도 며칠에 걸쳐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서야 여행허가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여행허가증을 발급받아 취재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다.

    바그다드 여행자들은 주로 두바이나 카타르 등 걸프 지역에서 비행기를 바꿔 탄다. 두바이 공항에서 바그다드행 비행기를 타면서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했다. 바그다드를 수십 차례 여행했지만 비행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대부분 육로로 다녀야 했다.

    두바이 거쳐 바그다드로



    전쟁 기간에 이라크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옆 나라 요르단의 암만에서 렌터카를 계약하는 것이 첫 번째 절차였다. 이라크 치안 상황이 악화하면 할수록, 또 국경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도로 사정과 거치는 도시들의 여건이 나빠질수록 렌터카 운전사에게 지불하는 비용도 늘어난다. 전쟁이 극에 달했을 때 바그다드행 렌터카는 편도 5000달러를 부를 만큼 구하기 어려웠다. 전쟁 특수 속에서 렌터카 기사들은 한 번 운전해 몇 년치 수입을 챙기기도 했다. 호부즈 빵을 챙기고 보온병에 차를 넣어 옆 좌석에 던져두면 그때부터는 ‘인샬라(신의 뜻)’다. 운이 좋으면 바그다드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고 신의 가호가 없다면 반군에게 납치되거나 강도들에게 목숨을 잃는 일도 생긴다. 그것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암만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1000km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폭격에 허리가 부러진 육교들과 망가진 자동차들, 시골 읍내에서 울부짖던 아낙네들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전쟁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기억들, 이를테면 새벽 하늘에서 쏟아질 듯 빽빽하던 별들과 사막의 바람에 핏빛 양귀비가 흔들리는 풍경에 취해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시골 어느 식당에서 이스티칸 유리잔에 뜨거운 차를 마신 기억도 날 것이다. 국경을 통한 육로 이동은 불안하고 피곤한 고행임에도 이런 낭만적인 순간도 가져다 준다.

    바그다드로 향하는 항공기 운항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이라크 상공이 비행금지 구역으로 설정되면서 전면 금지됐다. 2003년 이라크전 이후에는 반군의 공격 위험으로 바그다드행 여객기는 운항되지 않았다.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치안이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항공기 운항도 서서히 정상화했다. 현재는 에미리트항공과 카타르항공 등이 바그다드행 항공기를 운항한다.

    필자로서는 11년 만의 바그다드 방문이었다. 2004년 2월, 이라크에서 두 달간의 체류를 마지막으로 바그다드에 작별을 고했다. 11년 만에 다시 찾은 이라크, 예전에는 사담 국제공항으로 불리던 바그다드 공항은 공항으로서의 면모를 제법 갖췄다. 1991년 걸프전 때 미국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궁에 집중 포화를 퍼부었는데 방송사와 공항 등 주요 시설에도 폭격을 가했다. 미군의 공습을 피하려 이란 등 인근 국가로 피신한 항공기들이 이라크로 돌아와 재운항한 것은 몇 년이 지난 뒤였다.

    VIP터미널에서 한 시간가량 대기하자 우리를 게스트하우스로 태워갈 차량이 도착했다. 공항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는 40분 걸렸다. 바그다드 시내로 들어서자 다양한 색깔의 선거 포스터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규격이나 장소 제한도 없이 건물 벽과 가로등, 로터리 주변에 수십, 수백 개가 어지럽게 나붙어 있었다. 의원 328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 9000명이 입후보했다고 하니 27대 1의 높은 경쟁률이었다. 여성 후보의 포스터도 많이 보였다.

    위기의 땅에 샘솟는 희망 제2 중동 붐 일어날까

    비스마야 신도시 PC 플랜트 준공식.



    말리키 총리는 제2 사담 후세인

    2006년부터 집권한 말리키 총리가 이번에 다시 집권에 성공하면 그는 12년을 집권하게 된다.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가안보부 장관 등이 공석인 상태에서 그는 3개 부처의 장관직을 대행한다. 총리직과 함께 내무부, 국방부, 국가안보부 등 주요 부처의 권력을 독점한 셈이다.

    그럼에도 말리키는 시아파만의 총리로 불린다. 북부 쿠르드 지역은 사실상 자치독립을 유지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 때 집권세력이던 수니파는 말리키 정권에서 배제돼 그의 영향력은 시아파에만 미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슬람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최근 이라크 영토의 30%를 점령해 3차 이라크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말리키 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2011년 미군 철수를 완료한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을 때는 군사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을 밝혔고,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면서 유가가 급등했다.

    오바마 정부는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지상군은 투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에 지상군을 투입해 2011년 말 철수할 때까지 9년 동안 이라크에 주둔했지만 치안을 완전히 회복시키지 못했다. 미군은 공식 사망자 4400명에 부상자 1만2000명이라는 희생을 치렀지만, 큰 소득 없이 이라크를 떠나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연임에 성공해 12년 집권을 보장받은 말리키 총리는 사담 후세인에 견줄 만큼 독재 정권을 유지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필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이 같은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 답변하기보다 지금의 상황이 답을 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이라크 국민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언론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들은 나를 비판할 수도 있고 때로는 모욕을 주기도 하죠. 언론의 자유를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의 지지자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은 후세인 정권 때는 이런 말을 할 수도 없었죠. 반대파의 귀에는 정부에 반대한다는 말만 들릴 뿐입니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애쓸 뿐이죠.”

    리버사이드 게스트하우스는 이라크에서 사실상 해방구 같은 시설이다. 무장한 장갑차가 24시간 주변을 감시하는 리버사이드 게스트하우스의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20대가량의 SUV 차량이 대기 중인 주차장이 나타난다. 모두 특수 제작된 차량으로, 창문은 두꺼운 방탄유리,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에는 방탄철판이 만약에 있을 수 있는 외부의 공격을 막아준다. 그러나 리버사이드 게스트하우스의 철문 바깥쪽과 안쪽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주차장 바깥이 언제 어디서 총탄 공격을 받을지, 납치당할지, 자살폭탄 공격의 희생자가 될지 모르는 전쟁터라면 주차장 안쪽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었다고 할 만큼 평화스러운 광경이 펼쳐진다. 잘 가꿔진 잔디밭에 아이보리 색깔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고, 야자수 앞에는 흔들의자와 해먹이 놓여 있고, 건물 앞 야외수영장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한국 투자를 기다린다”

    마진 사장이 운영하는 이 게스트하우스는 한화건설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우건설 등 우리나라 기업 임직원들이 치안을 염려하지 않고 머물 수 있게 숙박시설과 경호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라크 전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과 이라크 정부 관리들을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드나드는 만큼 한국인 주방장을 고용해 하루 세끼 식사에 반드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놓았다. 김치는 물론 된장찌개, 멸치볶음, 나물무침 따위를 제공한다.

    이라크를 방문하게 된 것은 말리키 총리와의 인터뷰 약속이 성사됐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전쟁이 끝난 이후 전후 특수를 노린 한국 기업의 진출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말리키 총리는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컸다. 제2의 중동 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한국 기업이 이라크로 향하고 있었고 여러 의미에서 말리키 총리와의 인터뷰는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4월 15일 이라크 총리 공관, 당초 인터뷰는 그의 집무실에서 하기로 약속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장소가 변경됐다. 총리공관 지하에 있는 커다란 홀에 인터뷰를 위한 세트가 마련됐다. 비서실 직원들은 말리키 총리 뒤로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라크 국기를 배치했다. 카메라와 조명, 의자와 테이블, 국기까지 배치가 끝나자 말리키 총리가 들어왔다. ‘뚱한 말리키’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그는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의 인물로 알려졌다. 총리 임기는 4년이지만 2006년부터 계속 연임에 성공한 그의 지도자로서 성패는 국가 안정과 치안 확보에 달려 있다. 그래선지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요청은 절실했다.

    “투자를 원하는 다른 기업들에 환영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라크 진출에 우려를 갖고 있다면, 여러분보다 먼저 이라크 투자 경험이 있는 기업들은 안전 문제를 겪지 않았다고 말씀드립니다. 또 치안이 완전히 확보된 지역에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 방문과 한국 기업과의 경험에 비춰볼 때, 나는 한국은 모든 면에서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건설, 주택, 교통, 철도, 석유, 항만, 공항 등 전 분야에 걸쳐 한국은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전 분야에 진출해주기를 바랍니다.”

    “비스마야는 이라크 국가 재건의 기반”

    4월 16일, 바그다드에서 동남쪽으로 10km 떨어진 비스마야에서는 한화건설의 PC플랜트 준공식이 진행됐다. 준공식에는 이라크 정부 행사로 착각할 만큼 이라크 관리가 대거 참석했다. 비스마야 아파트를 사전 청약한 주민들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행사장을 방문했다. 말리키 총리와 사미 알아라지 국가투자위원회 의장 등은 축사까지 했다.

    이라크 정부는 비스마야 10만 가구 프로젝트에 차기 정부의 성패를 걸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힘을 실어준다. 1830ha, 여의도 면적의 6배에 달하는 신도시 건설은 바그다드 주변의 지도를 바꿀 예정이다. 이라크 정부는 전후복구 사업으로 100만 가구 프로젝트를 계획하는데, 이 가운데 10분의 1인 10만 가구 공사를 한화건설에 맡겼다. 단일 기업이 짓는 최대 규모 주택공사로 알려진 비스마야 프로젝트로 한화건설이 받는 돈은 8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0조 원에 육박한다. 10만 가구, 60만 명의 보금자리가 될 신도시가 건설되면 국민 주택 문제가 해결되면서 나라가 안정될 거란 게 말리키 정부의 기대다. 비스마야 항공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말리키 총리실은 필자의 취재팀에 경호팀의 헬기까지 제공했다.

    이라크의 잠재성을 보고 진출한 한국 기업은 비스마야 신도시를 건설하는 한화건설만이 아니다. GS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여러 기업이 잇달아 대규모 공사를 따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8월 천연가스 처리시설에 이어 올해 바스라주에서 5억 달러가 넘는 석유플랜트 업그레이드 공사를 따냈다. GS건설과 SK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4개 건설사는 지난 2월 합작으로 6조4000억 원 규모의 카르발라 정유공장 공사 계약을 체결했고, 한국석유공사는 지난 4월 하울러 광구 데미르닥 구조에서 2억5800만 배럴의 원유 매장량 규모를 확인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제2의 중동 붐이 이라크에서 시작됐다며 반색했다.

    ‘건설업계의 사관학교’라 불리는 대우건설 정의춘 상무의 말이다.

    “이라크는 잠재력이 무한한 나라입니다. 석유 매장량이 세계 5위고요. 잠재 매장량은 세계 1위입니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석유 관련 시설 공사가 활성화할 걸로 보고요. 인프라 쪽 투자가 활성화하리라 봅니다.”

    이라크에서 대규모 공사를 따내면 부수적인 연계 효과도 크다. 실제 비스마야 10만 가구에 설치되는 엘리베이터, 전자제품 등도 대부분 한국산 제품을 쓸 계획이다. 최광호 한화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본부장은 “철골 하나 패널 하나 모든 것이 한국 제품으로 이뤄졌다”며 뿌듯해했다. 이라크의 잠재성을 보고 기업 진출이 늘어나면서 현재 이라크에 머무는 한국인은 14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치안이다. 테러와 폭력으로 지난해에만 88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올해 들어서는 다섯 달 동안 4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된다. 취재팀 역시 방탄유리가 장착된 SUV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고, 거리 취재 때도 대여섯 명으로 이뤄진 무장경호팀의 경호를 받아야 했다. 치안 문제 때문에 단신 부임한 주 이라크 대사관의 직원들은 사무실이자 침실에서 업무도 보고 잠도 잔다. 조정원 바그다드 주재 대사는 “대사를 포함해 모든 직원이 사무실과 침실을 같은 공간에 두고 있다. 24시간 근무체제다. 저희는 휴일도 없고 밤 11시에도 업무협의를 할 수 있고 행동의 자유가 제약돼 있다”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내전

    위기의 땅에 샘솟는 희망 제2 중동 붐 일어날까

    PC 플랜트 준공식에 직접 참석한 말리키 총리(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필자가 현지 취재를 한 4월 중순 이미 팔루자를 비롯한 안바르 지역은 말리키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해방구’였다. 총선에서 투표조차 실시하지 못할 정도로 치안은 악화됐다. 선거가 끝나면 말리키 정부의 힘이 강화되고 나라가 안정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ISIL이 이끄는 반군이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해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자국 국민의 철수 계획에 착수했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도 상황에 따라 철수해야 할지 모른다. 미국은 2012년 리비아 벵가지 미국영사관에 폭도가 난입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미국대사가 살해된 악몽을 갖고 있다.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우리 정부도 비상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더는 이라크 입국 허가를 내주지 않고 현지 체류 중인 기업 직원 등 교민에게는 안전 지역으로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라크의 치안 악화는 한국의 무기 제조사에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방산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지난해 말 국산 경공격기 FA-50 24대를 이라크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조2000억 원 규모로 우리나라 방산 수출 사상 최고 기록인데, FA-51뿐 아니라 다른 무기도 추가로 수출할 예정이다. 무기 수출과 함께 한국산 무기 체제에 대한 교육과 훈련도 한국이 담당한다. 단 한 명의 군인이 이라크에 가도 파병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이라크의 인력이 한국으로 파견돼 훈련을 받는다고 이라크 측 관계자는 설명했다.

    납치, 살해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라크에서는 경호 사업이 호황이다. 취재팀이 묵었던 리버사이드 게스트하우스는 이라크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의 중간 기착지 구실을 한다.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투자를 원하는 외국 사업가에게 안전한 숙소는 물론 방탄차량과 경호 인력을 제공한다. 방탄차량에 경호팀 한 팀을 고용하려면 하루 수백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업체를 운영하는 마진 사장은 2003년 4월 바그다드가 미군에 의해 ‘해방’되고 난 이후 영국에서 이라크로 건너왔다. 10대 때 이라크를 떠난 마진 사장이 귀국한 것은 이라크의 잠재력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이라크 전역에 방탄 차량 200여 대를 운행하며 경호사업을 운영 중이다.

    한국의 중동 진출이 최고조에 달한 1980년대 초반, 서울-바그다드 간에는 직항 노선이 개설돼 있었지만, 현재 바그다드를 가려면 두바이 등 인근 국가에서 바그다드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제2의 중동 붐에 대비해 직항을 개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의 불허 방침은 단호하다.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한 나라에 어떻게 직항을 개설하느냐는 것이다. 김선일 씨 사건이 발생한 2004년부터 이라크는 줄곧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돼 있는데, 취재팀 역시 며칠 걸려 외교부로부터 여행허가서를 발급받고서야 이라크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1960년대 베트남 파병은 찬반 논란이 거셌지만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0~80년대 중동 건설 붐은 한국을 경제적으로 도약하게 했다. 2014년 이라크, 내전과 정정(政情) 불안으로 선진국이 진출을 꺼리는 곳에 한국의 기업들이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며 이라크로 들어갔다. 이라크의 3분의 1을 장악했다는 반군 세력을 정부가 물리칠 수 있을까. 아니면, 말리키 정부가 반군 세력을 물리치지 못하고 시리아처럼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게 될까. 이라크를 통해 제2의 중동 붐이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기업을 생각해서라도,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쟁, 이라크 전쟁 등 끝없는 전쟁에 시달려온 이라크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평화가 간절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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