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도전정신 다잡으려 일본 진출 결심”

이 악문 ‘미소 퀸’ 김하늘

  •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입력2015-02-23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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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코스 적응 위해 페이드, 스로 집중연습
    • 2013년 드라이버 샷 난조…“그만두고 싶었다”
    • “내게 골프는 일…아직 즐기질 못해요”
    • “인생과 비슷한 골프…잘될 때 조심해야”
    “도전정신 다잡으려 일본 진출 결심”
    지난해 9월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 골프장에서 열린 KDB대우증권 클래식 최종 라운드. 3라운드까지 선두는 줄곧 전인지(21)였다. 김하늘(27)은 2타 뒤진 상태. 시작과 동시에 끈질긴 추격전이 시작됐다. 쫓아가면 달아나고, 간격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급기야 16번홀(파4), 17번홀(파5) 연속 버디. 김하늘은 마지막 한 홀을 남겨놓고 전인지와 공동1위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승리는 김하늘로 기우는 듯했다. 쫓는 자보다 쫓기는 자가 초초한 법. 팬들의 기대는 한껏 부풀었다.

    2014년 시즌 내내 우승 한번 못했다. 준우승만 4번 했다. 우승, 이젠 할 때도 됐다. 2007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첫해 신인왕, 2011년과 2012년 2년 연속 상금 랭킹 1위에 오른 저력이 있다. 통산 전적 8승. 평균 한 해 한 번 이상은 우승했다. 더구나 상대는 투어 데뷔 고작 2년차 신인. 경륜도 실력도 밀리지 않는다.

    18번홀(파4)에서 이어진 연장전. 티샷이 페어웨이에 안착하면서 출발은 무난했다. 그런데 회심의 두 번째 샷을 날리는 순간, 여기저기서 안타까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공이 그린 앞 워터 해저드에 빠진 것이다. 승부는 의외로 쉽게 갈렸다. 3m 남짓한 퍼팅마저 실패하면서 김하늘은 연장 첫 홀에서 더블보기로 무너졌다.

    전인지의 우승이 확정되자 김하늘의 뺨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후배의 우승을 애써 담담히 축하하려 했지만 속상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옆에서 연장전을 지켜보던 최나연(28)의 품에 안겨 김하늘은 한동안 어깨를 들썩였다. 준우승만 다섯 번째. 결국 2014년 시즌은 우승 한번 못하고 끝났다.



    “노장이라니!”

    “도전정신 다잡으려 일본 진출 결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맹연습 중인 김하늘.

    처음으로 무관(無冠)의 한 해를 보낸 김하늘은 어떤 심경일까. 일본 진출을 선언한 것도 2014년의 좌절 때문일까. 짧은 휴식과 자원봉사 등으로 지난 연말을 보낸 김하늘은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기자는 난생처음 ‘카카오 보이스톡’으로 그와 장거리 인터뷰를 했다. 요즘 두바이의 날씨는 쾌청하다. 전지훈련에 최적의 장소다.

    ▼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매일 오전, 오후 연습 끝나면 체력훈련을 해요. 하체가 중요하니까, 하체운동을 많이 하고요. 복근운동 같은 것까지 해서 전체적으로 1시간에서 1시간 30분쯤 해요. 지금까지 한 전지훈련 중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웃음).”

    ▼ 가장 중점적으로 하는 연습은?

    “올해 일본 투어에 진출하니, 꼭 필요한 것이 페이드, 드로 등 샷 구질을 만들어서 치는 것이거든요. 그걸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고요. 숏게임과 퍼팅 연습도 많이 해요. 그동안 퍼팅 쪽이 많이 아쉬워서….”

    ▼ 일본 골프 코스만의 특징 같은 게 있나요.

    “‘도그 레그(dog leg)’처럼 휘어진 홀이 많고, 그린도 ‘포대 그린(페어웨이보다 높은 그린)’이 많아요.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코스보다 어려워요.”

    ▼ 일본 진출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여러 가지죠. 올해가 프로 9년차예요. 8년 동안 프로생활을 하면서 뭔가 자꾸 도전정신도 없어지는 것 같고, 목표의식도 사라지는 것 같고, 현실에 안주하다보니 실력도 안 느는 것 같고…. 저는 골프를 하는 동안에는 골프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일본 진출을) 결심하게 됐죠.”

    ▼ 어린 후배들의 추격이 부담스러웠던 건 아닌가요.

    “어린 후배들이 잘 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제가 올해 우리 나이로 스물여덟 살인데 벌써 ‘노장’ 소리를 들어요. 근데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일본이나 미국에선 중간층보다 어린 나이거든요. 한국엔 제 또래나 제 위로 1부 리그에서 뛰는 여자프로가 별로 없어요. 다 해외로 나갔죠. 제 친구들도 미국과 일본에 많이 있어요. 국내에 제 또래는 이정은과 이아정 프로, 두 명 뿐이에요.”

    ▼ 왜 그런 건가요.

    “오래전부터, 나이 좀 들면 은퇴하고 결혼하면 그만두는 게 보통이었어요. 어리고 건강한 후배들에게 치이고…체력이 안 되니까요. 우리나라에 (골프 선수들을 위한) 체력훈련 프로그램이 들어온 지가 몇 년 안돼요. 다행히 3년 전부터 20대 중후반까지 활동하는 프로가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이제 저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도 생겨나고 있죠.”

    “열심히 하면 꼭 된다”

    슬쩍 지난해 성적 이야기를 꺼냈다. 다섯 번째 준우승한 경기는 지금까지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는 듯했다.

    ▼ 지난해 계속 준우승만 했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최나연 프로(김하늘보다 한 살 더 많다)가 저에게‘너 잘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위로가 많이 됐죠.”

    ▼ 우승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뭐라고 보나요.

    “이상하게 안 풀렸어요. 치고 올라가면 보통 우승하는데, 저보다 잘 치는 선수가 꼭 한 명이 있어요. 운이 안 따라 준 거죠. 결정적인 실수를 한 적도 있지만, 제가 계속 무너져서 우승을 못 한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지난해 성적이) 실망스럽지는 않아요.”

    ▼ 그동안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입니까.

    “2013년 상반기인데요, 드라이버 샷 난조가 오면서 정말 그땐 골프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2011년과 2012년, 2년 연속 상금 랭킹 1위를 기록했던 김하늘은 2013년 4월 시즌 첫 게임인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 2013’에 출전해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부진은 그해 6월까지 계속됐다. 예선을 통과해도 40위권까지 밀려나거나 심지어 기권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렸다. 하지만 2개월 후인 8월에 열린 ‘MBN·김영주골프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 위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드라이버를 바꾼 게 문제였어요. 제 몸에 맞지 않았던 거죠. 다시 옛날 드라이버로 바꾸고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한번 정상까지 올라가 봤는데, 밑바닥에서 주목도 못 받고 있는 게 너무 싫었어요. 반드시 정상에 다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죠. ‘열심히 하면 꼭 된다’는 게 제 좌우명이에요.”

    “도전정신 다잡으려 일본 진출 결심”

    김하늘은 2014 KLPGA 홍보모델로 선정돼 1년 동안 활동했다.

    ‘재밌고 편안한 남자’

    김하늘이 골프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학교 골프부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함께 배운 게 계기가 됐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골프가 정말 재밌었어요. 친구들 중에 공이 제일 멀리 나갔는데, 덕분에 자신감을 많이 얻었죠. 그때 코칭 프로가 권유해서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마침 부모님도 운동을 시키고 싶어 했고요.”

    ▼ KLPGA 홈페이지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미국 여자 프로골프 선수 줄리 잉스터를 가장 존경한다고 써 있던데, 이유라면?

    “이 선수가 나이가 많아요. 50대 중반 정도 되는데, 골프도 잘 치지만 즐겁게 쳐요. 결혼해서 자녀들도 있고. 여자로서의 인생도 행복해 보여요. 저도 그 선수처럼 골프도 잘 치고, 여자로서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제 인생의 롤 모델로 삼았죠.”

    ▼ 사귀는 남자 친구 있어요?

    “아직 없어요(웃음). 만날 시간이 없어서….”

    ▼ 이상형은?

    “재미있고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요(웃음).”

    ▼ 골프란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하나요.

    “인생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아직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굴곡도 많고, 잘 될 때 조심해야 하고,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렵거든요. 물론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겠지만.”

    ▼ 그렇다면 본인에게 골프란?

    “일이죠. 어느 분이 그러더라고요. ‘하루 종일 골프만 치면 지겹지 않으냐’고. 그래서 ‘하루 종일 일하시는데 어떠냐’고 되물은 적이 있어요.”

    ▼ 골프를 일로 생각하면 재미없을 것 같은데.

    “저한테 아쉬운 게 있다면, 골프를 아직 즐기지 못한다는 거예요. 성적에 연연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욕심을 더 내려놓으면 좋을 텐데, 아직은 즐길 만큼의 여유가 없나봐요. 그래도 즐기려고 노력은 해요. 제가 이걸 안 했으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돈도 벌고, 좋은 환경에서 연습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겠어요. 힘들 때도 있지만, 골프를 시작한 게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좋아해서…”

    “도전정신 다잡으려 일본 진출 결심”
    ▼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합니까.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책도 많이 읽고.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그 책은 제목이 마음에 쏙 들어서 내용도 안 보고 샀어요. 김난도 선생님이 쓰신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은 두 번 정도 읽었는데, 중간중간 써 있는 글들이 정말 좋아요.”

    ▼ 골프 말고는 뭘 하고 싶나요.

    “디자인과 패션 쪽에 관심이 많아요. 골프 옷 디자인도 해보고 싶고, 방송 일도 하고 싶어요. 제가 워낙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좋아해서…. 방송하려면 언어를 잘 구사해야 하는데, 골프 그만두면 골프 이론과 영어 공부를 위해서 2년쯤 미국 유학할 생각하고 있어요. 일본어는 지금 배우고 있고요.”

    ▼ 벌써 은퇴 계획? 언제쯤 그만둘 생각이길래….

    “5년 내에는 그만두지 않을까요? 제 전성기를 5년 내로 보는데, 정상에 섰을 때쯤 그만두려고요. 시드(출전자격)를 잃으면서까지 골프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아요. 팬들에게 정상에서의 좋은 모습을 마지막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요.”

    ▼ 일본 진출을 앞두고,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무래도 올해는 팬들을 직접 찾아뵐 기회가 적을 것 같아요. 일본에서 좋은 소식으로 자주 인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할 테니,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Lady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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