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가족주의사회의 딜레마 어버이·군자 같은 후보가 최선일까

총리 못 뽑는 나라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2014-07-22 1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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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주가 인재를 발탁하던 시대에는 군자와 같은 삶을 살며 덕을 쌓고 있으면 그 소문을 전해 들은 군주나 지도자가 전격적으로 발탁하는 일이 가능했다.
    • 하지만 초경쟁 시대이자 절차적 공정성을 중시하는 현대에는 이런 이례적인 발탁 인사는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자신이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를 위해 가족에게까지 희생을 감수하게 하는 어버이 같은 지도자를 꿈꾼다.
    가족주의사회의 딜레마 어버이·군자 같은 후보가 최선일까

    6월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을 감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현재의 한국은 무정부 상태이거나, 아니면 한 편의 ‘개그콘서트’ 같은 상황이다. 총리로 지명된 두 명의 후보는 청문회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낙마했고, 본인이 사퇴 의사를 밝히고 사퇴가 거의 확정됐던 총리가 유임되는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관 속에 들어갔던 (흔히 하는 말로 이미 잊힌) 총리가 일어나서 돌아오게 된 이유가 ‘구관이 명관’이라는, 너무나 구차해 변명조차 되지 않는 얘기라는 데 있다. ‘국민의 기준에 맞는 적당한 총리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코미디라면 나는 유머감각이 진짜로 없는 모양이다. 전혀 웃기지도 않고 오히려 슬퍼진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세간에는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된다. 근거 없는 조작에 따른 마녀사냥이었다는 의견, 박근혜 대통령의 인재풀이나 인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에서부터, 더 근본적으로 한국사회에는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지도층이 없다는 탄식과 함께 한국 국민이 총리 후보에게 비현실적으로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는 하소연까지. 세대, 사회경제적 배경, 정치 성향, 지지 정당, 대통령에 대한 태도 등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이다. 각 개인이나 언론은 자신의 시각에서 어떤 한 이유만을 주장하지만, 사실 작금의 사태는 이런 요인들이 골고루 기여하고 상호 작용한 종합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불가능한 검증 통과

    가족주의사회의 딜레마 어버이·군자 같은 후보가 최선일까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인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문회장에 서보지도 못하고 중도사퇴했다.

    총리 또는 장관 후보가 청문회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뇌물 수수,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표절과 같이 상대적으로 진실 규명이 용이하고 구체적인 법률 위반 사항이 확인되는 문제에서부터, 전관예우 심지어 과거 발언의 취지나 의도와 같이 실체 규명이 힘든 해석의 영역까지 문제가 된다. 후보 당사자가 아닌 가족의 영역까지 확대돼,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 심지어 어느 후보는 부인에게 명품 백을 사준 것까지 문제가 됐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국민이 이런 기준을 모두 적용하면 과연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인사가 몇 명이나 될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한 언론에는 잠재적 총리후보에게 의사를 타진해도 대부분 고사했으며, 특히 그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과거의 청문회에서 문제가 된 경우는 법률 위반 같은 구체적인 결격사유가 있었던 반면 최근 두 번의 총리 후보 사퇴는 구체적인 사안보다는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강했다. 안대희 후보의 경우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수임료가 문제가 됐다. 16억 원이라는 돈이 결코 작은 돈도 아니고 한번쯤 의심해보게 만드는 금액인 것은 맞지만, 안대희 후보가 그 사건을 맡은 뒤 누구한테 전화를 하거나 전관예우를 이용해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근거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대법관 출신이 대법원 사건을 맡으면 자동으로 전관예우가 되니 잘못된 것이라는 논리와 16억 원이 너무 많다는 논의만 있었다.

    하지만 여기엔 두 가지 중요한 논의가 빠져 있다. 하나는 전문성의 관점이다. 대법원 사건을 대법관 출신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하고 송사에서 이기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전관예우가 적용되지 않더라도 대법원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이 이뤄지는지,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대법원의 구조와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당연히 승률이 높다. 같은 돈을 준다면 당연히 대법원 사건은 대법원 출신 변호사에게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고, 좀 더 비싼 수임료는 그 전문성의 비용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또 다른 논의점이 나온다. 그럼 과연 16억 원이 그 전문성에 비해 턱없이 많은 돈이며, 당연히 전관예우와 관련돼 있느냐는 문제다. 이 논의는 16억 원이라는 절대적인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건이 안대희 후보가 아닌 다른 변호사나 로펌에 갔을 때의 금액에 비해서 얼마나 많은지를 따져봐야 한다. 만약 이 사건이 대법관 출신이 아닌 다른 로펌에서 수임해도 비슷한 수임료를 받는다면 이 수임료에는 전관예우가 포함돼 있지 않다.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면 전문성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두 가지 중요한 논의는 당시 어느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았고, 대부분의 국민 사이에서도 실종돼 있었다. 그냥 16억 원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만 있었던 것이다.

    최근의 문창극 총리 후보에 관한 자격 논란은 더욱더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컸다. 일부 언론에서 문창극 후보가 친일적 발언과 한민족 비하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어떤 종교행사에서의 연설 내용을 일부 보도하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후 그 연설 전체 동영상이 인터넷에 나오고, 다른 방송매체에서 그 동영상을 거의 전체로 방영하면서 언론의 짜깁기 편집 논란이 제기됐다. 문창극 후보의 머릿속에 한민족에 대한 어떤 태도가 있는지, 일본에 대한 어떤 감정이 있는지를 확인할 길은 사실 없다. 그가 그동안 보인 전체적 행적을 가지고 추론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런 추론은 매우 많은 노력을 요구 한다.

    실제 우리 국민 중에 문창극 후보의 64분짜리 강연 동영상 전체를 본 사람은 몇 %나 될까? 문창극 후보의 과거 글을 찾아서 읽어보고 그 논점이나 문제점을 스스로 판단해본 국민은 몇 %나 될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나 총리나 장관 청문회를 볼 때, 국민 대부분은 신중하게 투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을 뽑거나 지지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총리와 장관의 프로필이나 관련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보다 컴퓨터나 옷, 운동화를 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만 원, 몇 천 원 할인하는 데를 찾거나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는 데 매일 한 시간을 쓰면서도, 후보에 대한 정보를 찾는 데는 10분도 쓰지 않는 게 대부분의 국민이다.

    편향된 전략가

    이런 대중의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본질이 완전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순진한 과학자(naive scientist)가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원하는 만큼만 정보를 처리하는 편향된 전략가(biased tactician)에 더 가깝다고 밝혀왔다. 진실에 최대한 접근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주어진 정보를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처리하려는 모습은 일반인이나 심지어 심리학자들도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아마 신의 존재에서 우리는 그런 모습을 기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 속 우리 모습은 진실을 규명하는 데 그리 큰 관심을 갖지도 않고, 자신의 시간이나 노력을 들여 더 많은 정보를 찾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일부 주어진 정보에 너무나도 쉽게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우리는 정보가 주어지기 전에 이미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다. 원래 박근혜 정부를 강하게 지지하던 사람들과 강하게 반대하던 사람들은 이미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다. 정보는 강하게 믿고 싶어 하는 바가 없는 사람에게만 정보로서의 의미가 있다. 특히 그들에게 초기에 주어지는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기억의 관점에서나 판단과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초기에 접하는 정보는 그 뒤에 접하는 정보보다 매우 중요하다. 초기에 들어오는 정보는 바로 뒤에 들어오는 정보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초기에 접하는 정보는 뒤에 들어오는 정보가 필요한지 아닌지를 결정해버린다. 그래서 16억 원이라는 수임료와 민족 비하나 친일 발언과 같은, 안 그래도 눈길을 확 끌 수밖에 없는 선정적인 정보는 뒤따르는 정보 처리를 모두 의미 없게 만들어버렸다.

    더더욱 세월호 사고 이후에 한국인에게는 이미 부정적인 믿음이 강하게 형성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객관적으로 총리 후보를 봐주기를 기대했다면, 그건 인간의 본질에 대해 너무 무식하거나 국민을 무시한 거다. 후보를 좀 더 신중하게 고르고, 정보를 더욱더 겸손하고 체계적으로 제공했어야 했다.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한 건지, 이번 일련의 총리 후보 사퇴를 지켜보면 현 정부의 집행부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이 확실하다.

    군사부일체의 뜻

    정보 처리가 불완전하거나 왜곡되는 것은 한국인만의 모습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 시점의 한국 사회에서 청문회 통과가 유달리 힘들까? 청문회에서 총리 후보와 장관 후보가 모두 같은 이유로 낙마하거나 곤욕을 치르지 않았으니, 피상적인 수준에서 공통의 문제점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한 단계 깊이 들어가보면 한국 문화의 가족주의적 특징을 들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가족은 모든 관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가족을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데는 차이가 없다. 수평적 개인주의 문화를 유지해온 서양에서는 수평적 부부 관계가 현대에 들어와서 상대적으로 중요해졌고, 농경사회가 주를 이루어온 동양에서는 유교적인 영향으로 수직적인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전통이 남아 있다.

    이런 동양적인 관계의 수직적 특성을 넘어, 한국 사회 가족주의의 특징은 가족 개념의 사회적 확장이다. 가족을 유달리 사랑하는 차원을 넘어, 가족의 범위를 뛰어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체계를 가족의 개념으로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어 친척에게 사용하는 아저씨, 아줌마, 오빠, 언니라는 호칭을 식당이나 가게, 심지어 골프장에서도 쉽게 사용한다. 오히려 아가씨나 총각 같은 정확한 용어는 다소 어색하고 왠지 성희롱 같은 의미로 오해되기도 한다. 더 심한 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빠의 친구는 삼촌, 엄마의 친구는 이모라고 부르라고 강요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강요라는 것은 진짜 이모가 아닌데 왜 그렇게 불러야 하냐고 물어보는 순진무구한 아이를 보면서 짜증내는 우리 스스로가 증명해준다.

    이렇게 생활화한 가족주의는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의 이상적인 모습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군사부(君師父)일체’라는 말을 아주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 그리고 이 말은 일반적으로 ‘임금과 스승, 어버이의 은혜는 모두 똑같다’ 또는 ‘임금과 스승, 어버이를 똑같이 섬겨라’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실제 이 글을 배우면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임금과 스승을 어버이처럼 대하라’라는 말로 들린다. 아이들은 임금과 스승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어버이를 알고 자신과 어버이의 관계를 파악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임금과 스승의 존재를 가르칠 때, 바로 어버이의 개념을 임금과 스승에게 확대하면 된다고 알려주는 방법이 바로 ‘군사부일체’다. 전형적인 한국적 가족주의를 잘 보여주는 개념이다.

    가족의 이중성

    가족주의사회의 딜레마 어버이·군자 같은 후보가 최선일까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출한 사표가 60일 만에 반려되면서 결국 유임이 결정된 정홍원 국무총리가 6월 26일 굳은 표정으로 정부서울청사 회의장을 나섰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국가의 지도자도 회사의 상사도, 스승도 어버이와 같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런 지도자나 리더가 바람직하다고 착각한다. 어찌 보면 가족은 아니더라도 아주 작고 친밀한 소규모의 조직에서는 이러한 기대나 믿음이 착각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구성원과 구조가 다양하고 복잡할 때, 또는 다른 조직과의 복잡한 경쟁 또는 협력관계가필요할 때도 이런 어버이 같은 지도자가 바람직한지는 의문스럽다.

    2013년 말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공감릴레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중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부모를 포함한 가족이었다. 이 세상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이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내 가족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우리가 스스로 믿는 만큼 부모와 형제, 그리고 우리의 자녀가 다 착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법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범죄자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형제이고, 자녀다. 온 국민이 죽일 놈으로 부르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 세월호의 선장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고, 부모다. 그 가족에게도 선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사람일까. 한국인 모두에게 가족은 나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실제로 나를 위해 어떤 일도 하는 가족은 존경해야 하는 사람이 맞다. 하지만 이들이 나를 위해 하는 일이 때로는 (생각보다는 더 흔하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적 규범을 위반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런 가족에 대한 착각에서 우리의 지도자를 고른다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부모밖에 없다. 국가의 지도자가 자신의 부모보다 똑똑하거나 지식이 많거나 부자이거나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 지도자의 자질에 동의할 수 있다. 왜?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쉬워서 부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하거나 착하거나 믿음직스럽거나 국민인 나를 더 사랑해줘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하면, 자신의 부모형제자녀를 이길 수 있는 후보는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총리 후보자나 장관 후보자가 실제로 자신의 부모보다 더 진실하고 착하거나 나를 더 사랑한다고 하면, 그 지도자를 좋아하게 되기 전에 자신의 부모에게 실망해서 기분이 더 나빠질 것이다. 오히려 그 후보를 더 괘씸하게 볼 수도 있다.

    우리의 지도자는 그리 착하고 진실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우리 국민을 위해 다른 나라의 어려움을 무시할 수도 있어야 하고, 다른 나라 국민에게 피해를 안겨줄 수도 있어야 한다. 때로는 의미 없는 전쟁에 뛰어들어 국민소득을 두세 배로 늘리는 악마의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고의 국가지도자는 국민에게는 아버지같이 너무나 착하고, 진실하되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럽지만, 때로는 국민을 위해 언제든 악마로 돌변할 수 있는 야누스와 같은 존재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주의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야누스는 우리가 바라는 어버이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바로 어버이와 같은 군자를 원한다. 아니, 실제는 아니더라도 정보 처리를 제대로 할 마음이 없는 대부분의 국민에게 최소한 그렇게 보이기라도 해야 한다. 이런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와 기준은 우리에게서 만족스러운 후보를 영원히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그 모든 존경하는 아버지도 대부분의 어머니에게는 그리 멋지지 않은 남편인 것처럼, 때로는 허공에 떠다니는 발을 실망스러운 땅에 디디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버이 같은 총리?

    만약 국민이 바라는 어버이와 같은 군자가 있다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정치지도자가 될 수는 있을까? 고등학생 아들을 둘이나 둔 학부모의 관점에서 보면, 요즘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청소년이 과연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2014년에 고등학교 3학년인 남학생들(불쌍한 내 큰아들을 포함해서)은 저주받은 학년이라고들 한다. 동계올림픽, 월드컵축구, 하계아시안게임이 모두 한 해에 열리는 매우 드문 연도이기 때문이다. 고3인 내 아들은 매일 축구 얘기만 한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축구 얘기만 한다고 한다.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충분히 간다. 이런 세계적인 축제에, 특히 한국국가대표팀이 출전하는 경기에 관심이 없다면 그건 비정상이라면서, 그래서 올해 이런 모든 유혹에 빠지지 않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수험생은 모두 애국심이 없는 거라고 열변을 토하는 아들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이 간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 간에는 분명히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은 바로 무지하게 독하다는 점이다. 현대사회는 뭐든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 남보다 앞서가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해야 한다. 굳이 나쁘게 독한 게 아니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다른 수많은 것을 포기하고 유혹을 이겨내며, 다른 중요한 가치 있는 것들을 희생시키며 살아야만 흔히 성공했다고 간주되는 자리에 갈 수 있다.

    그래서 모든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재미, 연애, 친구, 취미 등을 포기하고 공부만 하라고 하는 것이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다른 모든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꿈만을 좇으라고 얘기한다. 흔히 성실성으로 묘사하지만, 성실함이란 성격은 모든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도 성실하게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 학생 때 남을 위해 양보하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다른 학생에게 상처 주는 것을 망설이는, 어찌 보면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독하게 사는 것을 거부하는, 마치 군자처럼 행동하는 학생의 대부분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안다. 최소한 어떤 대학에 가게 되는지에 대해 공감한다.

    오래전 군주가 인재를 발탁하던 시대에는 군자와 같은 국가지도자가 더 배출되기 쉬웠을 것 같다. 과거에도 경쟁으로 선발되는 방법이 있었지만, 군자와 같은 삶을 살며 덕을 쌓고 있으면 그 소문을 전해 들은 군주나 지도자가 전격적으로 발탁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초경쟁 시대이면서 동시에 절차적 공정성을 중시하는 현대에는 이런 이례적인 발탁은 받아들이기 힘들고 국정감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군자와 같은 인재가 하루아침에 총리나 장관 후보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보통 짧게는 20년에서 30년의 공직생활 또는 사회생활을 거쳐 그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 전문성과 능력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 역시 가정을 꾸리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심지어 총리가 되기 위해 가족에게 희생을 감수하게 하는, 가족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잡지 않는 어버이가 우리가 바라는 어버이 같은 지도자일까?

    안대희 후보는 그동안 공무원으로 살아오면서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지 못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에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다고 얘기했다. 만약 안대희 후보가 총리로 지명될지도 모르니, 아니면 불법 여부를 떠나 군자의 기준에 위배되니 금전적인 욕심을 버리고 계속 가난한 삶만을 추구했다면 우리 국민이 원하는 군자 같은 총리 후보가 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수임료를 아무도 갖다주지 않는 무능한 사람이었다면 총리 청문회를 통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무능한 사람이 총리 후보가 될 리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 갈 어버이 같은 총리감이 맞을까?

    미래가 문제다

    지난 100년 동안 역사적 격변기와 엄청난 경제발전, 그리고 사회적 가치의 변화를 겪어온 한국 사회에서 국민의 검증 기준을 통과하면서 동시에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진 인재를 찾기란 기대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엄청난 발전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많은 가치를 외면하고 포기하면서 살아왔다. 머릿속으로는 그 포기한 가치를 부여잡고 겉으로만 포기한 척 살아온 것이 아니다. 실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과 그 속에서 우리가 행한 모든 행동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해왔다.

    심리학적으로 행동과 생각은 일치해간다는 이론과 증거는 무수히 많다. 그래서 포기한 가치들에 맞춰서 왜 살아오지 않았느냐고 추궁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기성세대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런 혼란과 혼돈이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가족주의사회의 딜레마 어버이·군자 같은 후보가 최선일까
    허태균

    1968년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문학석사(일반심리학)·노스웨스턴대 철학박사(사회심리학)

    저서 : ‘가끔은 제정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미래 사회에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냐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군자와 같은 품성을 갖고 군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도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고 자신의 가족을 잘 돌보고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준다면, 지금 빚어진 일련의 사태는 미래의 우리 사회에 희망을 던져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도 못 만들고 군자만 원한다면, 결국 우리 후손은 좌절할 것이고, 우리는 총리와 장관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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