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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들

이주개발 新모델 농촌에서 문화예술마을로

충남 아산 ‘지중해마을’

  •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이주개발 新모델 농촌에서 문화예술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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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개발 新모델 농촌에서 문화예술마을로

지중해마을 주민들이 운영권을 따낸 함바식당.

첨예한 대립 속에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개발을 저지하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환경·재해·교통 등의 영향평가 결과를 설명하는 주민공청회를 방해하기 위해 밤을 새워 인터넷을 뒤지며 비소 등 유해물질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자문했다. 공청회가 열리자 주민들은 급조한 지식으로 질문 공세를 퍼부어 세 차례나 영향평가를 다시 하게 만들었다. LH공사의 지장물(支障物) 조사를 원천봉쇄하려고 마을 입구에 돌을 쌓아 직원 출입을 막기도 했다. 조사를 맡긴 삼성 측이 재촉하자 몸이 단 LH공사 직원들은 용역을 앞세워 마을로 들어왔다. 결국 몸싸움이 벌어졌고 마을 주민 몇몇이 공무집행방해죄와 폭행죄로 고소당했다.

주민 반발이 거세고 특혜 시비에 휘말리자 충남도는 건설교통부(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산업단지 지정을 위한 협의요청을 거둬들였다. 1차 승리에 고무된 주민은 삼성 측에 수차례 대화를 요청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친 주민은 2004년 9월 소송 절차를 밟으면서 사건을 토지보상·재개발·도시개발 전문인 김은유 변호사(법무법인 강산 대표, 성균관대 건축토목공학부 겸임교수)에게 맡겼다. 산업단지지정처분 취소소송에서 김 변호사는 “개발 예정지에 원주민이 비닐공장, 화학공장 등 4개 공장을 갖고 있다. 삼성도 산업단지에 공장을 짓는다는데 왜 똑같은 민간인인데 힘없는 개인이 공장을 대기업에 빼앗겨야 하나? 원주민을 몰아낸 산업단지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건 더욱 말이 안 된다”는 요지로 변론했고, “원고 측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삼성 측에 납득할 만한 논리를 대든지, 아니면 주민과 합의하라”고 했다.

합의가 결렬되고 재판이 길어지면서 소송이 해를 넘기자 강희복 전 아산시장이 자리를 마련했다. 담당 공무원을 포함해 시장실에서 삼성 측과 마주 앉은 마을 주민 대표 5명은 네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이주택지에 공동으로 주택을 건설할 수 있게 자금을 빌려줄 것. 또한 가구당 3억 원에 연이자는 국민주택기금에 준하는 3%로 책정하고 분할 상환기간을 20년으로 해줄 것. 둘째, 무허가 불법주택에 사는 원주민도 이주대상자로 선정해줄 것. 셋째, 산업단지 내 함바식당 운영권을 주민에게 주는 등 생계대책을 마련할 것. 넷째, 주민이 공동으로 임시 이주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 등이었다. 주민 요구사항을 파악한 강 시장의 중재로 삼성 측과 대화의 물꼬를 튼 주민은 소송을 취하했다.

재판 과정에서 “절대 삼성을 이길 수 없다”며 패배의식에 젖은 주민도 일부 나왔지만 끝까지 똘똘 뭉쳐 힘을 발휘한 주민은 삼성 측으로부터 네 가지 요구사항을 핵심으로 한 ‘합의서’의 사인을 받아내면서 염원하던 ‘재정착’의 첫 단추를 꿰게 됐다. 김 이사는 “무허가 불법주택 거주자를 이주대상자에 포함시킨 건 어려운 사람들을 보듬어 함께 가자는 취지였다. 해당 주민이 3~4명이었는데 당시 법은 무허가 건축물을 인정하지 않아 엄밀히 따지면 그들은 이주대상자가 아니었다. 주민들이 배려한 것인데 나중에 애를 좀 먹었다. 그리고 투기꾼들을 끌어들이는 빌미가 됐다”며 후회했다.

‘이주규약’ 통해 한 몸으로



이주개발 新모델 농촌에서 문화예술마을로

김환일 탕정산업 총무이사(오른쪽)와 김은유 변호사.

주민들이 운영권을 따낸 함바식당은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인 산업단지 내 건설인력을 대상으로 한다. 하루 400명 넘는 사람이 세끼 식사를 해결하는 이곳은 점심시간이 되자 작업복을 입은 100여 명의 사람으로 북적였다. 식탁은 이미 빈 곳을 찾기 어려웠지만 식판을 든 사람의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마을 주민은 1명이다. 종업원은 외부에서 뽑았다. 원래 주민이 종업원이었지만 평균연령이 72세인 마을 노인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기엔 힘에 부쳤다. 이곳을 통해 벌어들이는 월 매출은 6000만 원 정도. 수익은 마을 공동운영 자금으로 쓰인다. 이 돈으로 탕정산업이 유지되고, 회사는 주민의 구심점이 되었다. 탕정산업은 식당뿐 아니라 마을 전체 1층 상가의 임대도 책임진다. 상가마다 크기가 119~181m²로 다양하고 임대료도 제각각이지만 회사가 임대료를 매기고 거기서 들어온 수익금은 주민 수에 따라 n분의 1로 분배한다.

주민의 눈물과 땀, 열정을 딛고 세워진 지중해마을은 지난해 4월 입주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1년여 지난 지금, 전국에서 개발을 앞둔 지역의 주민과 기업, 지자체 등이 앞다퉈 찾는 마을이 됐다. 이주개발의 새로운 모델로 벤치마킹 대상이 된 것. ‘희망하는 원주민의 100% 재정착’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내고 관광 명소로 꼽히는 마을이 된 데는 공동건축을 통해 마을 외관을 통일하고 독특함과 아름다움을 부여한 것이 주효했다. 주민 스스로 정한 ‘이주규약’을 통해 공동체가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도 도움이 됐다. 규약 중엔 5년 내 집을 팔고 공동체를 이탈할 경우 1억 원의 벌금을 물도록 한 강력한 조항도 있다.

성공적인 공동체마을 탄생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주민들 사이에 ‘브레인’과 ‘야전사령관’으로 통하는 김 변호사와 김 이사다. 두 사람은 “마을 계획사업 전체를 관리·감독하며 지금의 환경을 조성한 마스터 플래너(Master Planner) 오기열 교수(건설산업교육원)를 빼놓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 변호사와 김 이사의 첫 만남은 아슬아슬했다. 삼성 측과의 싸움을 앞두고 원주민 처지에서 정당한 개발 논리를 고민하던 김 이사는 주민 대표 5명과 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김 변호사의 첫인상은 권위 있고 세련된 도시의 변호사 모습이 아니었다. 대화를 할수록 불신은 더 커졌다. “개발과 관련한 지자체 산하기관 고문변호사를 맡았다”는 김 변호사의 자기소개에 김 이사가 “그럼 우리 같은 주민들 때려잡는 일 하셨네요?” 했더니 김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던 것. 실망감에 돌아서려는 김 이사 일행을 향해 김 변호사가 한마디 툭 던졌다. “사업시행자가 법만 지키면 이주대상자들이 지금처럼 거지처럼 쫓겨나거나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김 이사는 “그때 김 변호사가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인연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김 변호사는 탕정산업 주주이자 자문변호사다. 이주대상자가 아니었지만 마을에 집도 한 채 가진 어엿한 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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