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재범 막고 복귀 도울 민간 기부 절실”

소년범 돌보는 이백철 한국보호관찰학회장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4-08-20 10: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재범 막고 복귀 도울 민간 기부 절실”

    이백철 회장은 지난 20여 년간 교정·교화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1 고교시절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절도를 저질러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상현(가명·20) 씨는 사실혼 관계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 아버지로 인해 다섯 살 때 부모가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를 키우던 어머니가 이듬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지만, 자신의 불행한 처지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교생활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무단결석과 가출을 일삼던 그를 친지들이 한 종교시설의 쉼터에 맡겼지만 그 곳에서도 문제 행동은 반복됐다.

    가출과 강제귀가 조치, 정신건강의학과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꿈도 희망도 없었던 그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으면서 서서히 변해갔다. 고졸 검정고시를 본 뒤 자동차정비 자격증을 따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현재 그는 보호관찰소와 협력관계를 맺은 학원에서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상현 씨가 시험에 합격하면 보호관찰소 측은 자동차정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연계해줄 계획이다.

    #2 혜정(가명·22) 씨는 남자친구들과 훔친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날치기’를 하고, 또래 친구를 협박해 성매매를 시킨 혐의로 열여덟 나이에 단기(1년)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 3개월의 외출제한 명령을 받았다. 두 살 무렵 어머니가 가출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수년간의 교도소 복역 전과가 있는 아버지 대신 두 번이나 효행상을 받은 ‘착한 아이’였지만 끝내 불우한 환경을 떨치지 못하고 가출하면서 비행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보호관찰소를 통해 농협중앙회의 지원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이 개선되자 집으로 돌아갔고, 농촌 일손 돕기 봉사활동, 청소년 동반자 멘토링 프로그램 등에 적극 참가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에듀윌의 후원을 받아 고졸 검정고시도 준비했지만 몇 차례 낙방하자 태권도를 배웠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지원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그는 태권도 유단 자격증을 땄고, 현재 지방의 한 수련원에 교관으로 취업해 청소년들을 가르친다.

    교정·교화 예산 태부족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2013 범죄백서’(이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2년 ‘소년범’(10세 이상, 19세 미만)은 10만7490명이다. 2011년 8만3068명에서 2만4422명이 늘었다. 이들의 가정환경은 ‘하류’가 62.4%, 부모가 없거나 편부, 편모 가정인 경우가 22.5%를 차지했다.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소년원이나 보호관찰 등의 처분을 받은 청소년 중 가정환경이 불우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법무부는 그동안 소년범에게 경제구호, 장학금 지급, 의료지원, 직업훈련, 취업알선 등을 통해 더 이상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공을 들였다. 하지만 예산 부족 등의 한계로 아이들을 일일이 챙기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올해 1월 ‘보호소년 등의 처우에 관한 법률’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치료감호법’ 등의 일부개정법률안을 공포하고, 7월 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전국 68개 보호기관(소년원, 보호관찰소, 치료감호소)이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기부금품을 접수할 수 있게 됐다.

    개정법 시행 후 기부 사례는 줄을 잇는다. 경북 김천시에 소재한 ㈜실리콘밸리의 윤경섭 대표는 법 시행 일주일 만에 첫 기부자가 됐다. 평소에도 지역사회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온 윤 대표는 대구보호관찰소에 2000만 원을 기부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해체 등 환경적 요인으로 죄를 저지르는 소년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게 되면서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잡아주고 싶다”며 기부 동기를 밝혔다. 법 시행 하루 전엔 목포보호관찰소 정성화 전 소장이 퇴직 당시 직원들이 건네준 전별금 중 300만 원을 보호관찰 대상자를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정 전 소장은 “보호관찰을 받는 사람들 중엔 다시 사회에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이가 많지만 어려운 형편과 당장의 일거리가 없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소년범들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을까. 5년째 서울구치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사)아시아교정포럼 이사장을 맡아 지난 20여 년간 교정·교화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한국보호관찰학회 이백철(59) 회장(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을 만나 소년범의 실태, 개인과 단체 등 민간 차원의 기부금품이 소년범에게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지, 기부는 어디에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들었다.

    1대 1 맞춤 지원 이뤄져야

    ▼ 청소년 범죄자의 사회복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그동안 충분치 않았나.

    “국가 차원의 교정·교화 예산이 극히 부족한 데다 그마저 관리비나 인건비 등 관련 기관 운영비로 많이 들어가는 걸로 안다. 그러다보니 실질적으로 소년원이나 보호관찰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비용이 모자랐다. 예컨대 부모의 보호나 사랑을 제대로 못 받은 아이는 따뜻한 보살핌과 관심에 늘 목말라하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생일파티 같은 아주 작은 기쁨을 안겨주고 싶어도 비용 때문에 못할 때가 많았다. 20년 넘게 교정·보호관찰 분야 현장에서 활동하지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좀 해보려고 하면 관계자들이 늘 하는 얘기가 ‘예산이 없다’는 거였다.”

    ▼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청소년 범죄자들은 대개 충동적, 즉흥적으로 죄를 저지른다. 그전까지 ‘선택’을 고민해본 적이 없어 아무 생각 없이 그러는 거다. 그런 아이들에게 선택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마련해주려고 주변 교수들을 모아 ‘선택의 인문학’이란 강좌를 만들었다. 4월에 소년원생을 대상으로 딱 한 차례 일주일간 열었는데, 비용이 200만 원 들었다. 이를 지속하자면 경비가 있어야 하는데 계속 자비를 들이기도, 지인들한테 손 벌리기도 쉽지 않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강의를 하는 방식으로 재능기부를 한 셈인데 돈까지 계속 내라고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기부금품 모집이 가능해져서 청소년에게도 강의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된다.”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2년 10만7490명의 소년범 중 재범 이상이 41.4%를 차지했다. 그 가운데 재범은 2008년 13.5%에서 2012년 14.9%로 늘었고, 특히 4범 이상은 같은 기간 7.1%에서 13.6%로 껑충 뛰었다.

    ▼ 최근 청소년 재범률이 증가하면서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이들의 범죄 예방을 위한 지원사업도 그동안 부족한 점이 많았겠다.

    “개정법 시행 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금품은 있어왔다. 소년원은 물론이고 일반 재소자 수형시설이나 보호관찰소에도 자원봉사자가 정말 많다. 교정위원, 범죄예방위원 등을 비롯해 지역의 뜻 있는 사업가 등 개인이 중계자가 돼서 보호관찰소나 소년원 등에 필요한 기부금품 지원을 연계하거나 필요에 따라 직접 지원하는 등 애를 많이 써왔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 민간 차원에서 활발한 지원이 이뤄져왔다면 굳이 법제화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동안의 지원은 간헐적이고 일시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선의의 지원자들에게 계속 지원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나. 필요할 때마다 단발적, 일시적으로 지원받다보니 청소년의 욕구를 가장 잘 아는 소년원이나 보호관찰소 측에서 장기적 안목을 갖고 그들의 사회복귀나 재사회화에 필요한 효율적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려웠다. 기부금품을 직접 확보한다면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예산을 짜서 어떤 분야에 얼마를 배정할지, 어떤 프로그램을 마련할지 체계적으로 장·단기 사업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새로운 법 시행으로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은 개개인에 대한 1대 1 맞춤 지원이 어려워 안타까운 경우도 많았는데 앞으로는 그런 경우에도 지속적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 필요한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해 안타까운 처지에 빠진 사례가 많나.

    “많다. 소년원에 수감됐던 한 10대 청소년은 거기서 사진 찍는 걸 배운 뒤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꿈을 접어야 했다.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사진학원에 보내고 교통비를 대주는 등 섬세한 맞춤 지원이 필요했지만 그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부금품은 사후관리에도 활용

    ▼ 접수된 기부금품은 소년원에서 출소하거나 보호관찰 기간이 끝난 뒤에도 지원 가능한가.

    “그렇다. 법에 따라 모집되는 기부금품은 청소년을 포함한 범죄자의 재범을 막고, 건전한 사회복귀를 위해 쓰인다. 그러려면 그들이 학업을 끝내거나 취업에 성공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므로 사후관리에도 쓰일 수 있다. 가령 보호관찰 기간 지원을 받아 열심히 학업을 준비 중인데 그 기간이 끝났다고 중단한다면 기부금품 모집의 목적에도 어긋난다.”

    ▼ 과거처럼 그냥 기부금품을 지원하던 것과 법에 의해 지원하는 것엔 어떤 차이가 있나.

    “법적 근거를 통해 기부금품을 제공하게 되면, 과거엔 그저 필요하다니까 치킨이나 햄버거 세트 50개쯤 주고 말 사람들이 스스로 용도를 정해 기부할 수 있다. 최근 지원자들을 보면 욕구가 다양해졌다. ‘이건 미술치료 지원에 써주세요’ ‘웃음치료를 해보세요’ 할 정도로 전문적 요구를 한다. ‘필요하다니까 한번 해주고 말지’ 하던 기부와 비교하면 보람도 더 크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법정기부금에 해당되므로 기부자 개인이나 단체는 세액공제나 법인세 절감 등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나아가 개인이나 기업이 나름대로 사회에 공헌하는 실적을 남길 수 있어 기부자 처지에서 보람과 성과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왜 하필 범죄자를 도와야 하는지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안 그래도 개정법이 시행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람들과 기부금품 관련 토론을 해봤다. 비판적인 주장의 요지는 ‘소년원이나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아이들 중에 실수한 애들도 없지 않겠지만 진짜 나쁜 애도 많은데 왜 그런 애들까지 도와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청소년의 재범을 막는 일이 본인한테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청소년 범죄자의 가정환경을 보면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보호관찰관은 출장상담을 하려고 아이 집을 방문했는데 화장실인 줄 알았던 곳이 집이었고, 어두컴컴하고 좁은 실내에 병든 할머니와 아이 단둘이 생활하고 있었다더라. 그런 아이들한테 보호관찰관이 ‘가출하지 마라’ ‘집에서 얌전히 학교 다니라’고 수없이 얘기하고 강제귀가 조치를 해도 소용이 없다. 물론 그런 아이들이 다 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지만 범죄 청소년이 처한 환경이나 처지는 대개 그처럼 열악하다. 소년원을 나오거나 보호관찰이 끝나도 처음 범죄 유혹에 빠지게 했던 가정환경 등 아이들의 상황이 바뀌는 게 없고 똑같다면 어떻게 재범을 막을 수 있겠나.”

    기부금품 접수는 전국 소년원 및 소년분류심사원 11개 기관, 보호관찰(지)소 56개 기관, 치료감호소 1개 기관을 통해 할 수 있다. 각 기관은 독자적으로 기부금품을 접수해 사용할 수 있으며 법무부 장관에게 기부금품 접수와 사용 현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돼 있다. 소년원 및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보호받는 청소년은 연간 약 1만 명. 56개 보호관찰소는 연간 17만 명의 대상자를 지도·감독하면서 원호한다. 치료감호소는 연간 약 1600명을 수용, 보호한다. 이 가운데 치료감호소 보호를 받는 경우는 대부분 성인 범죄자이고, 보호관찰 대상자 17만 명 중 청소년 비율은 약 40%에 달한다. 해마다 6만5000~7만 명의 청소년이 보호관찰 대상자가 된다. 접수되는 기부금품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범죄자를 위해서도 쓰인다.

    10명 중 4명이 16~17세

    ▼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가 한층 성숙했다지만, 아직도 ‘내가 낸 돈이 제대로 쓰일까’ 우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법정기부금화하면서 투명성이 확보됐다. 기부금품에 대한 영수증 발급 의무화, 전용계좌를 통한 수입과 지출 관리, 기부금품 접수·사용 대장 비치 등으로 기부자가 자신이 낸 돈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쓰였는지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는 2011년부터 법무부와 협조해 보호관찰 청소년의 삶의 현장을 직접 찾아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는 청소년동반자 프로그램을 시행해왔다. 청소년상담사 등 관련 전문가를 특별범죄예방위원으로 위촉해 1대 1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사회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를 통해 각종 지역사회 자원과 연계함으로써 보호관찰 청소년들이 원만하게 사회에 복귀하는 데 힘써왔다. 그 결과 2011년 말, 청소년동반자 서비스를 받은 청소년의 재범률이 서비스를 받지 않은 청소년의 절반 이하로 감소하고, 15세 이하의 저연령 집단에서도 재범이 억제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결론을 얻었다.

    범죄백서에 따르면 소년범 가운데 16~17세가 10명 중 4명꼴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14~15세 연령층은 10명 중 3명을 넘는다. 이 회장은 “알코올중독과 가정폭력, 부모의 이혼과 가정해체, 경제적 빈곤 등으로 어릴 때부터 힘겨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가정과 학교 등 사회로부터 일탈해 충동적으로 범죄에 빠져든 미성년자들을 제대로 돌봐서 가정과 사회로 건전하게 복귀시키지 못한다면 장차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