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호

국정원 적폐청산 ‘내로남불’

“이명박·박근혜 잡으려다 국정원 죽인다”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일갈

  • 입력2017-11-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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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을 私的으로 이용해 복수

    • 시중에 국정원 기밀문서 돌아다니는 건 나라도 아니다

    • 역대 어느 정권도 메인서버 열어본 적 없어

    • 이번 기회에 발가벗겨 정치공작 구태 청산해야

    국가정보원 청사 [김형우 기자]

    국가정보원 청사 [김형우 기자]

    국가정보원은 2013년 장성택 비리 목록을 공식·비공식 통로로 북한에 전달했다. 김정은과 장성택을 분리하는 이간책(離間策)을 구사한 것으로 남재준 국정원장 시절의 일이다. 국정원은 중국에 나와 있는 장성택 측근들과 접촉했다. 또한 한국 언론에 ‘김정은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장성택이 대안’이라는 보도가 나오게 해 김정은과 장성택을 이간하려는 시도를 벌였다. 

    같은 해 국정원은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한국인 명단을 입수하는 공작도 벌였다. 한국에서 이름난 인사가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면 파장이 일었을 것이다. 국정원이 포섭한 북측 인사는 명단을 넘기는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국정원은 한국인 노동당원 명부를 이 인사에게 돈을 주고 사려고 했다. 

    국정원은 명단의 일부를 먼저 건네면 돈의 일부를 주고 전체 명단을 받았을 때 나머지 돈을 건네겠다고 제안했으나 북한 관료는 돈을 먼저 줘야 명단을 주겠다고 했다. 이 공작을 추진한 곳과 다른 국정원 라인에서 검증한 결과 북측 인사가 ‘그 직위의 그 인물’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공작은 중단됐다. 


    합법과 비법, 불법의 경계

    국정원의 공작 활동은 이렇듯 은밀한 영역에서 합법과 비법, 불법의 경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국정원의 김정은-장성택 이간 공작이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군(軍) 출신으로 남재준 원장 시절 국정원 실세로 통한 A씨는 “장성택 판결문에 재정 사용의 문제점, 비자금 유용 등 돈 문제가 등장한다. 우리가 넘겨준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우리 정보를 이용한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재준 원장 때 국정원에서 일한 B씨의 설명은 다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다. 남재준 전 원장이 장성택 실각과 관련해 쿠킹(cooking)된 보고에 고무돼 (국정원의 공작을 통해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상황을 오판하는 계기가 됐다. 국정원에서 아랫사람의 보고는 원장이 가진 생각에 맞춰 입맛에 맞게 작성되게 마련이다.” 

    전직 국정원 인사 C씨는 최근 한 언론사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장성택 실각 전후 국정원 상황에 대해 물었는데 내부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여겨졌다. 외부에선 알 수 없는 구체적 내용에 대해 확인했다면서 질의했기 때문이다. C씨는 “이명박·박근혜 잡겠다고 국가 안보를 죽이고 있다. 국정원 문건이 시중에 돌아다니는 것은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내부 문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검찰은 내부 문건을 증거로 삼아 국정원 적폐 청산 수사를 벌인다. 시중에 나도는 국정원 문건은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위원장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산하 적폐청산TF 혹은 검찰에서 흘러나왔을 소지가 크다. 국정원 내부 문건은 구(舊)여권을 공격하는 ‘전가의 보도’로 활용된다. 문건 내용이 언론에 보도돼 여론을 들끓게 한 후 수사가 진행되는 양상이다. 보수 정권 시절 핵심에서 일한 이들은 ‘부역자’로 내몰린다. 


    “수술 필요하나, 방어벽 필요”

    C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좋건, 싫건 국정원은 국가 안보를 지키는 정보기관이다. 역대 어느 정권도 국정원 메인서버를 열어보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잡겠다고 국정원을 죽이고 있다. 잘못을 도려내는 수술은 필요하나 죽이는 것은 안 된다. 동북아 정세가 요동친다. 지정학적 조건이 엄혹하게 변한다. 국정원은 국가 안보와 관련해 중요한 조직이다. 처방을 제대로 해 정교하게 수술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은 슬픈 일이나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처럼 해선 안 된다.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해 복수하는 것은 잘못이다. 메인서버를 들여다본 것은 선을 넘은 것이다. 훗날 권력이 파헤쳐볼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어느 국정원 직원이 제대로 된 보고서를 쓰겠나, 어느 국정원 직원이 제대로 된 공작을 하겠나. 김만복 원장-서훈 3차장(현 국정원장) 시절 일어난 일을 까발리면 현재 여권이 어떻게 되겠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일만 취사선택해 수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치주의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구(舊)여권에서는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면서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수사를 지휘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청와대는 “황당무계한 소설 같은 말”이라고 정리했다. 백 비서관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사죄하라”면서 달려든 적이 있다. 

    또 다른 전직 국정원 인사는 “국정원 직원들은 비법과 합법, 불법의 경계선에서 일한다. 북한을 상대로 한 공작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미국 중앙정보국(CIA) 메인서버를 열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구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0월 2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로 수감된 유성옥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구속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폐 청산을 명목으로 민간인으로 구성된 TF가 국정원의 메인서버를 열었다. 메인서버엔 국정원의 모든 정보활동 문건이 들어 있다. 과거 어느 정권도 전(前) 정권에 대한 보복을 이렇게 한 적은 없다. 언론이나 검찰에 국정원의 기밀 문건과 보고서를 통째로 넘기는 식의 여론몰이를 하진 않았다. 위법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나름대로 근거를 만들어놓았겠지만 국정원 역량이 모두 노출된다. 외부 민간위원들도 기밀 문건을 돌려보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취사선택해 사용한다.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을 때 그런 문건들이 통째로 검사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이런 문건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느냐’고 하니까, 담당 검사도 공감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렇게 한 사례가 없다.”

    “개혁하려면 한번 발가벗겨야”

    C씨는 “국정원 적폐 청산이 메인서버를 연 목적이고 이번 기회에 발가벗겨 새로 시작할 각오라면 보수 정권 이전에 행해진 것도 다 공개해야 적폐가 온전히 청산될 것 아닌가. 노무현·김대중 정부 때는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정치권과 청와대에 안 갔겠는가. 국가 안보기관에는 지켜줘야 할 최소한의 방어벽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전직 국정원 인사는 “국가 안보라는 네 글자 뒤에 숨어 그간 드러나지 않은 국정원의 탈법·불법 활동이 이번 적폐 청산을 통해 앞으로는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앞선 인사들과 다르게 말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민간인 위원들이 메인서버를 통째로 들여다봤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국정원의 기술 지원을 받아 의혹이 제기된 사안과 관련한 것만 제공받은 것이다. 민간에서 좌파 활동을 한 사람들이 내부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공격하는 것 또한 물타기일 뿐이다. 국정원을 올바르게 개혁하려면 한번 발가벗길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국내 정치 공작 등 구태를 일소해야 한다.” 

    국정원은 11월 14일 “서버 내용은 관련 규정에 의거해 필요한 부분만 적법하게 공개되고 있다”고 ‘신동아’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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