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한국인은 퇴화한다

  •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4-08-20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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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계에서 들려오는 불황의 소리가 심상찮다. 김영사의 박은주 대표가 경영에서 물러났고, 민음사의 전문경영인 장은수 대표도 사퇴설이 나돈다. 민음사는 올해 3월 직원 6명에게 구두로 해고를 통보했다가 이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자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모두 경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국내 4대 출판사 중 민음사, 김영사, 문학동네는 당기순이익에서 적자를 냈다.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창비는 2010년 진출한 국어교과서와 관련 서적의 매출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단행본 시장은 암흑기에 접어든 것이다.

    종이 매체의 종말

    대형 출판사뿐 아니라 출판계 생태계 전체가 위기다. 동네서점의 고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교보문고도 영업이익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유일하게 살 만했던 인터넷 서점도 지난해 매출 하락으로 돌아섰다. 그렇다고 전자책 시장이 대안으로 등장한 것도 아니다. 해외의 전자책 비중은 약 13%인 반면 한국은 고작 2%다. 종이책 시장에서 빠져나간 독자가 전자책 시장으로 유입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한국인이 정말 책을 읽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역시 종이로 된 신문, 잡지 분야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경영 악화로 매각됐다. 성공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2005년 첫 유료화 시도에서 처절하게 실패한 후 2011년 다시 도전해 2013년 1분기 70만 명까지 유료 독자를 유치했다. 한국어 사용 인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 세계 영어 사용 인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례가 한국 언론에 희망이 되기는 어렵다. 유엔의 미래보고서는 아시아 지역의 종이신문이 2025년께 사멸할 것으로 예측한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매체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일부 작가들은 손으로 원고를 쓸 때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문체가 변한다고 고백한다. 마찬가지로 독서법도 변한다. 어느 샌가 정독하는 습관이 자취를 감췄다. 이제 한국인 사이에선 진지한 주제를 붙잡고 장시간 집중하는 전통이 사라졌다.



    최근의 베스트셀러 중에는 강연이나 TV 출연으로 얼굴을 알린 이들이 쓴 책이 많다. 콘텐츠의 주도권이 글에서 말로 넘어간 것이다. 그 탓에 출판 시장의 양적 저하 못지않게 질적 저하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래학자들 가운데는 미래사회가 문자시대에서 영상시대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책의 경우 문장이 짧아지고, 이미지의 비중이 확연히 높아졌다. 한국은 종이 인쇄매체 시장의 극단적 축소로 어느 나라보다 빨리 탈(脫)문자화하는 것으로 비친다.

    네이버, 다음, 정부의 합작품

    이런 사태의 책임 소재는 비교적 분명하다. 일차적 책임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공룡 포털에 있다. 포털은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으면서 콘텐츠의 유통을 독점하고 상당한 편집권을 행사한다. 그래서 진작부터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그러나 포털의 위험성은 이념을 떠나 시장 논리로 접근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언론 시장에는 좌우를 떠나 뉴스 생산업자(신문)가 뉴스 유통업자(포털)에 종속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젠 인쇄매체의 종말 그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 대신 포털은 광고 수익으로 승승장구해왔다.

    두 번째 책임은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포털이 미디어법의 적용을 받지 않은 채 언론과 불공정한 경쟁을 일삼아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수수방관한다. 야당은 원래 포털을 자기편으로 여겨왔다. 네이버는 2013년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철수한 사례가 있다. 콘텐츠 시장에서는 왜 같은 조치가 적용되지 않는지 의문이다.

    책, 신문, 잡지가 몰락한 폐허 위에 무엇이 찾아올까. 꿈의 디지털 유토피아가 펼쳐질까. 미래는 생각보다 암울할지 모른다. 종이 매체와 함께 정독 습관이 사라지면 생각하지 않는 젊은이가 득실댈 것이다. 젊은 세대로부터 한민족(韓民族)의 지적 퇴화가 이미 진행 중인 것 같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 화면만 멍하게 보는 사람들에게서 미래를 선도할 지성, 창의성, 열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사람이 유일한 자산인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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