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사랑보다 슬픈 기억 눈물보다 진한 독백

‘남자가 사랑할 때’와 전북 군산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사랑보다 슬픈 기억 눈물보다 진한 독백

2/3
눈이 가려준 진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군산은 그야말로 ‘눈 폭탄’이 쏟아진 상황이었다. 제설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길 어딘가에 꽁꽁 갇히게 될 판이었다. 날씨는 영하를 한참 밑돌았다. 족히 무르팍까지 푹푹 들어갈 정도로 눈이 쌓였다. 나뭇가지들이 눈 무게 때문에 축축 늘어졌다. 군산은 그렇게 눈으로써, 자신의 본 모습을 급하게 가리려 하는 것 같았다. 눈이 아니었다면 왜색(倭色)이 짙은, 화사하면서도 기묘한 난(亂)개발의 도시를 만났을 테니.

일본이 한반도의 물자를 흡혈(吸血)해 가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은 곳은 인천이 아닌 군산이다. 군산은 전라북도의 곡창지대를 연결하는 항구다. 여기서 생산되는 쌀은 양질로 유명했고 지금도 그렇다. 일제가 여기에 눈독을 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가깝게는 김제의 쌀이 군산 장미동(藏米洞) 창고에 보관돼 있다가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일제강점기에 군산에 산다는 것은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것을 의미했다. 군산은 어찌 보면 그래서, 가련한 동네다. 수탈을 당하는 기분. 참 더러운 것이다.

군산이라고 하면 그래서 왠지 늙은 창녀가 생각난다. 그런 편견도 상당 부분 영화 탓일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는 운동권 조직원을 잡으러 다닐 때 군산에서 하룻밤을 머문다. 잠복근무에 지친 영호는 내리는 비를 피해 주점에 들어가고, 그곳 여주인과 관계를 갖게 된다. 삶의 찌든 때로 힘들어하던 여자는 자신과 하룻밤 몸을 섞은 관계에 불과하지만 남자가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다음 날 군산항에서 그를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남자와 다른 생을 다시 한 번 시작할 요량이다.

숨고 싶은 도시



하지만 남자는 그 하루 전 경찰서 취조실에서 운동권 학생에게 물고문과 몽둥이찜질로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반 주검’을 만들었다. 그의 마음속은 여러 갈래인데, 현재까지는 야만스러운 짐승이 한 마리 웅크린 상태다. 그의 실제를 이 늙은 여급은 알지 못한다.

어쨌든 이후 군산 하면 불쑥불쑥 ‘박하사탕’이 떠오른다. 비 내리는 항구. 축축하고 음습한 거리. 그곳을 쳐다보는 창녀 한 명이 창가를 서성거릴 것 같은 유곽의 도시. 퇴락하고 퇴색해가지만 기이하게도 적어도 하룻밤 정도는 포근하게 머물러 가도 될 것 같은 공간이 바로 군산이다. 그렇게, 여기는 이상하게도 숨을 곳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 쪽에서 보자면 군산은 오래전부터 ‘핫 플레이스(hot place)’였다. 로케이션 촬영으로 군산만한 곳이 없다는 얘기가 많았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데다 영화를 찍기에 편리한 공간이 많다. ‘박하사탕’을 비롯해서 ‘장군의 아들’ ‘타짜’ 등이 군산에서 찍은 영화들이다.

일본 적산가옥과 그에 준하는 거리가 남아 있는 군산이야말로 영화가 추구하는 엑소티시즘(exoticism)을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일본식 가옥과 한국의 전통가옥이 섞여 있어 구한말부터 1970~80년대 상황까지 표현하는 데 군산만한 곳이 없다. 게다가 촬영지로 적합한 지역은 대개가 차로 30~40분이면 오갈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경암동 철길 마을은, 막상 가보면 ‘도무지 여기에 뭐가 볼 게 있다고 이렇게들 몰리나’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건 단순히 철길만 보려 하기 때문이다. 모든 공간에는 역사가 깃들어 있고,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되면 느낌이 아주 달라진다.

경암동에 철길이 들어선 것은 1944년이라고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철길 바로 옆으로 주택이 들어섰다고 했다. 그래서 기차가 이곳을 지나갈 때면 속도를 줄이고 역무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주변의 빨래를 걷게 하고 열어둔 문을 닫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곳에 가서 철길을 마주해 쳐다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우왕좌왕 거리를 정리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저 철로와 집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바꿔가며 세월을 보내왔을까.

사랑보다 슬픈 기억 눈물보다 진한 독백

군산 곳곳에 있는 일본식 가옥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다.

‘신파 멜로 조폭 드라마’ 답지 않게도

군산은 인천과 함께 개항지 중의 하나였으며 이 두 곳을 통해 일본으로 구한말의 모든 물자가 빠져나갔다. 일제 수탈의 현장인 만큼 일본인이 살았던 생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일본식 가옥, 흔히 말하는 적산가옥이 가장 많이 남은 곳이 바로 군산이다. 특히 신흥동과 월명동에 집중돼 있다.

그중 신흥동에 있는 히로쓰 가옥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183호로 등록됐을 만큼 보존이 잘돼 있다. 일제 강점 당시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하던 히로쓰가(家)의 주택이다. 주택의 규모나 구조 등으로 봐서 당시 군산에서 지주급으로 꽤나 호화롭게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한국제분의 소유로 군산시가 임차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제분의 전신은 1956년 설립된 호남제분이다.

‘ㄱ자’로 이루어진 가옥 두 채가 나란히 붙어 있고, 목조건물인데 나무들을 끼워 맞추는 형식으로 건축돼 있어 이들 주택이 오랫동안 원형 그대로 보존된 이유를 알게 해준다. 가옥 두 채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이 아름답게 구성돼 있다. 가옥 안에는 여러 칸의 다다미방과 도코노마(일본식 미술품 전시 공간)가 설치돼 있다. 히로쓰가의 부(富)가 어느 정도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이들의 농촌 수탈이 얼마나 악랄했는지를 역산하게 해준다.

2/3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목록 닫기

사랑보다 슬픈 기억 눈물보다 진한 독백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