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이상득, MB 대선자금 전담 다들 부의장실로 돈 받으러 갔다”

이명박 정권 ‘개국공신’ 정두언 전격 증언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15-02-16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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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자금 빚진 MB, 이상득 제어 못했다”
    • “‘형님’이 자원외교 총지휘, 국정농단”
    • 이상득 측 “대선자금과 무관·자원외교 제한적 역할”
    • 이명박 회고록 vs 정두언 증언…진실은?
    “이상득, MB 대선자금 전담 다들 부의장실로 돈 받으러 갔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내자 정치권에선 찬장이 와장창 쓰러지는 듯한 파열음이 나왔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명박 정권 개국공신’ 정두언(58)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국회의원 잘할 것 같아서…”

    ▼ 서울대 재학 시절 록밴드 활동을 했고,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장교로 군 복무할 수 있었는데도 육군 병장으로 입대했고, 공직 생활 중에 탤런트 공채에 응시했다 막판에 관뒀습니다. 참 ‘에지(edge)’ 있는 인생 같네요.

    “몇 년 전 사석에서 모 중앙일간지 주필이 ‘정 의원은 드라마 PD 하는 게 좋을 뻔했어요. 무슨 정치를 드라마 쓰듯 해요?’라고 하더군요. 사실 정치인이 되기 전에도 조마조마하게 살았어요. 팔자 같기도 하고. 제겐 풍운아라는 말이 붙어 다녀요.”

    ▼ 탤런트 시험은 왜 봤나요.



    “친구들은 학생운동 하는데 저는 고시 보고 공무원이 돼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전두환 정부가 호헌(護憲)으로 돌아섰죠. 쪽팔려서 공무원 더 못하겠더라고요. 뭘 할까 고민했죠. 그러고 있는데 KBS에서 드라마 탤런트를 특채하더라고요. 나이 제한이 서른이었는데 제가 딱 서른이어서 응시했죠. 서류전형, 사진전형 등 5단계 전형 중 4단계까진 갔어요.”

    ▼ 최종까지 안 가고 그만둔 이유는.

    “친구가 제 아내에게 고자질했나봐요. 어느 날 귀가했더니 장인 장모도 와 계셨고, 온 식구가 모여 있더라고요. 아내는 울고 있고. 요즘은 탤런트 서로 하려고 난리인데 말이죠. 결국 마지막 시험을 못 봤죠.”

    ▼ 2000년 2월 공직(이사관)을 그만두고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습니다. 공직 생활 1~2년만 더 해서 20년을 채웠으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공직 생활은 평탄했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저는 익사이팅한 걸 좋아하는데. 여기 더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었죠. 간신히 잘되면 1급, 차관까진 되겠지만 그다음은 정치니까. 총리실은 춥고 배고픈 곳이라 ‘관피아’로도 못 가요. ‘나오면 제과점이나 하겠지? 그러다 망하고 북한산이나 다니겠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사느니 이쯤에서 변신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총리실에서 국회 답변자료 쓰고 국회 왔다갔다 하다보니 ‘내가 국회의원 하면 정말 잘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정두언 의원은 2001년 그의 인생을 바꾼 인물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난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던 MB는 교통사고로 입원 중인 정두언 원외 당협위원장을 병문안 왔고 이후 부부동반 식사에 초대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에게 “공직생활 20년 채워 연금 타게 해주겠다”며 영입을 제의했다. ‘MB다운 표현’이었다. 그는 MB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 후 홍사덕(서울시장후보 경선), 김민석(서울시장 본선), 박근혜(대선후보 경선), 정동영(대선 본선) 네 사람을 넘어서자 MB는 대통령이, 정두언은 대통령을 만든 최측근 실세 의원이 돼 있었다.

    그러나 정 의원은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공천을 반대한 이른바 ‘55인 반란’을 주도했다. 또 이 전 부의장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권력 사유화’를 비판했다. 이후 그는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찰을 받았다. 결국 이명박 정부 말기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지난해 11월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는 최근 의정 활동을 본격 재개했다.

    ‘대선자금-이상득-자원외교’ 의혹

    이명박 전 대통령은 2월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이명박 정부 5년은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의 사건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원외교를 적극 옹호한 반면 야당은 자원외교로 막대한 국고가 탕진됐다고 본다. 야당은 이 전 대통령과 형인 이상득 전 부의장을 자원외교 국정조사의 증언대에 세우고 싶어 한다. 정 의원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회고록이 자화자찬으로 일관했다. 진실을 숨겼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MB 대선자금, 이상득, 자원외교의 3각 관계 의혹에 대해 증언했다.

    ▼ 이명박 정부 초기 상황에 대해 들려주시죠. 정 의원도 그때 사찰 세게 받았잖아요.

    “자, 집권하자마자 두 달 뒤 총선이 있었어요. 공천 작업이 있었겠죠. 우리는 SD(이상득 전 부의장)는 빠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동생이 대통령이 됐으니 형이 정계에서 은퇴하는 게 상식이라고 봤죠. 그런데 SD가 또 출마한다는 거예요. 저는 ‘안 된다’고 비공개적으로 말했어요. 그래도 공천 신청을 할 것 같아서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났어요. ‘저도 출마를 안 하겠으니 이 전 부의장도 출마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했죠. 그러자 MB는 ‘한 석이라도 아껴야지. 내게 다 생각이 있다’고 했어요.

    당시 한나라당은 ‘65세 이상 공천 배제’ 기준을 내세워 박희태 전 의원을 비롯해 다 탈락시켰는데, 놀랍게도 이 전 부의장에겐 공천을 줬어요. 너무 불공정하잖아요. 특히 대통령 형에 대해. 이래서 국민이 정부를 믿겠나, 이런 상황에서 55인 반란 사건이 일어났죠.”

    “SD가 MB 뜻 거역한 거죠”

    “이상득, MB 대선자금 전담 다들 부의장실로 돈 받으러 갔다”

    정두언 의원이 화제를 모은 자신의 저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를 들고 있다.

    ▼ 당시 이 대통령은 정 의원의 건의를 받아들이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한 건가요, 아니면 처음부터 형에게 공천을 주려 한 건가요.

    “그때 박재완 청와대 정무수석의 말이, SD 공천이 확정된 후 이 대통령이 박 수석에게 지시했대요. ‘포항에 가서 이 전 부의장에게 후보 등록을 하지 말라 하라’고요. 박 수석은 사정이 있어 못 가고 A씨에게 시켰다는 거예요. A씨가 가서 뭐라고 했겠어요. SD는 ‘아이 시끄러워’ 그랬겠지. 박 수석도 사실 곤란한 자리를 피한 것이고.

    이 전 부의장은 결국 MB의 뜻을 거역한 거죠. 자기 뜻대로 그냥 가버린 거지. MB가 ‘다 생각이 있다’고 한 말도 있고 나중에 박 수석 이야기를 들어봐도 MB는 SD가 출마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형이 강행한 거죠.”

    ▼ 취임 직후라 대통령의 권력이 어마어마했을 텐데요. 아무리 형이라고 해도 어떻게 대통령에 맞서서 그렇게….

    “형제라는 게 그렇게 복잡한 관계인데, 일단 대선 과정에서 형한테 빚이 많죠.”

    ▼ 어떤 빚?

    “그러니까, 뭐, MB는 그, 뭐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을 형한테 떠맡긴 거나 마찬가지죠. 이를테면 대선자금 문제 같은 경우는 MB는 전혀 손을 안 댄 거죠. 누가 했겠어요? 제가 했겠어요? 형님이 그걸 주로 하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큰 빚을 진 거죠. 그러니 형이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럴 때 MB가 ‘절대 안 된다’고 해봐야 뭐, 별로 통하지가 않는 거죠.”

    이 전 부의장은 대선 3개월 전인 2007년 9월 정 의원의 소개로 국회에서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7년 12월 리츠칼튼호텔에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어지는 정 의원과의 대화 내용이다.

    ▼ 이 전 부의장이 임석 회장에게서 받은 돈은 대선자금 성격인가요.

    “다 아는 이야기를 뭐하러 물어보세요?”

    ▼ 이 전 부의장이 대선자금 관리를 얼마나 활발히 했습니까.

    “아,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캠프에 있는 사람들은 다 SD한테 돈을 받으러 갔죠.”

    ▼ 이 전 부의장 본인 돈인지, 아니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본인 돈인지, 무슨 돈인지.”

    ▼ 이명박 후보 측은 선관위에 합법적으로 모금해 합법적으로 썼다고 신고한 것으로 아는데요.

    “그만.”

    ▼ 회고록에 이런 이야기도 써야 한다고 보나요.

    “자신의 치명적인 잘못을 밝히려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 이상득 전 부의장이 대선자금 받은 걸 직접 알게 된 적이 있습니까.

    “제가 임석 전 회장을 소개한 것 말고는 없어요. 어쨌든 사람들이 부의장실로 찾아가 지원을 요청하는 건 너무나 공공연한 사실이었어요. 사람들이 대선 거치면서 다 무뎌지지만 대선캠프의 K도 가서 ‘내 돈 쓰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그 땐 그걸 자연스럽게 여겼어요.”

    ‘이상득 3억 원 수수’를 유죄로 판단한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은 이명박 후보 캠프 관계자의 진술을 근거로 “이상득은 이명박 대선 후보의 친형이고, 선거운동조직 내 최고실권자로서 선거 전체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일을 한 점에서…선거자금 관리에 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고 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임석 전 회장은 “제가 국회부의장실에서 이 전 부의장에게 ‘대선을 돕는 차원에서 돈을 가져왔다’고 말했고 이 전 부의장이 ‘대기업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건실한 중소기업의 지원을 받아 선거를 치르려 한다’고 답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판결문은 “이 진술의 신빙성이 높다”고 했다.

    또한 대법원 판결문은 ‘이 전 부의장이 임석 전 회장에게서 받은 3억 원이 이명박 후보 선대위의 유세단장에게 전달됐다’는 진술 등에 대해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판결문 내용에 따르면 △이상득 전 부의장이 2007년 대선 때 국회부의장실을 대선자금 관련 장소로 활용했고 △대선자금을 직접 관리했으며 △이 후보 캠프에 이 자금을 전달한 사실이 (최소) 한 차례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이에 대해 2007년 국회 부의장실에서 근무한 이 전 부의장 측 관계자는 “이 전 부의장은 대선자금과 전혀 무관하다. 캠프에서 부의장실로 돈을 받으러 온 일이 없다. 임석 전 회장 부분도 본인이 받거나 지시한 게 없어 억울해 한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정 의원과의 대화다.

    ▼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책은 안 봤고 파일만 봤어요.”

    ▼ 책이 잘 팔리진 않나봐요.

    “요즘엔 두꺼운 책 안 읽죠. 이 시점에서 왜 냈는지 모르겠어요. 환영 못 받을 줄 몰랐나? 뭘 착각하신 게 아닌가 생각해요.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사람들이 귀엽게 봐줄 줄 알았는데 귀엽게 봐주기는커녕…이걸 왜 몰랐을까.”

    “형님 권력에 불나방 붙듯”

    ▼ 정치 얘기는 뺐다고 해요.

    “정책 백서 같죠. 그런데 자화자찬이죠. 잘못한 부분, 후회스러운 부분, 어떻게 이런 게 하나도 없을까. 저는 ‘MB 정부가 성공했다’고 말한 사람 한 명도 못 봤어요. 그런데 다 잘했다고 하니 반응이 부정적일 수밖에요. 다 잘했어도 몇 가지는 후회스럽다고 하는 게 일종의 예의인데. 이런 게 미움을 산 것 같아요.”

    ▼ 이상득 전 부의장 이야기도 진솔하게 담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자원외교와 관련해서도 이 전 부의장 때문에 정책이 왜곡됐다고 보나요.

    “자원외교 한다고 한승수 총리를 내세웠어요. 이상득 전 부의장은 처음부터 그렇게 자원외교에 열심이었던 건 아니고요.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돌아가시고 서거 정국이 조성됐어요. 제2의 촛불사태가 우려됐고 여권에선 쇄신파가 정국 전환을 위해 쇄신 논쟁을 불러일으켰죠. 그러면서 ‘박희태 대표 사퇴하라’ ‘MB 정부는 오만하다’ 이렇게 나갔죠.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이상득 씨가 2선으로 물러난다고 하면서 ‘자원외교에만 전념하겠다’고 한 겁니다. 그렇게 밖으로만 다니면서 공기업 사장들을 몰고 다녔어요. (쇄신파가) 그 양반(이상득)을 몰아치다보니까 이런 일(자원외교 문제)이 벌어진 거죠.”

    ▼ 공기업들이 과연 자체 판단으로 그렇게 해외 자원 개발에 투자했을까요.

    “자원외교라는 말 자체가 난센스죠. 자원을 확보하고 싶으면 조용히 확보해야지. 팡파르 울리면 물건값만 올라가는데. 그때 외교관들이 ‘되게 촌스럽다’ 그러더라고요. 자주개발률을 내세웠는데, 공기업들은 이 목표치를 달성하면 정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걸로 기대했겠죠.

    또 그걸 총괄 지휘한 게 실질적으로 대통령 형님이잖아요. 그러니 공기업들은 ‘형님이 자원외교를 하겠다고 다니시니까 이걸 뒷받침해서 형님한테 잘 보여야 한다. 자주개발률이라는 기준까지 나오니 이걸 달성하면 내 성과가 SD 성과가 되고 내가 잘되겠구나’ 싶어서 혈안이 된 것 아니겠어요? 촌스럽게 시작해서 경직되게 막 흘러간 거죠. 견제받지 않는 형님 권력에 불나방처럼 붙어 잘 보이려 하다 그렇게 된 거죠.”

    ▼ 만약 문제가 있다면 실책으로 봐야 할까요, 비리로 봐야 할까요.

    “비리가 있어도 밝히기 힘들 거예요. 국정조사에서 비리 밝히는 것 봤나요? 월간지, 주간지에서 비리 밝히는 것 봤나요? 의혹만 제기하고 소송만 하다 끝납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권력을 행사하다보니 국정농단을 한 사례죠.”

    ▼ 이상득 전 의원이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출석할까요.

    “야당에선 요구하겠죠. 결국 안 나오겠죠. 우리가 국정조사 한두 번 해봤나요.”

    이상득 전 부의장이 2011년 출간한 회고록 ‘자원을 경영하라’에 따르면, 이 전 부의장은 자원외교 특사 자격으로 남미,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12개국을 돌았고 각국 정상과 26차례 만났다. 이동거리는 29만4883km였다. 그는 이 책에서 “일본 중국도 못한 리튬 개발 MOU 체결” “나미비아 우라늄 광산 확보로 숨통 틔워” “자원외교 특사는 내 인생의 세 번째 전환기”라고 썼다.

    자원외교와 관련해 이 전 부의장 측 관계자는 “해외 특사로 나간 13번 중 7번만 자원외교 건이고 이중 6번은 볼리비아에 간 것이다. 해발 4000m여서 부의장이 코피도 나고 고생했다. 자원외교를 총괄한 사실이 없고 국내에서 보고받거나 컨트롤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상득=자원외교’ 트레이드마크가 된 데 대해선 “정계 현안에 손 안 대겠다는 의미에서 자원외교와 지역구 활동만 하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한승수 당시 총리가 자원외교를 주로 맡았다고 밝힌 바 있다. MB 대선자금, 이상득, 자원외교와 관련해 정 의원의 증언과 이 전 대통령 회고록 사이의 상충하는 부분이 적지않다. 공익적으로 중대한 사안이므로 향후 진상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對北 휴민트 무너진 까닭

    이 전 대통령 회고록은 남북 접촉 때 북측이 남북 정상회담 대가를 요구한 내용을 폭로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와 관련해 정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구축한 대북 휴민트(인적 정보)가 이명박 정부 들어와 상당히 와해됐다”고 비판했다.

    ▼ 이명박 정권 초기에 정 의원과 친하다는 이유로 국가정보원 북한 담당자들이 물러난 게 사실인가요.

    “휴민트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죠. 거의 10년 넘게 시간이 걸려요. 서훈 국정원 3차장 같은 사람은 장성택과 베이징에서 만나면 밤새 통음했어요. 그렇게 터놓고 별의별 얘기를 다해요. 이는 국가적인 자산이죠. 그런 걸 일거에 날려버린 것이죠. 그것도 음해로.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북한에서 취임식에 참여하겠다고 핫라인을 통해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휴민트들이 가서 만나고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그 일을 하니까 국정원 사람들이 저한테 줄을 섰구나 생각하고 자른 거죠.”

    ▼ 서훈 차장 아래에 있던 대북전략국이 해체되고 직원 200명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얘기도 사실인가요.

    “결국 나중에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정보, 노하우, 인적자산을 하루아침에 없애도 되는 건지…. 국정원은 이래저래 망가져서 지금은 국정원 개혁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정상화를 이야기해야 해요. 정상화하겠다는 기미도 안 보이고.”

    정 의원은 이어 정치인 사찰에 관해 이야기했다.

    ▼ 권력 실세인 이상득·박영준을 비판한 일로 사찰을 받게 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제가 ‘55인 반란’의 주동자가 돼버렸어요. 정태근(전 의원), 남경필(경기지사)이 주동자급이 됐고. 셋이 집중적으로 사찰을 받은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죠. 처음엔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산하 국정원 직원이 했고, 나중엔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했고.”

    ▼ 55인에 든 나머지 분들은….

    “SD에게 충성 맹세도 하고 제스처도 보이면서 빠져나온 거지. 그래서 끝끝내 굽히지 않은 세 사람만 망가뜨리려 한 거죠. (이명박 정부 시절 관련 기사를 많이 쓴) 허 기자도 잘 알다시피(웃음). 각종 음해와 중상모략이 난무했어요. 우리 집사람 갤러리가 돈을 다 빨아들인다는 둥. 하루는 박모 기자가 밥 먹으면서 얼떨결에 실토하더라고요. ‘청와대에서 자료 줘서 취재한다’고. 결정적인 거 안나오면 기자에게 흘려 적당히 기사화하는 게 원래 그쪽 수법이잖아요.”

    ▼ 하지만 지금 세 분 모두 건재하지 않습니까.

    “걸릴 만한 게 없었으니까. 그러나 별의별 사찰, 탄압에 무사하게 넘어가진 않았죠. 저는 저축은행 건으로 구속됐죠. 나중에 무죄로 밝혀졌지만. 또 정태근은 부인 회사가 망가졌고, 남경필도 가정이…. 남경필이 그렇게 된 것도 ‘보석 사찰’ 이런 것과 연결이 되죠.”

    ▼ 무죄 판결 직후 “억울하기는커녕 모든 게 감사할 뿐”이라는 소회를 밝혔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파기환송심 최후진술 때 재판장에게 말했어요. ‘감옥살이한 것에 불만이 없다. 얻은 게 많다. 이 일을 격지 않았으면 불행하게 살다 죽었을 텐데 이 일을 계기로 내 인생이 편안해졌다. 고맙게 생각한다’고요. 지금도 변함없어요. 감옥에서 생각해보니 너무 많은 잘못을 하고 살았더라고요. 잘못한 게 너무 많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어요.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싸다’고 여겼죠. 법정에서는 무죄이지만 인생에서는 무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만하고 교만했다”

    ▼ 일각에서 ‘여야를 통틀어 가장 가식 없고 솔직한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는 “내 언행에 분노와 증오가 깔려 있었다”고 말합니다.

    “나는 대통령의 형이 부당하고 불공정하게 출마해 MB 정부가 결정적으로 신뢰를 잃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이후 계속 탄압 받았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론에선 ‘권력투쟁한다’고 평가했어요. ‘권력에서 밀려났다’라고도 해요. 저는 권력을 놓고 투쟁하거나 권력에서 밀려난 게 아니라 스스로 권력을 멀리한 겁니다. 반대로 이상득 전 부의장이 출마하든 말든 아무 말 않고 참고 있었으면 저도 장관 하고 다 했겠죠.”

    ▼ 억울했겠네요.

    “그렇죠. 그러나 감옥에서 생각해보니, 제게도 불찰이 있었어요. 내 마음 속에 경멸과 증오가 있었기 때문에 권력투쟁하는 모습으로 비친 건 아닐까.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또 한 가지, 저는 말을 에둘러 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장애가 있어요. 마음에 둔 말을 그대로 표현하니 ‘칼을 겨눴다’는 식으로 표현되더라고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정두언은 포커 칠 때 패를 보여주고 친다’고 했죠. 그러다 보니 공격적으로 비친 게 많아요. 저도 반성하고 에둘러 표현하고 남한테 상처 안 주게 언어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잘 안돼요.”

    ▼ 그러한 솔직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 같나요.

    “일종의 자신감이죠. 이 자신감이 어디서 나올까. 저는 가진 게 없어요. 백도, 재산도, 권력도 없어요. ‘내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 끼치지 않았다’는 데에서 나온 것 같아요. 솔직함이 지나치면 오만, 교만이 되죠.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2012년 대선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서울고법은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야당 측은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것 아니냐며 박 대통령의 정통성을 걸고 넘어졌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대법원 판단을 봐야겠지만, 댓글 때문에 108만 표 차이의 당락이 바뀌진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다음 정권에 잘 보이려고 스스로 벌인 일 아니겠나. 국정원이 댓글 가지고 돕는다는 게 사실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수도권 전멸”

    ▼ 새누리당이 총선이나 대선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봅니까.

    “공천권의 굴레에서 벗어나야죠. 야당이 국민경선제를 사실상 포기한 게 아쉬워요. 우리는 그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봅니다. 정책적으론 친(親)서민, 중도노선으로 가야 해요. 박근혜 정부는 비주류와 반대파를 인정하고 다른 의견도 경청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백약이 무효죠.”

    ▼ 개인적인 계획은.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는 것. 다음 달에 선거하면 당연히 낙선이고요.”

    그는 “이 상태로 가면 수도권에서 전멸”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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