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朴 대통령, 나라 통치할 판단력 있는지 의문”(보수인사 5인)

보수진영, 박근혜에 절망?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14-07-16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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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여준, 이상돈, 윤평중, 변희재, 황태순의 직언
    • 끝났다. 더 기대할 게 없다
    • 4차원 인사·권위주의·원칙 파괴
    • 지지율 추락 공포로 포퓰리즘 경향도
    “朴 대통령, 나라 통치할 판단력 있는지 의문”(보수인사 5인)
    “박근혜당 벗어나는 새누리당”

    “집권 17개월 만에 친박(親朴) 몰락” “여 당권 비주류 손에”

    김무성 의원이 새누리당 대표에 선출된 것을 전하는 신문 1면 제목이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 여러 번 각을 세웠고 김기춘 대통령실장을 공개 비판했다. 여권은 박 대통령에 냉랭해진 여론이 여당 대표 경선 결과에도 영향을 줬다고 본다.

    박 대통령의 7월 중순 지지율은 40% 초중반. 세월호 사건 이전 60%를 상회하다 상당히 떨어졌다. 그러나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사석에서 걱정을 토로한다. 대구 출신 A 의원은 “인사 파문으로 날을 지새웠다.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북 출신 B 의원은 “눈물의 대국민담화를 했지만 일이 진척되는 게 없다. 죽을 쑨다”고 했다.

    “조언은 무슨…야당 되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황태순 황태순정치컨설팅 대표로부터 보수진영이 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어봤다. 윤 전 장관은 2004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총선 공동선대위원장일 때 선거대책위원회 부본부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상돈 명예교수는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의 요청으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여권 사정에 밝은 내부 관계자 C씨도 인터뷰했다.

    윤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지금 위기인가’라는 질문에 “박근혜 정부는 끝난 거 아닌가요? 더 이상 기대할 게 뭐 있나요? 한때 일했던 친정이라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지금은 스스로 정한 자숙기간”이라며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짧은 코멘트 속에서 “끝난 거 아닌가?”라는 더없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셈이다.

    이상돈 명예교수도 “보수진영이 박 대통령에게 전례 없이 실망한다”고 말했다.

    ▼ 지금은 보수의 대위기라는 시각이 있는데요.

    “위기는 결과죠. 원인을 따져봐야죠.”

    ▼ 원인이 뭔가요?

    “뻔한 것 아닙니까? 도덕적 타락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부정부패에 입을 다물어요. 공직 후보들은 줄줄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요. 왼쪽에 문창극(총리 후보), 오른쪽에 김명수(사회부총리 후보) 두고 국정운영을 하려 했으니 그런 결과가 나오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그 수준을 보여준 거죠.”

    ▼ 보수정권의 재창출도 어렵다고 보나요?

    “보수가 다시 집권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두 번 만에 종 친다고 봐야죠. 더구나 박 대통령도 거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이 명예교수에게 “그래도 박 대통령이 참고할만한 조언을 하나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사례를 말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역사의 종말’의 저자인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논객입니다. 그러나 2008년 대선 초반 ‘공화당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자격이 없다’고 단언했죠. 이어 오바마 민주당 경선 후보를 지지했어요. 후쿠야마는 ‘공화당은 앞으로 4년 내지 8년간 야당이 되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것이 무의미하며 야당이 되어 직접 느껴보는 게 낫다는 뜻. 김종인·이상돈 두 사람은 ‘개혁적 박근혜’의 아이콘이었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보수도 권위주의 질색”

    황태순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 파기 △4차원 인사 △허약한 정책 집행력으로 보수층의 지지를 잃었다고 봤다. 보수 성향 사람들은 신뢰성, 합리성, 추진력 같은 가치들을 좋아하고 박 대통령이 이런 가치에 부합하는 줄 알았는데 최근 급격히 실망한다는 것이다.

    ▼ 박 대통령은 보수 성향 대통령이 분명한데요. 보수진영에서 보기에 박 대통령은 보수의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 중 어디에 더 가깝게 서 있나요?

    “대선 때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내걸면서 새로운 변화를 암시하는 듯했어요. 막상 집권 후엔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줬죠. 구체적 징후는 인사에서 나타났습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국가권력의 무능, 부패, 무책임한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났어요.”

    ▼ 그게 최고 권력자 한 사람 탓만은 아니겠죠.

    “대한민국이 이토록 허약한 체질로 추락한 것은 박근혜 정권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금 정부를 질타하는 야당이 집권하던 10년 동안에도 쉼 없이 허약해져왔어요.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사태의 수습과정에서 허둥대며 우왕좌왕하는 모습만을 연출했어요. 박 대통령이 ‘국가 대(大)개조’를 대책으로 내놓았지만 말만 앞서지 그 작업을 진행할 인물의 발탁에 실패하고 있어요.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인사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습니다.”

    ▼ 통치철학이 어떻다는 건가요?

    “그게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본인과 그 보좌진이 여론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려요. 또 대통령은 권위주의 시절의 통치 스타일에 경도된 것 같아요.”

    ▼ 보수도 권위주의 통치엔 질색인가요?

    “그 점에선 진보와 다를 바 없죠. 보수와 박 대통령이 점점 멀어져요.”

    ▼ 박 대통령에게 어떤 점을 주문하고 싶은가요?

    “언로를 열어야 해요. ‘만만회(박지만, 이재만, 정윤회)’니 ‘만회상환(박지만, 정윤회, 윤상현, 최경환)’ 같은 희한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권한을 장관들에게 과감하게 위임해야 해요. 지금은 청와대가 부처 과장 인사까지 틀어쥐고 있다면서요? 권력은 나눌수록 커지는데 왜 혼자 움켜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겸손해져야 합니다. 대통령은 과거 같은 절대적 결정자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으면 해요.”

    “사상 초유의 일 잦아”

    인터넷 신문을 운영하는 변희재 대표는 온라인상 보수여론의 동향을 전해주었다.

    ▼ 보수 네티즌이 보기에 박 대통령이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

    “통진당 해체와 전교조 불법화, 두 개.”

    ▼ 요즘엔 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일간베스트가 ‘레이디 각하’ 이러면서 박 대통령을 절대 지지해왔죠. 문창극 이후 일베의 익명 논객이 다 돌아섰다고 할 정도예요.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고 한 것을 두고도, 예전엔 덮어둘 문제인데, 하나하나 다 보이는 거예요.”

    ▼ 문창극 총리 후보가 청문회에도 서지 못한 게 불만인 거죠?

    “원칙과 신뢰의 지도자로 이미지 메이킹 해왔는데 이게 180도로 달라지니까요. 포퓰리스트의 면모까지 보이니 거기에 대한 실망이 제일 크죠. 문창극의 강연이 친일, 매국, 민족 비하가 아닌 건 명확해요. 임명권자가 그걸 가려주지 않고 여론에 편승해 날려버렸어요. 세월호 때부터 그랬어요. 박 대통령이 지지율만 보고 통치하는 것 같아요.”

    ▼ 왜 의식할까요?

    “단임제 대통령의 유일한 장점이 지지율을 안 보고 가는 건데. 야, 요즘엔 ‘이분이 평소에도 정치할 때 지지율만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버릇 같아요, 버릇. 다음 선거에 나오는 게 아닌데. 지지율이 떨어지면 자기 리더십이 붕괴된다고 보는 게 아닌지….”

    ▼ 보수 성향 네티즌들도 박 대통령의 인사에 불만이 많은가요?

    “하고 있는 게 다 이상해요. 정성근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 보세요. 문화계는 좌파가 지배하는 곳이므로 문광부 장관은 좌익과 전선을 구축해 싸우는 장수가 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문화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사람을 앉혀놓더니 여론이 안 좋으니 철회할 듯 말 듯해요. 국정운영에 대한 철학 없이 인사를 하니 여론만 보는 겁니다. 그렇다고 도덕성 검증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 그래도 박 대통령 지지율이 40%대인데….

    “‘어, 다행이다’ 하겠죠. 계속 딴 길로 가다간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죠.”

    윤평중 교수는 “보수진영은 박 대통령이 과연 나라를 통치할 판단력이 있는지 의심한다”고 말했다.

    ▼ 세월호 참사 이전 박 대통령은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평가를 받았죠?

    “그때도 인사가 문제였죠. 왜 바꾸지 않을까? 이 의문을 소박하게 제기할 수 있습니다.”

    ▼ 지금은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낮아졌죠.

    “언론이 나를 보수지식인으로 규정하는 게 흥미로운 일인데, 전원책 변호사나 저까지 이젠 박 대통령에게 직설적으로 말하잖아요.”

    윤 교수도 문창극 건으로 핵심 보수층이 박 대통령에게 상당히 실망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통령이 눈치를 보고 일을 무책임하게 처리했다. 개인 비리가 아니라 보수적 사상 때문에 탈락하도록 방치했다”고 말했다.

    ▼ 낙마가 거의 100% 확실하더라도 청문회에서 말할 기회는 줬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눈치를 안 봐야 할 부분에선 눈치를 과도하게 보고 민심을 존중해야 할 부분에선 존중하지 않아요.”

    ▼ 왜 그렇다고 보나요?

    “그걸 회의(懷疑)하게 됐어요. 인수위 시절부터 보수 진보 불문하고 ‘그 자리에 그 인물만 아니면 좋겠다’고 하면, 박 대통령은 그 인물을 묘하게 앉혀요.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고 일종의 패턴이죠.”

    ▼ 일부에선 비선인사, 수첩인사라고 하죠.

    “난 그런 것보다 더 포괄적인 것을 봐요. 지도자가 나라를 운영하려면 용기, 합리성, 결단력 같은 덕목을 갖춰야 하는데 이게 다 판단력이죠.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도 판단력이고요. 박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통치할 판단력을 구비했는지 의문입니다. 광범위한 보수 성향 시민들이 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치명적인 거죠. ‘박근혜는 정치적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고 봐요. 일점일획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요. 이 지점에서 잘못 운신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겁니다.”

    “영화 ‘매트릭스’ 포스터 보면…”

    ▼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킨 것에 대해 어떻게 보나요?

    “최악의 행보 가운데 하나죠.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물론 박 대통령 취임 후 사상 초유의 일이 잦긴 하지만요.”

    ▼ 보수진영이 전반적으로 그렇게 보나요?

    “영화 ‘매트릭스’ 포스터에 나오는 표현을 인용하자면, 우리가 무슨 일을 상상하든 박 대통령은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고 할까. 시중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을 희화화하고 있어요. 대통령도 심각성을 느껴 여야 원내대표 만난 건지 모르죠. 굉장히 다르죠? 지난번 김한길 대표 만났을 때 하고. 박 대통령은 실패하지 않으려면 2012년 총·대선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땐 자기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줬잖아요.”

    박 대통령은 보수를 기반으로 중도를 잡았고 진보 일부를 포섭했다. 이젠 역으로 바깥부터 떨어져 나가더니 ‘지구의 핵’과 같던 보수 지지층도 균열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 C씨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도 존재한다. C씨의 말은 보수의 정치적 구심점인 여당 내부의 시각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 안대희·문창극·김명수·정성근·도로 정홍원….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인사 논란이 이어지네요.

    “여권 내에서도 정성근에 대해 말이 많죠. 아리랑TV 사장 된 지 얼마 안 돼 장관에 발탁되는 걸 보니 분명 좋은 줄을 잡았을 거고. 대통령은 들어보고 ‘어, 나도 잘 알아’ 이랬을 거고. 윤창중, 김행 발탁과 비슷한 맥락인 거죠. 그러다 청문회 때 도저히 착각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집에 살았느냐 안 살았느냐’ 문제를 갖고 앙큼하게 거짓말을 하니….”

    ▼ 문창극 총리 후보의 경우는…

    “서청원이 총리 부적합으로 초반에 초를 쳐서…. 한번 스텝이 꼬이면 자꾸 꼬이죠. 체감 여론이 거의 벼랑 끝까지 가버렸죠. ‘문창극 살리느니 정홍원 유임시키고 욕먹는 게 싸게 막는 거’라고 판단했겠죠. 정홍원 유임이 너무 어처구니없어 여당도 더 말을 못하는 거고. 지금 상황은 어느 한 군데 콕 집어서 이게 잘못됐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워낙 ‘멀티’하게 문제가 발생되어 있어서….”

    ▼ 국정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기대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요. 원래 별 동력이 없었긴 해요.”

    ▼ 국가개조 제대로 될까요?

    “잘 안 되겠죠.”

    ▼ 관피아는?

    “그런 거는 눈에 보이게 할 수 있는 부분이고요.”

    “박근혜는 스페셜 하니까”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만난 건 박 대통령이 변화하는 조짐인가요?

    “그냥 한번 만나준 것 같은데. 상식 선에서 박근혜를 이해하거나 평가하면 안 될 거예요. 박근혜는 스스로 자기는 스페셜 하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우린 박근혜까진 일단 그냥 넘어가줄 필요도 있어요. 1997년 대선 때 서울 사는 영남 사람들이 ‘김대중도 그냥 대통령 한번 시켜주자. 특별한 사람이니까’ 이랬잖아요. ‘박근혜는 김대중보다 더 특별한 계층 사람이니까 대통령 한번 하고 지나가게 놔두자. 그다음 대통령부터 잘하게 하자’ 이렇게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은데요. 대신 박근혜는 외국 정상 만나는 쪽으론 특화되어 있으니까.”

    C씨는 “박근혜의 지지율이 폭락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수층의 연민에 어필하는 ‘박근혜의 개인사(個人史)’가 지지율 폭락을 막는 1차 저지선으로, ‘무능한 야당’이 2차 저지선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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