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호

포이즌 필(Poison Pill) 도입 논란

적대적 M&A 대응

  •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KAIST 겸직교수

    입력2014-06-20 10: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방어 기제 중 하나인 포이즌 필(Poison Pill) 도입을 두고 논란이 많다. 포이즌 필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주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다. 시장의 발전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과 시장을 발전시킨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포이즌 필(Poison Pill) 도입 논란

    적대적 M&A 방패 ‘포이즌 필’

    기업인수·합병의 활성화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 지식재산금융의 발전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화두인 창조경제에도 부합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인수합병은 호의적 인수합병과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나뉜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대상 회사 경영진의 반대에도 공개매수, 위임장 쟁탈 등을 통해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상장회사가 이 위험에 처해 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헤지펀드 등 외국인 자본의 규모가 우리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포이즌 필(Poison Pill)은 이러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방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헤지펀드 등이 적대적 M&A(기업 인수·합병)를 목적으로 주식 공개 매수나 매집을 할 때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여타 주주들에게 주식을 낮은 가격으로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다.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잘 알려진 특별다수결제도, 공정가격 조항, 시차 이사회 조항, 황금주식, 차등의결권제도, 백기사, 제3자에 대한 신주 또는 전환사채의 배정, 자기주식취득, 황금낙하산 제도, 그린 메일 등과 목적이 같다.

    그러나 이 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갈린다. 기존 대주주의 지배구조를 고착시키고 자유로운 기업인수합병을 억제해 시장의 발전을 막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적대적 인수합병제도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정반대의 주장도 나온다. 최근 창조경제 민관협의회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건의한 뒤 우리나라에서도 포이즌 필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진다.

    최근 미국 델라웨어 주 대법원에서 포이즌 필의 적법성과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와 화제다. 델라웨어 주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작지만, 미국에서 회사법이 가장 잘 발달한 곳으로 유명하다. 미국 주요 상장사의 절반이 이곳에 본사를 뒀다. 이번 판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헤지펀드 방어 목적



    헤지펀드인 서드포인트는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의 주식 9.6%를 소유해 왔다. 그리고 이 지분으로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권을 취득하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서드포인트는 경영권 인수 가능성, 소더비 소유 부동산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게 될 것이란 등의 주장을 공공연히 밝혀 소더비를 압박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소더비는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포이즌 필을 도입했다. 소더비는 서드포인트가 경영권을 목적으로 지분을 인수하는 경우 사전에 회사에 통보해야 하며 20%까지만 소더비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권리도 주주총회에서 승인하지 않을 경우 1년 이내에 효력을 잃는다는 규정을 만들어 대항했다.

    서드포인트는 즉각 반발하며 소더비의 결정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서드포인트는 소더비에 대해 아무런 위협을 가한 바 없다고 주장했고, 소더비의 주장과 요구가 이사회의 ‘충실의무(fiduciary duty)’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충실의무는 경영진이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투자자의 신뢰와 기대를 배반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소더비는 “포이즌 필은 합법적인 조치였다”고 반박하며 맞섰다.

    가처분 재판에서 델라웨어 주 대법원은 서드포인트가 아닌 소더비의 손을 들어줬다. 서드포인트가 자신들의 주장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 판결은 포이즌 필의 적법성을 법원이 인정하고, 나아가 헤지펀드의 행동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판결로 평가받는다. 참고로, 헤지펀드는 주로 여유자금이 많은 우량회사의 지분을 인수해 적극적으로 주주권한을 행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관투자자와 연계해 경영권을 장악, 배당금을 확대하고 나아가 대상 회사를 매각해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그동안 미국 법원은 포이즌 필의 도입 여부에 관한 사항을 주주의 권한이 아닌 이사회의 권한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물론 주주의 승인이 없는 이사회의 포이즌 필 도입은 엄격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 다만 주주의 승인이 있다면 법원으로부터 포이즌 필의 적법성을 인정받는 데 다소 수월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주주와 경영진의 갈등에 대해 법원이 주주의 허락 없이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포이즌 필을 선택,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적대적 M&A를 방어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2003년 모나코 국적 소버린펀드의 SK(주)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소버린은 SK(주)가 SK텔레콤의 지분 및 기타 부동산을 보유해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보고 경영권 획득을 위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지배구조의 개선을 표방하면서 경영진 교체를 요구했으나 주주총회에서 실패했다. 소버린은 투자 2년 만에 한국을 떠나면서 원금의 4배가 넘는 수익과 환차익을 얻었다. 2006년 KT&G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7년 현대엘리베이터는 외국계 펀드로부터 경영권이 위협받자 경영권 방어를 위해 미국의 다국적기업이던 쉰들러를 백기사로 끌어들인 바 있다. 1997년 한화종합금융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뒤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하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방어했다.

    수년 전 우리나라에서 회사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포이즌 필의 도입 문제가 검토된 적이 있다. 그러나 지배주주의 권한 남용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 상태에서 오히려 기존의 지배구조를 고착화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 도입이 무산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류가 바뀐다. 삼성전자나 포스코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 회사의 외국계 자본 지배율이 50%를 넘나드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연대해 이들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한다. 외국계 자본의 적대적 M&A에 대비한 방어수단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의 경우 주식옵션의 자유화 조치 등을 통해 미국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경영권방어제도를 이미 갖췄다. 신주예약권과 종류주식(소정의 권리에 관해 특수한 내용을 부여한 주식) 등이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활용된다. 통계에 의하면 이미 300개 이상의 상장사가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계 헤지펀드의 진출이 많은 유럽에서도 포이즌 필을 포함한 경영권 방어 제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포이즌 필 도입 필요

    혹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가 백기사 구실을 하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한 접근방법이어서 논란이 많다. 그보다는 회사법 차원에서 합리적인 방어수단을 정비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제도적 장치 마련과는 별도로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정비도 필요하다. 적대적 인수합병의 경우 부정적인 면도 있을 수 있지만 기업인수합병을 촉진하고 나아가 대상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합리적인 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하는 등 순기능적인 측면도 있으므로 이를 재조명해 어느 정도 적정한 선에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포이즌 필(Poison Pill) 도입 논란
    김승열

    1961년 대구 출생

    서울대 법학과,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LL. M.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금융위원회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Paul Weiss(미국 뉴욕) 변호사


    헤지펀드와 같은 재무적 투자가가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자이익 증대를 도모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취약한 방어수단 등으로 인해 헤지펀드 등이 대상 회사의 경영권을 너무 쉽게 장악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특히 기술집약적인 벤처기업의 경우 초기 창업자가 재무적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부당한 경영권 위협에 대응해 적정하게 자신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절실하다. 포이즌 필 제도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