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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의 달인

^^ ㅎㅎ ㅋㅋ ㅠㅠ 잘못 쓰면 毒 된다

문자메시지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 ㅎㅎ ㅋㅋ ㅠㅠ 잘못 쓰면 毒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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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밝은 표정으로

문장에도 표정이 있다. 묘하게도 성격과 기분이 묻어난다. 화가 났을 때 목청이 높아지고 표현 수위가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자메시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읽는 이는 안다. 늘 화가 나 있고 퉁명스럽고 불성실하게 비쳐선 좋을 게 없다.

무뚝뚝맨도, 촐랑맨도 아닌

대면으로 만날 때의 표정과 문자메시지의 표정이 딴판인 사람이 많다. 만날 때엔 친절한데 의외로 문자메시지에선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면 상대는 당혹스러워한다. 반대로, 만날 때엔 엄숙한 사람인데 문자메시지에선 ‘촐랑맨’이면 그것 또한 당혹스럽다. 이중인격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문자메시지 세계에서도 일관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가식의 탈?



요즘 문자메시지에 이모티콘은 기본이다. ^^, ㅎㅎ, ㅋㅋ, ㅠㅠ 같은 표현도 자주 쓴다. 현재 기분과 상태를 표현하기에 좋은 수단이다. 다만 이 표정이 진짜 표정일까 하는 의문을 주기도 한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느낌, 반가워하는데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이모티콘은 자칫하면 가식의 탈로 느껴질 수 있다.

안 붙이면 오해를 살 듯도 해 건성으로 이모티콘을 붙이는 때도 많다. 그건 받는 사람도 안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이모티콘을 붙이면 정말 도식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이모티콘을 남발한다. 이모티콘을 잘못 쓰면 독(毒)이 될 수 있다. 부정적 인상을 주고 인간관계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오히려 이모티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더 돋보일지 모른다. 진지하다고 할까. 업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특히 그러하다.

재깍 응답하라

응답 속도는 상대에 대한 충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연인 사이에 애정이 식으면 문자메시지 응답 속도가 느려진다. 애사심도, 상사에 대한 충성심도 다르지 않다. 회사를 떠나고 싶고 상사가 싫어지면 사내 대화방 반응이 더뎌진다.

충성도와 응답 속도는 정비례

연인과 헤어지려 할 때는 아예 문자메시지 응답을 안 하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어느 정도 눈치를 챈다. 회사를 떠나려할 땐 달리 접근해야 한다. 사표를 내는 그날까진 상사의 문자메시지에 바로 답해야 한다.

이것이 때때로 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특히, 퇴근 이후의 업무지시 문자메시지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숙면을 방해하기도 한다. 미국 노던일리노이대 심리학과 라리사 K 바버 교수는 이를 무선압박감(telepressure)이라고 부른다. 어떤 이는 대놓고 ‘문자메시지 감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론사 사회부 대화방

일전에 서울시내 한 언론사 사회부의 경찰서 담당 기자를 만났다. 이 기자는 자기 스마트폰의 부서 대화방을 보여줬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상관인 시경 캡, 차장, 부장이 보낸 지시사항 및 이에 대한 응답으로 빼곡했다. “A 기사 관련해 B 내용 오전 중 보충할 것” “C 기자가 D 내용으로 기획기사 준비 중인데 오후에 유사 사례 취재해 C 기자에게 토스해줄 것” “주말판 기사 기획안 제출할 것” “9시뉴스에 난 E 기사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고할 것”…. 이 기자는 “하루 평균 10번도 넘게 업무지시가 대화방으로 전달된다. 여기에 바로바로 답을 줘야 하고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스마트폰이니 문자메시지니 카톡방이니 하는 것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유럽 일부에선 퇴근 시간 이후 업무지시를 법으로 제한하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다르다. 늘 조급하고 당장의 실적이 중요하며 내일 아침 보고거리를 만들어놔야 한다. 별수없다. 응답이라도 재깍 해주는 게 최선이다.

일이 아닌 놀이처럼

취업 포털 사람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47.8%는 인맥을 관리한다. 인맥 관리 방법 중 단연 1위(61%)는 ‘문자메시지(카카오톡) 주고받기’였다. 그다음이 ‘식사하기’와 ‘술자리 갖기’였다. 문자메시지가 직장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식사와 식사 사이

문자메시지의 장점은 저비용이다. 돈이 거의 안 든다. 그러나 만나서 함께 차 마시고 밥 먹고 술 한잔하는 것과 효과가 같을 순 없다. 다만, 차와 차 사이, 식사와 식사 사이, 술자리와 술자리 사이를 메워주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다.

어떤 사람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을 관리할 땐 신 나게 문자메시지를 쓴다. 그러나 사내 대화방에 들어오면 방어적인 자세로 바뀐다.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적 인맥 관리도 일의 일부다. 또한 사내 대화방도 보기에 따라 놀이가 될 수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문자메시지 주고받는 것을 일이 아닌 놀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진짜 인간성’ 각인

업무 시간 중에는 회사 동료와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다. 회의 시간에도 업무 이외의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이런 공백을 메워주는 수단으로 문자메시지나 대화방은 손색이 없다. 자신의 업무 역량을 만천하에 알리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진짜 인간성을 각인시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이미지 전략에 입각해 ‘문자메시지 정치’를 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어떤 조직에서든 출세하려면 반드시 ‘문자메시지 적극 활용파’가 돼야 한다.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처럼, 연애 초기의 연인처럼 문자메시지 정치에 공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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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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