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파벌, 왕따, 돈거래, 부당징계 스포츠 꿈나무에겐 꿈이 없다

‘복마전’ 체육계 비리 의혹

  •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입력2014-09-18 17: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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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대표 키워줄 테니 2000만 원 달라”
    • 선수 선발권 가진 체육연맹 “갑 중의 갑”
    • 훈련기간 중 ‘공개 애정행각’ 경고로 그쳐
    • 아시아경기대회 한 달 앞두고 싱크로 코치 바뀐 사정
    파벌, 왕따, 돈거래, 부당징계 스포츠 꿈나무에겐 꿈이 없다
    동계올림픽, 월드컵, 그리고 아시아경기대회까지. 올 한 해 유독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가 많았다. 하지만 매번 박수갈채 뒤에 쏟아진 것은 대한체육회 산하 각종 연맹에 대한 비판이었다. 실력보다 인맥, 파벌을 중시해 선수를 선발하는 등 공정하지 못한 관행 때문에 “박태환, 김연아의 최대 약점은 국적(國籍)”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2월 박근혜 대통령이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를 밝혀내라”고 주문하면서 체육계에 강도 높은 자정(自淨) 움직임이 보이는 듯했다.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위원장을 맡은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가 개설됐다.

    하지만 반 년이 지났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한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가 기소한 사건’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아마 기소 건수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OOO이 돈을 받았다’ ‘OOO은 부정하다’는 식의 투서가 많이 오는데 증거가 없다. 대부분 경쟁자가 보내는 익명의 투서”라고 전했다.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 직후 발행된 ‘신동아’ 3월호에는 대한수영연맹 비리를 파헤치는 심층 기사가 실렸다. 그간 수영연맹의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공정성 의혹이 있었고, 연맹이 선수들에게 공표된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고 특정 업체의 수영복 착용을 강요한 것 등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이 기사가 보도된 이후 많은 체육계 인사가 “우리 연맹 사정도 마찬가지”라며 연락을 해왔다.

    “감독이 빚 독촉하듯 돈 요구”



    지난 8월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고교 축구부원 학부모 26명에게 “자녀를 서울 소재 대학 체육특기생으로 입학시켜주겠다”며 11억7000만 원을 챙긴 혐의로 전직 대학 축구 감독, 대학 교수, 브로커 등 22명을 입건했다.

    이와 같은 체육계 입시 비리는 매년 끊이지 않는다. 체육특기생 입시, 국가대표 선발 등에 금전이 오가는 사례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감독이나 연맹 관계자로부터 돈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거나 실제로 돈을 줬다는 학부모의 증언을 다수 확보했다. 전직 국가대표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이렇게 고발했다.

    “중학생 딸에게 운동을 전문적으로 시켜볼 생각으로 모 운동 클럽에 가입했다. 감독이 ‘해당 종목은 경쟁자가 많아서 이 아이 실력으로는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다. 대신 경쟁이 심하지 않은 다른 종목을 시키면 국가대표도 문제없다’며 ‘거래’를 제안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딸의 미래를 위해 종목을 바꾸기로 했다. 그 후 감독은 ‘성공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연맹 임원, 대학 교수, 체육고 교사 등에게 돈을 주지 않고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며 2000만 원을 요구했다.

    감독은 매일 아침 빚 독촉하듯 전화를 해서 달달 볶았다. 돈을 주지 않자 아이에게는 강습 시간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왕따를 시켰다. 훈련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 겨우겨우 돈을 마련해 500만 원을 보냈지만 ‘나머지 돈은 왜 안 보내냐’며 괴롭힘이 계속됐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이 학부모는 결국 팀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감독에게 500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아이는 국가대표가 되긴 했다. 하지만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중간에 연고지를 바꾸는 바람에 훈련에도 차질을 빚었다. 딸의 순수한 열정을 응원하던 마음이 이제는 다 사라졌다.”

    ‘체육 꿈나무’는 누구나 국가대표를 꿈꾼다. 나라를 대표해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같은 세계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연금과 포상금에 병역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국가대표라는 명함은 대학 입시에서도 플러스 요소가 된다.

    “한 달만이라도 상비군에…”

    우리나라는 체육특기생 선발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 체육특기생 제도를 운영하는 상당수 대학이 수시전형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청소년대표 출신이거나 연맹에서 발행하는 우수선수 추천서를 제출한 학생을 우대한다. 정시전형에서도 고교 재학 중 전국 규모 대회 수상 실적을 제출하면 체력장 같은 실기시험이 면제된다. 정시전형의 경우 수능 최저 등급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공부에 자신이 없는 체육특기생들은 수시전형에 ‘올인’한다.

    국가대표 선발 권한을 가진 기관은 각 연맹이다.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경기대회 등 세계 대회가 있을 때는 별도의 ‘대표 선발전’을 열어 순위대로 뽑기도 하지만, 주로 연맹 임원들로 구성된 연맹 산하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선수의 전년도 랭킹 및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해 국가대표를 선발한다. 학부모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 국가대표 자격이 필요하고, 국가대표가 되려면 연맹에 잘 보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파벌, 왕따, 돈거래, 부당징계 스포츠 꿈나무에겐 꿈이 없다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이다.

    한 학부모는 “연맹 관계자들은 ‘올해는 ○○○이 대학을 가야 하니 얘가 국가대표 해야 한다’ ‘당신 아이는 어리니 양보해라. 그래야 걔가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가 고2 때 전국체전을 준비하던 중 연맹 상임이사로부터 ‘올해 당신 아이가 경기에 안 나가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른 고3 아이가 메달을 따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으니 양보해달라는 부탁이었다”고 밝혔다.

    한국체육대의 모 교수는 “현행 입시제도에서는 기간과 관계없이 국가대표 경력만 있으면 혜택을 받는다. 한 달이든 3년이든 다 똑같다. 그렇다보니 ‘무슨 수라도 쓸 테니 한 달만이라도 국가대표 상비군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있다”고 전했다.

    선수뿐 아니라 국가대표 감독, 코치를 선발·임명하는 것도 연맹이다. 이런 상황이라 감독과 코치들도 연맹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다. 한 전직 국가대표 감독은 “코치가 국가에서 받는 월급, 훈련비 중 일부를 갹출해 연맹 이사에게 건네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연맹의 일부 임원은 국가에서 월급을 받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국가대표팀 외에 따로 맡고 있는 소속 팀이 있는 감독, 코치의 경우 월급을 두 번 받는다는 이유로 ‘둘 중 하나를 연맹에 토해내라’고 강요받는다고 한다.

    연맹은 소속 선수, 회원을 징계하거나 자격 정지, 영구 제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선수, 심판, 코치 등의 ‘직업 생명’을 결정하는 ‘절대 권력’을 지닌 셈이다. 최근 한 체육연맹은 7월 중순 선수징계위원회를 열어 국가대표 선수 3명을 징계했다. 복수의 취재원으로부터 확인한 정황은 다음과 같다.

    “발설하면 자격 박탈”

    ‘국가대표인 A양과 B군은 연인 관계다. 전지훈련에서 B군과 한 숙소를 쓰는 C군이 밤중에 잠을 자다 인기척을 느껴 깼더니 B군 침대에 B군과 A양이 함께 누워 있었다. 전부터 A양과 B군의 노골적인 애정행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C군은 이에 대해 하소연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계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국가대표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한 A, B 선수를 징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선수 관리를 소홀히 한 감독, 코치 등 관계자들도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작 징계위원회는 해당 선수들에게 구두 주의만 줬다. 그런데 C 선수에게까지 “이 일에 대해 다시 발설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것. 세 선수는 모두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한편 수영연맹 내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싱크로) 전현직 관계자들은 “수영연맹이 징계를 남발한다”고 호소했다. 세계수영연맹(FINA) 싱크로 심판 자격증 중 두 번째로 높은 단계인 B리스트를 받은 정영화 전 싱크로 상임이사 겸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는 “2012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기한도 없는 징계를 받았다”고 제보했다.

    “상비군 코치로 활동하던 중 연맹과 소통이 되지 않고 계속 갈등을 빚다 결국 코치직을 사퇴했다. 그랬더니 ‘자격정지’ 징계를 한다고 했다. 징계 관련 서류를 받은 적도 없어 징계기간이 언제까지인지도 모른다. 그간 싱크로 국제심판으로 활동을 못한 탓에 국제심판 자격이 올해 말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김경선 수영연맹 상임이사는 “정씨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채 국가대표 훈련을 방치했다. 징계는 당연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국회를 통해 수영연맹에서 받은 현재 징계 중인 싱크로 심판 목록에 정씨의 이름은 없다. 해당 서류에는 “정씨가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것은 현재 싱크로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만 있었다. 정씨는 “허탈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국제심판되려고 중국, 일본, 캐나다 등 안 가본 나라가 없다. 자비 수천만 원을 들여 국제심판 자격증을 땄는데 ‘실체도 없는 징계’ 때문에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한다.”

    국내심판 자격 없는 국제심판

    또한 권미라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1년 반 전 진천선수촌 합숙 당시 숙소를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징계 대상이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이도경 정식심판은 지난해 경기도 수영연맹과 함께 연맹의 허락을 받지 않은 수영 대회를 개최하려 했다는 이유로 1년 자격정지를 받았다. 연맹은 ‘징계를 받은 사람은 3년간 임원으로 활동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 규정을 들어 “이씨는 징계가 만료된 후에도 3년간 심판으로 활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 싱크로 심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박희정 씨는 최근 수영연맹으로부터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심판으로 출전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박씨가 12년 전 국내에서 열린 심판강습회를 수료하지 않고 국제심판 활동을 했다는 이유였다. 박씨는 “분명히 국내 강습회를 수료한 뒤 국제심판 자격증을 땄다”며 국내 강습회에 참가한 사진까지 연맹에 제출했다. 하지만 연맹은 “박씨가 참가한 강습회는 자격증 획득용이 아닌 보강용이다. 수업을 들은 것은 맞지만 자격증은 못 땄다”고 판단했다. 그는 “만약 내가 국내 강습회를 마치지 않았다면 심판 관리를 소홀히 한 연맹에도 책임이 있다”고 억울해했지만 연맹 측은 “박씨는 국내 싱크로 심판 자격 미취득자로 자격이 없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박씨에 대한 조처를 두고 체육계에는 “괘씸죄에 걸린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최근 전국대회를 앞두고 싱크로 정식심판들이 심판제도에 대한 항의 표시로 한 대회를 보이콧했는데, 연맹이 그 주동자로 박씨를 지목했다는 것.

    현재 싱크로 국내 대회는 5심제로 운영된다. 심판 5명이 점수를 매긴 후 최저, 최고점을 제외한 3명의 점수로 평균을 낸다. 15명의 심판이 함께 심사하는 국제 기준과는 다르다. 국가대표 출신 심판 이도경 씨는 “5심제는 내가 운동을 하던 1980년대에 도입한 방식이다. 여건이 어렵다면 최소한 7심제라도 해서 국제기준을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영연맹은 올 들어 심판 규정을 더욱 강화했다. 예비심판을 1년간 7번 거친 후에야 정식심판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지난해 기준(예비심판 3번)에 비해 훨씬 강화됐고, 그만큼 신규 심판 자격을 따기 어려워졌다. 연맹 김경선 이사는 “심판이 모두 여성이라 육아, 출산 등을 이유로 장기간 쉬는 경우가 많다. 선진 심판 기준을 전수하기 위해서라도 7번의 예비심판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역 정식심판들은 “심판을 양성해야 할 시점에 제도를 강화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연맹이 ‘관리하기 쉬운’ 심판 위주로 유지하기 위해 제도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며 집단 반발했다.

    수영연맹과 싱크로 관계자들의 갈등은 아시아경기대회 직전까지 이어졌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대회 엔트리 마감 직전인 7월 중순 열렸다. 그나마 현역 대표선수 3명만 참가했다. “출전 선수가 내정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수영연맹은 “2월에 결정한 사항이다. 다른 선수들도 충분히 준비할 기간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들 3명의 대표선수는 모두 현직 상임이사가 운영하는 클럽팀 소속이다.

    성적 뛰어나도 왕따

    아시아경기대회를 한 달 앞둔 8월 11일. 갑자기 싱크로 국가대표 코치가 사퇴했다. 수영연맹이 밝힌 이유는 ‘현직 국가대표 선수들과의 갈등에 따른 자진사퇴’였다. 나흘 뒤 코치로 선임된 최수미 씨는 2007년 대표팀 코치로 근무할 당시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연맹에서 영구 제명된 바 있다. 연맹은 “1개월 반 조건부 코치고 유일한 지원자였으며 영구 제명은 해지됐다”고 반박했다.

    어찌 보면 이런 잡음은 체육계 내부의 작은 갈등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때문에 피해 보는 것은 체육 꿈나무들이다. 파벌과 갈등의 폐해를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며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스포츠 정신’을 요구할 수 있을까. 한 국가대표 선수는 “내가 국가대표 감독 쪽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쌍욕도 많이 들었다. 매일 밤 악몽을 꿨고 계속 머리가 빠졌다”고 하소연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수영 금메달리스트 조희연 씨의 고백은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나는 ‘반(反)연맹파’였다. 당시 16세 어린 나이에도 한 해 동안 한국최고기록을 18개 세울 정도로 성적이 좋았지만 출전 기회를 많이 주지 않았다. 방콕에서 선수단과 내내 거의 말도 못했다. 말 그대로 왕따였다. 결국 랭킹 1위임에도 여자 혼계영 400m 단체전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개인종목(접영 200m)에 출전해 수영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땄다. 그때 혼계영에 뛰었다면 금메달 하나를 보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평생 따라다닌다. 나 말고도 연맹과의 갈등 때문에 평생의 꿈을 잃은 선수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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