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쾌락의 끝, 깊은 침잠

‘섬’과 안성 고삼저수지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입력2015-02-23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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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어붙은 저수지, 나룻배는 갈 길을 잃었다. 섬처럼 떠 있는 방갈로. 지난여름 그 속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삭풍만이 빈방을 훑고 지나간다. 한바탕 ‘환락’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다. 사라진 걸까.
    쾌락의 끝, 깊은 침잠
    적막하다. 여고생 은교를 사랑했던 이적요(寂寥·고요하고 쓸쓸하다는 뜻으로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서 노년의 시인인 남자 주인공이 사용한 필명) 시인이 다녀간 것일까. 의식적으로 선택한 퇴락의 기운이 물씬하다. 아무도 없다. 주변엔 온통 고독(孤獨)의 물이 흘러 다닌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그동안 무정한 도심 속 삶에 지쳤다. 독(毒)은 독(獨)으로 풀어야 한다.

    이제 슬슬 김기덕 감독 얘기를 꺼낼 때가 된 것 같다. 포토그래퍼 김성룡 작가가 한마디 거든다.

    “그럼 당연히 ‘섬’이죠.”

    김기덕의 그 많은 영화 가운데 ‘섬’을 기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쾌락의 끝, 깊은 침잠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의 한 장면.

    “저는 포스터 때문인 것 같아요. 왜 그런지, 그게 그렇게 야하게 느껴졌어요.”



    ‘섬’은 무려 15년 전의 영화다. 김 작가가 막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일 텐데, 내겐 그 포스터가 그렇게 야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장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실제인지 환상인지 여자는 옷을 다 벗고 나룻배와 함께 물에 잠겨 누워 있다. 주요 부위는 수풀로 가려진 채 물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배처럼 여자도, 풀어헤쳐진 여자의 머리카락도 나풀나풀 어디론가 떠내려 간다. 야하다는 느낌을 뛰어넘어 강하고 진한 여운이 지금도 머릿속에 맴돈다. 그곳,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벗어나지 못한 바로 그곳이 경기도 안성 고삼저수지다.



    끔찍한 ‘엽기’에 비명

    쾌락의 끝, 깊은 침잠

    영화배우 서정의 전라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섬’의 포스터.

    영화 ‘섬’ 덕분일까. 고삼저수지는 한적한 겨울만 빼고 봄과 여름, 가을에 북새통을 이룬다. 낚시광들 사이에 인기도 높지만, 엄청난 양의 물을 넉넉히 담고 있는 저수지가 사람들에게 넉넉한 관조(觀照)의 세상을 선사한다. 여기에 물맛과 고기맛도 일품이고, 저녁 무렵 낙조는 황홀함을 더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북적북적 이곳을 찾아 한가로이 강태공 노릇을 하는 척, 사실은 요란하게 놀다 간다.

    저수지 중간 중간, 마치 섬처럼 조용하지만 요염하게 떠 있는 방갈로들. 저곳 어디쯤에선가 지난여름 또는 가을, 환락의 향연이 벌어졌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뇌리에 스친다. 아무러면 어떤가.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적막한 것이 아닌가. 지난 한 해 쾌락을 지나치게 즐겼음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스스로 침잠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김기덕 감독도 영화를 찍기 전에 이렇게 겨울의 빈 저수지를 먼저 둘러 봤을지도 모른다. 김기덕은 길거리 화가 출신이다. 캔버스의 여백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 이 저수지를 앞에 놓고 자신의 영화를 한 컷, 한 컷 그려나갔을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발표되자마자 ‘엽기 그 자체’라는 혹평을 받았다. 낚싯줄로 자신의 입을 꿰매는 남자, 자신의 성기를 바느질로 봉해버리는 여자,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끔찍한 장면에 비명을 질렀다.

    저수지 낚시터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여자 희진(서정)은 낚시꾼들을 상대로 술과 안주, 먹을 것을 팔며 살아간다. 중간에 가끔, 어떤 때는 종종 그들에게 몸을 팔기도 한다. 꼭 돈 때문만은 아니다. 무료한 삶 속에서 잠시잠깐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한 목적도 살짝 뒤섞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직 경찰이라는 현식(김유석)이 저수지에 나타난다. 변심한 애인을 살해하고 도주하다 숨어들었다. 희진은 곧 그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어쩌지를 못한다. 둘은 점점 일탈의 관계에 빠져든다. 저수지, 아니 세상 역시 점점 광기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기억이 난다. 방갈로 방 안 가운데 바닥을 뚫고 한 남자가 낚싯바늘에 입 안이 꿰인 채 올라오던 장면. 여자의 몸, 여배우의 몸이 기억난다. 아, 그 여배우, 그 상큼하고 순진하고 매력적인 여자 서정은 지금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쾌락의 끝, 깊은 침잠

    저수지 중간 중간, 마치 섬처럼 조용하지만 요염하게 떠 있는 방갈로들.



    쾌락의 끝, 깊은 침잠

    영화 ‘섬’은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주무대인 고삼저수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나쁜 남자’이자 ‘나쁜 감독’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 나쁜 남자와 착한 남자. 영화감독들도 두 종류로 나뉜다. 나쁜 감독과 착한 감독이다. 나쁜 남자는 묘하게도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나쁜 감독도 그렇다. 관객 가운데에서는 호오(好惡)가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적어도 비평가들은 나쁜 감독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김기덕 감독은 분명 ‘나쁜 감독’이다. 한국보다는 유럽 영화권에서 더 그렇다. 거기서 그는 늘 새로운 무언가를 주는 ‘나쁜 남자’이자 ‘나쁜 감독’으로 통한다. 어쩌면 그가 2001년에 만들어 흥행에 성공한 영화 ‘나쁜 남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쁜 남자’에서 사창가 두목 한기(조재현)는 여대생 선화(서원)를 강간하다시피해서 자기 여자로 만든다. 그것도 부족해서 결국 그녀를 창녀로 만들고, 그녀가 몸을 파는 방에 설치해놓은 이면 거울을 통해 매일 훔쳐보며 산다.

    조금씩 여자를 사랑하기 시작한 자신을 발견한 이 나쁜 남자, 어느 날 자신 밑에서 일하는 후배 깡패가 이제는 완전히 창녀가 된 이 여자를 괴롭히려 하자 야구 방망이를 든다. 깡패를 흠씬 두들겨 패면서 그는 웬일인지 욕도 시원하게 하지 못한다. 그저 한다는 말이 이 정도일 뿐이다. “이… 이, 나쁜….” 그건 그가 그제야 자신의 실체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들, 특히 유럽의 비평가들이 이 영화에서 김기덕을 ‘나쁜 남자=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감독’이라고 받아들인 건 정작 주인공 여자가 자신을 창녀로 만든 남자를 용서하는 방식 때문이다. 여자는 기이하게도 폭력적인 남자의 삶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곧 그와 함께 전국을 돌며 트럭 짐칸에서 몸을 파는 인생을 선택한다. 남자는 조직을 청산하고 오로지 여자와만 지내며 운전을 한다. 남자와 여자는 1인 포주와 1인 창녀의 생활을 시작한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과연 사랑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사랑은 무엇이고 운명은 또 무엇인가.

    쾌락의 끝, 깊은 침잠

    낚시광들로 북적이던 방갈로는 얼어붙은 저수지에 갇혀 쓸쓸히 떠 있다.

    배신감에 아들 성기 잘라

    1996년 데뷔 이후 20년 가까이 무려 22편의 영화를 연출한 괴력의 감독 김기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야수’ 같은 감수성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예컨대 초기 작품인 1998년작 ‘파란 대문’과 2013년작 ‘뫼비우스’는 내용은 확연히 다르지만 묘하게도 시간을 건너뛰어 같은 선상에서 읽히는 작품이다.

    ‘파란 대문’ 역시 ‘나쁜 남자’처럼 창녀 이야기다. 여인숙을 운영하는 포항의 한 가정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서울 집창촌에서 일하던 여자 진아(이지은)가 들어온다. 집안은 곧 난장판으로 변한다. 아버지와 아들, 딸의 남자친구까지 이 여자와 섹스를 하거나 하려 하기 때문이다. 진아는 어차피 창녀다. 그리고 장소는 어차피 성적인 관계가 생활의 배경이 되는 여관이다. 기묘하게도 이들 모두는 결국 화해한다. 육체적으로는 난교의 관계에 가까워도 정서적으로는 평화를 찾는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된다.

    2013년 ‘뫼비우스’는 거기서 한 걸음, 아니 한 열 걸음쯤 더 나아간다. 남자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여자는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성기를 자르고 집을 나간다. 자신 때문에 불구가 된 아들을 보살피며 살던 아버지는 죄책감에 어느 날 스스로 자신의 성기를 자른다. 그런데 이번엔 집을 나갔던 여자가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여자는 아들과 기이한 관계를 맺어가며 남자의 죄의식을 자극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셋은 어찌 됐든 새로운 동거를 시작하며 그렇게 다시 가족을 이뤄나간다.

    김기덕에게 중요한 건 이 부분이다. ‘나쁜 남자’든 ‘파란 대문’이든 아니면 ‘뫼비우스’든 김기덕의 모든 영화는, 점차로 자신의 둥지 안으로 숨어들어가며 보수적이 돼가는 중산층 가족이라면 질겁할 얘기겠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정, 가족관계, 남녀관계엔 늘 균열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지, 그걸 극단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이들 영화는 김기덕이란 존재가 기성사회에 위험하고 자기 파괴적인 인물인 동시에 창조적인 캐릭터라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 김기덕의 무정부주의적 구원의 방식엔 분명 매력적인 데가 있다. 한국보다는 특히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더 그렇다.

    “감독, 좀 돈 것 아냐?”

    역설적이게도 김기덕은 첫 작품부터 ‘이단(異端)’적이어서 환영받았다. 본래 이단은 외면받거나 배척당하는데, 김기덕은 그 반대다. 1996년에 나온 데뷔작 ‘악어’가 그랬다.

    주인공 조재현이 한강 물속에서 죽으려 뛰어든 여자와 나란히 서 있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사위는 지극히 고요하고 강물은 푸르다 못해 시린 빛을 띤다. 물 위, 세상 밖은 아우성이지만 물속은 달랐다. 물론 여자는 죽으러 들어왔다. 남자는 처음엔 여자의 죽음을 기다렸다. 남자는 투신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용해 먹고사는 인간이다. 물속에 빠져 자살한 시체를 건져내 훔친 후 가족들에게 시신 값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일명 ‘악어’다. 사연이 어떻든 한 명은 죽으려 하고 다른 한 명은 그 죽음을 이용해 살아가려고 한들, 어쨌든 이때만큼은 두 사람 모두에겐 가장 평화로운 시간처럼 보였다. 심지어 행복해 보였다.

    쾌락의 끝, 깊은 침잠

    방갈로들 사이를 오가며 낚시꾼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들이 물에 반쯤 잠긴 채 얼어 있다.

    몇 안 되는 관객이었지만 이 장면이 이어질 때 여기저기서 킬킬대는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난다. “한강이잖아. 근데 바닷속처럼 맑고 푸르다고?” “이거 만든 감독 좀 돈 것 아냐? 영화가 조금이라도 리얼리티가 있어야 할 거 아냐!”라고들 떠들어댔다.

    하지만 리얼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리얼하지 않은 게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진실이라고 얘기하는 게 쉽게 믿기지 않는 시대였다. 진실은 산 너머 저쪽에 있을 것 같던 시기였다. 세상이 막 변하려고 몸부림치던 때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대로인 듯했다. 막 깨져야 할 참이었다. 파격이 필요한 시대였다. 김기덕이 등장한 게 바로 그때였다.

    김기덕은 미친 듯이 영화를 찍었다. 무조건 1년에 한 편, 어떤 해에는 두 편을 찍기도 했다. 그러니 20년도 안돼 22편의 영화를 만들어냈지. 개인적으로 김기덕의 영화 중에선 후기보다는 전기에 만들어진 것을 더 좋아한다. ‘파란 대문’ ‘섬’ ‘나쁜 남자’ 등등이 그렇다. 그때 만든 영화들이 비록 거칠긴 해도 더 그로테스크해서 좋다. 더 예술적이다.

    후기로 갈수록 김기덕은 사회적 이슈에 가깝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해안선’ ‘사마리아’ ‘빈집’ ‘시간’ 등등 마치 저널리스트 같은 느낌으로 사회문제에 대해 능수능란하게 치고 빠지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베니스, 베를린, 카를로 비 바리 등등 국제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이 잇따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세계 영화계에서 그는 완벽한 주류였다. ‘마에스트로(거장)’ 대접을 받았다. 그가 나타나면 전 세계 기자들이 그에게 주목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그렇지 못했다. 그 점이 그를 미치게 했다.

    ‘야수의 메시지’에 열광

    언뜻 보기에 김기덕은 자신의 영화가 국내에서 늘 논쟁을 몰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흥행에서 실패한 것은 언론과 비평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김기덕의 처지에서 보면 그럴 법도 하다. 그의 영화는 대개가 찬반논란에 휩싸였고, 호오(好惡)가 확연히 갈렸다. 찬반논란에선 반대쪽의 목소리가 조금 더 부각되기 일쑤다. 저널과 비평이 아무리 양쪽의 주장을 비중 있게 실었더라도, 그의 영화를 관객에게 보고 싶은 영화라기보다는 다소 거부감이 느껴지는 영화로 인식시켜온 건 부정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관객 대부분에게 김기덕은 문제적 작가임은 분명하지만 대중적인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양동근과 방은진이 출연한 ‘수취인불명’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것은 김기덕과 대중의 만남이 결코 평탄치 않음을 암시한다. 영화의 엔딩은 남자 주인공이 차가운 논바닥에 거꾸로 처박혀 죽어 있는 모습이다. 김기덕이 꿈꾸는 영화적 풍경은 그만큼 일반 관객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전복적인 형태다.

    전복은 때론 혁명을 낳는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종종 선후가 뒤바뀌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늘 지극히 인상적이지만, 그 인상이 대중적 흡입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취약점을 나타낸다.

    반면 칸과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가 김기덕이 영화를 만들 때마다 트로피를 안겨주거나 주려고 하는 것은 세계 영화계에서도 그 사례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 만큼 대단하고 엄청난 성과임에 틀림없다. 해외 영화계, 특히 유럽 3대 영화제가 김기덕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구사하는 직설적 화법 때문이다. 김기덕이 던져놓는 그 우직스러운 영화적 화두의 명쾌함이 그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듯하다.

    김기덕의 영화엔 늘 강한 자신의 주장이 실려 있다.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야수의 포효가 있다. 김기덕은 결코 에두르지 않는다. 분노와 슬픔, 구원과 해탈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표현해낸다. 유럽의 관객들이 감탄하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그 앞에서 공손해지는 것은 그가 마치 메시아처럼 구원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3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장(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또 한 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피에타’야말로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식을 버린 엄마와 (그것에 대한 심리적 보상을 받는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협박하며 살아가는 아들의 관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폭력적이다. 두 모자는 심지어 아슬아슬하게 근친상간의 관계에까지 접근한다. 이건 ‘굽어살필’ 만큼 간단치가 않은 문제다. 유럽은 그 같은 이색(異色)에 열광한다. 지금껏 자신들이 구사해온 단순한 방식으로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구원의 상상력에서 한계에 다다랐다. 김기덕의 영화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폭력적 쾌감을 갖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유혹한다. 폭력은 때론 폭력적인 방식으로 다스리고 극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유럽의 관객들이 김기덕의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다.

    야채 ‘송송’…걸쭉한 국물 일품

    안성 고삼저수지를 다녀오는 길은 그다지 어렵거나 아주 흥미롭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 열광할 만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청춘 남녀보다는 장년층 커플(결혼했든, 돌싱이든, 아니면 아직 미혼이든)의 당일치기 데이트 코스로 제격일 것 같다. 젊은 사람들에겐 볼 거리와 먹을거리, 무엇보다 즐길 거리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고삼저수지로 가는 겨울의 길목은 사실 그런 것들의 유혹과 욕망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 약간 나이 든 세대가 가는 게 맞다. 오가는 데 1시간 반 정도의 거리감도 장년층 세대에 딱 적당하다. 올해는 유난히 서해안과 강원도에 폭설이 내린 적이 많았다. 겨울엔 조심스레 웅크리고 다니는 맛도 괜찮다.

    저수지 낚시터에서 매운탕 대신 먹은 라면 맛이 일품이었다. 청양고추와 각종 야채를 썰어 넣은 걸쭉한 라면 국물은 추운 저수지 주변을 걸어온 우리에게 따뜻한 하루 품삯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왕후장상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상은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간다. 광기는 늘 폭력을 수반한다. 세상을 폭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방식은 사람들이 대속(代贖)과 희생 정신을 배우는 것이다. 김기덕도 지난 20년간 같은 얘기를 해온 셈이다. 물론 표현 방식은 남달랐지만. 해 지는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김기덕 식의 구원을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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