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미국·중국에만 매달리지 말고 러시아·일본 활용하라

박근혜 정부의 ‘위태로운’ 통일외교

  •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14-07-23 0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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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관진은 아베, 푸틴, 시진핑, 오바마 사진도 걸어놓아라
    • 북핵 불용(不容)에 앞서 중국에 탈북난민수용소 요구해야
    • 노무현의 자주외교, 박근혜의 통일외교, 노태우의 북방외교
    • 4강의 경쟁관계 이용하는 ‘왜그 더 도그(Wag the Dog)’ 필요
    미국·중국에만 매달리지 말고 러시아·일본 활용하라

    7월 3일 한중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기 전 악수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이 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

    ‘왜그 더 도그(Wag the Dog)’. 개가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데,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에서 유사한 것을 찾아본다면 ‘본말전도(本末顚倒)’ 정도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똑같은 뜻은 아니다. 본말전도는 일어날 수 있지만, 꼬리가 개를 흔드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음의 표는 한국은행 등이 밝힌 지난해 국가별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정리한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경제력을 보면, 3강인 미국 중국 일본이 차례로 1, 2, 3위를 차지하고 러시아가 8위에 올라 있다. 이러한 4강을 상대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외교를 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국빈방문이 끼친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엇나가고, “시진핑 방한을 지켜보겠다”고 한 미국도 우리를 좋게 보지 않는 듯하다. 정부는 남북 통일을 이루려면 중국을 잘 설득해야 한다고 보고 대중외교에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김치의 대(對)중국 수출권을 받아낸 것 외에는 ‘이렇다 하게’ 손에 쥔 것이 없는 것 같다.

    탈북 난민 카드는 왜 못 썼나

    미국·중국에만 매달리지 말고 러시아·일본 활용하라
    우리 정부는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에 ‘북핵 불용(不容)’문구를 넣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중국이 주장한 ‘한반도 비핵화’에서 주저앉았다. 과거 우리는 비핵화 선언을 한 적이 있고, 한반도 비핵화에는 북핵 불용이 포함되니,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주장을 넘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를 지켜본 전직 외교관은 답답해하며 이런 지적을 했다.



    “A안을 관철하겠다고 죽어라고 노력하다 이루지 못하면 우리만 손해를 본다. A안을 관철하기 위해 다른 것을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B안, C안도 제시해서, A안이 안 되면 B안이라도 받아내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북핵 불용’안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추진한 것 같은데, 중국은 북핵뿐만 아니라 우리가 핵을 개발하는 것도 막으려 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북한이 핵폭탄을 만든다면, 우리는 ‘다른 성격의 핵폭탄’을 터뜨려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으로 하여금 범죄자가 아닌 한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압록-두만강만 넘어가면 난민으로 판정받아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탈북자가 급증해 북한은 후방으로부터 무너질 수도 있다. 우리는 통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탈북자 난민 인정을 통해, 핵실험을 하고 일본과 가까워지는 북한에 강한 일침을 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 중국은 위구르족 등의 독립운동을 심하게 억눌러 인권 탄압국으로 몰린다. 그런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한다면, 인권 옹호국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을 의식해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 우리가 낸다고 하면 된다. 우리 돈으로 중국에 탈북 난민수용소를 짓는다면, 우리는 북한 후방에 거대한 거점을 확보하는 셈이 된다. 외교는 우리 좋은 것만 고집하지 말고, 중국도 좋고 우리도 좋은 것을 추진하는 쪽으로 해야 성공을 거둔다.

    중국에 탈북 난민수용소를 지으면 북한이 타격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 외교팀은 이번 정상회담에 이 안을 제시하지 못했는가.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주어진 과제나 명령 받은 것만 밀어붙이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는 박 대통령이 말하는 창조경제·창조외교와 크게 배치된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안전문제를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을 알고 매우 당황했다. 사고 발생 당시 국가안보실과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군, 해양경찰청 등이 각기 따로 놀아 희생을 키웠다. 외교에도 컨트롤타워가 중요하다. 외교의 대상은 광범위하다. 농산물 무역외교, 경제외교, 범죄인 인도 외교, 마약 등 국제범죄 수사에 협조하는 외교, 비자 면제를 위한 외교, 스포츠 외교, 동맹과 군사외교 등….

    따라서 외교부가 있어도, 외교의 꽃은 모든 분야를 담당하는 국가원수의 정상외교가 된다. 이렇게 많은 외교 가운데 핵심을 꼽으라면 동맹과 협조관계를 확대하는 안보외교다. 우리는 분단국가이기에 통일외교를 추가하는데, 지금은 통일이 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시진핑, 아베, 푸틴 사진도 걸어라

    이 일에 집중하기 위해 청와대는 외교안보수석을 뒀다. 외교안보수석은 외교·국방·통일비서관을 두고 외교부와 국방부, 통일부가 하는 일을 종합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국가정보원이 더 크게 안보를 다루고 있어 충돌이 일어난다.

    국정원의 해외차장은 외교부 장관 이상으로 정상회담에 애를 쓴다. 국정원 해외파트가 음지에서 정리한 다음에 외교부가 마무리를 짓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국정원의 북한차장은 통일부 장관보다 더 북한 문제에 신경을 쓴다. 국정원은 국방만 국방부보다 덜 터치할 뿐,전 안보 분야 전반을 관리한다.

    따라서 국정원장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가운데 누가 실질적인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인지가 문제가 된다. 외교안보수석실은 손발이 없어 각 부처에 부탁을 해야 하지만, 국정원은 막강한 조직이 있는 데다 원장이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기에, 실질적인 컨트롤타워라는 의견이 많았다. 과거 정부는 이를 정리하지 않고 지내왔으나 박근혜 정부에서 정리했다.

    대통령 밑에 국가안보실장을 만들고, 외교안보수석이 국가안보실의 2차장을 겸하게 했다. 그리고 국가안보실장이 국정원장과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통일부 장관, 외교안보수석, 그리고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위원으로 들어오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상임위원장을 맡게 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로 만들었다.

    지난 6월 박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관진 씨를 신임 국가안보실장에 임명했다. 김 실장은 지휘관을 할 때마다 집무실에 상대해야 할 적장(敵將) 사진을 걸어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육군 3군사령관 시절에는 대적한 인민군 2군단장 김격식 사진을,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을 할 때는 김정일과 장성택,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 사진을 걸어놓고 노려봤다. 그는 “적장의 생각을 읽기 위해선 항상 얼굴을 마주 봐야 한다”는 지론을 가졌다.

    국가안보실장이 된 다음 그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 사진을 걸어놓았다. 그에 대해 노태우 정부에서 북방외교를 펼쳤던 한 원로는 “외교안보를 총 책임진 이의 시야가 왜 그렇게 좁으냐”고 일갈했다.

    “국가안보실장은 확대된 국방부 장관 자리가 아니다. 그가 후배이자 좋은 관계에 있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데리고 국방만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안보실장은 외교와 통일 정보까지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니, 그는 김정은-황병서 사진만 걸어놓지 말고, 시진핑-아베-오바마-푸틴 사진도 같이 걸어놓고 노려보아야 한다.

    전임자인 김장수 안보실장이 ‘안전은 소관사항이 아니다’라고 했다가 물러난 것도 직시해야 한다. 안보는 안전보다 더 큰 개념이니 김관진 실장은 폭넓은 사고를 해야 한다. ‘손자병법’은 눈에 보이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伐兵, 攻城)보다는, 적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伐交) 적의 전략을 무력화(伐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통일을 하고 싶다면 그는 북한군과 싸워서 이기는 데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대(對)4강 외교에 진력해 북한을 고립시키고, 핵개발과 도발에 집중된 북한의 전략을 무너뜨리는 데 노력해야 한다.”

    盧의 자주외교 vs 朴의 통일외교

    많은 사람이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를 노무현 정부의 자주외교와 비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과 합의해 통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 북한에 적대적인 미국을 돌려놓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북한은, 노 정부가 만들어준 틈을 이용해 보란 듯이 대포동 2호를 실험발사하고 지금도 문제가 되는 무더기 미사일 발사를 하기 시작했다(2006년 7월 5일). 1차 핵실험도 강행했다(2006년 10월 9일).

    그 탓에 한미관계가 삐걱거려 자주외교는 실패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한국을 좌절시키는 미국의 힘이다. 박 정부의 통일외교는 중국을 움직여 북한을 무너뜨려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중은 물론이고 일-중관계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에 대한 접근을 강화해 미국의 의심을 산다. 일본은 대놓고 반한(反韓) 정서를 노골화한다.

    통일한국, 中 영향권에 들어간다

    그 때문에 “미국을 무시했다간 큰코다친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치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온다. “왜그 더 도그가 되겠느냐” “외교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미국의 의심을 이렇게 정리했다.

    “한미관계는 1882년 조선과 미국이 체결한 수호통상조약부터 따지면 130여 년, 광복 후 미군정을 받게 된 1945년부터 보면 7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한중관계는 한(漢)나라가 위만조선을 침공해 한4군을 세운 서기전 108년부터만 따져도 그 역사가 2100년이 넘는다. 지금 한중 간의 교역액은 한미, 한일 교역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그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가 통일되면, 통일한국이 중국의 세력권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은 임진왜란은 물론이고 몽골이 고려와 함께 일본을 침략하려 한 때부터 중국과 대척점에 있었다. 청일, 중일전쟁을 치른 역사도 있기에 같은 한자-유교 문화권을 이루고 있어도, 절대로 중국 세력권에 들어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과거 미국은 소련이 태평양으로 나오려는 것을 막아 소련을 무너뜨렸다. 지금은 중국이 태평양으로 나오는 것을 막아 중국 공산 정부를 붕괴시키려 하는 것 같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유이(唯二)하게 군사동맹을 맺은 한국과 일본을 이 정책에 협조할 나라로 꼽는다. 그런데 한국이 경제에 이어 외교에서도 중국과 급속도로 가까워지자 ‘한국은 태생적으로 중국 문화권에 속하지 않는가’ 의심하는 것 같다. 반면 중국과 센카쿠 문제로 다투는 일본은 대(對)중국 봉쇄의 선봉을 자임한다. 그러니 미국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인정하고 무기 수출을 허용하는 등 친일노선을 강화한다.

    맹방인 미국과 일본이 등을 돌리면, 통일외교는커녕 우리의 안보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왜 박근혜 정부는 한 가지 외교노선만 고집하는가. 박근혜 정부는 미국 중국의 실력자와 바로 통할 수 있는 친미·친중 인사는 물론이고 일본 러시아와 가까운 친일·친러 인사도 확보해야 한다.

    시진핑 방한처럼 미국과 일본이 주시하는 정상외교를 했으면 즉시 두 나라와 통하는 실력자를 보내 설명하게 해야 한다. 아베가 밉다고 이를 등한히 하면, 결정적인 시기에 우리를 골탕 먹일 적만 늘어날 뿐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그렇게 인내하면서 왜 일본에 대해서는 못하는가. 외교부가 서울에 있는 두 나라 대사관에 설명했으니 ‘됐다고 치는 것’은 정말 안이한 판단이다.”

    노태우의 북방외교가 전범

    또 다른 전직 외교관은 우리가 가야 할 4강 외교의 방향을 이렇게 정리했다.

    “세계적으로는 우리도 강한 나라이지만 동북아에서는 약자다. 4강을 사냥꾼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사냥감에 해당한다. 사냥감이라고 해서 만날 도망만 다니면 살 수가 없다. 내 먹이는 물론이고 사냥꾼의 먹이도 훔쳐 먹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사냥꾼 것을 훔쳐 먹으려면 그가 자거나 쉴 때 움직여야 한다. 선제적으로 기동해야 하는 것이다. 4강 외교도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그는 노태우 정부가 한 북방외교를 선제외교의 전범으로 꼽았다. 공산국가인 헝가리로부터 소량의 양파를 수입하며 조금씩 헝가리를 두드리던 한국은 1989년 헝가리와 정식 외교를 맺었다. 공산국가와 수교해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킨다는 북방정책에 시동을 건 것이다. 여기에는 88서울올림픽의 성공도 큰 힘이 됐다. 그런데 공산국가와 처음 수교하는 것이라 한국은 극비리에 추진했다. 수교가 확정되고 발표만 남았을 때 비로소 미국에 알려주었다.

    그러자 미국은 “헝가리 측을 통해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다”고 한 뒤 “한국은 우리와 군사동맹을 맺은 맹방인데, 왜 우리가 헝가리로부터 먼저 한국과 수교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청와대는 크게 놀라 미국에 정중하게 사과했다. 이 일을 계기로 노태우 정부의 안보팀은 ‘우리도 미국에 한 방을 먹일 수 있다’와 ‘미국에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선제적으로 미국을 끌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동유럽국가와 일사천리로 외교관계를 맺은 노태우 정부는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과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그중 클라이맥스는 공산종주국 소련과의 복교(復交)였다. 당시는 소련의 힘이 중국보다 월등히 강했기에, 소련과 외교관계를 맺으면 북한이 외교적으로 크게 고립된다고 보고, 소련과 외교 정상화를 먼저 추진했다.

    한소관계는 1990년 6월 5일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노태우-고르바초프) 이후 급진전해, 그해 9월 30일 복교로 이어졌다. 12월 14일엔 모스크바에서 2차 정상회담을 하며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1991년 9월 17일)에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회담 후 복교 전부터 소련이 요구해온 경협차관 제공이 본격화했다. 이 차관을 받으면서 소련은 북한과의 거래를 정상화했다. 특혜와 외상거래 등을 차단한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생필품은 물론이고 식량과 유류가 부족해져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고난의 행군’에 빠지게 됐다.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에 빠진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소련을 움직여 북한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벌교(伐交)’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는 외교안보수석이 안보의 컨트롤타워였다. 분수령을 이룬 모스크바 회담 직후 노태우 대통령은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을 미국과 일본으로 보내 소련과 회담한 경과를 설명하게 했다. 오해가 발생할 소지를 없앤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계속해서 대미관계를 선제적으로 이끌어갔다. 미국이 세계적으로 핵무기를 철수한다는 것을 알고, 북한의 핵개발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비핵화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북한의 동의를 끌어내고(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미국으로부터 ‘이를 증명하기 위한 북한 지역 사찰을 한국이 한다’는 합의도 받아냈다. 대북관계에서도 선제권을 쥔 것이다.

    그리하여 북한이 곤경에 빠져 ‘북한 붕괴론’이 거론되자, 미국의 베이커 국무장관이 독일이 ‘2(동서독)+4(미소영불) 합의’ 형태로 평화통일된 것에 착안해 한반도 문제도 6자회담의 전신인 2+4 회담으로 풀자고 권유했다. 노 정부는 한반도 분단과 독일 분단은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풀어가겠다고 했다. 베이커 장관은 이를 수용했다.

    그리고 용산미군기지 이전을 제의하고, 미군도 생각하지 못한 평시작전권 환수를 추진해 확정지었다. 통일에 대비하려면 합동군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고, 합동참모본부를 합동작전사령부로서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8·18국방개혁을 추진했다. 주한미군 방송인 AFKN의 케이블화도 먼저 제의해 성사시켰다. 명분을 주지 않았기에 미국은 노 정부의 길을 막지 못했다.

    러시아 카드를 활용하라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 성공을 바라는 이들은 “왜 러시아 카드를 활용하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3일 먼저 한국을 방문하는 성의를 보였으나, 정상회담에 30분 지각함으로써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푸틴은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관심이 많으니 30분 지각에만 주목하지 말고 러시아가 쥔 카드를 활용할 방법을 찾으라고 주문한다.

    러시아는 극동러시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 지역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판매하고자 한다. 현재 한국은 천연가스를 t당 350달러에 들여오는데 러시아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면 210달러에 주겠다고 한다. 동북아에서 큰 소비자가 될 수 있는 일본은 그들이 말하는 ‘북방영토’를 점유한 러시아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할린을 거치면 쉽게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값싸게 확보할 수 있는데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면도 있다. 따라서 한국이, 비우호적으로 나오는 일본을 제압하며 국익도 챙기고 싶다면, 우선은 배를 이용하고 다음으로는 북한을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된다.

    한 러시아 전문가는 “한국에 적극적인 러시아를 제쳐두고 북한을 의식해 조심스럽게 나오는 중국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다. 미국을 너무 의식하는 것도 문제다. 노태우 정부처럼 충분히 설명해 납득시키면 미국도 따라오는데, 그럴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게 문제다. 어려운 경제를 살리면서 통일외교를 펼치려면 4강을 선제적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왜그 더 도그를 하는 비법

    한 외교관 출신 인사는 외교를 이렇게 정의하며 일침을 가했다.

    “친구 사이에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만, 외교에서는 해도 된다. 국익을 위해 거짓말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 외교다. 중국과 커튼 뒤에서 나눈 이야기를 미국에 전한다면, 믿는 동맹인 미국과 커튼 뒤에서 한 이야기도 일본·중국에 전달된다는 것을 알고 외교를 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우리 대통령의 권위가 통하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외교는 철저히 국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회담을 통해 만난 상대 정상의 인품이 좋아 그의 말을 믿는다면, 그는 정말 순진한 지도자다. 밑지고 판다고 하면서 손해 보는 장사꾼이 없는데, 외교는 그보다 더한 사기꾼들의 무대라고 보면 된다.

    대중(對中) 외교를 잘하고 싶으면 대미, 대일 외교부터 잘해야 한다. 중국이 우리를 중시하는 것은 우리가 미국, 일본과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 영향권에 이미 들어간 나라라면, 또 친미 노선을 걸어 경제를 성장시킨 나라가 아니라면, 중국은 우리에게 이렇게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미국과 함께 가는 일본이 기분 나쁘게 나온다고 해서 적대시만 할 것이 아니라 꼼짝 못하고 우리 쪽으로 돌아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것이 중국을 움직여 북한을 흔드는 길이 된다.

    지금 북한은 이란 등 제3세계로 미사일 등 무기를 팔아 생존하고 있다. 그 거래를 막아 북한을 위기로 몰아넣으려면 4강을 모두 움직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 관계에 있는 4강을 이용해야 한다. 그것이 왜그 더 도그를 가능케 하는 비결이다. 친미 일변도, 친중 일변도, 반일(反日) 일변도로 보이는 박근혜 외교는 정말 나이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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