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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의 영화사회학

세상은 고수에겐 놀이터 하수에겐 생지옥

국내 첫 바둑 영화 ‘신의 한 수’

  • 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세상은 고수에겐 놀이터 하수에겐 생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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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가 바둑에다 액션, 범죄, 복수를 버무린 것은 이런 상황을 고려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바둑이라는 새로운 소재, 어느 정도 상업성이 보장된 액션 범죄 복수담을 연결해 지금까지 시도된 적 없는 이야기 구도를 만들어보려 한 것이다. 특히 영화 제작사가 이 영화의 제목을 ‘신의 한 수’라고 정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고 할 수 있다. ‘신의 한 수’라는 용어는 일상적 관용어로서 대중에게 친근하면서 수 싸움으로 이해되는 바둑 게임의 극적인 상황을 상징한다.

이 영화에서 프로 바둑기사인 태석(정우성)은 불법 도박 바둑에 연루된 형(김명수)을 원거리에서 훈수를 두다가 발각돼 살수(이범수)에 의해 형을 잃는다. 설상가상으로 태석은 형을 죽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다. 여기서 조직폭력배 두목에게 바둑을 가르쳐주고 싸움 실력을 쌓는다. 이후 영화는 석방된 태석이 꽁수(김인권), 주님(안성기), 허목수(안길강)를 규합해 살수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의 전반적 이야기 구조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각 시퀀스의 제목을 바둑 용어에서 따온 것은 화투 영화인 ‘타짜’(최동훈, 2006)가 화투놀이패의 의미로 매 시퀀스를 이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불법 도박 바둑과 화투는 큰돈을 건 비정한 승부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신의 한 수’는 ‘타짜’와 많은 면에서 닮았다. 그러나 두 영화에선 다른 점도 적지 않다. ‘타짜’에선 주인공 고니(조승우)가 화투판의 고수 평경장(백윤식)을 만나 화투의 고수로 성장하는 성장담과 고니가 죽은 평경장의 복수를 위해 아귀(김윤석)와 화투판을 벌이는 복수담이 결합돼 있다. 이에 비해 ‘신의 한 수’에선 태석의 복수담이 주종을 이룬다. 태석은 형을 죽이고 자기를 괴롭힌 살수의 부하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간다. 이런 전개는 영화 ‘킬 빌’(쿠엔틴 타란티노)에서 따온 듯하다.

영화는 태석의 형이 죽고 태석이 누명을 쓰는 도입부 ‘패착’, 태석이 감옥에서 나와 복수 계획을 꾸미는 ‘착수’, 팀을 짜서 본격적인 복수를 시행하는 ‘행마’, 살수의 행동대장인 아다리(정해균)를 제거하는 ‘단수’, 훈수를 받아 바둑을 두는 선수(최진혁)를 응징하는 ‘회도리치기’, 훈수꾼인 왕 사범(이도경)을 제거하는 ‘곤마’, 그리고 살수와 태석이 일전을 벌이는 ‘사활’, 살수를 죽이고 복수를 끝내는 ‘계가’로 진행된다.



바둑 같은 인생

각 장의 이들 용어는 바둑 한 판 같은 우리 인생을 묘사하는 듯하다. 이들 용어는 바둑의 형상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각 시퀀스에서 벌어지는 복수 과정을 함축한다. 이때 각 시퀀스에서 나오는 과도한 폭력과 잔인한 장면은 각 용어가 갖는 추상적 의미를 시각화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바둑용어를 따라가는 복수극이다. 혹은 바둑의 원리를 그림으로 설명하는 잔인한 삽화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태석은 꽁수, 배꼽(이시영), 량량(안서현)과 함께 귀수라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떠난다. 귀수는 감옥에서 태석과 바둑을 두어 매번 이기는 바둑의 최고 고수다. 그러나 귀수는 영화 내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태석이 살수와 둔 바둑은 목숨을 건 한판 승부였다. 반면 태석이 귀수와 둔 바둑은 감옥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놀이였다. 전자에서 바둑은 인간의 탐욕을, 후자에서 바둑은 인간의 유희를 상징한다. 여기서 바둑을 세상으로 바꿔도 된다.

세상은 고수에겐 놀이터 하수에겐 생지옥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영화의 한 대사는 “세상은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이야”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사회다. 살면서 냉혹한 승부를 경험해본 사람은 영화의 이 대사에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신동아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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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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