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철도는 먹거리+일자리+서비스 ‘코레일형 창조경제’ 뜬다!”

사상 첫 흑자 경영, 최연혜 코레일 사장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5-02-24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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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영업이익 1000억 흑자 달성
    • “인천공항철도 팔면 당기순이익 흑자 가능”
    • 현장 소통 강화해 ‘파업 앙금’ 털어내
    • 7월 ‘유라시아 실크로드 친선특급’ 추진
    “철도는 먹거리+일자리+서비스 ‘코레일형 창조경제’ 뜬다!”
    ‘기적’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코레일이 지난해 흑자 경영을 달성했다. 코레일 창사(2005년) 이래 처음인 것은 물론, 철도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순수 영업만을 통한 흑자 달성은 최초의 일이다. 코레일은 국가 기간산업이란 특성 때문에 적자 경영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국가 정책으로 낮은 운임을 고수했고, 적자 노선이라고 마음대로 없애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연혜(59) 코레일 사장이 2014년 1월 신년사에서 “단 1만 원의 영업 흑자라도 내겠다는 각오로 2015년 흑자 경영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대부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영업 적자가 2012년 3591억 원, 2013년 1932억 원에 달했는데 흑자라니…그냥 해보는 소리겠지’ 하고 치부했는데, 2014년을 넘기지 않고 그 약속을 이뤄냈다. 그것도 요금 인상 등 외부 요인 없이 자력으로 1000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영업이익을 일궈냈다.

    코레일의 역대 사장 중 최 사장만큼 국민에게 이름을 뚜렷하게 각인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우리 철도 115년 역사상 첫 여성 CEO인 그는 아담한 체구에 앳되 보이는 얼굴이어서 ‘거친’ 철도산업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13년 10월 취임 직후 벌어진 노조 총파업에 흐트러짐 없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대처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덕분에 ‘철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총파업이 끝난 후 그는 몰려드는 언론 인터뷰 요청을 뒤로하고 경영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1년 후 말이 아닌 실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이 정도 성과면 내놓고 자랑할 만한데도 그는 “아직 잔치를 벌일 상황은 아니다”라며 겸손해했다. “그래도 기쁜 것은 사실”이라며 수줍은 듯 웃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마음을 모아 전심전력을 다해준 직원 모두의 땀방울이 이뤄낸 성과”라며 직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표를 잘 팔았어요”



    ▼ 흑자 경영이라는, 코레일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이뤄냈습니다.

    “경영을 잘하면 흑자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장 공모에 지원하면서 ‘흑자 경영체제 구축’을 공약으로 내걸었죠. 저를 선임한 것도 흑자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저도 자신 있었어요.”

    ▼ 사장이 되기 전부터 흑자 경영이 가능하다고 본 건가요.

    “네. 정부에서 운임을 인상해줬으면 좀 더 쉽게 흑자를 낼 수 있었는데, 동결시키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운임 인상 덕분에 흑자가 났다면 우리 직원들의 노력이 가려졌을 거예요. 그러니 운임을 안 올린 건 오히려 잘된 일이었죠. 예년과 똑같은 조건에서 오직 우리의 노력만으로 흑자를 낸 것이니까.”

    일각에선 ‘코레일이 해마다 적자 폭이 줄고 있어 영업이익이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적자가 연평균 1000억 원씩 줄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거기에서 2000억 원을 더 줄여 3000억 원 이상의 수지 개선 효과를 거둔 것이다.

    ▼ 가장 큰 흑자 요인이 뭔가요.

    “표를 잘 팔았어요. 수요는 1.5% 늘었는데 수입은 3.8% 늘었으니까. 빅데이터를 활용해 열차를 배분, 빈 좌석을 최소화했어요. 예를 들어 경부선 열차가 서울을 출발해 부산까지 가는 내내 빈 좌석이 최소한이 되도록 효율을 극대화하는 거죠. 그러려면 처음부터 시간대, 좌석, 노선별로 승객 패턴을 잘 분석해 표를 배분해야 해요. 이걸 YMS(수익관리시스템)라고 하는데, 지난해 관련 분야 전문인력을 5명으로 늘려 적극 활용했어요. 올해는 7명으로 늘려 효율을 더욱 높여갈 계획입니다.”

    관광열차의 힘

    ▼ 물류운송 분야에선 적자가 큰 편인데요.

    “물류는 최소 800km 이상 운송을 해야 수익이 나는데, 우리나라는 이동 거리가 짧아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예요. 비효율적이라 물류운송 업무에서 손을 떼자는 주장도 있지만 공익적인 측면에서 안 할 수는 없죠. 물류운송은 계속하되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가령 하루에 한두 번 화물을 내리는데 입환(入換·선로를 바꾸거나 차량을 분리, 결합하는 작업)인력이 3명, 5명씩 상주하는 건 낭비죠. 그래서 화물업주들과 협의해 화물 싣고 내리는 역을 127곳에서 105곳으로 줄였고 10곳을 더 줄일 계획입니다. 화물주들에겐 좀 불편해진 면이 있지만 고통분담 차원에서 기꺼이 수용해주셨어요. 이런 효율화, 집중화를 통해 화물열차 운행과 관리비용은 줄이면서 전체 물동량은 더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철도는 먹거리+일자리+서비스 ‘코레일형 창조경제’ 뜬다!”
    ▼ 또 어떤 노력이 있었습니까.

    “재고관리 시스템도 점검했습니다. 지역별로 차량 부품이나 설비 부품을 보유하는 건 당연한데, 그게 다 돈이거든요. 그런데 같은 물건이 대구에선 남아도는데 부산에는 없다면서 구매하는 일이 흔하더군요. 재고관리를 철저히 하고 관리자들이 조율해 이런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나갔습니다. 구매단가를 낮추기 위한 노력도 했습니다. 계속 써야 할 부품은 다년계약을 해서 구매단가를 떨어뜨리고, 수입물품은 에이전트를 통해 구매하던 것을 해외지사를 활용해 직구매하게 했어요. 그렇게 하면 설령 직구매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현지 가격을 잘 알게 되니 에이전트에게 압력을 넣어 구매단가를 낮추는 효과를 거뒀죠.”

    ▼ 관광열차를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더군요.

    “이용객이 많지 않은 적자 노선들이 있어요. 하루 이용 승객이 역 직원 수보다 적은 곳도 있고. 이런 곳을 어떻게 활성화할까 고민하다 2013년부터 관광열차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 볼거리·먹을거리가 잘 어우러진 곳들을 묶어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겁니다.”

    ▼ 단지 이동수단이라는 열차의 개념에서 탈피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했다….

    “코레일형 창조경제라 할까요. 그 결과 하루 10명도 찾지 않던 지역에 1000여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재래장터가 활기를 되찾는 등 낙후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큰 성과를 이끌었습니다.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 8개월 동안 90만 명이 관광열차를 이용해 115억 원의 수익을 창출했죠. 그보다도 822억 원의 생산유발효과를 내는 등 지역경제 성장에 기여했다는 데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유치할 계획입니다.”

    올 목표는 당기순이익 흑자

    “철도는 먹거리+일자리+서비스 ‘코레일형 창조경제’ 뜬다!”

    창사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기차놀이 플래시몹 행사에 참가한 최연혜 사장과 코레일 직원들.

    “일각에선 공기업인 코레일이 너무 수익 위주의 경영을 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고 전하자 그의 얼굴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흑자가 났다고 하면 다들 칭찬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말씀하신 그런 불필요한 공격도 받아요. 저는 한 번도 ‘공익성 우선’ 원칙을 바꾼 적이 없어요. 공익성을 전제로 비용을 절감하고 영업능력을 높인 것이죠.”

    ▼ 직원들의 반발은 없었나요.

    “직원들의 수익과 비용 인식이 희박한 것 같아 ‘손익기반 책임경영’을 도입했어요. 모든 부서별로 수익 및 비용 목표를 부여하고 손익 개념에 근간을 둔 책임경영을 시행한 거죠. 처음엔 사업부서도 아닌 지원부서와 유지보수 담당부서까지 왜 손익개념 목표를 할당하느냐는 반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사협의체는 물론 워크숍, 직원 설명회 등을 통해 그 필요성을 설득한 결과, 직원들도 제 뜻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시간외근로를 최소화하는 등 인건비와 경비 절감에 적극 나서더군요. 전에는 ‘어떻게 해도 적자’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직원도 많습니다. 영업 흑자 달성으로 직원들이 자부심과 긍지가 높아진 것은 물론 고객 서비스의 질 향상으로도 이어지고 있어 보람이 큽니다.”

    그에게 “요금 인상을 안 해도 경영성과가 좋으니 올해도 요금 인상은 없겠다”고 하자 “그러게요”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아직은 총매출액에서 매출원가, 관리비, 판매비를 뺀 영업이익에서 흑자가 난 수준이다. 최 사장의 올해 목표는 이자, 법인세 등까지 뺀 당기순이익에서도 흑자를 내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코레일은 총부채가 17조 원에 달한다. 올해 지급해야 할 이자만 4600억 원이다.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당기순이익 흑자 전환은 요원하다.

    “영업적자를 내면 차입을 해서 메워야 합니다. 빚이 늘어나는 거죠. 그렇게 쌓인 부채만 4조5000억 원에 달합니다. 영업적자를 내지 않는 게 부채를 늘리지 않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에 직원들도 적극 공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그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죠.”

    ▼ 부채를 줄일 묘안이 있나요.

    “올해 안으로 인천공항철도를 매각할 예정입니다. 우리 지분이 1조2000억 원이고, 연결재무제표로 2조6000억 원의 부채가 잡혀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향후 5년간 해마다 600억 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해 부채를 키웁니다. 당연히 그에 따른 이자비용도 엄청나고요. 매각이 이뤄지면 약 4조 원의 부채가 해결돼 재무 개선에 상당한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만 매각돼도 충분히 당기순이익 흑자를 기대할 만합니다.”

    최근 KB국민은행과 IBK기업은행 컨소시엄이 인천공항철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또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무산된 상태인 용산 개발 사업을 잘 정리해 다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을 생각입니다. 특히 토지반환소송이 중요한데, 승소할 경우 자산이 2조4000억 원 이상 늘어나 재무구조 개선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최근에 기쁜 일이 있었어요. 용산 개발과 관련해 우리가 낸 법인세가 1조 원에 달하는데, 반환소송 1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최 사장은 이외에도 유휴 부지와 민자 역사 출자 지분 등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리스크가 작은 역세권 사업과 부가가치가 높은 철도 유휴자산 활용을 다원화하는 등 경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쉼 없이 꺼내놓았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열정이 쏟아져 나오나 싶을 정도다.

    ‘문학소녀’의 철도 인생

    최연혜 사장은 이력이 조금 독특하다. 서울대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만하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끄럽지만 원래 꿈이 소설가였어요. 대학교 때 친구들이 밤늦게까지 대학도서관에서 앉아 있는 저를 보고 고시공부 하는 줄 알았대요. 실은 신춘문예에 응모할 소설을 쓰고 있었죠. 창피해서 투고까지는 하지 못했지만(웃음).”

    ▼ 철도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만하임대는 문학전공 과정이 없고 경영학이 유명했어요. 그래서 경영학을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적성에 딱 맞더라고요. 성적도 꽤 좋았어요(웃음). 사람들이 제가 철도로 박사학위를 받은 줄 아는데 그건 아니고요. 공기업 경영전략으로 학위를 받았어요. 그런데 유학 시절에 독일이 통일되면서 철도가 최대 관심사가 됐죠. 독일의 사례가 남북분단 상황인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철도 공부를 했죠. 그게 계기가 돼 한국에 와서 한국철도대학(현 교통대) 교수로 지원하게 됐고요.”

    ▼ 철도 분야에 여성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시기였을 텐데요.

    “철도전문가로 불리는 분들의 98% 이상이 토목, 차량, 전기 등 기술자예요. 그 때문인지, 경영적으로 접근하는 전문가는 드물었죠. 여성은 더더욱 없었고요. 이젠 철도산업이 기술적 접근에서 경영적 접근으로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철도라고 하면 흔히 ‘딱딱하다’ ‘남성적이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독일어는 명사마다 성(性)이 있는데, 철도 용어의 절반이 여성명사인 걸요. 외국에선 철도가 관광산업에서 중요한 기능을 해요. 철도가 돌아가는 것은 기술 덕분이지만 동시에 산업, 먹거리, 일자리, 서비스라는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 여성에게 적합한 분야죠.”

    1997년 한국철도대학 교수가 된 그는 2005년부터 코레일 부사장, 한국철도대학 총장을 역임하는 등 ‘철도 인생’을 걸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이쯤에서 2013년 12월 한 달 동안 국민을 불안으로 몰아넣은 철도노조 총파업 사건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그 얘기를 꺼내자 “당시 상황에 대해 제가 지금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노조를 자극할 수도 있고요”라며 손을 내저었다.

    “사실, 사장 공모 신청을 할 때부터 임기 중에 한두 번은 파업에 직면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생각해봤어요. 하지만 2014년에 단체협상이 있으니까 그때쯤 파업을 할 거라고 예상했지, 취임하자마자 임금협상과 수서KTX 민영화 의혹으로 파업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파업이 너무 일찍 온 거죠.”

    ▼ 당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뭡니까.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게, 제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없었다는 거예요. 취임하자마자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다녔고, 수서법인 문제도 국토부에서 결정된 게 없으니 노조와 대화할 수도 없고…. 그렇게 시간만 지나갔어요. 국토부에서 최종안이 나와서 그걸 가지고 노조와 대화를 시작하려 하는데, 곧바로 파업을 강행했어요. 당시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을 기해 정치투쟁을 하는 시기였기에 노조가 파업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있지만, 그래도 내게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설득 노력을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커요.”

    ▼ 설득할 방안이 있었습니까.

    “노조로서도 KTX 수서법인을 인정하고 임금 동결에도 동의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저도 노조 요구대로 임금 인상을 해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취임했을 때 이미 책정된 연간 인건비가 초과된 상태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임금을 올리면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직원들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가요. 그나마 직원들이 피해를 덜 받는 게 임금 동결이었죠.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직원들이 열심히 일했을 때 보상할 방안을 노사가 함께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는 수서KTX 민영화 논란에 대해서는 “민영화하면 직접 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막겠다”며 노조를 설득했다. 하지만 노조는 총파업을 강행했다. 파업에 맞서 그는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피하지 않겠다”며 단호하게 대응해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렇다고 강성 일변도였던 것은 아니다. 사태 해결을 위해 조계사에 숨어 있던 노조 수석 부위원장을 직접 찾아가 협상하기도 했다.

    “사장이 노조 부위원장을 직접 상대하는 건 ‘격에 맞지 않다’는 만류도 있었지만, 권위보다는 문제 해결이 중요하죠.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라도 만나야죠.”

    ‘I ♡ KORAIL’

    ▼ 파업 후 노조원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직원들이 처음엔 인사도 잘 안했어요. 그래서 저도 속으로 삐쳐 있었죠(웃음). 그런데 알고 보니 파업 때 제가 하도 세게 나가서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대요. 그래서 자기들을 얼마나 싫어할까 싶어 인사도 못했다고 해요. 그걸 알고 제가 먼저 다가갔어요. 그러니까 ‘직접 만나보니까 무섭지 않고, 생각도 유연하더라’고 했어요.”

    최 사장과 함께 서울역을 둘러보는데, 여기저기서 다가와 반갑게 인사하는 직원들 때문에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였다. 그의 말마따나 노조원들과의 거리가 많이 가까워진 듯했다.

    ▼ 신뢰가 많이 회복된 모양입니다.

    “현장과의 대화를 강조했습니다. 지금까지 직원들은 노조집행부를 통해서만 회사 사정을 들을 수 있었어요. 회사 간부들은 수시로 자리를 옮기는데 노조지도부는 계속 그곳에 있으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저부터 현장을 자주 찾았고 간부들도 수시로 현장에 보냈어요. 잠깐 방문하는 게 아니라 며칠씩 머물며 대화도 하고 함께 일도 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했어요. 그 덕분인지 지난해 여름엔 누구도 할 수 없을 거라던 노조와의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전국 2만여 직원이 노조에 ‘회사와 합의하라’는 촉구서를 보냈어요. 정말 고마웠죠.”

    ▼ 지난해 영업수익 흑자를 냈고, 올해 당기순이익 흑자까지 이룬다면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마음은 굴뚝같은데, 제 맘대로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정부 가이드라인이 있거든요. 흑자 한 번 낸 것으로 (보너스를) 달라고 하긴 좀 그렇고, 흑자 경영이 구조적으로 정착되면 제가 나서서 정부에 요구해야죠. 그보다 중요한 게 직원 교육이에요. 고속철을 도입한 게 2003년인데, 당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교육을 강도 높게 진행했어요. 그런데 지난 10년간 적자가 누적되면서 추가 교육이 제대로 안 됐어요. 처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퇴직을 앞뒀고, 후배들은 제대로 기술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교육 훈련에 신경을 많이 쓰려고 합니다.”

    ▼ 올해 계획 중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첫 번째는 부채 관리, 두 번째는 기업문화 혁신입니다. 전사적으로 ‘I ♡ KORAIL’ 운동을 전개하고 있어요. 직원에게 애사심, 주인의식, 자긍심을 심어주고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동반자적 노사문화를 확립하는 운동입니다. 이를 통해 국민의 안전과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노사문화를 정립해나갈 겁니다.”

    “철도는 먹거리+일자리+서비스 ‘코레일형 창조경제’ 뜬다!”

    유라시아 대륙철도가 그려진 지도 앞에 선 최연혜 사장.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박근혜 정부의 주요 정책 가운데 하나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이다. 교통, 물류,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통해 유라시아를 거대 단일시장으로 만들어 창조경제를 구현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실현하는 핵심이 유라시아 철도(실크로드 익스프레스, SRX)다. 최 사장은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완주했을 만큼 유라시아 철도에 조예가 깊다. 여행기 ‘시베리아 횡단철도-잊혀진 대륙의 길을 찾아서’를 펴내기도 했다.

    “유라시아 철도라고 하면 머나먼 꿈처럼 여기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 철길은 이미 연결돼 있는 상태예요. 1909년에 안중근 의사가 만주횡단철도를 타고 하얼빈으로 들어가 거사를 했고, 1936년엔 청년 손기정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거쳐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어요. 당장이라도 남북한 합의만 있으면 대륙철도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 유라시아 철도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독일의 경우 분단 상황에서도 철도가 단 한시도 단절되지 않은 채 운행됐고, 이러한 노력이 통일의 결실로 이어졌어요. 독일 철도가 통일의 매개체 구실을 했듯이 우리 철도도 북한을 개방 체제로 인도하는 촉진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철도 연결은 활력을 잃은 우리 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할 수 있어요. 천연자원의 보고인 시베리아, 한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합쳐진다면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상을 뛰어넘을 겁니다.”

    ▼ 어느 정도 진척이 있나요.

    “유라시아 철도를 실현하려면 먼저 정부가 유라시아 국가 철도협의체인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정회원으로 가입해야 합니다. 2001년부터 노력하고 있는데 북한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어요. 그래서 지난해 3월 우리가 먼저 제휴회원으로 가입했어요. 지난해 4월 평양에서 열린 OSJD 사장단 회의에도 참석했고, 오는 5월에는 사장단 회의와 물류분과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합니다. 서울 회의를 통해 우리 정부의 정회원 가입 당위성을 알리고 회원국에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최 사장은 7월 중 출발을 목표로 ‘유라시아 실크로드 친선특급(가칭)’ 열차 운행을 추진 중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1월 13일 외교부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통일부와도 협력해서 세부 내용을 결정해 3월 초쯤 구체적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희망하는 국민 중 공모를 통해 원정대를 구성해 중국횡단철도, 몽골횡단철도,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달려 통일의 꿈을 이룬 베를린까지 가는 것이 기본 계획이에요. 대륙철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유라시아 국가들에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열망과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의 시선이 유라시아 대륙철도가 그려진 거대한 지도에 멎었다. 마음은 벌써 KTX를 타고 시베리아 초원을 달리는 듯했다. 그 표정이 문학소녀처럼 해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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