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시대 지식인 / 소설가 김훈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입력2014-12-18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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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끼리 찔러 죽인 비극, 깊이 반성해야
    • 박정희, 땅을 덮는 업적과 하늘을 찌르는 죄악
    • 인문학은 남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성
    • 규제 완화, 민영화는 ‘공정한 약육강식’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다. 나라 세우기, 산업화, 민주화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온 70년이었다.

    밖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일군 사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안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선 자리는 왠지 초라하고 불안한 느낌을 안겨준다.

    광복 70년은 영광과 고뇌의 역사였다.

    광복, 정부 수립, 6·25전쟁, 이승만 시대와 박정희 시대, 그리고 민주화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역사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광복 70년을 맞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를 만나 우리가 걸어온 길과 선 자리, 그리고 걸어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진행은 김호기 교수(연세대 사회학과)가 맡았다.

    첫 초청자는 소설가 김훈이다.

    김호기 광복 70년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했을 때 태어나셨으니 선생의 삶은 광복 70년과 거의 일치합니다. 소회가 어떠한지요.

    김 훈 좌충우돌하면서 전진과 후퇴를 끝없이 반복했어요.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혁명적인 것은 없었죠. 광복, 6·25, 5·16도 전혀 혁명적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죠. 광복 이후 북한의 토지개혁인 무상몰수, 무상분배도 전혀 혁명적인 게 아니에요. 토지의 주인이 지주에서 국가로 바뀌었을 뿐이고 농민은 준농노의 처지와 과히 다르지 않았어요. 4·19도 혁명적인 것이 아니었어요. 고액과외, 입시지옥, 노사갈등의 문제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있었어요. 발전적으로 순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게 아니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규모가 더 커진 것이지요. 오래전 넘어진 자리에 가서 다시 넘어지는 게 반복됐어요. 얼마나 더 전진과 후퇴를 계속해야 하는지 답답한 생각입니다.

    광복·산업화·민주화를 보는 눈

    김호기 광복 70년은 선생과 저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부친인 소설가 김광주 선생에 대해 쓴 글을 봤습니다. 김구 선생과 인연이 각별했더군요. 김광주 선생에게 광복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김 훈 아버지는 1910년생이에요. 태어나던 해 나라가 망해서 없어진 거죠. 만주에서 청춘 시절을 보냈는데, 김구 선생을 흠모하고 존경했어요. 아버지는 평생을 유랑민으로 살았어요. 그때 상하이에 모인 수많은 망명 청년은 유랑민 그 자체였어요. 아버지가 당시 쓴 글을 읽어봤더니 운명이라 할 수 있는 조국을 저주하기도 했어요. 너무 힘들고 괴로우니까 조국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씀도 했어요.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서도 아버지 세대의 유랑은 계속됐어요. 아버지는 공산주의를 증오했고 이승만을 증오했어요. 박정희 독재를 증오하면서 북한 공산정권도 증오했어요. 현실사회에서 발붙일 수 없는 지식인이 된 거죠. 해방된 조국에 와서 오히려 더 처참한 모습으로 유랑이 다시 시작된 셈이에요. 아버지는 6·25 때 서울 잔류파였는데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썼어요. 전쟁이 그들의 유랑민 심성을 더 심화한 거지요.

    김호기 소설가 황순원도 ‘움직이는 성’에서 유랑민으로서의 한국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으로 유랑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이 쓴 글을 보면, “산을 등지고 흐르는 물을 앞에 두르는 낙원에, 아버지와 우리는 한 번도 갈 수 없었다”(‘광야를 달리는 말’)는 구절이 나옵니다. 낙원을 현실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한 것 같습니다.

    김 훈 내가 자랄 당시 고등학교 때까지 국민소득이 100달러를 못 넘었어요. 중학교 때는 세계 최빈국이었어요. 필리핀의 원조를 받고 필리핀을 선진국으로 보았어요. 지금 4만 달러 시대로 가자고 하니 놀라운 거죠. 아버지가 디아스포라의 유산을 받고 태어났듯이 우리 세대는 야만적인 권력의 폭행과 무시무시한 가난을 유산으로 받고 그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것이죠. 그리고 나는 그런 시대를 살면서 인간의 역사가 민주적인 원칙과 방식에 따라서 전개되리라는 신념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인왕산 자락 서울성곽에서.



    김호기 부모 세대에게 ‘나라 세우기’란 과제가 주어졌다면, 저희 세대에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나라 풍요롭게 하기’가 과제로 주어졌습니다. 선생이 즐겨 쓰는 표현 가운데 ‘가난은 설화적인 것’이라는 구절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실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현실에 부재하는 설화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연보를 보니 군대를 갔다 온 다음 고려대에 복학한 게 아니라 한국일보에 취직했던데요.

    김 훈 내가 1973년 기자생활을 시작했는데 언론인이라기보다 기자직에 종사했다는 게 맞아요. 72년 유신체제가 등장하고 이어 긴급조치가 취해졌어요. 야만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한 거죠. 박정희 시대는 그 업적이 온 땅을 덮는 동시에 그 죄악이 하늘을 찌른다고 생각해요. 땅을 덮는 업적과 하늘을 찌르는 죄악은 한국 현대사에 각인돼 있고, 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그리고 민주화는 사실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과 바꾼 거예요. 사람을 영장 없이 끌어다 며칠씩 패고 불구로 만들어 내보내고 그랬잖아요. 그런 야만적 악행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된 게 한 30년에 가까워오지만, 그 역사는 일천한 거예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할 수 없게 된 게 얼마 안 된 거예요. 그것이 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불안감을 갖게 되는 거죠.

    인문학의 위기

    김호기 작가로서 최근 인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지요.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출발이자 기반을 이룹니다. 이 기반이 부실한 상태에서 무엇을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요. 선생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문학기행 1·2’(박래부 기자와의 공저)였습니다. 우리말을 무척 사랑하고 잘 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도 있듯이, 언어와 삶, 삶의 역사와 철학을 다루는 이 인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지요.

    김 훈 동서양 고전을 읽는 것을 포함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유가 인문학이겠죠. 남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진정한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유지하는 게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논어’를 보면 공부하라는 말이 나와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라는 게 책 읽으라는 소리가 아니잖아요. 공자가 공부하라고 말한 것은 책을 읽으라는 게 아니고 네 마음을 똑바로 하라는 얘기죠. 마음을 똑바로 한다는 것은 남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남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을 유지하는 것, 인간에 대한 완성을 모색하는 것이에요. 이게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인문학이 쇠퇴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한자(漢字) 교육을 없애 고전을 읽지 못하게 된 데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책 읽기로서의 인문학은 급속히 쇠퇴한 게 아닌가 싶어요. 광복 이후 한글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한글을 과학화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었지만 한자를 말살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 야만적인 정책입니다. 한자든 국어든 다 우리말이에요.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세월호’ 천막이 있는 광화문에서.

    풍경에 대한 느낌

    김호기 대학 안에서 보면 타자에 대한 공감, 위로, 배려 등에 관한 것들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사랑과 위안과 공감은 물질적 삶과 더불어 삶의 또 다른 중심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위안과 공감은 구체적인 것들인데, 추상적인 서구 이론들이 캠퍼스에 공허하게 떠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 특히 인상적으로 읽은 게 ‘자전거 여행 1·2’입니다. 풍경과 지리에 원래 관심이 많았습니까.

    김 훈 지리와 풍경에 대한 느낌을 마음속에 저장하는 게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해요. 글을 쓰는 하나의 바탕이 되는 것이죠. 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풍경에 대한 느낌을 풍부하게 간직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김호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만경강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요.

    김 훈 풍경은 다 똑같아요. 어느 게 특별히 아름답거나 특별히 추악하지는 않은데 계절마다 다르죠. 섬진강 쪽이라든지 지리산 밑이 참 뛰어나게 아름다운데 다 특징적인 표정을 갖고 있어요. 동해 바다는 일자(一字)밖에 없잖아요. 바다에서 해가 뜨니까 기상이 가득 차요. 얼마 전까지 울진에 있다 왔거든요. 아침마다 새로 해가 뜨니까 동해 바다는 새로 창조된 새벽의 바다 같아요. 서해 바다는 갯벌이고 석양 해가 지니까 한없이 막막한 느낌을 주는 바다죠.

    만경강은 감조하천이에요. 바다를 받아들이는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강 중류까지 올라가요. 또 만경강은 자유파행 강이에요. 한강은 양쪽에다 도로를 만들고 상류에 댐을 만들어 지금은 거대한 짐승을 잡아다가 우리에 가두어놓은 꼴이 됐어요. 만경강은 자유파행이 됐는데 이제는 안 되죠. 안타깝습니다.

    김호기 선생이 가진 정서 중 하나가 사라져가는 것들, 소멸돼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인 것 같습니다. 타고난 DNA인가요.

    김 훈 내 자신에 대한 위안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살아가려면 나를 위로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지요.

    사자와 얼룩말의 공생

    김호기 무엇이 인문학의 위기를 가져왔을까요. 인문학의 위기는 정신의 위기이자 가치의 위기입니다. 왜 우리 사회는 정신과 가치를 제대로 존중하지 않을까요. 김광주 선생이 지키려 했던 정신과 가치, 이런 것들이 1950~60년대 척박한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셈입니다.

    김 훈 아버지 시대는 전쟁에 의해 인간이 저지른 만행을 증명했어요. 특히 6·25전쟁은 강대국에 의한, 이념 간 전쟁의 측면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에요. 그 동족상잔을 지금 거의 거론하지 않잖아요. 우리끼리 찔러 죽인 거예요. 대검으로 찔러 죽인 거지요. 그것이 이념에 의한 결과였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동족상잔의 문제에 대한 도덕적 반성을 심화하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돈이에요. 돈이라는 유일신이 세계를 조직하고 질서를 부여하는데 거기서 이탈하는 자는 다 죽게 돼 있어요. 돈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은 일종의 약육강식 세계인데, 동물 세계에서의 약육강식하고는 전혀 다른 거예요. 사자는 얼룩말을 한 마리만 잡아먹어요. 사자가 왕이라고 해서 얼룩말 생태계 전부를 지배하는 게 아니에요. 얼룩말은 약자이지만 그 약자로서의 생태계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그런데 돈이 세계를 지배하면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복종시키는 거예요. 인문학적 가치도 그런 지배력에 짓눌리는 것이죠. 그러면서 거기에 저항할 수 없게 된 셈이에요.

    물 속에 빠져 있는 아이들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김호기 사회학을 공부하는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는 특별한 섬김을 받는 세 신이 있습니다. 돈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여기에 권력과 몸이 더해집니다. 욕망의 시대가 만개한 것 같습니다.

    김 훈 몸이 이미지화하면서 정치도 아주 극단적으로 이미지화해서, 정치인들이 가끔씩 재래시장에 기자들을 데리고 가서 생선을 주무르잖아요. 연탄을 나르고 시커먼 손을 내밀고요. 모든 게 이미지화하면서 삶의 서사적인 로망 같은 게 무너져가는 것이죠.

    김호기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다시 태어나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응답이 43%인 반면,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57%였습니다. 보수세력은 산업화를 자랑하고 진보세력은 민주화에 대해 자부심이 크지만, 산업화와 민주화의 현재적 모습은 초라합니다. 입시에 시달리는 10대나 청년실업에 직면한 20대, 구조조정을 걱정하는 30~40대나 노후불안으로 우울한 고령세대를 보면 우리 사회가 일궈온 게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얼마 전 선생은 팽목항에 다녀왔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자리를 생생하게 증거합니다. 보수세력은 책임윤리를 강조하고 진보세력은 제도를 중시했는데, 제가 보기엔 세월호 침몰은 제도와 윤리의 이중 침몰인 것 같습니다. 팽목항을 찾아간 까닭은 무엇인지요.

    김 훈 제가 그런 일에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은 아니에요. 우연히 모여 출판인과 작가들이 가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제가 가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연장자였어요. 그 모임에 대표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죠. 갈 자리가 아닌데 왜 갔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반문이 당황스러웠지만, 갈 사람이 따로 있고 안 갈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잖아요.

    팽목항에 갔더니 물 속에 아이들이 빠져 있다는 게 너무나 큰 고통을 주더군요. 세월호는 과적과 무리한 증축 때문에 복원력을 상실했어요. 선박 관련 책을 봤더니 그것은 물리 법칙을 어긴 거예요. 물리적 법칙을 어기면 다 죽게 돼 있어요. 살길이 없어요. 무엇 때문에 물리적 법칙을 어기게 됐느냐 하는 게 문제인 거죠. 여러 원인이 있을 거 아녜요. 선박을 운항하면서 물리적 법칙을 어긴다는 것은 죽으러 간 거죠. 원래는 고박을 안 했다는 거잖아요. 고박을 해놓고 쇠사슬로 묶어놓잖아요. 갑판원들은 그 배가 목적지에 닿기 전까지 계속 순찰을 다니면서 이 줄이 늘어졌을 때 스패너로 조여야 된다는 거예요. 단단히 묶는 고박이 중요하거든요. 컨테이너는 무거워서 조금이라도 허술하면 확 쏠리게 되니 단단히 묶어야 하는데 안 했다는 거예요.

    김호기 그뿐 아니라 평형수도 뺐죠.

    김 훈 물리적 법칙을 어기면 권력자라도 죽게 돼 있잖아요.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청계천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김호기 우리 사회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특징지어온 원리는 약육강식, 속전속결, 일망타진입니다. 이 원리들과 결별하지 않는 한 정신과 가치를 제대로 존중하는 인간성이 대우받는 사회를 이뤄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약육강식이라는 극단적인 현대성을 추구하는, 속전속결로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성을 부정하는 일망타진의 사회입니다.

    김 훈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 문제의 해결 방식이 규제완화, 민영화예요. 자본주의적인 가치 지향성을 극대화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죠. 근데 규제완화와 경쟁화는 결국 같은 말이에요.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데 ‘공정한 경기’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거죠. ‘공정한 게임’의 결과는 ‘공정한 약육강식’이 되겠죠.

    김호기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장 소중하게 생각되는 게 가족입니다. 제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를 40년가량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삶을 반추해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또 고등학교 2학년 딸 하나를 뒀는데, 이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정말 걱정하게 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줘야 할까요.

    김 훈 가족은 사회의 기본 단위잖아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맞물린 게 가족이에요.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과 예산이 젊은이 중심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래 세대를 중심으로 말이에요. 지금 지방에 가보면 유권자들이 대개 노령층이에요. 그래서 정책을 자꾸만 경로 정책 쪽으로 몰아만 가는 것 같아요. 지금 젊은이 취업난은 정말 끔찍하죠. 우리 세대는 나라 전체가 가난해서 먹고살기 힘들고 일자리가 부족하고 그랬잖아요. 근데 지금은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놓고 또다시 젊은이가 소외되는 거예요. 젊은이들이 사회 시스템 안에 편입하지 못하고 사회 변방에서 빙빙 돌다가 인생을 끝내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비극적이구나, 생각하는 거죠.

    김호기 그렇다고 고령 세대가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노인 빈곤율이 48%였습니다. 고령 세대를 위한 나라도 아니고, 청년 세대를 위한 나라는 더더욱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자기들 중심으로만 국가를 운영하지, 지금 막 커가는 아이들을 많이 배려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인터뷰 장소인 레스토랑 정원에서 마주 선 김훈과 김호기.(장소제공 : 충정각)

    김 훈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나라가 조금은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해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약육강식이라든지 자본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젊은이들한테 줘야 하겠죠. 젊은이의 미래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은 없는 거죠.

    얼마 전에 비무장지대(DMZ) 쪽을 가 봤어요. 북한 병사들이 모여 있는데 내가 본 병사는 못 먹어서인지 빠짝 말랐더라고요. 저놈이 우리 젊은이들의 적이잖아요. 새삼 우리는 도대체 뭔가, 어떻게 해서 이런 거대한 적대감과 군사적인 대치관계가 생기게 됐나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 북한 병사가 북한 정권 전체를 대표하는 건 아니죠. 우리 남한 병사도 같을 거 아녜요. 이 두 젊은이가 서로 적이 돼 있는 거예요. 그런 걸 보니까 가슴이 답답한 거예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답답한 거죠.

    김호기 광복 70년을 맞이해 우리사회가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할까요.

    김 훈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이분법적 사고와 언행이에요. 이런 것들이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악인 것 같아요. 사회 도처에 깔려 있거든요. 이분법적 사유와 언행에서 언어가 점점 타락하는 거죠. 언어가 타락하면 소통이 불가능하게 되거든요.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쓰지 않고 무기로 쓰기 시작하니까 언어가 결국 무장을 하잖아요. 언어가 총을 쏴대는 거죠.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죠. 전혀 소통이 안 되고 서로 딴소리를 하는 거죠.

    김호기 공감합니다. 지금 고령화, 저출산,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보면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이념의 통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수가 진보의 가치를 존중할 수도 있고, 진보가 보수의 정책을 차용해서 쓸 수도 있습니다. 이념의 전선이 과도하게 대치해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가 실종돼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선생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요. 소설을 왜 쓰는지요.

    김 훈 젊었을 때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욕망이 없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재벌회사에 취직해 밥벌이를 하려는 아주 실용적인 목표를 가졌어요.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우선 나 자신을, 나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나의 내면에는 말하기 어려운 억울함, 짓눌림, 슬픔, 고통 그런 게 있어요. 이 사회에서 살면서 억압된 것들이 있지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드러내보고 싶은 게 나를 소설가로 만들었어요.

    김호기 선생의 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선생의 웅숭깊은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이 소설들이 모두 과거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광복 이후 우리가 살아온 현재의 문제에 대해 글을 쓰실 생각은 없습니까.

    왜 쓰는가, 무엇을 쓸 것인가

    김 훈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 때 이야기잖아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고요. 조선의 가장 참혹한 전쟁에 대해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뜻은 어느 정도 이룬 것이죠. ‘흑산’은 1801년 무렵 당대의 야만성에 대해 치밀하게 묘사했어요. 그럼 이제 당대의 문제, 나의 시대가 내 내면에 어떤 모습으로 저장됐는지, 그걸 드러내는 게 중요한 일인데, 더는 미뤄놓을 수 없을 정도로 시급한 일이 됐어요.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와 아버지의 시대에 대한 많은 회의와 증오감 같은 게 있어요. 한없는 연민도 있고요. 그런 것을 객관화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서 진이 빠진 상태죠.

    김호기 선생의 사유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은 아버지 김광주 선생이 가졌던 중도적 민족주의의 이상과, 신문기자와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체득한 개인의 자율성과 상상력의 옹호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내면세계에서 계속 긴장을 이뤄온 것으로도 보입니다.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김 훈 아버지 세대와 민족진영 분들은 해방된 한국의 앞날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겠다는 비전이 명확하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실을 제어하거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에 매우 약했고 그런 것들이 아버지 세대를 유랑하게 만든 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김호기 2015년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요. 선생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시지요.

    김 훈 2015년에도 내가 생각하는 소설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아요. 좀 더 가야겠지요. 올해 우리나라에 대해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남북한이 도대체 왜 이런 적대관계를 갖게 된 것인지 그것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거기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독자 여러분도 뜻깊은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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