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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탈북은 수령문학 탈출해 현실문학 뛰어든 것”

세계가 주목한 탈북작가 장진성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나의 탈북은 수령문학 탈출해 현실문학 뛰어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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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1개 출판사가 판권 경쟁

▼ 랜덤하우스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라는 제목의 시집을 2008년 한국에서 출간했다. 이 시집 덕분에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 축제에 참가했다. 시인 올림픽 비슷한 행사다.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204개 나라에서 각 1명씩 204명을 초청했다. 행사 직전 영국 옥스퍼드대가 렉스 워너 문학상 수상자로 나를 선정했다. 에이전트들이 축제에 찾아와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는 당시 맺은 계약의 산물이다. 잘 팔릴 책을 고르는 능력으로 먹고사는 에이전트들이 독자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랜덤하우스는 영국판 출간 직후 프랑스, 폴란드, 체코, 네덜란드, 스웨덴, 아랍에미리트연합, 대만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었다. 9월 미국판을 출간하는 사이먼앤슈스트는 북미에서 판권 경매에 뛰어든 11곳 출판사 중 하나다.”

사이먼앤슈스트는 힐러리 클린턴 회고록 ‘어려운 선택들(Hard Choices)’을 출간한 곳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0만 달러 수준에서 논의하던 ‘경애하는 지도자에게’의 계약금은 ‘꽤 큰(great) 6자리 숫자(백만 달러 단위)’로 치솟았다. 랜덤하우스와 계약금, 인세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그는 말했다.

가난한 나라의 부유한 왕



그는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후 통일전선부에서 근무했다. 200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후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2010년 12월 이 연구소에서 퇴직했다. 이듬해 12월 5080만 원을 투자해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를 창간했다.

그와 신동아의 인연은 깊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일할 때 신동아에 다수의 글을 실었다.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과 6군단 사건’(2006년 3월호) ‘親김일성 세력 제거작업 심화조 사건의 진상’(2005년 10월호), ‘김일성 사망 직전 父子암투 120시간’(2005년 8월호) 제하 기사의 익명 필자가 그다. 북한학자들이 쓰는 학술논문이 지금껏 이들 기사를 인용한다.

▼ 북한의 대남 공작기구에서 일했다. 정확하게는 시인(詩人), 아니 선전문필가로 일했다고 해야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

“통일전선부에서 일할 때 신동아를 열심히 읽었다. 공작부서 관료는 한국 월간지를 연구해야 했다. 열두 권을 읽으면 한 해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일성, 김정일을 비판하는 대목은 공작부서 일꾼도 읽지 못하게 먹칠을 해놓는다. 창가에서 해당 페이지를 햇볕에 비추면 먹칠로 가려놓은 부분도 읽을 수 있다. 호기심이 동해 먹칠한 부분을 더 꼼꼼히 읽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느냐면, 대남 공작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세뇌하는 일을 했다. 김일성 부자의 감성 독재를 뒷받침하는 시를 썼다. 통일전선부에서 내가 사용한 필명이 ‘김경민’이다. 북한 주민에게 김경민은 ‘남조선 시인’이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한국의 시를 가짜로 만들어낸 것이다. 북한은 물리적 독재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곳이 아니다. 감성 독재가 더욱 무섭다. 정서나 사고마저 수령유일주의로 유인한다. 나 역시 통일전선부에서 일하면서 다른 세상을 보지 못했다면 감성 독재의 노예가 됐을 것이다.”

▼ 노동신문 1999년 5월 22일자에 실린 서사시(敍事詩) ‘영장의 총대 위에 봄이 있다’의 필자가 당신이다. 서사시는 발흥기·재건기의 민족이나 국가의 웅대한 정신을 신(神)이나 영웅을 중심으로 읊은 시다. ‘영장의 총대 위에 봄이 있다’는 어떤 내용이었나.

“김정일이 1998년 말 ‘남조선까지 아우르는 선군정치와 관련한 대남 심리전을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노동당 각 부서에서 서사시 경쟁이 붙었다. 북한에서 내로라하는 시인으로 선전선동부 조선작가동맹 김만영 오영재, 인민무력부 조선인민군창작사 신병강,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부총장 명준섭이 있었다. ‘남조선 문학’ 부서는 통일전선부에만 있었다. 내가 일한 5국 19부 101연락소가 시 문학을 하는 곳이다. 101연락소에 시인이 8명 있었는데, 우리도 훌륭한 서사시를 써내야 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남한 시인의 위치에서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한국 잡지를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낸 게 광주 망월동 5·18 묘역과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을 포개는 것이었다. 누구의 총에 사람이 죽었나, 민족의 총이 누구의 손에 있어야 하는지 시에 담았다.”

▼ 한국에서는 내란 음모 사건으로 재판받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 씨와 생각이 같은 이나 그 시에 감동받았을 것 같다.

“북한에서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김정일이 마음에 들어 했다. ‘영장의 총대 위에 봄이 있다’ 덕분에 김정일을 만날 수 있었다. 7명이 함께 ‘경애하는 지도자’를 만났다. 알코올을 넣었는지,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불이 붙은 아이스크림이 후식으로 나왔다. 인민은 굶는데 먹는 것 갖고도 별의별 짓을 다한 것이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장 부유한 왕이 사는 모순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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