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PER 30배…이미 거품” vs “해외매출 급증…300만 원 간다”

황제株 아모레퍼시픽 고공행진 어디까지?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입력2014-10-23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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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경배 회장, 이건희 회장 이어 ‘주식 부호’ 2위
    • 1990년대 초 과감한 구조조정 후 ‘한 우물 경영’
    • 80만 원대 주가, 1년 만에 250만 원대로
    “PER 30배…이미 거품” vs “해외매출 급증…300만 원 간다”
    올해 증권가의 최고 화제는 단연 아모레퍼시픽이다. 주가가 ‘대장주’ 삼성전자를 제친 것은 물론, 수년째 최고가를 자랑하던 롯데제과와 롯데칠성마저 누르고 대한민국 ‘황제주’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10월 들어 국내 증시 침체로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9월 29일엔 252만 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연말 최종가가 100만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열 달 사이에 152% 상승한 셈. 시가총액 순위도 연초 44위에서 16위로 급상승했다. 관련주인 아모레퍼시픽 우선주와 아모레퍼시픽그룹주도 9월 29일 기준 100만 원이 넘었다.

    덕분에 아모레퍼시픽 오너인 서경배(51) 회장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제치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이어 국내 주식 부자 2위에 올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양대 글로벌 기업 삼성과 현대의 아성이 깨진 것이다. 재벌닷컴 발표에 따르면 서 회장은 아모레퍼시픽 주식 62만여 주, 아모레퍼시픽그룹 주식 444만여 주 등을 보유했다. 이를 9월 29일 기준 주식시세로 환산하면 약 6조9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2조7000억 원대였던 게 열 달 만에 4조2000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

    이 같은 주가 급등은 탄탄한 실적이 있기에 가능했다. 동종업계에서 “불경기에 보기 드문, 놀라운 매출과 영업이익”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거품? 더 오를 것”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에뛰드, 이니스프리 등 다른 화장품 계열사들과 함께 총 3조624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2년에 비해 14.8% 증가한 수치다. 올 상반기에도 2조1893억 원의 매출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3% 증가했다. 이 흐름이 지속된다면 올해 4조 원대 매출 달성이 유력하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도 크게 늘어 전년 대비 32% 증가한 2862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2분기 영업이익 증가율은 전년 대비 무려 69%에 달했다.



    영업 실적 호조는 국내 매출이 증가한 것도 있지만, 해외 매출 확대가 크게 작용했다. 2012년 4226억 원에서 2013년 5399억 원으로 27.8% 늘어난 데 이어, 올 상반기엔 3827억 원으로 전년보다 38%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를 넘어섰다.

    특히 중국과 아세안 시장의 매출 증가는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중국 3387억 원, 아세안 1266억 원으로 전년 대비 37%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에도 중국과 아세안을 합쳐 3252억 원의 매출을 기록, 전년 대비 58% 증가했다.

    국내 매출에서도 중국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올해 1분기 면세점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6%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중국인이 쓴 돈이 전체의 68%를 차지한다. 인천공항 면세점 매장에서는 중국 단체관광객이 싹쓸이를 해가는 바람에 올 2월부터 한동안 1인당 단일품목 구매를 10개 이하로 제한하는 조처를 취했을 정도다.

    2012년 서 회장이 “중국 화장품시장은 2011년을 기점으로 이후 10년은 고속 성장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우리가 지닌 20여 개 브랜드 가운데 중국에 론칭한 것은 5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장 기회는 무궁무진하게 있다”고 예상한 게 적중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30배가 넘는다는 점을 들어 거품이란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PER은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것으로, PER이 높으면 수익성에 비해 주가가 높게 평가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주가상승이 여기서 멈출 것이라고 보는 투자전문가는 많지 않다. 서 회장의 말처럼 아직 더 성장할 여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90만 원, 300만 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 애널리스트도 여럿 있다.

    함승희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해외 매출액은 오는 2017년까지 연평균 39.8% 성장하고, 같은 기간 글로벌 화장품 시장 내 점유율은 1.3%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내수시장에서의 경쟁력도 더 강화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아모레퍼시픽이 이런 비약적 발전을 이룰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별로 없었다. 방문판매 대리점주와의 갈등이 표출되며 갑을(甲乙) 논란을 빚은 데다, 경쟁사들의 추격이 거셌기 때문이다. 3분기(7∼9월)에는 해외사업 매출이 적자로 돌아서는 등 악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100만 원을 웃돌던 주가가 10월엔 80만 원대로 급락하기도 했다. 서 회장이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할 정도였다. 그런 난관을 딛고 올해 대반전을 이뤄낸 셈이다.

    “한 우물만 파겠다”

    “PER 30배…이미 거품” vs “해외매출 급증…300만 원 간다”

    아모레퍼시픽은 여성 암 환자에게 화장법을 알려줌으로써 치료에 도움을 준다.

    아모레퍼시픽의 성공 비결을 묻자 김승환 그룹전략실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체질 강화”를 첫 번째로 꼽았다.

    아모레퍼시픽은 가내수공업에서 시작됐다. 1932년 서경배 회장의 할머니가 부엌에서 동백기름을 짜서 내다판 게 시초였다. 아버지 서성환 창업주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화장품 제조와 사업 노하우를 익혔고,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창립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화장품 역사를 써나갔다. 늘 업계 1위 자리를 지켰고, 1980년대엔 증권, 패션은 물론 여자농구단, 프로야구단까지 운영하는 그룹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런 문어발식 확장이 발목을 잡았다. 1990년대 초 화장품 시장이 개방되자 수입 화장품 공세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20%대까지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다.

    1987년 입사한 서 회장은 1991년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24개에 이르던 계열사 중에서 화장품과 관련되지 않은 회사는 순차적으로 없애고 화장품 사업에 집중했다. 당시 서 회장은 오로지 한 우물만 파겠다고 결심했다. 임직원에게 항상 “모든 일을 다 잘하려 하면 어느 한 가지도 잘할 수 없는 법이다. 세계의 위대한 기업은 남이 하는 일을 따라 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충실했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2006년 6월 지주회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과 사업 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을 분할하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1990년 초부터 진행한 ‘선택과 집중’을 완결했다.

    ‘맞춤형 현지화 전략’

    두 번째 성공 비결로는 ‘맞춤형 현지화 전략’을 통한 해외시장 진출을 꼽았다.

    대부분의 소비재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 이전투구를 벌일 때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 프랑스 지사를 설립하는 등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서 회장이 가장 주목한 건 중국 시장이었다. 다른 기업들이 중국을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생산공장으로만 인식할 때 그는 미래의 거대 소비시장으로 파악하고 준비했다.

    해외시장 진출은 철저한 현지화와 맞춤형 전략을 폈는데,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1994년 중국 선양에 진출해 첫 현지법인을 세운 아모레퍼시픽은 3년 동안 사전 조사를 한 후 라네즈의 고급 브랜드화 전략을 세우고 1997년 백화점을 통해 ‘라네즈’를 출시했다. 그러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2000년 사업 인프라가 더 좋은 상하이에 법인을 연 데 이어 글로벌 전략컨설팅회사를 통해 또다시 3년 동안 중국 소비자 350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시장조사를 했다. 그 결과에 맞춰 사업전략을 다시 짰다. 2002년 중국 상하이와 광저우에 생산시설을 지어 중저가 브랜드는 중국에서 생산하고 고급 브랜드는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해 파는 구조를 만들었다. 판매를 담당하는 중간관리자부터 세일즈맨까지 중국인을 고용했다. 현재 전체 직원의 90% 정도가 중국인이다. 이 전략이 성공하며 라네즈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했다. 때마침 한류열풍까지 불었다.

    이뿐 아니다. 상하이법인 아래 상하이연구소를 설립해 베이징대와 푸단대 및 쓰촨대병원 피부과와 협력해 중국 여성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연구했다. 그 결과 지난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중국화장품협회 30주년 기념총회에서 중국 화장품기술 개발과 제도 마련에 기여한 공로로 우수기업공헌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라네즈는 상하이 최고급 백화점 등 약 100개 도시에서 300개가 넘는 백화점 매장을 운영한다. 또 다른 브랜드 마몽드도 3400개가 넘는 매장을 냈다. 두 브랜드의 활약에 힘입어 중국 현지법인은 2007년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2012년 진출한 계열사 이니스프리도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따랐다. 중국으로 파견된 한국인 직원들은 현지 직원들과 함께 중국인에게 맞는 제품을 개발했다. 현재 이니스프리가 중국에서 개발해 판매 중인 제품은 2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니스프리는 중국 원브랜드숍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중국 화장품 시장 규모는 48조 원대였다. 연 10% 이상 성장한다. 아모레는 그보다 빠른 20% 이상 급성장하며 현재 2%대의 시장점유율을 보인다. 김 실장은 “상하이에 건설 중인 ‘아시안 뷰티 생산연구 기지’가 올 하반기에 완공되면 중국 생산, 연구, 물류 허브를 담당해 또 한번의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30년 연구 집념

    양지혜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의 성공비결에 대해 “2012년부터 연구개발(R·D) 조직 개편을 통해 디자인 역량과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뒀는데 이 같은 투자의 결실이 국내와 해외법인의 높은 매출액 성장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연구소를 연 아모레퍼시픽은 연구개발에 매년 매출의 3.5%를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근 몇 년은 지켜지지 않았는데, 관계자는 “매출이 워낙 급격하게 늘어난 데다, 다른 투자비용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에도 440억여 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했다.

    글로벌 히트상품인 한방 브랜드 설화수는 연구개발 집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967년 인삼 중심의 한방 미용법 연구에 착수한 후 30년 연구 끝에 1997년 탄생한 것. 2013년 화장품 업종 전체 판매 1위를 기록하는 등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위기 때 서 회장은 내부 전략을 하나하나 재점검했다. ‘질적 성장’을 모토로 국내외 유통 채널과 마케팅 전략을 손봤다. 국가별 브랜드별로 따로 움직이던 마케팅 전략을 하나로 통합해 서로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내부 소통도 강화했다. 또 유통 채널의 다변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기업 문화도 남다르다. 2002년부터 사장, 부장 등 직위 호칭을 없앴다. 대신 전체 임직원은 언제, 어디, 누구에게라도 ‘~님’으로 부른다. 서 회장도 사내에서 ‘서경배 님’으로 불린다. 수평적 조직 문화를 통한 상호존중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창의성을 배가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김 실장은 말한다.

    “PER 30배…이미 거품” vs “해외매출 급증…300만 원 간다”
    2020년 매출 11조 목표

    포춘코리아는 지난해 말 ‘올해의 CEO 10’을 선정하면서 더 큰 재벌 총수들을 제치고 서 회장을 꼽았다. 2012년엔 미국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출판사에서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의 크리스 주크와 제임스 앨런이 10여 년간 장수기업의 비결을 연구한 ‘반복성(Repeatability)’을 출간했다 여기에 애플, 이케아, 나이키, P·G 등 글로벌 기업 50곳과 함께 아모레퍼시픽이 소개됐다.

    미국 섬유업계 전문신문인 ‘WWD’에서 2년마다 발표하는 ‘세계 화장품회사 톱 100’에서 아모레퍼시픽은 2006년 매출액 14억 달러로 22위에 랭크됐다. 2011년에는 17위에 올랐다. 서 회장은 지난 9월 창립 69주년 기념식에서 “30억 아시아인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꿈을 실현하는 기업, ‘원대한 기업(Great Global Brand Company)’으로의 도약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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