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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들판에서 온전한 자유를 꿈꾸다

남원과 임실 사이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황량한 들판에서 온전한 자유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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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변의 풍경

지리산 굽이굽이 옛길은 거의 폐쇄된 지역 같았다. 오래된 그 길을 대신해 시원스레 19번 국도가 뻗어 있고 또 그 위로 여수엑스포로 인해 연장 확장된 직진의 완주·순천 고속도로가 쾌주의 차량들을 떠받치니, 지리산 옛길은 인근 주민 말고는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다.

지리산 중턱의 거대한 휴양 시설은 공사가 중단돼 흡사 프란시스 고야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에 나오는 괴신처럼 산중에 버티고 서서 수십 개의 퀭한 눈으로 산의 위와 아래를 응시한다. 그 옛날에 굽이굽이 길 오르던 차량들이 잠시 쉬어 가던 휴게소도 기능을 다해 아예 출입구조차 폐목재로 단단히 막혔다. 간이식당들, 선물가게들, 주유소들도 길의 운명이 쇠한 탓인 듯 더 이상의 영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문을 닫았다. 경치 좋은 곳을 바라보며 서 있던 모텔들도 오래된 사랑의 흔적마저 다 지운 채로 낡은 흉가로 변해간다.

그 길을, 그 길가의 쇠락한 건물들을 보면서 한참을 달리다가, 오히려 나는 문득 이러한 풍경이 주는 느닷없는 황량함의 기운을 못 이겨 겨우 낡은 휴게소 한 곳을 발견해종이컵 커피 하나 들고 서푼어치 감상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런 쇠락한 도로, 이렇게 기울어져 가는 풍경에 대해 사실 지나친 감상은 불필요하다. 이러한 풍경은, 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현실감 있게 해석돼야 하고 행정적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그럼에도, 어찌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한순간의 감상 또한 금지돼야 할 것인가, 그것을 핑계 삼아 나는 쓸쓸한 국도와 낡은 신문의 한 뼘짜리 기사와 저물어 가는 들판을 이렇게도 보고, 또 저렇게도 보면서, 한두 가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신문은 고양이가 늘고 있다고 썼다. 고양이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했다. 달리 말해, 이는 도시인들이 자신만의 내면 공간을 갖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 자신만의 내면세계, 자신만의 감정 말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감정’ ‘정서’ ‘마음’ ‘열정’ 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좀더 학문적으로 검토하건대, 서구에서 근대 세계란 중세의 종교적 열정과 강력했던 세습 권력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연속이었거니와 그것은 합리적 사회관계의 성립으로 귀결됐다. 근대의 제도, 질서, 구조 등은 중세적 열광을 억제하는 것, 즉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약속에 따라 그 감정을 억제하는 것, 그것이 서구의 근대였다. 서구의 근대를 ‘합리화’로 설명한 막스 베버는 “비합리적 충동의 절제, 적어도 이 충동의 합리적 조절”을 서구 합리성의 요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꽤 오랫동안 서구의 근대, 혹은 그것을 해명하려는 학문적 시도는 일단 감정을 학문적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최소한 괄호 안에 넣어두었다. 또한 서구의 근대는 일정한 규범과 제도가 행위를 산출하며 일정한 변수와 측량으로 사람의 사회적 행위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감정 생산’과 ‘내면 연기’

그랬는데, 배제했던, 적어도 괄호 안에 넣어두었던 감정이 강력한 변수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상식적 제언이 아니라 감정 노동, 감정 규칙, 감정 생산, 감정 통제 같은 말이 주목할 만한 학문적 탐사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엘리 혹실드는 ‘감정노동’에서 현대사회가 감정을 관리한다는 점, 단순히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감정을 느끼고 불러일으키도록 구조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어빙 고프먼이 말한 ‘내면 연기(deep acting)’와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부지불식간에 사회적 규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내면 연기’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인간적 감정은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한 상황 속에서 공식적 프레임이 요구하는 적절한 감정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연기까지 스스로 이행한다.

황량한 들판에서 온전한 자유를 꿈꾸다

공사가 중단돼 지리산 중턱에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서 있는 휴양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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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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