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인성검사 받을 사람은 관심병사 아니라 군 수뇌부

병영의 위기, 인간의 위기

  • 김종대 | 군사평론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입력2014-07-22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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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 전 해병 2사단 총기난사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육군 22사단에서 벌어졌다. 우리나라 최전방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 잊을 만하면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인성검사 받을 사람은 관심병사 아니라 군 수뇌부
    혹자는 징병제의 한국군에서 “그나마 이 정도면 많이 나아진 편”이라며 예전의 군대와 비교하곤 한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군에서 사고가 끊이질 않자 국방부는 여야 국방위 의원들에게 과거 1970~80년대 각종 사고 기록을 열람시킨 적이 있다. 매년 1000명 정도 군에서 사망하던 그 시절의 차마 필설로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사건 기록을 읽어본 의원들은 “그래도 군이 좋아진 건 사실”이라며 애써 국방부를 두둔하는 태도로 돌아섰다.

    병영국가로 유지되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몸 성히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집의 문고리를 잡는 것이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도라고 여겼다. 군에서 죽거나 병신이라도 되면 농촌에서는 커다란 노동력의 상실이었고 집안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그에 비해 군의 사망자가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든 지금의 병영은 과거 기준으로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기계화

    그런데도 지금의 병영이 현대 민주 사회 수준에 맞는 인본주의가 구현된 선진 국방이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군도 21개월 복무하는 징집 병사 위주로 운영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고 하소연한다. 군은 발전하고 있지만 국민의 요구 수준과는 점점 더 간격이 벌어지는 것이다. 국민은 이제 일선의 전투원에 대한 생명가치와 개인의 존엄성까지 보장하는 선진형 군대를 요구한다. 그러나 쉽게 변화하기 어려운 보수적 조직인 군은 이에 부응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특히 남북한 군대가 첨예하게 대치하는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 일원에서는 아직도 냉전시대와 다를 바 없는 전근대적 현상이 매일 발생한다. 총기난사 사건은 주로 이런 최전방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일반 전초(GOP) 요원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GOP 경계 임무는 철책의 이상 유무로만 따지는 단순한 근무다. 전방 GOP에 투입된 병사들은 전투장비와 개인장구가 부실하다는 데 놀란다. 또한 부실한 보급과 열악한 주거환경이라는 악조건에 시달린다. 작전환경과 지형 요소, 임무 수행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에 병사의 임무 이해도가 낮다.



    철책봉(철책을 지탱하는 기둥)과 철책선의 이상을 점검하기 위한 단순 관찰, 순찰표(전후가 적색과 백색으로 구분된 나무 표지)를 뒤집는 지극히 단순한 과업이 반복된다. 교육이래야 북한군이 침범하거나 북한의 전투기가 침공하면 발포하고 제압한다는 게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여타 특수한 상황과 비상시의 대처 요령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해 위기 대처 능력이 없는 미숙련 전투원이 대부분이다. 그 외에 교육이라고는 북한에 대한 주적 의식을 고취하는 정신교육 정도밖에 없다.

    이런 단순 임무는 사람을 ‘아무 생각이 없게’ 만든다. 창조적 사고력이 점점 소진되는 하나의 기계로 변해가는 것이다. 우리가 전방에서 각종 귀순 사건이나 긴급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외로 대처가 미숙하고 더딘 모습을 목격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전쟁 없는 DMZ의 지루한 일상

    인성검사 받을 사람은 관심병사 아니라 군 수뇌부

    6월 28일 GOP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 5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에서 오열하는 유가족.

    도대체 자신이 왜 이곳에서 근무하는지, 작전의 핵심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업무에 수동적이고 체념적으로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발견된다. 야간에 밀어내기식 순환 경계에 투입될 때 만일 근무를 태만히 하다가 중대장 순찰 시 적발되거나 뒷조 병사에게 뚫리는 사태가 발생하면 벌을 받게 되거나 간부로부터 사적인 감정 보복을 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방의 북한군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간부의 순찰을 감시하면서 “우리의 적은 북한군이 아니라 간부”라는 농담이 널리 퍼졌을 정도다. 규정과 원칙에 충실한 ‘FM’보다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요령을 잘 피우는 병사가 인정받는 분위기다.

    1992년 전방 3사단에 3인 1조로 넘어온 북한군을 수색대가 계곡으로 몰아넣고 사살해버린 사건이 있다. 이후 3사단의 같은 장소에서 1997년에도 교전이 발생해 북한군이 퇴각한 적이 있다. 이후 전방에서는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총성이 들리지 않는다. 과거 1970년대 남북한 군이 서로의 숙소까지 침입해 테러를 감행하고 귀환하는 일이 간헐적으로 벌어진 것과 비교해본다면 지금의 DMZ는 사실상의 평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3사단, 15사단의 경우 군사적으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전방 소초(GP)를 경쟁적으로 상대방에게 근접시키다보니 소초 간 거리가 450m까지 좁혀진 곳이 나타났다. 그만큼 긴장도가 높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사단에서도 남북한 군이 교전을 벌였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어차피 북한군이 넘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근무자들은 전방이 아닌 후방의 간부 순찰을 감시하는 데 치중하게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총을 내려놓고 여름에는 녹초를 제거하고 겨울에는 눈 치우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간헐적으로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며 DMZ에 상당수의 병력을 투입해도 이제는 우리 군이 놀라지 않는다.

    2013년 3월부터 시작된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시기에 북한은 매일 동·서부 전선에서 수천 명 단위로 비무장지대에 병력을 투입했다. 그런데 당시 국방부와 합참의 고위 장성들은 자리를 지키지 않고 주말 골프를 치러 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DMZ에 들어온 북한군 병사들이 군사작전을 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영농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우리 군이 “이건 위협이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평소처럼 대처했다는 것이다.

    남북한 정치권력이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지만 실상 전방의 남북한 군은 마치 평화협정을 체결한 군대처럼 작전을 하는 시늉만 했다. 어차피 전쟁이 나면 전방의 전투원은 초기에 대량의 화력에 엄청난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남북한 병사들 사이에 “전쟁이 나면 공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경험 없는 초급 간부의 십자가

    직업군인인 간부 위주로 형성된 선진국 군과 달리 한국군은 징집된 병사 위주의 조직이다. 자발적 의지와 자긍심이 아닌 타율과 강제에 의해 수동적으로 근무하는 전방의 병영은 특히 위기에 취약하다.

    22사단에서 총기 사건이 벌어질 당시의 상황을 보면 전역을 3개월 앞둔 27세의 소초장(중위)은 무기고 열쇠를 상황병에게 맡기고 다른 소초로 사라졌다. 상황병은 긴급한 상황에서 책상 밑에 숨어 전화기를 붙잡고 중대본부에 연락하기에 바빴다. 선임분대장쯤 되는 하사는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 무기고 자물통에 소총으로 7~8발을 발사해 부수려 시도했다. 지휘와 통제 시스템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제각기 움직이면서 임 병장의 총기 난사에 대처하지 못했고 부상자에 대한 구호도 늦어져 희생이 더욱 커졌다. 모두가 20대의 앳된 청춘이다.

    이런 조직 구조는 가장 경험이 없는 미숙련의 장병에게 가장 위험한 일선의 방어를 맡기는 비합리성을 내포한다. 과거엔 학력이 낮고 경험이 부족한 병사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학력도 있는 간부에게 복종했다면 이제는 병사들의 학력수준이 더 높아서 명령이 잘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간부들이 병사들과 같은 또래로서 갈등을 유발하는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현대적인 시설의 신막사가 아닌 경우라면 소초장은 병사들과 같은 내무반에 합판 하나 정도로 칸막이를 하고 사실상 병사들과 같이 생활한다. 그런데 소초장이 어느 날 혼자서 과자 까먹는 소리라도 옆 병사들에게 들리면 어떻게 될까? 병사들은 이럴 때 소초장에게 가장 큰 위화감을 갖게 된다. 고참 병사들이 신참 소대장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끼면 소초장 괴롭히기, 일명 ‘소대장 길들이기’에 돌입한다. 최근 이런 악습은 상당 부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대장과 소초장이 순찰표에 순찰시간과 도표를 적고 순찰을 돌아야 하는데 생활관에서 TV로 드라마나 각종 쇼를 관람하느라고 나오지도 않게 되면 병사의 군무 기강도 자연스럽게 흐트러진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다. 간부 대부분이 근무를 태만히 한다는 것은 전방에서 군 생활을 경험한 병사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오는 증언이다.

    여기에다 병사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무사안일과 허위보고로 자신의 진급에만 목을 매는 장교가 눈에 띄면 병사들은 지휘관에 대한 아무런 존경심이나 전우의식을 갖지 않고 피해의식과 증오심만 키우게 된다. 특히 간부가 일신의 영달만 추구하면서 병사들에게 가혹한 처우를 하거나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게 되면 원한과 증오의 감정은 더욱 커진다.

    이번 임 병장 사건의 경우 사건 당시에는 휴가 중이던 부소초장(중사)이 그러한 갈등 유발의 당사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임 병장에게 하루 16시간씩 근무를 하도록 하는가 하면 평소 임 병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병장과 함께 근무를 서도록 한 것이 바로 부소초장의 부적절한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임 병장 변호인 측의 주장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이 사건을 조사하는 육군 중앙수사단이 부소초장을 중요한 조사 대상으로 결정한 것은 그러한 심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초 내에서의 간부와 병사, 병사와 병사 간의 갈등 구조만이 이번 사건이 일어난 원인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가장 경험이 없는 초급간부에게 병사 관리의 모든 것을 떠맡기고 책임을 전가하는 고급 지휘관의 행태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 2012년 22사단의 노크 귀순 사건이나 이전의 민간인 월북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나이 어린 소초장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고급 지휘관의 행태가 여지없이 드러났고, 이번 총기난사 사건에도 여전히 반복된다. 관심병사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고 사건이 발생하면 허위보고와 왜곡·조작으로 조직을 보호하려는 비정상적 병영 문화에서 이 사건의 본질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징병제의 고질적 병폐

    군은 관심사병을 A, B, C 3등급으로 분류한 다음 심각한 문제가 있는 병사를 새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비전캠프와 그린캠프를 운영하며 멘토와 상담을 진행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2011년 해병 2사단의 총기난사 사건 때도 나왔다.

    그보다는 한국 징병제의 고질적인 위기구조와 이를 방치하는 군대 문화, 악습과 부조리를 양산하는 군 구조 자체에서 문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항상 군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왕따놀이’는 한국 징병제의 독특한 하위문화로 지목된다. 왜 이런 악습과 부조리가 사라지지 않는지에 대해 군은 사회적 병리현상이 그대로 군에 유입된 것이라고 간편하게 정리해버린다. 학교와 가정에서 이미 문제가 됐던 청년들이 병영으로 들어와 사고를 치는 것이기 때문에 군도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인성검사를 하고 캠프에 입소시켜 새사람으로 만들어주며 국가관을 정립시키는 군은 최종 교육기관으로서 고마운 존재 아니냐는 주장까지도 가능해 보인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임 병장 사건은 개인의 문제”라며 군의 구조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학교와 사회에서의 왕따놀이와 같은 병리현상은 어디까지나 그런 현상이 있는 공간에서만 통용된다. 즉 학교에서 가정으로 돌아오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이로써 병리적 현상은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돌아갈 곳이 없다. 24시간 같은 공간에 갇혀서 누적된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경로가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다. 이런 군에서 인성검사를 하고 부적응자를 관심사병으로 분류하게 되면 해당 병사는 수치심으로 스트레스가 누적된다. 이번 임 병장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인성검사 받을 사람은 관심병사 아니라 군 수뇌부

    GOP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모 병장이 7월 8일 현장검증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했다.

    병영인권연대가 최근 군내 사망자 300여 명의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그중 90% 이상이 관심병사였다. 그런데 이 관심병사라는 개념을 살펴보면 어떤 특정한 조직의 과업을 수행하지 못한 부적응자라도 다른 기능, 예컨대 사격이나 특수전, 정비, 통신 등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우수 병사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관심병사 등급을 정하고 형식적인 관리에 그치는 이 제도는 인성검사라는 보조적 수단에다가 지휘관 재량으로 관심병사를 정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행정적 업무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것은 상담 기록을 유지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것이 사고가 터졌을 때 지휘관의 책임을 완화하는 방편으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이런 임시방편적 제도는 군이 문제가 많고 비정상적인 병사를 관리하기 위해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일종의 자기 정당화 기제다. 이것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병영의 구조적 문제란 가장 경험이 없는 초급간부와 징집병에게 지원을 소홀히 하면서 과중한 짐을 지운다는 것이 핵심이다.

    “30년 전보다 더 나쁘다”

    2011년 7월의 해병 2사단 총기난사 사건을 보면 가장 큰 원인이 해당 부대에 비정상적으로 가중된 업무다. 해병 2사단의 경우 총 11개 대대 중 9개가 전방 경계에 투입됐다. 통상 육군의 경우 1개 대대가 경계에 투입되면 1개는 예비, 1개는 교육훈련이라는 3교대 시스템으로 6~12개월 단위로 순환된다. 그런데 해병의 경우는 그런 교대 개념 자체가 없다. 병력이 영세한 소군의 현실이다. 여기에 당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은 군이 해병대사령부를 주축으로 서북도서방어사령부를 창설하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력이 부족한 판에 새로운 사령부 창설에 또 병력이 차출돼 고충은 더욱 가중됐다. 총기난사 사건 직전에 해병 초병이 여객기를 북한 전투기로 오인하고 사격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은 조직이 붕괴되는 하나의 신호였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22사단은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철책을 넘어 GOP 생활관에 제 발로 찾아 온 일명 ‘노크 귀순’ 사건이 발생한 부대다. 이전부터 잦은 총기 사건과 더불어 이 부대는 ‘작전에 실패한 부대’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러나 마냥 이를 질타하기에는 이 부대가 처한 독특한 환경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22사단은 6·25전쟁 당시 오직 국군의 힘으로만 수복한 점령지로 군사분계선이 급격하게 북쪽으로 휘어 올라간 곳에 있다. 서쪽을 보면 북한군 초소가 우리 남쪽으로 내려와 있다. 즉 등 뒤와 전방에 모두 북한군 초소가 있어 군사적 긴박성이 남다르다. 여기에다 험준한 산악과 해안을 끼고 있어 작전 범위가 여타 보병사단에 비해 5배 이상 넓다. 관광지를 끼고 있어 민간의 왕래가 잦고 민·군 간에도 분쟁과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험준한 지형으로 서부전선에 비해 보급이 늦으며 실수요에 비해 70~80%에 불과한 경계병력 등 모든 여건이 열악한 부대로 손꼽힌다.

    그런데 최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군은 가장 격오지에 위치한 이 부대에도 예외 없이 외출과 외박, 휴가를 일부 제한하고 음주와 회식까지 금지했다. 장병들이 일상을 빼앗긴 데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폭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점점 내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군이 아무리 보호관심사병 제도를 운용한다 해도 객관적인 여건 자체가 열악하다면 인간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총기 사건으로 사망한 한 병사의 아버지가 현장을 둘러보고 “30년 전 내가 군 생활할 때보다 여건이 더 나빠진 것 같다”는 한탄이 나왔다는 건 이 사건의 일차적 배경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경계와 작업을 번갈아하는 고달픈 전방 GOP의 생활은 이미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감내하기에 벅차다. 열악한 상황에서 조직이 너무 많은 짐을 떠맡은 게 불행이 시작된 지점이다.

    이런 현상은 조직이 설정한 목표와 그 구성원을 관리하는 한국 징병제의 가장 어두운 면이다. 그동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병영 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말해온 국방부의 공언이 그리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이 확인된 게 이번 사건이다.

    전투원의 생명 가치 경시

    그렇다면 이번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간편하게 정리할 경우 앞으로 더 끔찍한 사건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지구상에서 한국과 같은 징병 문화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와 가장 비슷한 대만의 경우 2016년부터는 완전 모병제로 전환된다. 각종 구타와 부조리로 악명이 높았던 러시아군의 실상이 몇 년 전부터 세계적인 화제로 떠오르자 러시아는 최근 모병제를 확대하고 군에서 애완동물 기르는 것을 허용하는 등 파격적으로 병영 문화 개선을 시도했다. 우리 주변국만 보아도 중국과 일본이 대규모로 병력을 감축하면서 현대적인 군으로 구조와 문화를 바꾼 지 오래다. 심지어 북한군조차 군 구조 개편, 신세대로 군 지휘관의 세대교체 등 문화가 바뀌고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처럼 전근대적인 징병의 문화를 간직한 나라가 이제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이것이 과연 국민소득 2만 달러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누가 믿을까. 그런데도 정말 불가사의한 것은 우리 지상군의 고위 장교단이 이러한 병영 문화를 바꾸자는 주장에 극도로 혐오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군은 그간 논의되어왔던 병영 문화 개선과 장병 기본권 증진 대책에 눈감았으며, 병력 감축과 군 구조개편과 같은 국방개혁도 무력화했다. 그러면서 병사들을 체벌과 교화, 반복적인 국가관 주입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면서 시대에 맞지 않는 인간관을 고수한다. 아직도 많이 죽이고 많이 죽는 근대의 전쟁관, 즉 대규모 소모전과 진지전의 사고방식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다. 전투원의 생명 가치가 총체적으로 경시되는 한국 군부의 전쟁관, 인간관, 굴절된 애국심이 그 주범이다.

    이런 지휘부는 병영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근본 원인을 성찰하지 않고 오직 애국심만으로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하라며 병사들을 윽박지르고 몰아붙인다. 이런 완고한 태도는 장병의 기본권을 끊임없이 침해하면서 더 큰 재앙을 예고한다. 정작 인성검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관심병사가 아니라 바로 변화에 둔감한 군 수뇌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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