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호

통 큰 거목인 줄 알았는데 네거티브 하면서 옹졸함 부각

정몽준은 어떻게 무너졌나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4-06-20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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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몽준은 박원순에게 참패했다.
    • 정 후보는 재벌 2세(재산 2조 원), 현대중공업 오너, 7선 의원인 정치 거목이다.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1위, 서울시장 후보 1위를 달렸다. 그런 그가 어떻게 무너졌을까.
    통 큰 거목인 줄 알았는데 네거티브 하면서 옹졸함 부각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6월 4일 개표 방송을 보고 있다.

    5월 어느 날, 여권 내 정보통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기자 앞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으로…트위터에…들어가볼게요. 자, 보세요. 정몽준 아들, 세월호, 국민 미개 발언, 정몽준 부인, 아들 발언 옹호…이런 내용으로 도배하고 있잖아요. ‘정몽준 파이팅’ 이런 말은 눈 씻고 봐도 없고. 하나 있네. 변희재가 쓴 거…SNS에서 이렇게 묵사발이 나는데 어떻게 선거 치를지….”

    이 인사는 이런 말도 했다.

    # 정몽준 후보 사퇴 아이디어

    “당내 극소수에선 ‘정몽준이 아들 발언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 경선 후보직을 사퇴한 뒤 김황식 지지를 선언하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도 나왔어요. 사과하고 희생하는 모습으로 기득권 이미지를 해소할 수 있고,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고, 차기 대선주자 위상도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였죠. 이러면 김황식이 박원순을 이길지 모른다고도 봤죠. 이런 아이디어까지 나올 정도로 정몽준을 둘러싼 상황이 어려웠어요.”



    세월호 참사는 새누리당 수도권 후보들의 지지율을 일제히 떨어뜨렸다.

    # 하락폭 유독 커

    문제는 하락폭이다. 인천시의 유정복, 경기도의 남경필에 비해 정몽준의 하락폭이 유독 컸다. 세 후보 모두 사건과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었고 피해자는 경기도에 집중돼 있었다.

    정 후보의 아들과 부인 발언이 정 후보의 지지율 하락폭을 키웠다고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본다. 아들은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정 후보는 눈물의 사과를 했지만 부인인 김영명 여사는 아들 발언에 대해 “바른 소리 했다고 위로해주시긴 하는데 시기가 안 좋았고”라고 말했다. ‘한 번도 아니고 유권자의 골을 지르기에 충분했다’는 게 새누리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 일베의 문체와 논리 닮아

    아들이 ‘국민 미개’ 글을 쓴 동기는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 다만, 정몽준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아들의 글은 일베의 문체와 논리를 닮았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들 글의 술어들은 ‘모르나’‘한거야’‘하잖아’‘거지’‘아니겠냐’로, 반말 대화체인 일베의 술어 문체와 유사해요. 아들 글의 논리는 ‘박근혜 대통령은 열심히 하는데 국민의 수준이 미개해 소리 지르고 욕하고 물세례 한다’는 것으로 당시 일베 정치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리죠. 미국 유학을 갔다 와 강남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훈남 상류층 자제 중에도 일베에 글을 쓰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들은 상류층이긴 하지만 진학이나 구직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로서 본인을 약간 패배자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요. 이들도 진보, 종북, 여성 등을 공격하는 글을 쓴다고 해요.”

    아들은 평소 일베에 전혀 접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여론 동향에 민감한 일부 여권 인사들의 눈으로 보기에, 아들의 글과 일베의 여느 게시판 글들 사이에 유사함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 복원력도 크게 못 미쳐

    정 후보 캠프 관계자는 “아들은 페이스북에 ‘정몽준 아들’이라고 간판 내건 것도 아니므로 외부로 알려지겠느냐고 생각한 것 같다. 부인도 당원 모임이므로 말이 밖으로 안 새나가리라고 여긴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300여 희생자가 발생한 엄중한 상황에 국민 정서와 괴리된 발언을 잇달아 내뱉은 후보 가족, 아들 글로 이미 큰 피해를 보고도 후보 가족에게 재발 방지를 당부하지 않은 캠프 모두 문제다. 상대 후보 측은 비슷한 논란을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로 하락한 수도권 새누리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다시 반등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전멸했을 것이다. 유정복 인천시장과 남경필 경기지사는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에게 밀리기도 했으나 결국 당선됐다. 이들의 지지율이 투표일이 가까워오면서 어느 정도 복원됐다는 의미다. 반면,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 복원력은 이들에 크게 못 미쳤다. 그의 지지율은 세월호 참사 후 박 시장에게 일관되게 10%포인트 이상 뒤졌고 실제 득표에서도 13%포인트 열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한 새누리당 광역단체장 당선인은 “정몽준 후보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김황식 후보와 네거티브 전을 벌일 때 이미 패배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 후보 측은 김 후보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화 통화한 것을 두고 “김 실장 거취를 밝히라”며 공세를 폈다. 김 후보가 박심(朴心)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 후보 본인도 김 후보 공격에 직접 가세했다.

    # 앞선 후보가 네거티브 매달려

    이후에도 정 후보 측은 김 후보에 대해 군 면제 의혹 등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김 후보 측도 정 후보를 대상으로 금권 선거 의혹 등을 연이어 터뜨렸다. 급기야 김 후보가 “나는 친박 후보”라고 이른바 ‘정치적 커밍아웃’을 한 뒤에도 양 후보 간 공방은 계속됐다. 이어지는 새누리당 광역단체장 당선인의 말이다.

    “정 후보는 같은 정당의 김 후보와 난타전을 벌이면서 잘게 비쳤고 상대 정당의 박원순 후보는 고고하게 비쳤죠. 더구나 네거티브는 보통 뒤지는 후보가 최후의 수단으로 하는 것인데 정 후보 측은 여론조사에서 월등히 앞서 달리면서도 김황식 네거티브로 일관했어요. 정 후보는 당 대표까지 지낸 7선 의원에다 지지율 1위의 대선주자이므로 사람들은 그를 통 큰 거목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당 후보 자리를 놓고 옹졸하게 싸우는 것으로 비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렇게 경선을 거치며 정치적 면역력이 급감한 뒤라 세월호 사건과 아들 발언의 충격을 감내하지 못한 것이죠.”

    이 당선인은 “오늘날까지 친이-친박이 대립하는 근본 원인도 결국 네거티브로 점철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있다. 이번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 인천·경기와 다른 서울

    선거 막판 새누리당은 수도권 전멸의 극한 위기감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사과하는 눈물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였다.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눈물’로 유권자에게 호소했다. 그러면서 “박근혜를 구해달라”는 선거 전략을 들고 나왔다. 유정복 시장 측 관계자와 남경필 지사 측 관계자는 “이 전략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유권자 상당수를 투표장으로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정 후보의 경우엔 어땠을까. 여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박근혜 구하기가 정 후보에겐 잘 먹혀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이 관계자와의 대화 내용이다.

    ▼ 정 후보 캠프 내에선 투표 전날까지 상당히 추격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는데.

    “캠프 관계자의 말대로 어느 정도 박 시장을 쫓아간 면도 있어요.”

    ▼ 여론 지지율 면에서?

    “그렇죠. 문제는 지지자들의 투표율인데 투표장에 많이 안 간 것으로 보여요.”

    ▼ 사실이라면, 보수층의 투표율이 높다는 일반의 상식과 좀 다른데요.

    “그 상식은 2012년 대선 때의 상식입니다. 보수 성향 시니어들이 서로 전화 걸어 ‘아직 투표 안 했다고? 너, 미쳤냐?’ 하며 사상 최고로 투표율을 끌어올렸잖아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수층의 투표 참여 동력은 확실히 떨어졌죠.”

    ▼ 왜 그렇게 됐다고 보나요?

    “정 후보가 박 대통령을 좋아하는 서울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거예요. 자, 유정복 시장을 봅시다. 그는 확실한 친박이고 그의 뒤로 박근혜의 잔영이 있어요. ‘유 시장에게 투표하기’와 ‘박근혜 살리기’가 명쾌하게 일치해요. 남경필 지사는 친박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기도 승리’가 ‘박근혜 살리기’라는 점에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의 지지자 모두가 동의해요. 이들은 비교적 투표에 적극 참여했고 결국 두 시장·지사의 신승으로 이어졌어요.”

    ▼ 구체적으로 정몽준 후보의 경우엔….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정몽준과 박근혜를 쉽게 연결하지 못했어요. 인지부조화를 겪은 거죠.”

    ▼ 본선 기간 중 정 후보는 박 대통령을 상당히 존중해온 것으로 아는데요.

    “경선 때 김황식은 박근혜의 지원을 받은 친박 후보임을 자처했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보인 면이 있었는데 김황식과 정몽준이 서로 죽일 듯 싸웠단 말이죠. 이에 따라 서울의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 지지자들은 ‘정몽준 승리’가 과연 ‘박근혜 살리기’인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거기에다 세월호 참사가 보통 사건이 아니었잖아요. 정 후보 아들의 ‘국민 미개’ 발언으로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도 정 후보가 다소 ‘밉상’으로 비친 측면이 있었어요. 서청원·김무성 등 새누리당 차기 당권주자들은 주로 인천·경기 쪽만 다니며 ‘박근혜 살려달라’고 했어요. 정 후보 측이 서운해할 정도로 서울을 제외했어요. 정몽준-김황식 경선이 서로의 축복 속에서 끝났다면 본선 상황도 달랐을 겁니다.”

    # “정 후보는 신이 나 있었어요”

    정몽준 후보 측은 박근혜라는 절대 유리한 지형을 활용하는 대신 주로 ‘박원순 네거티브’라는 개인기에 의존했다. 다음은 정 후보 캠프 관계자가 구술한 정몽준 선거운동 참관 내용이다.

    “정몽준 후보는 신이 나 있었어요. 그전에 치른 선거는 선거 같지도 않았나봐요. 대선주자 1위가 되었고, 서울시장 후보 1위가 되었고. 당신이 말하면 언론이 크게 써줬고, 대중이 뜨겁게 반응했고. 이분은 상대의 반응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른 분이 되신 것 같았어요. 청중 앞에서 애드리브를 계속 하셨어요.

    # 아주머니들이 좋아서 다 넘어가시고…

    예를 들면, 당원들 모인 자리에 가서는 ‘누님들~. 감사해요. 누님들~. 아이고. 저 몽준이. 정을 몽땅 준 남자예요. 저 알부자인 거 아시죠?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재벌2세 대권주자가 이렇게 말하니까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좋아서 다 넘어가시는 거죠. 박수치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제가 시진핑 주석 만나고 왔어요. 이 손으로 시진핑과 악수했습니다. 제 손을 잡으면 시진핑의 손을 잡는 셈이죠’라며 사람들과 악수를 해요. 말이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지만 정몽준이 하니까 웃음이 터졌어요. 정 후보도 즐거워하셨어요. ‘아, 이게 진짜 정치인가보다’라고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그는 ‘서민의 언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살도 뺐어요. 그래서 옛날보다 더 잘생기고 더 날씬해 보였죠.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단 두 달만 지나갔으면 정 후보는 대중적인 정치인이 됐을 것이고, 서울시장이 됐을 것이고, 보수 진영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됐을 겁니다.

    # “정몽준다움성을 보여주자”

    그러나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죠. 아들 발언과 부인 발언까지 겹치며 박원순 시장보다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자 후보께서 조바심을 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박 시장 네거티브에 집착했어요. 박사 출신들이 공약 개발을 지원하는 것 같았는데 고만고만한 공약은 많았지만 과거 ‘뉴타운’ 공약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한 방이 없었어요. 학술논문 스타일이랄까.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자. 정몽준다움성을 보여주자. 박원순은 간이 작아서 도저히 못하는, 정몽준만이 할 수 있는 걸 내놓자. 정책의 스케일로 박원순을 누르자’ 이런 의견이 있었지만 선거운동은 시간이 갈수록 네거티브로 흘렀습니다. 몇몇 사람이 ‘후보가 직접 네거티브 하면 안 된다. 후보의 급을 낮추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별로 반영되지 않았고요.

    공문서를 근거로 한 농약 급식 공세는 경미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주지 않았어요. 서울의 앵그리 맘들은 정 후보에게 여전히 화를 내고 있었어요. 박 시장 부인 강난희 씨 잠적설은 강씨가 나타남으로써 정 후보에게 오히려 큰 타격이 됐고요. 박 시장 때 지하철 공기 질이 떨어진 문제는 1000만 시민의 건강에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인데 별로 조명되지 않았어요. 언론도 편향적이라고 봐요. 네거티브라는 큰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졌어요. 플래카드, 선거홍보물, TV 연설, SNS 같은 작은 전투에선 정 후보 측이 다소 밀렸어요. 각 전투에서의 승리가 모여 지지율이 역전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기 힘들었죠.”

    # “‘대중 속으로’ 정신으로 부활할 것”

    정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의 패배를 딛고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을까. 일부 정치 평론가들은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자잘한 네거티브에 몰두했다”고 했고, 진중권 씨는 “서울시장 후보가 되어 늘어놓은 얘기가 농약, 농약, 농약…”이라고 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실리를 잃더라도 명분을 취할 수 있었는데 거물급 이미지까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나 정 후보가 실패를 딛고 재기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정 후보 캠프의 관계자는 “정몽준은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인생을 살았다. 한 번 망해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 우리에게 보여준 그 ‘대중 속으로’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정몽준은 바닥에서 치고 올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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