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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사라져 가는 고향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김희갑 ‘향수’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사라져 가는 고향 돌아갈 수 없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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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오페라 가수를 한 방에 날려버린 노래 ‘향수’의 시작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이다. 올림픽 열기가 한창이던 1988년, 가수 이동원은 신촌의 한 서점에 들렀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진 사회과학 전문 서점 ‘오늘의 책’이다. 당시 이 서점은 이념서적 판매로 대학가에 널리 알려졌다.

노랫말을 찾기 위해 시집을 살피던 이동원은 서점 구석에 감춰진 ‘정지용 시집’을 찾아내 읽다가 그 길로 여의도에 사는 작곡가 김희갑의 집으로 달려갔다. 김희갑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잘나가는 인기 작곡가였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시 ‘향수’에 빠져 있던 이동원은 김희갑에게 곡을 붙여달라고 매달렸다.

그러나 김희갑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향수’의 운율이 곡을 붙이기가 쉽지 않고 또 억지로 곡을 붙일 경우 오히려 이 시의 의미를 다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동원은 막무가내로 고집했고 결국 김희갑은 1년 동안 고심한 끝에 이듬해인 1989년 초 곡을 완성했다. 이어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함께 부르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향수’의 탄생 설화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로 시작되는 정지용의 ‘향수’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또 애송하는 시 중 하나다.

후세의 시인들은 그의 시가 보여주는 감성은 새벽하늘의 샛별보다도 찬란해 우러러보기조차 눈부시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1930년대 이래 문학의 기쁨을 알고 지내는 한국의 지성 중에서 지용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은 이가 없다고들 한다. 일찍이 영문학자 이양하는 엘리어트 등 영어권의 어떤 시인보다도 지용의 시가 뛰어나다고 찬탄한 적이 있다. 이양하는 척박했던 1920년대 도쿄 유학 시절에도 대부분의 조선인 유학생은 식민지 청년의 비애를 그린 지용의 시 ‘카페 프란스’를 즐겨 읊었으며 그가 동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알려진 대로 지용은 모더니즘풍의 시를 써서 문단의 주목을 받은 시인이다. 1930년대 초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여, 김영랑과 함께 순수 서정시 개척에 힘을 썼다.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의 구축,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 구사 등으로 한국 현대시의 초석을 놓은 시인으로 평가된다.

사라져 가는 고향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옥천 구읍의 정육점 풍경. 간판에 얼룩배기 황소가 등장한다.

고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없다

지용은 1930년대 말부터 ‘문장’지의 심사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등 청록파를 발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해 활동했고 6·25를 전후해 행방불명돼 생사를 모른다. 한때 월북 시인으로 분류돼 문학사에서 다뤄지지 않았으나 1988년 올림픽 열기 속에 해금됐다.

이런 연유로 박인수, 이동원의 노래로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진 지용의 대표적인 시 ‘향수’ 또한 월북 시비에 말려 오랫동안 한국문학으로부터 추방당했다. 그러나 그의 순수 모국어로 된 ‘향수’가 던지는 의미가 지대해 많은 사람이 당국의 눈을 피해 ‘향수’를 읽고 배웠다. 금지된 1950년대 이후에도 한국인의 끔찍한 사랑을 받아왔던 것이다. 실개천, 질화로, 얼룩배기 황소, 짚베개, 어린 누이, 늙으신 아버지 등이 적절하게 배열된 ‘향수’는 농경사회를 모태로 한 한국인에게 유년의 한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특별난 시다.

그러나 노래로서 ‘향수’는 우선 어렵다. 그래서 베테랑 작곡가 김희갑조차 ‘향수’만큼은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바닷가의 추억’ ‘달맞이꽃’ ‘봄비’ 등 주로 서정성이 짙은 노래를 작곡해왔지만 지용의 시가 가진 모더니티가 노래로서는 적당치 않았다는 것이 김희갑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예상을 깨고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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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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