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문체부 ‘경제올림픽’ 강박증? 경기장 제때 못 지을 판!

위기의 평창동계올림픽

  •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입력2014-12-23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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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OC 분산개최 제안은 ‘공개 경고’
    • 주장만 있고 방법은 없는 비용 절감案
    • 체육국장 ‘수첩인사’, 쪽지 파문, ‘땅콩 회항’
    문체부 ‘경제올림픽’ 강박증? 경기장 제때 못 지을 판!
    2018년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까지 이제 3년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준비 상태를 보면 과연 행사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12월 7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썰매 종목을 한국 이외의 장소에서 치르는 방안을 제시했다. “비용 절감을 위한 제안으로, 분산개최 여부는 최종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이는 ‘공개 경고’이자 ‘무언의 압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일간 ‘시카고트리뷴’은 “시설 건립비를 놓고 벌어진 한국 내 갈등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신설 예정인 6개 경기장의 공정률은 10% 미만이다. 개·폐회식장과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등은 아직 설계도 확정하지 못했다. 재정자립도가 21.6%에 불과한 강원도, 별도 재원이 없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저비용 올림픽’이라는 키워드만 중시하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의견차가 극심해 경기장 공사를 완료 시한(2017년 9월) 내에 못 끝낼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설상가상으로 조양호 조직위원장(한진그룹 회장)이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면서 위원장 사퇴설까지 나오는 상황. 조 위원장은 12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위원장 지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750억 절감 근거는?

    ‘신동아’는 2014년 9월호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신설 경기장 재설계 논란에 대해 보도했다. 4개 경기장 건설 시공사 선정을 불과 2주 앞두고 문체부는 설계 주체인 강원도에 “경기장 규모를 축소하거나 경기 후 철거할 수 있게 다시 설계하라”고 지시했다. 문체부가 제시한 예상 절감 비용은 750억 원. ‘신동아’는 “문체부가 주장하는 비용 절감 근거가 희박하고,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이미 수십 억 원을 들여 1년간 설계했는데 이제 와서 경기 이후 철거하는 ‘일회성 시설’로 재설계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도 이후 강원도는 “착공을 지체하면 2017년 2월 예정된 테스트이벤트 전까지 완공할 수 없다”며 재설계 불가 방침을 고수했으나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해당 경기장이 아닌 곳에서도 테스트이벤트를 열 수 있다”는 답신을 보내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재설계에 나섰다. 재설계는 1차 설계를 맡았던 회사가 별도의 입찰 과정 없이 수행하기로 했으며 재설계 대가로 30억 원이 추가 지급됐다.

    재설계 이후 문체부 주장대로 750억 원을 줄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설계 관계자는 “재설계가 결정된 이후 문체부에 ‘공사비 절감 근거를 달라.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는데 문서는커녕 구두 지시도 내려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10월 8일, 문체부는 처음으로 ‘근거 자료’를 제시했다. 문체부가 등 국내 건축학과 교수 4인에게 자문해 작성한 ‘평창동계올림픽 빙상경기장 공사장 절감 계획’이다. 하지만 20장 남짓한 이 문건에는 대략적 가이드라인만 있을 뿐 어디에도 사업비를 줄일 ‘구체적 방법’은 없다. “평당 공사비를 줄이면 각 기존 공사비에서 15~25%를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뿐이다. 문제가 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경우 원래 책정된 평당 공사비는 936만 원이지만 향후 700만 원으로 줄이면 공사비의 25%(285억 원)를 줄일 수 있다고 돼 있다. 다음은 강원도 공무원의 말이다.

    “5층 빌라를 지을 때와 20층 아파트를 지을 때, 건설 면적이 같다고 해서 평당 공사비가 같은가. 이건 상식이다. 무조건 ‘평당 공사비를 줄이라’는 건 질 나쁜 자재, 저급 인력으로 대충 지으라는 의미 아닌가. (문체부 담당자에게) 기준이 된 ‘신규 평당 공사비’의 근거를 물었더니 답을 못하더라.”

    “현장도 안 가보고…”

    강원도청의 다른 공무원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문체부 자문 교수에게 ‘교수님, 현장에 가보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안 가봤다’ 하더라”고 했다. 조직위 담당자 역시 문체부가 제시한 ‘계획’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는 “문체부 근거 자료에는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지하시설을 없애자’고 했는데, 그러면 본래 지하시설에 들어가게 돼 있던 시설을 수용할 수 있는 별도 건물을 세워야 한다. 당연히 추가 비용이 든다. 하지만 문체부안(案)에는 그런 고려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강원도가 스스로 ‘설계 변경을 통해 최대 절감할 수 있는 비용’으로 제시한 금액은 175억 원. 문체부가 제시한 750억 원과 4배 이상 차이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강원도와 조직위에선 “문체부가 별 근거도 없이 몇몇 교수 이야기만 듣고 사업비 절감을 요구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문체부는 최근 강원도에 “비용을 줄일 방법을 고민하도록 특정 교수 전문가에게 연구용역을 주라”고 ‘제안’하면서 갈등이 심화했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설계사가 정해졌기 때문에 교수 용역은 의미 없다. 만에 하나 용역을 맡긴다면 또 다른 입찰을 통해 용역 담당자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문체부가 제안한 ‘자문 교수’는 대형 경기장 건축 전공자가 아니다. 이 중 한 교수는 ‘내가 문체부 고위 관계자와 20년 지기’라고 하더라. 살림이 팍팍한 강원도는 별도 교수 용역을 발주할 비용도 없다. 하도 답답해서 해당 교수에게 ‘용역 대신 강원도를 위해 재능기부를 해주시면 안 되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이런 갈등에도 문체부는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11월 27일 국회에서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재설계를 통한 건설비) 20% 절감 요구가 실현 가능하냐”는 임수경 의원의 질문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짧게 답했다. 문체부 측은 “경제올림픽을 치러야 한다는 목표에 모두 공감한다.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다방면으로 비용 절감 방향을 살펴보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해당 교수 중 한 명은 “경기장 축소 관련 자문에 응한 적은 있지만 정식 위촉장을 받은 건 아니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시작과 끝을 담당할 개·폐회식장 역시 ‘뜨거운 감자’다. 본래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800억 원을 들여 신축하기로 했지만, 문체부는 그간 “강릉종합운동장을 리모델링해 이용하자”고 주장해왔다.

    강원도와 조직위는 크게 반발했다. 평창올림픽의 가장 상징적인 행사를 평창이 아닌 강릉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강릉종합운동장은 20년 전 지어져 안전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노후 건물이라 아무리 리모델링을 해도 4만 석 규모의 개·폐회식장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

    10월 13일 김종덕 문체부 장관과 최문순 강원도지사,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개·폐회식장을 본안대로 평창에 신설하기로 합의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에 한 조직위 관계자는 “ 우상일 문체부 체육국장이 TV뉴스에 출연해 ‘평창에 개·폐회식장을 지어봤자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인터뷰한 지 며칠 만에 결정이 뒤바뀌었다”고 비꼬았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개·폐회식장 결정을 불과 며칠 앞두고 김 장관이 강릉종합운동장을 처음 방문했다. 조직위 담당자가 장관에게 ‘이곳을 4만 석 규모 개·폐회식장으로 만들려면 인근 아파트까지 다 밀고 다시 지어야 합니다. 보시기에 여기서 개·폐회식을 열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문체부는 현장을 보지도 않은 채 ‘하면 된다. 안 되는 게 어딨냐’는 식의 주장만 했다. 그간 공사가 지체된 데 따른 손실은 누가 보상하나.”

    개·폐회식장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입찰계획서를 쓰는 과정에서 문체부가 조직위에 “개·폐회식장 디자인을 ‘공모’를 통해 선정하라”고 ‘제안’한 것. 김상표 조직위 시설부위원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2017년 9월까지 완공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공기(工期)가 모자란다. 비용을 절감하고 설계·공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턴키 방식’으로 해야 하는데 별도의 디자인 공모전을 열면 기한을 맞추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문체부가 이처럼 개·폐회식장 디자인 공모라는 ‘과도한 제안’을 한 것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출신인 김 장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뒷말까지 나오는 상황. 이런 반응에 대해 문체부는 “입찰 방법 논의 과정에서 비용 절감과 효율적인 디자인 제시를 위해 ‘제안’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절약이라는 이름의 강압’

    문체부 일선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준비를 지휘하는 자리가 체육국장이다. 최근 1년 반 동안 체육국장은 2번 교체됐다. 2013년 9월 2일 노태강 전 체육국장이 인사조치됐고 후임자로 온 박위진 전 홍보정책관은 임기를 6개월밖에 채우지 못했다. 12월 5일 ‘조선일보’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인터뷰를 통해 “노 전 국장의 인사는 박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며 “한양대 출신인 이재만 비서관이 김종 제2차관을 통해 문체부에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김 차관은 유 전 장관에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3월 2일 취임한 우상일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해외에 체류하다 임기도 마치지 않은 채 귀국했다. 당시 김 차관이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재임 시절 우 국장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사실이 회자되기도 했다. 실제 문체부 안팎에서는 “김 차관이 우 국장을 끌어왔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하지만 문체부 관계자는 “우 국장 취임 당시 언론은 연일 ‘러시아가 소치 동계올림픽에 54조 원 을 들였다’ ‘평창동계올림픽은 경제올림픽으로 치러야 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우 국장의 제1 미션 역시 ‘평창동계올림픽 준비 비용을 절감하라’였다”고 배경 설명을 했다.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김 차관과 우 국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0월 24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에서 한선교 의원은 “문체부 스포츠 자문기구의 위원장과 위원 3명 모두 (김 차관과 같은) 한양대 출신이다. 김 차관이 문체부 ‘실세’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김 차관이 ‘설쳐대서’ 문체부가 ‘올스톱’됐다고 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10월 14일 정기국회에서는 평창을 지역구로 둔 염동열 의원이 우 국장에게 “절약이라는 이름의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를 줄여라. 현재 평창에는 ‘우 국장 그만두라’는 현수막까지 내걸렸다”고 소리쳤다.

    12월 3일 국회 교문위에서 정윤회 씨의 딸(인천아시아경기대회 국가대표 승마선수)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됐을 때 우 국장이 김 차관에게 건넨 쪽지가 언론사 카메라에 잡혔다. 쪽지에는 ‘여야 싸움으로 몰고 가야’라고 적혀 있었다. 위원회는 정회됐고 설훈 위원장은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냐. 공직자가 그걸 직속상관에게 메모라고 전달하냐”며 강하게 질타했다. ‘쪽지 파문’ 이후 김 차관은 우 국장에 대해 “중징계를 하겠다”고 밝힌 상황. 12월 중순 우 국장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죄송하다”는 답만 돌아왔다.

    평창동계올림픽 준비 예산은 11조 원. 소치 올림픽 소요 비용(54조 원)의 5분의 1 수준이고 여수엑스포 소요 비용(12조 원)보다도 적다. 이 중 기본계획에 포함된 고속철도 등 인프라를 제외하고 경기장 건설 등 정부 직접 투자는 5200억 원대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경제올림픽’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정작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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