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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

서울은 맨해튼급 재물 명당 향후 100년 수도 지위 굳건

  • 안영배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획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서울은 맨해튼급 재물 명당 향후 100년 수도 지위 굳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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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세워 아들을 얻는다’

여기서 이인이 바쳤다는 글에 등장하는 한자어 木과 子는 도참류 서적에서 자주 등장하는 ‘파자(破字·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누는 것)’로 이(李)씨 성을 가리킨다. 즉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삼한을 바로잡아 통일한다는 뜻이다. 또 고려왕실의 중요 서고인 서운관에서 보관하던 비결서에 등장하는 ‘건목득자’라는 말 역시 ‘나무를 세워 아들(열매)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씨를 의미한다. 즉, 이씨의 조선 건국은 오래전부터 예정된 것이기 때문에 이씨왕조의 등장은 운명적인 것이고 역사적 정통성을 지녔음을 역설한 것이다.

이씨 왕조가 한양에 들어선다는 것 역시 도참설에 바탕을 뒀다. 이와 관련해 서거정이 1487년에 지은 ‘필원잡기’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양이 이씨의 도읍이 된다는 것은 도선(道詵)의 도참에 있다. 이 때문에 고려에서는 한양에 남경(南京)을 건설하고 오얏나무를 심고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을 택해 부윤(府尹)으로 보냈으며 왕도 해마다 한 번씩 순행하고 용봉장(龍鳳帳)을 묻어 압승(壓勝)하였다.”

사실 고려왕조에서도 일찌감치 남경, 즉 한양의 지기를 눈여겨보던 터였다. 고려 숙종(재위 1095~1105) 때 김위제는 도선의 풍수설을 내세워 남경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주장했고, 실제로 숙종은 남경에 별궁(別宮)까지 지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에 이씨 성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 터다. 고려 왕은 왕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이씨를 의미하는 오얏나무를 심어두고 이씨 신하를 파견하는 등 한양 땅에 이씨의 기운을 심은 뒤 애초에 그 기운의 싹을 잘라내 버리려는 도참 행위를 벌였다. 이중환의 ‘택리지’엔 고려왕실이 윤관(尹瓘·?~1111)을 시켜 백악산 남쪽에 오얏나무를 심어 무성하게 자라면 이를 베어버리게 했다고까지 전한다.



고려 ‘水의 나라’, 조선 ‘木의 나라’

물론 고려왕실의 눈물겨운 풍수도참 행위에도 이씨 성의 왕조가 한양에 들어선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한양의 땅 기운이 나무 목(木)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목의 나라’라는 상징성을 강력히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왕건이 세운 고려가 그 건국 배경에서부터 수(水)의 기운을 강조하는 ‘수의 나라’라는 점과 묘한 대비가 된다. 실제로 고려왕실은 해양왕국답게 물을 상징하는 숫자인 1과 6이 조합되는 숫자를 무척 중요시했다. ‘고려사’에 의하면 왕건의 선대 집터를 논하는 부분에서 “그대(왕건의 선조) 또한 수(水)의 명(命)을 가졌으니 마땅히 수(水)의 대수(大數)를 좇아서 육육삼십육(6×6=36) 구(區)의 집을 지으면 천지의 대수에 부합하여 다음 해에는 반드시 슬기로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왕건이라고 하라”는 대목이나,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에 ‘서경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이라는 내용은 모두 고려가 물과 그 물에 부여된 숫자를 의미 있게 보았다는 증거다.

물의 상징 수인 1과 6은 그 배열에서 36(6×6), 100(1×100), 120(60×2), 160(100+60) 등의 숫자로 표현된다. 고려가 송악(개경)을 중심으로 남경(한양)과 서경(평양)을 활용하면 36개국이 조공해올 것이라는 도참, 100년 후 개경 쇠퇴설, 도읍 120년 후 국운 연장을 위한 백마산 장원정 건설, 36구의 가옥 배치 등이 그 단적인 예다.

그렇다면 목의 나라인 조선의 경우 그 상징 수는 무엇일까. 오행론에 의하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각각에는 고유의 색깔과 코드 숫자가 부여돼 있다. 목은 앞에서 살펴봤듯이 청색으로 3과 8의 숫자가 부여돼 있고, 화는 붉은색으로 2와 7이, 토는 황색으로 5와 10이, 금은 흰색으로 4와 9가, 수는 검은색으로 1과 6이 부여돼 있다. 당연히 조선은 청색과 3과 8의 숫자가 상징 코드이자, 국운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게 된다.

조선 상징 코드 숫자, 3과 8

조선이 목의 나라였음은 태조 이성계의 영정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숙종 때 태조대왕(이성계)의 영정을 맞이하면서 숙종이 “영정에 첨배(瞻拜)한 즉 태조대왕께서 입은 곤의(袞衣) 빛깔이 푸르니 예복(禮服)이 아닌 듯하다. 혹시 국초(國初)에 복색을 푸른빛을 숭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신하에게 물었다. 그러자 영부사(領府事) 김수흥(金壽興)이 “사람들이 이르기를, ‘고려(高麗)에서는 푸른빛을 숭상하였다’고 하니, 태조조(太祖朝)는 고려와 시대가 멀지 않기 때문에 더러는 푸른빛으로 곤의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고 대강 넘어갔다. 진위야 어떻든 조선의 건국주가 목을 상징하는 청색 곤룡포를 입었다는 건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한양이 조선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우리나라 역학자나 술사들은 한국을 ‘목(木)의 나라’로 규정하고, 국운(國運)을 논한다는 점이다. 목은 10천간(天干) 12지지(地支)로 환언하면 ‘갑(甲)’이자 ‘호랑이(寅)’에 해당한다. 한국을 ‘갑의 나라’라고 하거나 한반도 지형을 호랑이에 비유하는 것 역시 모두 목 기운을 배경에 깔고 있는 표현이다. 외국인인 타고르도 조선이 목의 나라라는 점을 기운으로 느낀 듯 우리나라를 목의 시간대인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자 목의 방위에 해당하는 ‘동방의 등불’에 비유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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