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1m 앞 거울 속 얼굴 들여다본 적 있나요

  • 김민정 │퓨린피부과 원장

    입력2015-02-23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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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숙이고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엄마가 대신 해주는 10대, 자신의 내원 목적을 조목조목 잘 얘기하는 20대, 부인 손에 이끌려 오는 30~40대, 매우 쑥스러운 표정으로 “이런 곳에 남자도 오느냐”고 물으며 굳이 오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 50대…. 내 진료실에 들어오는 남자 환자들의 연령별 특징이다.

    피부과를 질환 때문이 아니라 미용 목적으로 방문하는 환자는 여성이 많은데 최근에는 남성 환자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피부과에 오는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많이 쑥스러워한다. 특히 50대 이상에서는 겸연쩍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점 하나 빼는 데도 엄청난 결심을 하고 오시는 분이 많다. 아니, 피부미용과 진료실 문을 여는 것 자체를 커다란 스트레스로, 대단한 모험으로 여기는 듯하다. 막상 진료를 하고 나면 여성 환자와 크게 다른 것은 없는데 방문해서 의사를 만날 때까지의 과정과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어떤 남자 분은 딸 결혼식을 앞두고 얼굴을 들여다보니 점 하나가 신경 쓰여서 빼려고 내원했다. 점을 빼고 나서 일주일 정도 재생테이프를 붙이고 그 뒤로도 정상 피부색으로 돌아오는 데 2주가량의 회복기가 필요하다는 얘기에 망설이셨다. 그 뒤로도 왔다가 그냥 가시기를 두 번 더 하고는 결국 딸의 결혼 날짜가 너무 가까워져서 안 하기로 했다.

    매일 수십 명의 환자와 만나서 여러 가지 시술을 하는 의사 처지에서는 정말 간단하기 그지없는 ‘점 빼기’인데, 환자에게는 그렇게 망설여지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의사는 어떤 시술도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성보다 남성의 경우에는 피부과 시술이나 관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하니 더욱 더 망설이고 걱정하는 게 당연하리라.

    10대 남자 청소년은 주로 여드름이 많이 나서 내원하는데 어머니와 같이 오는 경우가 많고, 본인 입으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눈도 잘 안 마주치고 내가 진찰할 때만 겨우 잠깐 얼굴을 들 정도다. 분명 자신의 피부 문제로 내원했는데 본인 입으로는 단 한마디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나로서는 집에서 관리하는 방법도 알려줘야 하고 치료 방법도 설명해줘야 하는데 반응이 없으니 답답하다. 결국 어머니와 주로 얘기하고 학생으로부터는 겨우 알아들었다는 끄덕임 정도를 받아낸다. 사춘기라서 그럴 거라고 이해하긴 하는데, 말 안 하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힘들다. 이렇게 낯을 가리던 사춘기 남학생도 치료하느라 몇 번 만나다보면 말도 곧잘 하고 의사소통도 편해진다.



    피부과 의사는 관상학도 공부해야 할까?

    1m 앞 거울 속 얼굴 들여다본 적 있나요

    일러스트 박용인

    이에 비해 20대의 진료는 훨씬 수월한 편이다. 이 시기에는 주로 점을 빼고 싶거나 수염 주위에 모낭염이 났거나 탈모가 시작돼서 내원한다. 다른 연령대와 다르게 피부과 방문 목적도 쑥스러움 없이 잘 얘기하고 질문도 적극적으로 잘한다. 일반 여성 못지않게 원하는 바도 구체적이다.

    30~40대 남성은 부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권유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 아직 젊은 편이어서 자신의 외모에 크게 불만이 없고 비교적 자신 있어 하는 편인데, 사마귀나 점이 눈에 띈다는 얘기를 듣고 내원한다. 아직 둘 사이에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부인이 데려온 경우가 많다. 부인은 “눈에 거슬리니 지저분해 보이는 점이나 사마귀, 비립종을 다 빼자”고 하고, 남편은 “귀찮고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데 이런 걸 꼭 해야 하나” 하면서 안 하겠다고 논쟁을 벌인다. 미리 협의하고 왔으면 좋으련만 나도 같이 어떤 것을 빼면 좋겠는지 그 논쟁에 끼어들어 거들게 된다.

    이런 경우 가끔씩 난감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어떤 점을 빼야 관상학적으로 좋으냐는 질문이다. 아마도 점을 빼주는 곳이니 당연히 관상도 볼 줄 알아서 어떤 점이 좋고 나쁜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씀드리는데 ‘관상학을 공부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50대 이상에서는 거울을 보다 스스로 신경 쓰여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중 인상 깊었던 환자 분은 내게 미백 및 주름 치료를 받는 50대 여성이 데리고 온 남편이었다. 남편은 피부과는 여자들만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그래서 본인이 피부과를 방문한 것 자체를 너무 민망해했다. 진료하는 내내 본인은 할 생각이 없는데 부인이 하도 가자고 해서 그냥 한번 와본 것이라고 했다. 의사로서는 환자 본인이 치료할 생각이 없다고 하니 맘대로 할 수 없는 노릇이라 그냥 가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부인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결국 주름도 완화시키고 볼살도 좀 더 채우는 등 이것저것 시술하기로 했다.

    “더 멋지게 만들어서 데리고 살고 싶다”

    부인에게 남편 분을 굳이 피부과에 데려온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옛날엔 잘생긴 남자였는데 요즘은 예전만 못하다”며 “더 멋지게 만들어서 데리고 살고 싶다”고 했다. 부인 스스로 자기 외모에는 워낙 자신이 있으니 남편도 밸런스를 맞춰주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둘 다인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그 남성은 그 뒤로 부인 없이 혼자서도 꾸준히 와서 관리를 받아 훨씬 나아진 모습에 (젊은 시절 모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부인도 만족해하고 본인도 즐거워한다.

    이분들을 보면 정말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가꿔주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부럽다. 수십 년 같이 살았지만 아직도 상대방의 얼굴을 봐주고 더 예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는 것은 멋지고 신 나는 일 같다.

    피부과를 방문하고 싶기는 한데 망설이는 남성이 있다면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 위치쯤에 거울 하나 놓고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 정도 떨어져서 봤을 때 잘 보이는 단점이 있다면 한 번쯤 피부과를 방문해서 상담을 받아보면 어떨까. 거울을 가까이 해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것쯤은 무시해도 좋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책상 건너편의 상대와 대면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니, 그 정도 거리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단점이 있다면 보완하는 것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한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1m 앞 거울 속 얼굴 들여다본 적 있나요
    김민정

    1978년 강원도 원주 출생

    연세대 의대 졸업

    강원대병원 임상교수

    퓨린피부과 공동원장


    100세 시대다. 중요한 노후 대책 중 하나가 제2의 직업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매력을 유지하고 업그레이드해서 경쟁력을 갖춰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집도 살아가며 조금씩 손보면서 가꿔가야 오래오래 예쁘고 멋진 집으로 남는다. 내 얼굴과 내 몸을 자주 들여다보며 상태가 어떤지 살피며 사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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