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귀농? 창농! 1차산업? 6차산업!

2030 귀농인들의 농촌예찬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5-02-24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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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세대, 아이디어 들고 創農 대열 합류
    • 팜핑, 흑돼지, 수경토마토…개성, 특기 살려라!
    • 농사·경영 두 마리 토끼 잡아야 성공
    귀농? 창농! 1차산업? 6차산업!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며 ‘팜핑’을 하는 이석무 ‘젊은 농부들’ 대표.

    ‘처녀농부’ 이승희(33) 씨는 귀농 4년차다. 전북 고창군 해리면에서 고추와 삼채를 재배한다. 서울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다 사표를 내고 시골로 간 건 새로운 삶을 위해서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생활에 진이 빠졌다. 자연과 땀과 여유가 그립기도 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떠난 호주의 농장에서 농사짓고 수확하는 재미를 알았고, 욕심 없이 자족하며 당당하게 사는 농장주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귀국 후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일상으로 돌아오자 스스로에게 물었다. ‘넌 행복하니?’ 아니었다. 조금 벌고 적게 쓰더라도 직접 기른 작물로 만든 음식을 먹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게 행복일 것 같았다. 봉급 받아 모은 돈 2000만 원을 들고 짐을 쌌다.

    농사일은 직장에서 시키는 일만 할 때보다 뿌듯한 만족감을 안겼다. 손수 키운 채소가 온라인을 통해 팔려나가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농사가 손에 익자 1년여 전부터 도시인의 ‘힐링’을 위한 농촌민박 사업도 시작했다. 귀농을 극구 반대하던 부모에게 “3년만 해보고 망하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망하기는커녕 연간 수입은 웬만한 도시 직장인 수준이다.

    새로운 꿈도 생겼다. 호주에서 경험한 워킹홀리데이에 버금가는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외국인들을 농장으로 불러들이고 한국 문화를 알리고 싶은 꿈. 그에게 농촌은 누군가의 큰 꿈이 자라고 꿈을 이룰 수 있는 터전이다.

    ‘젊은 귀농’ 새 바람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서 귀촌 학부모들과 함께 교육공동체 ‘이웃린’을 이끌고 있는 국태봉(37) 대표는 대학에서 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취직했지만 좋아하는 여행을 위해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1년 반 동안 아프리카, 유럽을 여행하고 중국을 횡단했다. 세계를 떠돌며 유엔과 비정부기구(NGO)의 다양한 활동을 접하고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NGO 활동가가 되겠다는 꿈도 생겼다.



    빈민과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일생을 바친 미국의 사회적 기업가 빌 스트릭랜드처럼 살고 싶어 둥지를 튼 곳이 고산면 서봉리. 아버지의 고향이자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살아 친숙하던 그곳에 부모와 함께 살 집을 지었다. 설계도 직접 했다.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거실을 카페로 만들었다. 동네아이들에게 공부방으로 열어놓고 상담도 했다. ‘아지트’가 생기자 아이들은 함께 어울려 산행하고 시를 낭송하며 각자의 꿈과 끼를 찾아갔다.

    아이들의 변화를 본 학부모들은 재능기부를 하겠다며 나섰고, 교육공동체가 꾸려졌다. 음악캠프, 생태 탐사 등 프로그램을 늘리니까 금전적으로 한계가 왔다. 마을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발효빵 공장 빵굼터를 열었다. 생협(생활협동조합)과 로컬푸드 사업에 참여하면서 고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빵굼터는 3년 전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마을기업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임을 귀농이 일깨워줬다.

    귀농이 본격화한 건 1997년 말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마저 무너뜨린 기업의 줄도산, 명예퇴직, 조기퇴직 행렬이 이어졌다. 사회적 퇴출을 당해 먹고살 길을 찾아 농촌으로 떠나는 사람이 급증했다. 10여 년이 흐르면서 ‘귀촌’은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팍팍하고 찌든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전원에서 여유를 찾으려는 사람이 늘었다. 귀촌 초기 대열에는 사회에서 제몫을 다하고 은퇴한 중장년층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 층이 합류했다. 제주도는 요즘 귀촌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로망’이 됐다.

    이렇게 20년 가까이 이어진 역(逆)도시화에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벤처기업을 창업하듯, 2030세대가 농업 관련 ‘창농(創農·농촌창업)’을 위해 귀농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는 것. 농촌창업은 농촌에서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는 단순한 일 외에 사업을 겸한다는 의미다. 1차산업인 농·수·축산업과 2차산업인 제조·가공업, 3차산업인 서비스업을 융·복합화해 결합하는 이른바 ‘6차산업’을 일컫는다.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4067가구이던 귀농·귀촌 가구 수가 2011년 1만503가구, 2012년 2만7008가구, 2013년 3만2424가구로 해마다 급증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30대 이하 귀농·귀촌 가구 수도 각각 612, 1734, 4661, 5060가구로 급격히 늘어났다.

    “왜 굳이 농촌인가”

    3년새 8배 이상 폭증한 젊은 층 귀농인 가운데 농촌창업을 택한 사람들의 사연과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도시에서 자영업으로 근근이 버티는 것보다 농촌에 희망이 있을 거 같아서” “사교육과 시험성적에 인생이 좌우되는 도시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지 않아서” “가업을 물려받아 더 크게 키우고 싶어서”….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며 ‘(주)젊은농부들’을 이끄는 이석무(33) 대표. 그는 “어릴 때부터 꿈이 사업가였다. ‘서울 강남에서 살면서 4년제 대학 나온 젊은이가 농부가 됐다’는 콘셉트로 농촌에서 사업을 펼치면 장점이 있을 걸로 봤다. 귀농 11개월 만에 방송을 타면서 예상이 적중했다”고 뿌듯해했다.

    귀농이라 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부부 또는 가족 단위를 생각하지만, 미혼인 이 대표는 후배 두 명과 함께 농촌에 정착했다. 그가 농촌창업 아이디어를 얻은 건 대학 시절. 학생 신분으로 맥줏집 운영과 군고구마 장사에 뛰어들어 ‘대박’을 쳤다. 이때 농산물에 참신한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접목하면 훌륭한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감’이 왔다.

    대학 졸업 후 창업까지 걸린 시간은 1년 남짓. 그중 6개월은 증권투자상담사, 펀드투자상담사 자격증을 따는 데 썼다. 이 대표는 “사업을 할지 취업을 할지 고민 끝에 일단 자본과 경험을 축적하자는 생각으로 취업을 준비하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꿨다”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사업을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고 했다. 목표가 다시 ‘사업’이 되자 과거 경험을 떠올려 농촌과 농산물을 기반으로 한 사업 구상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사업 아이디어든 투자 규모든 농촌에서 창업할 수준이 되면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창업할 수 있다. 왜 굳이 농촌이어야 하는지 심사숙고한 뒤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농촌창업을 결심한 건 농사를 기반으로 그 위에 차곡차곡 여러 가지 사업을 구축해나가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Farm+Camping

    별다른 사회 경험이 없는 미혼의 아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이 대표의 부모는 걱정이 컸다. 가족과 친지, 주변 사람 중 농사짓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농촌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 이 대표는 말로 하는 설득 대신 확고한 사업 의지를 보여주기로 했다. 6개월간 도서관에 다니면서 농사를 공부했고, 재배작물을 포함한 농사 계획, 가공·판매 방법, 숙박을 겸한 체험농장 운영 계획, 사업 비전 등을 꼼꼼하게 담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이를 보고 부친이 지금의 농장과 공장 땅을 사업 터전으로 내줬다. 그는 “매달 임차료는 드린다”고 약속했다.

    2010년 귀농한 이 대표는 서울에서 후배들과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모든 아이디어에 귀를 열고 고민했다. 그때 미디어에서 ‘건강’ ‘100세인’을 키워드로 블루베리의 효능을 한창 부각하는 걸 봤다. 블루베리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효능이 더해지면 상품성이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블루베리를 재배작물로 선택했다. 2000년대 후반 전국적으로 가족을 동반한 캠핑 열풍이 확산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12년 초, 농장 근처에 캠핑장을 조성해 ‘팜핑(Farmping, Farm+Camping)’을 시도했다. 농장에서 캠핑을 즐기면서 농촌을 체험할 수 있게 한 것. 대학에서 정보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트렌드를 먼저 읽고, 남보다 한발 앞서 사업에 접목하면서 성공을 일구고 있다.

    ‘똥장화’와 멋진 차

    귀농? 창농! 1차산업? 6차산업!

    청원목장 안용대 대표와 아내 박주미 씨.

    충북 청원군 현도면 청원목장 안용대(38) 대표는 대학 졸업 후 경기도 용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아버지의 목장을 물려받기 위해 2006년 귀농했다. 어릴 땐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버지를 도와야 했기 때문에 소가 끔찍이도 싫었다. 전문산악인이 되는 게 꿈이던 그가 ‘목장지기’로 방향을 튼 건 군에 입대하면서다.

    “동티모르에 파병됐을 때 진로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때는 축산업 경기가 좋아서 ‘똥장화’ 신고 소똥을 치우더라도 저녁이면 멋진 자동차를 끌고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버지를 도우면서 얻은 경험도 있으니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하자마자 축산과로 편입해서 졸업 전에 축산기사, 산업기사, 인공수정사 자격증을 땄다.”

    후계농업경영인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저리(연이자 3%)로 융자받은 8000만 원으로 귀농을 단행한 그는 사업 초기 젖소와 육우를 길렀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고 소 값이 폭락하면서 사료비조차 건질 수 없게 되자 육우를 정리했다. 젖소를 선택한 건 장차 태어날 아이를 위해 신선하고 건강한 치즈와 요구르트를 손수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

    “식품공학을 전공한 아내도 뜻이 같았다. 지금 여섯 살인 첫째가 태어나자 소박하던 꿈이 더 커졌고 목표가 생겼다. 우유를 가공해서 치즈와 요구르트를 만드는 일 외에 목장 체험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싶었다.”

    정부로부터 농촌교육농장, 현장실습교육장으로 인증받은 청원목장은 많을 땐 하루 100여 명의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 대학생들이 다녀간다. 2013년에만 일반인을 포함해 6500여 명의 방문객이 농장을 다녀갔다. 그는 “지난해 농림부의 현장실습교육장으로 인증받으면서 9년 만에 목표를 이뤘다. 그때 감격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안 대표는 지난해 목장 뒤편의 산을 매입해 길을 닦았다. 캠핑사이트와 운동장을 조성해 팜핑과 함께 기업 연수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치즈 숙성실과 저장고도 새로 짓고 있다. 숙성 치즈를 보관할 토굴도 산 아래에 팔 예정이다. 고교 교사인 아내 박주미(35) 씨와 떨어져 주말부부로 지내는 그는 “아내가 곧 새로운 학교로 발령받을 것 같다. 목장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곳으로 오면 작년 9월에 태어난 둘째까지 네 식구가 다 이곳에 모이게 된다”며 “내가 열심히 사업을 일궈서 보람과 자부심을 갖는다면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대를 잇겠다고 하지 않을까”라고 희망했다.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요즘 젊은이들이 농촌창업에 과감히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농촌진흥청(RDA) 농촌환경자원과 최윤지 박사는 청년실업과 더불어 그들의 특성에 주목했다.

    “농촌창업을 자신들이 창의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로 보기 때문이다. 과거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오랫동안 농촌에서 농사짓는 일은 노인들이 하는 걸로 인식됐지만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바이오산업이나 IT기술을 사업에 접목하는 등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할 게 많다. 귀농 희망자 중 노인요양보호센터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불과 1~2년 사이 청년 귀농을 고민하는 모임도 많이 생겨났다.”

    개성과 추구하는 가치가 제각각인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뛰어들어 성공하는 사례가 늘면서 개성과 특기, 관심사를 살려 농촌에서 가능성을 모색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건강한 돼지 분뇨를 퇴비로

    귀농? 창농! 1차산업? 6차산업!

    자연목장을 운영하는 장훈·이연재 부부.

    올해로 귀농 4년째를 맞은 충북 음성군 감곡면 자연목장 장훈(36)·이연재(35) 부부는 지속 가능한 농업, 환경보전에 기여하는 자연순환농법을 실천하기 위해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스튜디오에서 포토그래퍼로 함께 일하던 부부는 직업뿐만 아니라 동물을 좋아하고 자연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취향도 같았다. 은퇴 후 귀농을 꿈꾸던 부부의 발길을 재촉한 건 어느 날 인터넷에서 접한 동영상 한 편.

    “채소와 과일, 가축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그걸 보고 평소 우리가 먹는 것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키워지는지 전혀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충격이었다. 그 후로 건강과 먹을거리에 대해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고민하다 귀농 시기를 앞당겼다.”(장훈 대표)

    부부가 흑돼지를 키우면서 목장을 일군 땅은 아내 이씨의 할아버지가 내준 곳이다. 손녀 부부가 귀농을 결심하자 “빈 땅이 많은데 놀리는 게 아깝다”며 소를 키우는 자신의 목장 한 편을 내줬다. 장 대표는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시골로 달려가 돌을 줍고 땅을 고르면서 차근차근 귀농 준비를 했다. 귀농학교에서 교육도 받았다. 그사이 이씨는 전통주 제조 자격증과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3년에 걸친 준비 끝에 귀농했지만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었다. 드넓은 땅에 돼지를 방목하다시피 키우며 일반 사료 대신 감자, 고구마, 호박, 산야 등 부부가 유기농으로 직접 기른 먹을거리를 삶아 먹이자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들은 “200~300마리 키울 공간에 달랑 돼지 60마리만 키우면 뭐 먹고살 거냐?” “비료도 안 주고 농약도 안 치면 작물이 어떻게 자라나”며 한소리씩 하기도 했다.

    부부가 흑돼지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분뇨를 퇴비로 만들어 농사에 쓰기 위해서다. 장 대표는 “제철 유기농 채소와 함께 발효사료를 먹이니까 분뇨 냄새도 안 나고 돼지들이 병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 그렇게 기른 돼지를 부위별로 세트로 묶어 한 달에 한 번 인터넷을 통해 판매한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동물과 사람, 우리와 고객들이 함께 나눌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농촌창업에 뛰어든 젊은이들은 ‘바보아빠요거트’ ‘밀크스쿨’ ‘풍기댁’처럼 재미있고 개성 넘치는 작명, 각종 캐릭터와 소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농장, 말 대신 트랙터가 끄는 마차 타고 목장 둘러보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농사짓기 생중계 등 기발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도시인들을 불러들인다. 그 결과 ‘팜파티(Farm-party)’는 최근 도시인들 사이에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팜파티란 농업인들이 생산한 농산물로 직접 만든 음식을 맛보면서 농촌문화를 즐기는 파티다. 건강한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선 ‘꾸러미’가 유행하고 있다. 소비자가 품목을 선택하지 않고 농업인들이 가정에 필요한 농산물 몇 가지를 제철에 맞춰 박스에 담아 보내주는 직거래 방식이다.

    태풍 낙과 ‘대박’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서 사과농원 ‘풍기댁’을 운영하는 박현수(34)·김미희(35) 부부는 3년 전 역발상 마케팅으로 깜짝 수익을 올렸다. 2012년 태풍 볼라벤과 산바가 연이어 우리나라에 상륙하면서 전국적으로 수많은 과수농가가 엄청난 피해를 봤다. 박 대표 부부의 사과농원도 태풍 피해를 비켜가지 못했고, 두 사람은 연일 잠을 설치며 속을 끓였다.

    “그때 낙과 피해를 본 사과가 수백 상자 분량이었다. 내다버리지도 못하고 망연자실해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는데 화면에 낙과가 수두룩한 농장 장면이 나왔다. 그 순간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곧장 인터넷에서 ‘낙과 사과’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판매를 시작했는데 기적처럼 전량이 다 팔렸다. 태풍 피해 보상금까지 합쳐 그해 연간수익이 1억 원 가까이 됐다. 솔직하게 광고하면서 싸게 파니까 오히려 단골고객까지 생겨서 이듬해 수익이 70%가량 뛰었다.”(김미희 씨)

    전남 보성군 조성면 싱싱농원 정경모(36)·김소영(35) 부부는 ‘수경재배한 방울토마토’라는 콘셉트로 승부를 걸었다. 정 대표는 “방울토마토를 주작물로 선택한 건 토마토가 건강식품인 데다 수요가 꾸준했고, 보성이 국내에서 방울토마토 재배를 처음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라며 “5년 전만 해도 수경재배하는 농가가 별로 없어 차별화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귀농? 창농! 1차산업? 6차산업!

    ‘낙과 사과’ 아이디어로 히트를 한 ‘풍기댁’ 박현수 대표.



    부부는 2010년 8월 귀농했다. 대학에서 정보통신학을 전공하고 IT 기업에 입사해 잘나가던 정 대표는 첫딸이 태어나면서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IT 업계는 은퇴 시기가 이른 직종이라 40세 이후를 장담할 수 없었다는 것. 경제 불황으로 회사 상황이 좋지 못한 것도 불안을 가중시켰다. 참다래 농장을 하는 부모님 곁으로 귀농할 결심을 한 정 대표는 1년 넘게 회사와 귀농학교를 오가며 공부했고, 귀농에 반대하던 아내와 부모를 설득한 뒤 사표를 냈다. 하지만 귀농 첫해 뼈아픈 깨달음을 얻었다.

    “첫 수확체험 때 1인당 2만 원씩 참가비를 받고 방울토마토 수확 행사를 했다. 250명이 한꺼번에 참여했는데 서로 알이 굵고 좋은 토마토를 많이 따려고 밀치고 다투다 나무가 뜯겨 나가고 열매가 떨어지는 등 난리법석이었다. 그때 경험이 이후 농장체험, 현장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현재 싱싱농원은 예비 귀농(귀촌)자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하러 오는 곳이 됐다. 부족한 자금을 은행 대출로 충당한 부부는 2년 전 초기 투자금을 모두 갚고 매년 수익의 1%를 기부하고 있다.

    농촌창업을 실현해 농촌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2030세대는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미래를 그리는 중이다. 이석무 대표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올해 신설한 융복합6차산업과 석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귀농 후 한국농수산대 출강을 비롯해 6차 산업 관련 강의를 100회 이상 해온 그는 “농업이 과거와 다르게 갈수록 더 주목받는 업종이 되고 귀농인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며 “그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농촌창업 노하우를 교육과 접목해 우리 회사를 농업교육을 선도하는 곳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장훈 대표는 “흑돼지 농장이 자리를 잡았기에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채소를 기를 생각”이라며 “농장과 연계해 채소 수확체험, 채소를 이용한 놀이체험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환경과 건강한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귀농 손자병법’

    농촌창업은 ‘농사’와 ‘경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뛰어들면 실패하기 쉽다. 최윤지 박사는 2012년 농촌진흥청에서 발간하는 RDA Interrobang(53호)에 ‘귀농 손자병법’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시계·始計) △농촌을 알고 나를 알고(모공·謨攻)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군형·軍形) △유리함을 활용하고(군쟁·軍爭) △정보를 활용하고(용간·用間) △블루오션을 찾고(허실·虛實)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야(구지·九地) 한다.

    귀농 인구가 꾸준히 늘면서 농림부는 2011년부터 매년 귀농·귀촌박람회를 열고 있다. 해마다 3만 명 안팎의 사람이 다녀간다. 지난해엔 박람회장을 찾은 2030세대 관람객의 비율이 13.3%나 됐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인재양성본부 백부천 과장은 “귀농에 관심 갖는 젊은이가 확실히 늘었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창업에 성공해서 독일처럼 다양한 직업군도 만들고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미래농업경영인 육성 차원에서 정부는 지난해부터 2030세대 귀농·귀촌 희망자를 위한 맞춤 취업·창업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 지원으로 지난해 4개 대학이 귀농·귀촌 관련 정규 교양과목교육을 개설했고, 올해는 그 수가 10개 대학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청년실업의 그늘 한 편에서 수많은 2030세대가 농촌창업에 미래 희망을 걸고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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