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가족기업’ 땅 산업단지 허가 신탁주식 소유권 계속 행사

거제시장의 불투명한 부동산·주식 논란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입력2015-02-25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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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시장 땅에 투자의향서 들어온 후 국가산단 변경
    • “말로만 백지신탁” “내 땅 내 맘대로”
    • 부당이득 기업에 또 사업권…현대산업개발 특혜 의혹
    • 권민호 거제시장 “악의적 의혹 제기 …모두 사실무근”
    ‘가족기업’ 땅 산업단지 허가 신탁주식 소유권 계속 행사
    인구 26만 명의 경남 거제시는 잘 사는 도시로 유명하다. 통계청(2013년)에 따르면, 거제시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은 연 5500만 원으로 전국 도시근로자 평균소득(3600만 원)보다 2000만 원가량 많다.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 5곳 중 2개(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가 거제에 있기 때문. 거제시는 매년 인구가 늘고 3~4개 산업단지가 동시에 설립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거제시가 진행한 각종 사업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검토·추진 중인 국가산업단지 개발을 두고 말이 많다. 논란의 중심엔 권민호(59) 거제시장이 있다.

    ‘가족기업’ 소유 부동산

    지난해 11월 거제시는 경남 거제시 하청면 덕곡리 지역에 14만9881㎡ 규모의 덕곡일반산업단지(덕곡산단) 조성을 승인했다. ‘해양플랜트 및 조선 관련 생산시설의 산업벨트로 효과적인 정비 및 계획적인 개발을 통한 경쟁력 있는 해양플랜트 및 조선관련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게 설립 목적. 실수요자 입주 방식의 산단 개발엔 금속가공업체 Q사와 운송장비 제조업체 H사가 참여했다. 문제는 산단이 들어설 지역에 권민호 시장 소유 부동산이 상당부분 포함됐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덕곡산단 예정지 총 74개 필지 중 권 시장이 소유한 부동산은 4필지 3604㎡(약 1100평, 이하 지적면적 기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권 시장과 관련된 부동산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산단 예정지에는 권 시장이 설립한 조선 기자재 업체 (주)진명 소유 부동산 21필지 8만4116㎡(약 2만5000평)가 포함됐다. 진명 소유 부동산은 산단 예정지의 절반이 넘는다.



    권 시장은 이 회사의 지분 46%를 갖고 있다. 권 시장의 처남과 친동생이 가진 지분까지 합하면 권 시장 일가의 지분은 80%가 넘는다. 사실상 ‘가족기업’인 셈. 현재 진명의 실질적 대표는 권 시장의 처남인 박모 씨다.

    공직자윤리법(14조)에 따르면, 공직자는 업무 연관성이 있는 기업의 주식을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 해야 하며 신탁을 위임받은 기관은 신탁계약이 체결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신탁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권 시장도 2010년 거제시장에 취임한 직후 진명 주식을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했다. 조선 기자재 제조업체인 진명의 사업이 거제시장의 업무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규정대로라면 백지신탁된 권 시장의 진명 지분은 2010년에 매각이 완료됐어야 한다. 그러나 취재 결과 권 시장은 여전히 진명 지분 46%를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생과 처남의 주식도 그대로였다.

    금융기관이 공직자가 위탁한 주식을 매각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자산가치가 없는 등의 이유로 매입자를 찾을 수 없을 때다. 이 경우 금융기관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주식을 일정 기간 보유할 수 있다.

    부동산 가치 200억~250억

    그러나 진명은 산단 예정지에 수만 평의 부동산을 소유한 알짜배기 회사라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덕곡에 있는 진명 소유 부동산의 가치는 200억~250억 원대로 평가된다. 진명의 자본금은 14억 원(14만3827주)에 불과하다.

    취임 이후 권 시장은 여러 차례 이 부동산에 대한 처분 방침을 내놨다. “적당한 때, 적절한 매입자가 나타나면 토지를 매각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9일에도 권 시장은 지역 언론과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비슷한 의미로 발언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거제인터넷신문 김모 기자는 이렇게 전했다.

    “그동안 여러 번 권 시장에게 진명 소유 부동산의 처분 계획을 물었다. 그때마다 권 시장은 (덕곡산단) 허가가 나기 전의 감정평가 가격으로 (기업에) 넘기겠다고 말했다. 권 시장은 이 부분을 아주 민감해 한다. 부동산 문제만 물어보면 ‘나는 재선만 하고 끝내겠다. 더 하지 않겠다’고 한다.”

    공직자윤리법(28조)에 따르면, 공직자는 신탁재산의 관리·운용·처분에 관여하지 못한다. 신탁기관과 공직자는 신탁재산의 관리·처분 등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거나 주고받아선 안 된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문제의 부동산과 진명 주식에 대한 권 시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2월 12일 권 시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권 시장은 백지신탁을 한 주식, 본인 소유로 볼 수 있는 진명 소유 부동산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문제의 부동산은 본인 소유이며 사용·처분권도 내가 가졌다”는 취지로 답했다. “사유재산 문제를 기자에게 설명할 이유가 없다”고도 말했다. 다음은 권 시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백지신탁한 주식은 60일 이내에 매각해야 한다. 매각 관련 정보도 수탁자(공직자)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 권 시장의 진명 주식은 매각되지 않았다.

    “내 소유니까 (매각을 해도) 나와 합의를 해서 매각을 해야 하는데, 살 사람이 없다.”

    ▼ 공직자는 본인 소유 주식을 백지신탁한 뒤 소유·처분권을 행사할 수 없고 간여해서도 안 되게 돼 있다.

    “그럼 그 재산이 내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내 재산이 아니면 국가에 헌납하는 것인가. 내가 시장직에 있는 동안 신탁만 하는 것 아닌가. 내 사유재산에 대해 왜 기자에게 설명해야 하나.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검찰에 고발하라.”

    ▼ 진명 주식을 어떤 금융기관에 위탁했나.

    “내가 왜 말해야 하나. 의혹이 사실이면 시장직을 내놓겠다.”

    권 시장의 부동산은 시의회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다음은 2013년 7월 3일 거제시의회 본회의 회의록 중 일부이다.

    한기수 의원 행정의 수장의 땅이기 때문에 문제 아닙니까.

    권민호 시장 행정의 수장이라고 역차별당하고 불이익을 당해야 될 이유가 있습니까.

    한기수 의원 예?

    권민호 시장 행정의 수장이라고 해서 역차별당하고 또 그렇게 해야 될 이유가 있습니까. 시장의 땅은 개인의 땅이고 제가 시정을 보면서 공무를 집행하면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든지 부정하든지 이것을 탓해야 되고….

    한기수 의원 시장님, 진명은 시장님의 지분이 들어 있습니까.

    권민호 시장 개인적인 질문은 (…) 시정에 관한 질문을 해 주시고 개인적인 질문이 궁금하다면 언제든지 와서 해주세요. 저는 주식이 있다는 것은 전부 신탁해서 법인에 아무 권리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기수 의원 왜 의원이 시정 질문에서 묻는데 개인적인 답변을 요구합니까.

    권민호 시장 시의원이 어떤 권한에서 시장 개인의 사유재산까지 물으라는 권한이 있습니까. (…)

    공시지가 10배 상승

    권 시장 소유 부동산 관련 의혹은 2010년 권 시장이 처음 거제시장에 출마할 때부터 제기됐다. 당시 유력 후보이던 권 시장이 차세대산업단지 조성을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왔기 때문. 덕곡만은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였다.

    덕곡산단 내 권 시장과 진명 소유 부동산의 가치는 2010년 권 시장의 취임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다. 산단 중심의 진명 소유 부동산(하청면 덕곡리 838)은 2009년 1㎡당 2만4000원에 불과하던 공시지가가 2011년 7만9200원, 2014년에는 15만8400원으로 치솟았다. 권 시장 소유 부동산인 덕곡리 846-1번지도 2010년 1만1500원이던 공시지가가 2014년에는 12만3200원으로 10배 넘게 올랐다.

    권 시장은 취임 이후 선거공약인 차세대국가산단을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2012년에는 시 예산 3억 원 이상을 들여 산단 입지 선정을 위한 용역을 발주했다. 2012년 6월 용역보고서가 나왔다. 산단 예정지 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서 권 시장 소유 부동산이 있는 덕곡만이 최적지로 선정됐다.

    ‘차세대 산업단지의 최적입지 선정은 (…) 입지적, 환경적, 기술적 측면의 평가로 덕곡, 사곡, 청곡, 금포의 4개 입지 후보지를 선정하여 비교 검토를 통해 덕곡을 최적지로 선정함.’(용역보고서 330쪽)

    국가산단 예정지가 덕곡으로 결정되는 과정에선 논란이 있었다. 토지 보상비를 공시지가의 1.5배 수준에서 결정한다는 계획, 애초 권 시장 소유 부동산이 포함된 원안이 조사용역 과정에서 수정되면서 국가산단 예정지에서 배제된 것 등이 논란이 됐다. 특히 권 시장 부동산이 배제된 것은 특혜 논란을 불렀다.

    2012년 3월 30일 열린 용역중간보고회에서 한 시의원은 “마을 주민들의 땅은 강제 수용하면서 권 시장 땅은 강제 수용당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2012년 4월 2일 ‘거제신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기수 거제시의원은 “국가산단에 포함된 부동산은 큰 보상을 받기 어렵다. 오히려 산단에 포함되지 않은 인근 부동산이 혜택을 본다. 당시 의원들은 그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산단, 일반산단

    덕곡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였던 국가산단은 2013년 1월 뜻밖의 변수에 직면한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권 시장이 용역보고서에서 최적지로 평가한 덕곡이 아니라 조성 비용이 가장 많이 든다고 평가한 사곡만 지역을 국가산단 부지로 결정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권 시장은 주민 보상협의의 문제점, 김천-거제간 철도 개설을 위한 부지 확보 등을 변경 이유로 들었다. 용역보고서 내용과 배치되는 주장이어서 논란이 됐다. 용역보고서는 사곡만이 덕곡만보다 2000억 원 이상 사업비가 더 소요된다고 추정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권 시장이 국가산단 예정지를 사곡으로 바꾸기 한 달 전인 2012년 12월 24일, 덕곡이 사실상 국가산단으로 확정된 상황에서 H사가 권 시장과 진명 소유 땅 등을 개발하겠다며 거제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권 시장의 부동산 관련 의혹을 제기해온 한기수 의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토지 소유자 처지에서 보면 국가산단은 돈이 안 된다. LH공사가 수용, 분양을 책임지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반 기업이 개발을 진행하는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땅 소유주가 거래를 주도할 수 있다. 토지 소유주인 권 시장에겐 일반산단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추정이지만, 사업을 오래한 권 시장이 어느 순간 이런 사실을 알고 급히 국가산단 예정지를 사곡으로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일반적으로 투자의향서가 제출될 정도라면 그전부터 오랫동안 지주와 협의하면서 개발 준비를 했다고 봐야 한다. 하루 이틀 준비한 의향서가 아니라고 본다.”

    덕곡일반산단이 추진되는 과정에선 지역시민단체의 반대도 있었다. 지난해 7월,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은 덕곡산단 반대 성명을 내고 “덕곡산단 예정지는 현 거제시장이 석산 개발을 하던 곳이다. 당시 주민들에게 해상운송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육로로 운송했다. 주민들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너무나 컸다. 이 지역은 보호종인 고란초가 서식하는 등 자연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고 주장했다(2014년 7월 18일 ‘거제시민뉴스’).

    기자는 덕곡일반산단이 추진된 배경을 알기 위해 H사 이모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몇 차례 전화통화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내가 잘 모른다”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가족기업’ 땅 산업단지 허가 신탁주식 소유권 계속 행사
    현대산업개발 특혜 의혹

    권 시장이 사곡국가산단과 덕곡일반산단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나왔다. 대표적인 곳이 2009년에 이미 경상남도에서 산단 설립허가를 받은 청포산업단지(청포산단, 시행사 신해중공업)이다. 최근 거제에서 기자를 만난 신해중공업 핵심 관계자는 “권 시장이 청포산단에 들어오기로 약속된 대우조선해양 등 기업에 ‘청포산단에 들어가지 마라’고 압력을 행사한다. 최근엔 청포산단 허가를 취소하는 행정절차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2010년 권 시장 측근이 찾아와 권 시장의 뜻이라며 ‘덕곡만의 권 시장 소유 땅을 250억 원에 매입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우리는 거절했다. 그 후부터 권 시장이 청포산단 사업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는 권 시장과 가까운 사람이 찾아와 ‘300억 원을 줄 테니 청포산단 사업권을 넘기고 거제를 떠나라’고 제안했다. 의도적으로 사업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신해중공업 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권 시장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 모두 사실무근이다”라고 부인했다.

    지난해 12월 3일, 청포산단 계약자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산단 추진을 요구하며 거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대책위는 “거제시는 청포산단 사업 추진에 의지가 없어 보인다. 사곡국가산단과 최근 승인이 난 덕곡일반산단으로 인해 청포산단의 기업 입주에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거제시 주변에선 사곡국가산단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산업개발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현대산업개발은 2005~2008년 거제시에서 하수관거 공사를 수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공사과정에서 45억 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이 확인돼 거제시로부터 5개월 입찰제한 결정을 받았다. 거제시와 수년간 송사도 벌였다.

    그러나 거제시는 현대산업개발의 지속적인 요청을 받아들여 2013년 입찰제한 기간을 1개월로 줄여줬다. 현대산업개발의 처지에서는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현대산업개발은 감사의 표시로 50억 원가량의 기부금을 내기로 거제시 측과 합의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기부금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사곡국가산단 시공사로 선정되자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빗발쳤다. 지난해 거제시장 선거에 출마한 김해연 경남미래발전연구소 소장은 “명백한 특혜다. 정상적인 사업자 선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거제시 측은 “현대산업개발이 구두로 70억 원의 기부금을 약속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법적인 문제는 없다. 50억 원 기부금 약속을 지킬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거제시로부터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답변하지 않기로 했다”

    신동아는 2월 10일 거제시와 권민호 시장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총 13개 문항의 질의서를 통해 권 시장 소유의 덕곡만 부동산, (주)진명과 관련된 의혹 등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질의서를 받은 거제시청 공보실과 권 시장은 서면 답변을 거부했다. 공보실 박모 주무관은 “기자의 취재 의도가 순순하지 못해 답변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취재 거부 이유를 밝혔다. 권 시장도 “모두 사실무근이며 답변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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