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여자월드컵? 기죽을 거 없죠 ‘지메시-박라탄’이 일낼 거니까”

한국 여자축구 아이콘 지소연

  •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입력2015-02-23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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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데뷔 첫해 WSL ‘올해의 선수상’
    • 어머니가 재봉일로 뒷바라지…‘소녀가장’ 돼 보답
    • “팬은 늘었는데 광고 섭외가 안 와요, 하하”
    • “어려운 환경서 축구하는 아이들 돕고 싶어”
    “여자월드컵? 기죽을 거 없죠 ‘지메시-박라탄’이 일낼 거니까”
    여자축구 간판스타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은 별명이 이름만큼 유명하다. 지소연과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포워드)를 합성한 ‘지메시’가 그것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15세의 최연소 나이로 국가대표가 됐고, 17세 이하 대표팀에서 14경기에 출전해 11골, 20세 이하 대표팀에선 17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했다. 2010년 20세 이하 월드컵 3위를 이끌었고, 실버볼(MVP 투표 2위)과 실버부트(득점 2위, 8골)를 휩쓸었다. 10년간 A매치 70경기에 나서 35골을 넣어 여자선수 A매치 최다 골 기록도 갖고 있다.

    지소연은 2014년 1월, 일본 고베 아이낙에서 잉글랜드 여자축구 슈퍼리그(WSL) 첼시 레이디스로 이적했다. 그가 속한 팀은 명문 축구클럽 첼시의 여자팀으로 회장은 첼시의 주장이자 전설인 존 테리다.

    지소연은 WSL 첫 시즌 19경기에 출전해 9골을 터뜨리며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을 리그 2위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팀은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고, 지소연은 WSL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그는 대한축구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여자선수상도 4차례(2010, 2011, 2013, 2014년)나 받았다.

    1월 16일 귀국한 지소연은 1월 30일 영국으로 다시 떠났다. 1월 1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그를 만났다.

    ‘지메시’와 ‘지느님’



    “사진을 이렇게 밋밋하게 찍는 것보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축구화를 신으면 멋있지 않을까요?”

    지소연이 던진 말에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사진 콘셉트다. 정말로 근사할 것 같았다. 다음에 인터뷰할 때 그런 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 지소연은 그라운드에서 드러내는 거친 이미지와 달리 웃음과 애교가 많다. 어떤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 소연 선수 팬이 많아. 인기를 실감하니?

    “페이스북을 운영하는데, 친구가 5000명 넘어 더는 친구를 못 맺어요. 팬이 늘어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인기가 많으면 광고 촬영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섭외가 안 들어오네요, 하하.”

    ▼ 네가 기자라면 ‘지소연’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싶니.

    “앗, 정말 신선한 질문인데요! 글쎄요, 제가 기자라면? 음, 솔직히 얘기해도 돼요? 근데 기자가 돼 유명한 축구선수를 인터뷰할 수 있다면 지소연보다 박지성 선수를 꼭 만나고 싶어요. 기사로 정제돼 나온 발언이 아닌, 박지성 선수가 직접 한 말을 통해 그의 삶을 배우고 싶어요. 제가 지성 오빠 좋아하는 거는 아시죠?”

    지소연은 그간 박지성에 대해 사심(?)을 자주 드러냈다. ‘오빠가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인 것처럼, 한국 여자축구의 아이콘으로 남고 싶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지성 오빠는 축구도, 인간적인 매력도 대단한 분’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지소연은 박지성을 ‘지느님’(지성+하느님)이라고 부른다. 수년 전 토크쇼에서 박지성 팬을 자처하는 지소연에게 진행자가 당시 미혼이던 박지성과의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농담처럼 던진 질문에 지소연은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땡큐요”라고 말해 한때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박지성-지소연’이 커플로 뜬 적도 있다.

    ▼ 선수 말고, 감독 중에는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 없어?

    “첼시 레이디스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명문 팀 첼시와 자매 팀이에요. 가끔 훈련하러 갈 때 운동장에서 첼시 선수들이나 조세 무리뉴 감독님을 만납니다. 만약 제가 기자라면 무리뉴 감독님을 만나 어떻게 하면 축구를 잘할 수 있을지 묻고 싶어요. 혹시 가능하다면 우리 팀에 와서 가르쳐달라는 부탁도 드리고 싶고.”

    ▼ 엠마 헤이즈 첼시 레이디스 감독이 이 얘기 들으면 싫어할 텐데?

    “엠마 감독님도 배우는 것이니 오히려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무리뉴인데요, 하하.”

    지소연은 2010년 12월 고베 아이낙에 입단해 일본에서 3년을 보냈다. 일본 축구가 여자월드컵 우승(2011년), 런던 올림픽 은메달(2012년)의 성적을 거둔 시기에 사와 호마레, 가와스미 나호미, 오노 시노부 등 일본 여자축구 스타들과 함께 뛰면서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소연은 2011, 2012년 시즌 나데시코리그 베스트11, 2013년 몹캐스트컵 MIP(Most Impressive Player) 등 개인상을 휩쓸었고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즌 팀이 4관왕을 차지할 때 크게 기여했다.

    지소연이 바라던 첫 해외 진출은 사실 일본행이 아닌 미국행이었다. 일본 진출을 앞두고 필자와 인터뷰하면서 “미국이 아니라 조금 아쉽지만, 먼저 일본 무대에 적응한 후 미국으로 가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라며 서운함을 달랜 적도 있다.

    “독도에서 일본 전화가 터져?”

    “여자월드컵? 기죽을 거 없죠 ‘지메시-박라탄’이 일낼 거니까”

    지소연의 올해 목표는 WSL에서 10골, 10도움 이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 아이낙에서 3년을 보낸 후 미국으로 갈 줄 알았는데, 영국으로 방향을 틀었어. 특별한 이유가 있었니.

    “이번에도 마음은 미국을 향했어요. 그런데 엠마 감독님이 저를 간절히 원하셨어요. 다른 팀도 아닌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명문 팀인 첼시의 여자축구팀인데다, 제 실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팀인 것 같아 선택했죠. 무엇보다 엠마 감독님이 좋았어요. 다정다감하고, 밝고, 유쾌한 분이에요. 물론 화를 낼 때는 ‘카리스마 작렬’이지만요, 하하.”

    ▼ 해외에서 살면 없던 애국심도 절로 생긴다던데 그런 경험이 있었을까.

    “일본에서든, 영국에서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묻혀 있는 것은 싫었어요. 한국에서 온 지소연이란 선수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죠. 일본에 있을 때 독도 문제로 한창 시끄러운 적이 있었어요. 룸메이트랑 그 일로 심하게 다퉜어요. 그래서 제가 ‘너희는 독도 갈 때 여권 갖고 가니, 안 갖고 가니? 너희는 갖고 가지만, 우린 여권 없이 독도에 가. 너희가 독도에 가면 휴대전화가 연결돼? 안 되지? 우린 독도에서 한국 휴대전화가 아주 잘 터지거든. 무엇보다 독도에 한국인이 사니, 일본인이 사니?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독도가 독도이지, 다케시마는 아니잖아?’라고 조목조목 다그쳤죠. 룸메이트는 두 손 들고 말더군요.

    위안부 할머니 문제가 나왔을 때도 룸메이트는 물론 다른 선수들한테도 일본은 진심으로 할머니들께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선수들은 왜 그런 얘기를 여기서 하느냐고 뭐라 했고, 저는 저대로 반성 없이 자기 주장만 하는 일본인들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도 일본 선수들하고는 잘 지냈어요. 일본엔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경외(敬畏)하는 풍토가 있어요. 일본 선수들에게 인정받았기에 민감한 문제를 거론했는데도 그 정도 수준으로 반응하고 끝난 겁니다.”

    한 경기 끝나면 온몸에 멍

    ▼ 일본에서 통역 없이 세 시즌을 보냈다던데 정말이야?

    “만약 (일본어를 잘하는) 권은솜 선수마저 없었더라면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일본에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선수 생활하는 게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뭐 별것 있을까’ 싶었던 거죠. 그런데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몸으로 느꼈어요. 미국, 독일도 아닌 한국과 가까운 일본인데도 다른 게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당연히 통역이 있는 줄 알았죠. 그런데 아이낙에 입단하고 보니 통역이 없다는 거예요.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다고 했어요. 에이전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통역이 있으면 일본어가 늘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통역을 안 두기로 했다더군요. 어이없는 설명이었죠. 구단이 그렇게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에이전트가 숨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통역 없이 지내는 생활은 암흑, 그 자체였죠.

    개막전에 나서는데, 감독님이 지시하는 내용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대충 눈치로 어림잡아서 뛰었죠.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돌이켜보면, 처음에 고생했지만 통역을 두지 않아 일본어가 빨리 는 건 사실이에요. 생존 차원에서 언어에 접근했으니 빨리 익힌 거죠.”

    ▼ 영국에서는 어땠어. 일본과 차이가 컸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동아시아 선수들에 비해 체격 조건이 좋다보니 힘에 부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드리블을 하다가 상대 수비수와 부딪치기라도 하면 곧바로 나가떨어졌죠. 신장과 체형이 좋은 유럽 선수들한테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부딪히기 전에 재빨리 피하는 겁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한 경기 끝내고 나면 온몸에 멍이 가득했습니다. 허벅지, 종아리가 성할 날이 없었죠. 그때 제 다리를 보면서 이렇게 위로했어요. ‘수고했다 지소연!’ ‘영광스러운 상처니까 아파하지 마’라고. 통역이요? 당연히 안 구했죠. 이번에는 제가 사양했어요. 일본에서의 경험을 활용해서 더 빨리 영어를 배우려고요.”

    소속팀 7위→2위 견인

    ▼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았겠는데.

    “처음에는 진짜 무서웠어요.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선수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내 축구 실력이 통할까… 하는 의문부호만이 머릿에 가득했죠. 일본에서의 성공이 동기 부여가 되고 자신감도 심어줬지만, 영국 리그가 일본보다 더 크고 선수들의 실력도 뛰어난 곳이라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잘 지냈어요. 스스로 70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첼시 레이디스에서 지소연은 폭풍 질주, 그 자체였다.

    ▼ 데뷔 첫해에 19경기에서 9골을 터뜨리고 지난 시즌 7위이던 팀을 리그 2위로 끌어올렸잖아. 영국여자축구협회가 주관하고 선수들이 뽑는 ‘올해의 선수상’도 받고.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 상을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해봤거든요. 우리 팀 선수뿐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도 다 참여해서 가장 많이 지지받은 선수에게 주는 상이에요. 선수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라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고마움을 느꼈죠. 제가 다른 복은 없어도 인복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 몸에 가득하던 멍들이 값진 보답으로 돌아온 듯했어요.”

    ▼ 어린 시절 얘기를 해볼까. 여자아이가 축구를 잘하니 남자아이들이 질투한 적은 없었어?

    “왜 없었겠어요. 남자아이들은 제가 축구공 차는 거 자체를 싫어했죠. 초등학교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단순한 공놀이였죠. 놀이였다곤 해도 여자가 공 차는 건 드문 일이었어요. 학교 축구부 선생님이 제가 축구선수 자질이 있다고 보고 축구부 입단을 권유하셨고, 저는 부모님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축구부에 들어갔죠. 선생님의 지시 때문인지, 다행히도 우리 학교 축구부 아이들은 제게 딴죽을 걸지 않았어요. 오히려 무척 잘 대해줬어요. 그런데 다른 학교 축구부 아이들에게는 눈엣가시였던 모양이에요. 저를 볼 때마다 ‘너 여자야, 남자야?’ ‘남자도 아닌 게 축구를 한다고…’ ‘너 혹시 하리수 아니야?’ 등등 저를 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어요. 그러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기도 했고요. 대부분 제가 이겼어요. 그래서 그때는 제가 남자아이들보다 힘이 더 세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걔들이 저를 봐준 것이더라고요. 여자애라 차마 때리지 못한 거였죠.”

    ▼ 옛날로 돌아가 축구 해보라는 얘기를 들으면 똑같은 선택을 할 거니.

    “축구를 안 할 수는 없죠, 남자애들과 싸운 기억은 강렬하지만. 하하. 어떤 형태로든 축구는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 축구부에 가입시켜주신 김광열 감독님께 감사드려요. 지금은 일산에서 축구클럽을 운영하시는데, 그분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15세 때 A매치 데뷔골

    ▼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웠다고 들었어.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어머니가 재봉 일을 하시면서 저와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셨죠.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어 정부 지원을 받은 적도 있고요. 어머니 건강이 나빠져 세상이 다 끝난 듯한 적도 있어요. 다행히 제가 축구를 잘하면서 ‘소녀가장’ 노릇을 할 수 있었죠. 성공하고 싶었어요. 제가 성공해야 우리 가족이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주위의 도움으로 간신히 축구선수 생활을 이어갔거든요, 제가. 주변에서 내민 작은 손길이 제 축구 인생을 살렸어요. 저도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소연은 2010년 U-20 여자월드컵에서 8골을 폭발시켰다. 대회 3∼4위전에서 천금 같은 결승골을 뽑아내며 한국 축구 역사상 FIFA 주관 대회 역대 최고 성적인 3위의 대업을 이루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1층에는 집, 2층에는 레스토랑, 3층에는 찜질방이 있는 건물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 찜질방은 어떻게 되고 있니.

    “하하,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에요. 3층 건물 짓는 데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20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회가 저에게 많은 선물을 안겨줬어요. 그때 집안 상황이 아주 안 좋았는데, 축구로 개인적인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맛있는 것을 사주시면서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던 일이 떠오르네요.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때 받은 ‘실버볼’ ‘실버부트’는 제 인생의 보물이에요.”

    ▼ 이 질문에는 답을 해도 좋고 안 해도 돼. 혹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없니.

    “현실로 받아들였어요. 어른들의 문제니까 제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잖아요. 돈을 많이 벌면 아버지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엄마의 딸이기도 하지만, 아빠의 딸이기도 하니까.”

    ▼ 남녀 축구선수를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에 발탁됐어. 15세 8개월 때였고, 15세 10개월 때 최연소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리며 ‘축구여왕’ 탄생의 서막을 알렸지.

    “정말로 꿈만 같았어요. 대표팀에 처음 뽑혔을 때의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태극마크를 달면서 축구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지성 오빠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였다면, 전 여자축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해 인정받고 싶어요. 그런 꿈이 있기에 어려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스몰 앤드 빅’ 활약 지켜보라”

    ▼ 대한축구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4번이나 수상했더군. 함께 수상하는 남자선수는 매번 바뀐 걸로 아는데.

    “박지성, 기성용 선수가 각각 한 번, 손흥민 선수가 두 번 받을 동안 여자선수는 제가 계속 선정됐어요. 박지성, 기성용 선수는 선수가 아닌 아버님들이 대리 수상하시는 바람에 정작 기념사진은 아버님들하고만 찍었는데, 지난해 시상식에선 손흥민 선수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소원을 풀었어요. 하하. 흥민이가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왔더라고요. 사진이 아주 잘 나왔어요. 저 말고 흥민이가요.”

    지소연은 지난해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 AFC에서 뛰는 기성용이 첼시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스탠퍼드 브리지를 방문했을 때 경기장을 찾아가 기성용을 만났다고 했다. 첼시의 홈구장을 누비는 기성용을 보면서 자부심과 뿌듯함이 넘실거렸다는 그는 이렇게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성 오빠가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면 올드 트래퍼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구장)를 방문하는 즐거움까지 누렸을 것 같아요. 오빠가 너무 일찍 은퇴했어요.”

    지소연은 런던에서 윤석영(퀸스파크레인저스 FC),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 등과 가끔씩 함께 식사한다고 덧붙였다.

    ▼ 올해는 중요한 대회가 많더라. 첼시 레이디스가 지난 시즌 준우승을 해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잖아. 6월에는 캐나다에서 여자 월드컵(6월 6일~7월 5일)이 열리고.

    “남자선수들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숱하게 봤습니다. 소속팀이 챔피언스리그에서 꼭 좋은 결과를 내면 좋겠어요. 여자 챔피언스리그에서 과연 우리가 기대한 것만큼의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을지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됩니다. 월드컵에서 우리가 토너먼트에 오르려면 브라질, 스페인, 코스타리카 등을 꺾어야 해요. 상대 팀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하죠? 하하.

    하지만 먼저 기죽을 필요는 없어요. 이변은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니까요. 무엇보다 대표팀에는 든든한 (박)은선 언니가 있잖아요. 언니가 대표팀에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나더라고요. 사람들은 저와 언니를 가리켜 ‘스몰 앤드 빅’이라고 하는데, 언니가 대표팀에 들어오면서 제 경기력도 동반 상승하고 있어요. ‘스몰 앤드 빅’이 월드컵에서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꼭 지켜봐주세요.”

    박라탄-지메시 ‘괴물 투톱’

    “여자월드컵? 기죽을 거 없죠 ‘지메시-박라탄’이 일낼 거니까”

    1월 5일 경기 파주시 NFC에서 포즈를 취한 신서연 지소연 박은선(왼쪽부터).

    박은선은 2012년 불거진 성별 논란 때문에 은퇴를 생각했을 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난해 러시아 리그에 진출하면서 서서히 기량을 회복했다. 그는 2003년 여자축구대표팀이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멤버였다. 당시 여자대표팀은 브라질에 0-3, 프랑스에 0-1, 노르웨이에 1-7로 패하며 첫 도전을 쓸쓸하게 마무리했다. 그때는 박은선 혼자 공격을 맡다시피 했다면 지금은 패스와 골 결정력이 좋은 지소연이 있다. 두 사람은 ‘괴물 투톱’으로 부상 중이다.

    둘은 지난해 아시안컵에서 처음으로 발을 맞춰봤다. 아시안컵에서 7골을 터뜨린 지소연은 “아시안컵 때 서로 발 맞출 시간이 부족했는데도 경기에 나선 은선 언니의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182㎝의 압도적인 신체 조건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파리 생제르맹)와 흡사하다고 해 ‘박라탄’이란 별명을 가진 박은선은 파괴력 있는 돌파와 공중 볼 다루기에 능하다. 그에 비해 ‘지메시’ 지소연은 공간 돌파와 패스 능력이 탁월하다. 박은선과 지소연의 목표는 월드컵 첫승과 함께 최초로 16강에 진출하는 것.

    ▼ 대표팀에서 만난 박은선 선수는 어땠어.

    “음…. 만약 언니가 러시아가 아닌 영국의 경쟁 팀에 입단했다면 끔찍했을 것 같아요. 상대로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아요. 언니가 공을 잡고 돌파를 시작하면 막기 어려워요. 개인적인 이유로 언니의 대표팀 합류가 미뤄지는 바람에 뒤늦게 만났는데, 이제라도 한 팀에서 뛰게 돼 정말 다행입니다. 전에는 대표팀에 들어가면 저 혼자 많은 짐을 지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은 언니랑 짐을 나눌 수 있고 기댈 수 있어 마음이 편해요. 태극마크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여자축구를 제대로 일으켜보자고 언니와 얘기를 나눴어요. 언니가 아프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월드컵을 치르면 좋겠어요.”

    ▼ 인터뷰하면서 느낀 게 있어. 소연이는 씩씩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는데, 그 이면에는 자신을 내보이지 않으려는 보호막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아. 15세 때 국가대표가 된 이후 많은 일을 겪었잖아.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

    “축구가 잘 안 될 때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그렇더라도 행동으로는 절대 옮길 수 없는 일이죠. 특히 올해는 월드컵이 있는 터라 뭔가를 내려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에요.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어요. 언젠가는 은퇴할 건데, 그때부터 충분히 쉬면 되잖아요.”

    지소연은 인터뷰 말미에 다음과 같은 바람을 전했다. 여자축구 선수의 비애 비슷한 것이 담겨 있었다.

    “더 많은 여자축구 선수가 해외로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언론의 관심을 더 받게 되고, 기사도 더 많이 나오잖아요. 한국에서는 아무리 골을 많이 넣어도 단신으로조차 보도가 잘 안 돼요. 그게 한국 여자축구의 현주소예요. 그래선지 외국에서 뛸 때는 보이지 않는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뛴다고 생각해요. 지소연이라는 사람이 아닌 ‘한국 여자축구를 대표하는 지소연’이라고 끊임없이 제게 최면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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